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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회색의 새 이름을 천천히

짙은 회색의 새 이름을 천천히

푸른사상 소설선-24이동
리뷰 총점10.0 리뷰 1건 | 판매지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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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1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426g | 146*210*14mm
ISBN13 9791130814766
ISBN10 1130814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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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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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는 오늘 새벽 한국을 떠났을 것이다. 표제작 「짙은 회색의 새 이름을 천천히」의 배경이 되었던 루스의 서점은 문을 닫았다고 했다. 루스는 영국에 도착해서 처음 대화를 나눈 영국인이었고, 그 인연을 지금까지 소중하게 이어온 친구다. 루스의 한국 방문을 앞두고 루스와 함께 했던 그 먼 시간들을 다시 꺼내보았다. 영국의 겨울을 두 번째 맞이하던 나는 다쳤던 발가락이 덧나 왼쪽 발이 몹시 아팠다. 병원 치료도 제대로 받을 수 없었지만 발이 퉁퉁 붓도록 앉아서 소설을 썼다. 통증을 견딜 수 없으면 난방도 되지 않는 카펫 위에 엎드려서 자판을 두들겼다. 영국에서 만난 사람들의 눈과 피부와 머리카락의 색깔은 각각 달라도 가난과 외로움에 흘리는 눈물의 빛깔은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멈출 수가 없었다.
바람이 거리를 휩쓰는 소리, 플라타너스가 앙상한 가지를 비벼대는 소리, 천식을 앓는 옆집 여자의 기침소리를 들으며 소설을 쓰던 영국의 겨울밤들.
겨울이 끝나갈 무렵 다시 한국에 돌아와 등단을 하고, 소설에 관한 강의도 하면서 왜 소설을 쓰는지 가끔 질문을 받지만 십사 년 전 영국의 겨울밤과 같은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는 뜨거움과 사로잡힘이 내 소설 쓰기에 있다. 어머니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볼펜으로 눌러쓴 200자 원고지 100매를 결혼 선물로 주셨는데 첫 책이 나오기까지 일종의 길잡이 역할을 했던 것 같다. 까칠하지만 글을 쓸 때 곁에 있어주는 우디와 고양이 알레르기에도 불구하고 한 영역을 기꺼이 내어주는 마음 따뜻한 가족에게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머지않아 아흔 살이 될 루스는 한국을 다시 방문하기 힘들다고 했지만 결코 마지막 만남이라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어젯밤,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호텔로 전화를 했을 때 입이 떨어지지 않는 나보다 먼저 루스가 다음에 다시 만나자라고 했다. 첫 책의 출간과 함께 한 시절이 지나가고, 새로운 시절이 시작된다는 느낌에 떨림과 견딤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천천히, 조금씩.
--- 「책머리에」중에서

벌려진 현관문 사이로 그녀가 모습을 나타내자 옆집 남자는 뒷걸음질을 쳤다. 한두 걸음에 불과했지만 옆집 남자의 표정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가 겁 없이 현관문을 열어젖혀서는 아니었다. 그녀의 오른손에 들려 있던 과도 때문도 아니었다. 땀에 젖은 이마나 홉뜬 흔들리는 눈빛 그리고 더욱 샛노래진 그녀의 낯은 위협적인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옆집 남자가 그 분위기의 정체를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는 걸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물리적인 세계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모공의 털을 곧추세우는 오싹한 느낌, 죽음을 담보한 자의 마지막 발악, 그건 바로 섬뜩함이었다. 옆집 남자는 그녀가 마치 마법의 주문이라도 외고 있는 것처럼 달싹이는 그녀의 입술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쩌면 그녀는 옆집 남자를 향해서가 아니라 한 인간의 운명에 대해 함부로 짓까부는 자들을 향해 소리 없이 울부짖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아니면, 웅크린 마음의 문을 좀 더 일찍 열어젖히지 못한 그녀 스스로를 향한 외침이었는지도. 맥없이 돌아서는 옆집 남자의 처진 어깨를 옆집 여자가 감싸 안았다. 정말 미안해요, 봄이 되면 찌르레기들이 돌아올 거라고 조그만 희망을 주었던 옆집 여자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집집마다 두꺼운 커튼이 젖혀지고, 호기심 어린 눈길들이 빛바랜 레이스 커튼 뒤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그들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그녀는 온몸으로 느꼈다. 가늘게 떨리는 그녀의 날갯짓이 한겨울 바람을 타고 카운슬 하우스의 차가운 공기 속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 p.32~33

