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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0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216쪽 | 390g | 152*215*14mm
ISBN13 9791189052157
ISBN10 1189052156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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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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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에서도 달려야 한다. 달리지 않고 멈춘다면 언제 차가 와서 추돌할지도 모른다. 넋 놓고 앉았다가 대형 사고를 낼 수도 있다. 희미한 길에서도 달리다 보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가야 한다. 간간이 비치는 앞차의 불빛도 나를 끌고 가는 희망이다. 바로 앞도 보이지 않지만, 차선을 이탈하지 않고 아주 천천히 가다 보면 늦게라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조심조심 페달을 밟아야 한다.
지금 도로변 산에는 나뭇잎을 다 떨어뜨린 나목들이 서 있을 것이다. 봄에는 물을 올려 푸른 잎을 틔우고, 여름날 무성한 잎으로 숲을 만들었던 나무들이 벌거벗은 몸으로 봄을 기다리며 차가운 바람을 인내하고 있을 것이다. 늘 푸른 잎과 화려한 꽃으로 서 있지 않다는 것은 생의 순환을 의미한다. 이렇게 만물은 순환하며 제 자리를 지킨다. 사람도 아등바등할 것 없이 여유를 가지고 계속 나아간다면 언젠가는 자기의 자리에 서게 되지 않을까.
해가 보이기 시작한다. 하얀 구름 속에 가로등인 듯 또렷하게 떠오른다. 안개 속으로 떠오르는 해는 마치 보름달처럼 테두리가 선명하다. 점점 안개가 엷어지는 지역으로 들어서자 선명했던 해가 퍼지면서 밝은 빛을 내기 시작한다. 태양은 원래부터 빛을 지니고 있다. 단지 구름과 안개에 가렸을 뿐, 또렷한 태양은 그 자체가 빛이다. 청년의 조카들도 지금은 안개 속에 가려진 태양, 언젠가 모두 안개를 걷어내고 제빛을 발할 것이다.
--- 「안개가 걷히면」중에서

마음은 사람의 뇌와 관련을 갖는다고 한다. 치매 걸린 어느 어머니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자신의 이름도 딸의 이름도 모르던 그 어머니는 보따리 두 개를 부둥켜안고 어딘지도 모를 장소로 딸을 찾아 나섰다가 주변에 발견되었는데, 출산한 딸을 위해 흰밥에 미역국과 나물 반찬을 챙겨 싸 들고 길을 헤매고 다녔다고 한다. 경찰의 도움으로 딸을 찾아 식은 미역국을 풀어 놓던 어머니의 사랑에 듣는 사람들은 누구나 눈을 적셨다고 한다. 양손에 들고 있던 짐 보따리에 든 건 치매를 앓던 엄마가 놓지 않았던 펄펄 끓인 사랑이었을 텐데. 엄마라는 치매의 공간은 자식의 기억을 고장 난 뇌의 사이사이에 나눠 붓고서 뚜껑을 닫은 모양이었다.
끓는 미역국 간을 보던 부엌과 나물 다듬던 마루에서 그 어머니는 잠깐 행복하지 않았을까. 미역국을 퍼 담던 국자를 내려놓듯 정신을 놓고도, 어머니 부엌에는 방금 뜸이 든 흰쌀밥이 밥통에 보온으로 아직 눌려 있을 것만 같다. 치매란 혹시 뜨거운 마음들이 꼬불꼬불하게 엉키는 일은 아닌지 모르겠다. 마음을 찾는 본능의 감옥일지도 모를 일이다. 누구나 마음에 보따리 하나쯤을 품고 산다. 아끼는 것들을 싸 들고 숨어 있기도 한다. 아마 상처와 분노도, 억울함이나 미움도 아닐 것 같다. 가장 행복했던 날의 빛나던 시간들이 아닐까 싶다.
--- 「마음」중에서

밤하늘의 달이 한 면만을 보이며 지구를 돌듯이 뒷면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산다. 다 안다고 착각하여 함부로 판단하는 과오를 범하기 일쑤이다. 사람 따라 입맛도 다르고 보는 눈도 천차만별이 아니던가?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이 있듯이 세상을 좀 살아보니 사람이 사람을 평가할 수 없다고 단언하게 된다. 달의 뒷면을 보려고 무리한 시도를 단행할 필요는 없다. 서로 간의 신뢰 위에서 시간의 흐름 속에 맡기다 보면 미처 몰랐던 것도 알아가게 되고 이해하게 된다. 더 나아가 사소한 것부터 용서하고 결점도 안고 사는 것은 평탄한 길을 만들어가는 단맛 나는 삶이 아닌가 생각한다.
찐 밤의 껍질은 말라서 굳어버리기 전에 까야 한다. 고정관념은 굳어버린 껍질이지 싶다. 금방 쪄낸 밤의 껍질은 습기를 머금고 있어서 잘 까진다. 고정관념의 껍질을 벗겨내려면 사랑 물에 넣어 푹 삶아야겠다.
--- 「찐 밤 일곱 개」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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