본명은 안드레이 플라토노비치 클리멘토프이다. 1899년 러시아 남부 보로네시의 외곽 마을에서 태어났다.가난에 허덕이는 가계를 돕기 위해 열다섯 살 때부터 기관사 조수, 수리공 등 여러 가지 일을 했고, 1918년 보로네시 철도대학에 입학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공산주의 신문과 잡지에 꾸준히 시, 소설 등을 발표하고 지역 문단에서 활동했으며, 1922년 시집 『하늘색 심연』을 출간했다. 1929년 첫 장편소설 『체벤구르』를 완성하고 이 작품의 출간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그에게 비판적이던 문단의 분위기 때문에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중편 「저장용으로」를 발표한 후에는 반혁명주의자라는 비판에 직면했고, 1930년 완성한 대표작 『코틀로반』 역시 작가 생전에 출간되지 못하고 1987년에 이르러서야 문학잡지 『신세계』에 발표되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종군기자로 전선에 파견되어 전쟁의 참상을 전하는 글을 썼으며, 1946년 발표한 「이바노프의 가족」으로 다시 비평가들의 표적이 되어 작품 활동을 금지당했다. 1951년 52세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생을 마감했다.
역자 : 김철균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풍자 중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부산외국어대학교 서양어대 러시아어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추상과 소외」 「플라토노프의 가족서사」 「플라토노프의 문학론」 「플라토노프의 2차 대전 시기 전쟁 산문」 등 플라토노프에 대한 다수의 논문과 「이콘의 신학과 세계관의 문제」 등 중세 러시아 문화 관련 논문을 썼다. 옮긴 책으로 『플라토노프 중단편 선집』(근간) 등이 있다.
그는 아직도 사람들이 땅을 나누고 담을 치는 방식으로 살고 있는 옛 도시를 대신할 ‘전(全) 프롤레타리아의 집’을 고안해냈던 것이다. 1년 후면 이 지역의 모든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소부르주아적인 삶의 방식을 지닌 도시를 떠나 기념비적인 새 집에 삶의 둥지를 틀 것이다. 그리고 10년이나 20년 후면 또다른 기술자가 나타나 세계의 한복판에 탑을 짓고,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노동자들이 그 탑에 들어가 행복한 영원의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 p.35
삶의 모든 올바른 의미와 온 세계를 아우르는 완전한 행복은 땅을 파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가슴 속에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단조공과 치클린의 심장이 희망 속에 숨 쉬고 그들의 노동하는 손이 믿음 속에 인내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되어야만 했다.
서른번째 생일을 맞던 날, 보셰프는 전체 작업 속도를 거스르고 자주 사색에 빠진다는 이유로 자신이 다니던 공장에서 해고된다. 삶의 의미를 찾아서 길을 떠난 그는 새로운 공간에 도착하여 모든 노동자들이 영원히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집단 거주지,‘전 프롤레타리아의 집’을 건설하기 위해 ‘코틀로반’을 파는 공사장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이상적인 노동자상을 대변하는 인물로 강인하고 우직하며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치클린, 부르주아 출신으로 나약한 지식인을 대표하는 건축기사 프루솁스키, 글을 읽고 쓸 줄도 모르면서 조합위원장의 직책을 맡아 부패를 일삼으며 부르주아 생활을 영위하는 파시킨, 제국주의에 의해 두 자리가 잘려나간 자체프 등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이들은 이상적인 삶의 둥지를 짓기 위해 온 힘을 다 바쳐 공사일에 매달리다가 점차 집단화 정책에 동조하여 부농 계급 철폐에 관심을 쏟기 시작한다. 마침내 그들은 자신들이 추구한 목적을 상실하게 되고 집의 토대를 내리기 위해 그토록 열심히 팠던 코틀로반은 마치 무덤처럼 덩그러니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