여동생은 여성용 면도칼로 내 가슴을 그었다. 할퀴고 지나가는 금속의 날카로움에 저절로 신음이 나왔다. 방 안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하였다. 하얀 시트는 핏빛을 머금어갔다.
“개새끼! 언니가 정말 필요로 했던 건 도움이었어.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을 교묘히 이용해먹다니! 언니는 소설 속 주인공처럼 알몸 여기저기에 면도칼을 그었다고.”
흑, 터져 나오는 울음을 여동생은 손바닥으로 눌렀다. 눈물을 글썽이며 여성용 면도칼을 바닥에 던졌다. 가발도 벗고 눈물로 화장까지 지워진 여동생의 얼굴은 자신이 한 행동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앳돼보였다. 돌아서 나가는 여동생의 발걸음이 비칠거렸다.
모텔 안은 정적에 잠겼다.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눈 밑이 까매진 그녀가 거울 앞에 알몸으로 서 있는 황량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오렌지색 가발을 가슴에 끌어안고 울었다. 그녀가 알몸에 흐르는 피로 피어난 선홍빛 장미가 되고자 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적어도 「알리사, 좁은 문으로 들어가다」는 쓰지 말았어야 했다. 정녕 쓸 수밖에 없었더라도 발표하지는 말았어야 했다. 그녀는 힘겨울 때 용기를 내어 나를 찾아왔다. 여동생의 말대로 도움을 원했을지도 몰랐다. 나는 소설을 쓰겠다는 욕심에 도움을 필요로 하던 그녀의 호소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내 호기심만 채웠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렌지색 가발은 피로, 내 얼굴은 눈물과 콧물과 침으로 추하게 더럽혀졌다. 한참을 울자 나는 허기를 느꼈다. 빌어먹을 소설에 대한. 내 안의 탐욕스러운 촉수가 양심과 후회와 연민을 강하게 밀어내고 있었다. 탐욕스러운 촉수란 놈은 예리하고, 민첩하며, 수치를 몰랐다. 그리고 잔인하리만치 집요했다.
난 나의 서재로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었다. 자신을 소재로 삼은 소설로 인해 자살한 그녀. 그리고 복수를 꿈꾸며 소설가를 파멸시키려는 그녀의 매력적인 여동생. 소설의 소재와 주제와 줄거리와 등장인물까지 모두 완벽하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열 손가락은 자판을 두들기고 싶은 강한 열망으로 떨리고 있었다. 더 이상 양심의 가책도 느낄 수 없었다. 부끄럽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난 그녀의 여동생이 어떤 의도를 갖고 접근했다는 걸 직감했다. 여동생은 날 유혹하고, 난 여동생의 의도에 따라 전개되는 서사에 몸을 맡기고 소설이 완성되어가는 추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끊임없이 전환점이 필요했다. 정말이지 난, 그림자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팔아치우고 싶었다.
--- p.8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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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숙의 소설은 오랜 연마와 알뜰한 마음이 배어 있음을 느끼게 한다. 나 역시 첫 번째 작품집을 엮어내는 심정이야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체험이다. 그 체험을 이 책에서 다시 돌이켜보게 된다. 이즈음 앞서간다는 우리 소설들이 지나친 실험정신에 빠져 허덕이고 있는 마당이니, 그 사태를 벗어나고 있는 모습도 풋풋해서 아름답다.
그러나 그녀의 소설이 마냥 ‘풋풋’한 것만은 아니다. 풍자와 비유는 날카롭다. 그것을 유머로 감싸고 있는 글쓰기도 신인으로서는 보기 드문 정신이다. 보다 큰 어떤 것을 보고 있는 소설들을 읽으며 이 세계가 더욱 뻗어나가기를 기대한다. 잘 몰랐던 새 작가의 소설을 읽는 기쁨이 더욱 새롭다.
- 윤후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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