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빚의 누적 수준이 대공황 직전 수준을 훨씬 웃돌아 빚의 대붕괴를 눈앞에 둔 지금 시점에서, 거품 경제로 위기를 넘기려는 전략은 국가 경제 전체를 매우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시대착오적인 전략이다. 빚더미가 해소되기 시작하는 대붕괴의 시대에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빚을 짊어진 국가부터 경제가 무너져내릴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아일랜드의 성공과 실패를 목도하고도 이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과도한 금융규제 철폐로 전 세계가 위기에 처했을 때조차 아일랜드를 본받아 금융규제를 철폐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전 세계가 대붕괴의 위기를 인식하고 금융규제를 강화하고 있을 때조차 이를 정면으로 거스르려 한 셈이다.---pp.40-41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 전 세계적으로 빚이 축적된 규모는 인류 역사상 보기 드물 정도다. 미국과 프랑스, 이탈리아, 한국 등 세계 주요 국가에서 가계와 기업, 정부의 빚을 모두 합친 총부채는 GDP의 세 배가 넘은 지 이미 오래다. 특히 영국과 일본의 총부채는 GDP의 다섯 배를 훌쩍 넘어섰다. 그런데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빚이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많은 나라에서 빚이 더욱 늘어났다. 심지어 일부 국가에서는 민간부문의 빚을 정부가 떠안으면서 민간부채가 공공부채로 이전되는 현상도 나타났다. 결국 대규모 경기부양책은 글로벌 금융 위기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빚을 더 쌓는 방법으로 위기가 닥쳐올 시기를 단지 조금 늦추었을 뿐이다. 빚을 더 쌓아가는 동안에는 시중에 돈이 넘쳐나고 주가도 뛰어오르겠지만, 이는 부채라는 현대 금융의 연금술이 만들어낸 환영에 불과하다. 이제 곧 정책수단이 얼마 남지 않은 최후의 게임이 시작되면, 대규모 빚더미가 무너져내리는 대붕괴 과정이 시작될 수밖에 없다. ---pp.75-76
현재의 주류 경제학은 자산시장에 거품의 존재를 부정하고 정부 개입을 강력히 반대한다. 경제 이론상 시장은 언제나 완벽하므로 시장 가격에 거품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거품이 급속히 붕괴하면서 일어나는 금융위기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그러다 실제로 금융위기가 일어나면 이는 지극히 예외적인 일로 치부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주류 경제학에서는 경제위기를 예측하기는커녕, 다가오는 위기에 경고의 목소리를 내기조차 쉽지 않다. 2008년 11월,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는 세계 경제의 수장들과 경제 전문가들이 얼마나 빗나간 경제 진단과 예측을 했는지 소개했다. 그중에서 장 클로드 트리셰(Jean-Claude Trichet)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이미 금융위기가 진행되고 있던 2008년 7월, “유럽 경제가 2분기와 3분기에 궂은 날씨를 거친 뒤, 4분기부터 완만한 성장으로 복귀할 것으로 예측한다”고 했다가, 4분기에 실제로 경제가 사상 최악의 침체로 빠져들어 망신을 당했다. ---p.122
세계적인 자문회사인 맥킨지McKinsey의 부설 연구소 MGI(McKinsey Global Institute)의 조사결과, 2011년 현재 한국의 GDP 대비 총부채비율은 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의 267%보다도 훨씬 높은 314%를 기록해, 조사 대상이었던 10대 경제 대국 중에 5위를 차지했다. 지금 한국의 부채 수준은 아주 작은 충격만으로도 붕괴를 가져올 수 있는 임계상태로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p.163
한국에서도 감세의 효과는 가짜 만병통치약처럼 심하게 과장됐다. 감세만 하면 세수가 늘어난다는 실증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주장이 판을 쳤다. 그러나 감세로 줄어든 세수가 저절로 채워지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결국 국민 중 누군가는 그 부족한 세금을 떠안아야 한다. 아마 맨큐 교수가 한국을 방문해 이 주장을 들었다면, 한국에는 온통 사기꾼과 협잡꾼이 넘쳐난다고 했을지 모른다. 더구나 한국의 사기꾼 약장수들은 이미 가짜 약이라는 것이 만천하에 들통 났는데도 여전히 만병통치약이라고 우길 만큼 염치도 없다. ---p.201
우리나라는 특히 국민연금과 각종 연기금이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2012년 4월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 적립금은 370조 원에 이르는데, 국민연금 관리공단은 이 적립금 가운데 30%를 주식에 투자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2011년 말 기준으로 89조 원이었던 국민연금의 주식 투자 금액은 2017년까지 189조 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 가운데 국내 주식시장 투자 목표는 140조 원 정도로, 2012년 8월 현재 코스피 시장 전체의 시가 총액인 1,000조 원의 14% 수준이다. 이처럼 거대한 국민연금의 존재는 앞으로 한국의 주가 변동성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국외 투기세력이 보기에 국민연금처럼 쉬운 먹잇감이 없다. 국민연금은 주가가 올라갈 때 든든한 수요 기반이 되고, 거꾸로 주가가 내리면 어김없이 구원투수로 등장해 주가를 떠받칠 것이다. 따라서 국외 투자자들은 주가가 꺾여서 급락할 때도 다른 나라보다 비교적 더 비싼 값에 주식을 떠넘기고 한국을 떠날 수 있다. 더구나 국민연금의 투자 내역과 자금규모는 완전히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국외 투자자로서는 마치 포커게임을 할 때 상대방의 패를 보고 치는 것처럼 손쉽게 투자 게임을 할 수 있다.
---p.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