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화 시대,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역자원에 주목하고 지역문화콘텐츠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지역문화콘텐츠가 지역 경제를 살리고 지역 공동체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열쇠로 작용한 터이다. 그러나 지역문화콘텐츠가 곧 지역 경제의 대안이자 지역의 미래라는 믿음은 순진한 착각일지 모른다. 지역문화콘텐츠는 지역을 살리기도하지만 지역 예산을 낭비하는 주범이기도 하다. 지역과 지역 구성원을 위한 답을 지역문화콘텐츠에서 찾으려면, 지역문화콘텐츠의 오늘을 되돌아보고 지역자원에 기반을 둔 미래지향적 콘텐츠를 발굴, 기획, 생산, 유통할 방법을 통합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 열두 명의 학자가 모여 지역과 지역문화콘텐츠에 생명력을 더하고 지역을 가장 지역답게 만들 수 있는 콘텐츠의 미래를 그려보았다. 오늘날 지역문화콘텐츠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시작으로 도시 브랜딩 전략, 지역 스토리텔링 방법론, 지역자원을 활용한 콘텐츠 발굴, 기획, 유통 방안을 인문학적 관점에서 모색해 보았다. 특히 지역의 고유한 미감을 찾아 지역의 특별함을 복원해낸 지점들은 눈여겨볼 만하다.
그러나 지역문화콘텐츠는 꼭 이러해야 한다는 지침을 전달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콘텐츠의 형상과 매력이 시대와 기술의 변화, 향유자의 취향과 필요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내놓은 대안도 머지않아 그 효력을 상실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지역문화콘텐츠에 생명력을 더할 가능성을 묻고 답하는 데 주력하였다. 이러한 고민이 쌓일 때, 지역문화콘텐츠는 한층 견고해지고 지역의 전통으로 안착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성근 고민들로 넘쳐나지만 이 책의 부족한 부분은 지역문화콘텐츠의 도약을 꿈꾸는 모든 이들의 보완으로 채워지길 바랄 따름이다.
이 책을 제일 먼저 선사하고 싶은 분이 있다. 올해 정년을 맞이한 원천 홍순석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용인에서 평생 후학을 가르치며 한문학, 국문학, 구비문학, 민속학, 지역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학문적 성과를 내셨다. 특히 우리의 전통이 전근대유물로 취급받고 지역자원이 홀대받던 시절부터 지역의 전통문화를 차곡차곡 모으고 정리해주셨다. 덕분에 후학들은 이천, 용인, 안성, 포천 등 여러지역의 문화자원을 수고롭지 않게 만나고 지역학 연구를 더욱 진척시킬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선생님의 정년을 축하드리고, 국문학과 지역학 발전에 큰 보탬을 준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예를 표한다. 끝으로 부족한 책을 엮고 아름답게 세상에 내준 한국문화사 김진수님, 김태균 님, 이정빈 님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2019. 11.
저자 일동
---「머리말」중에서
1 지역문화콘텐츠 정책과 방향
1. 지역문화콘텐츠의 빛과 그림자
지방분권화 시대, 지역의 균형 발전과 경제 활성화 대안으로 지역문화콘텐츠가 떠오르고 있다. 콘텐츠에서 답을 찾는 지방자치단체의 움직임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2018년 한국의 콘텐츠 산업 매출액은 2017년 대비 5.2%로 증가한 116조 3,000억 원에 이르며, 세계 콘텐츠 시장도 지난 5년간 평균 5.6%씩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지역 자연과 생태환경, 문화자원, 관광 장소 등 지역자원을 통해 지역에 생명을 불어넣고 지역의 특화된 가치를 창출하는 사례 또한 늘고 있다. 가령 머드 마니아를 양산한 보령머드 축제의 경우, 경제적 파급효과는 생산유발 효과 458억 5900만 원, 부가가치유발 효과 207억 9300만 원, 소득유발 효과 83억 2700만 원에 달한다.
지역문화콘텐츠는 지역산업의 동력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지역민의 문화향유권 확장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게 된다.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하고 지역별 문화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영향을 끼친 까닭이다. 지역별 지역문화 격차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유의미한 격차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중앙 정부 및 지자체의 문화산업 정책과 만화, 게임, 영화, 애니메이션 등 제 산업 분야의 투자, 그리고 지역민의 참여와 협력에 힘입어 지역문화콘텐츠는 글로컬 콘텐츠glocal contents로 도약하며, “문화국가 실현”의 역사를 새로이 쓰고 있다.
그러나 지역문화콘텐츠의 성공과 화려한 이면에는 불편한 진실이 자리한다. 지역 내부 갈등과 비리로 우수한 문화자원이 빛을 보지 못하거나 사업 유치를 둘러싼 과잉 경쟁으로 지자체가 몸살을 앓았다. 21년 전통의 전주한지문화축제는 전북도립미술관 전시 파행으로 퇴행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전주대사습 등용문은 심사 비리로 대통령상을 박탈당하는 오명을 썼다. 한때 홍길동을 사이에 두고 장성군과 강릉시가, 콩쥐팥쥐를 놓고 김제시와 완주군이 다투기도 했다.
가시적인 시설과 인프라 구축, 부실한 콘텐츠 양산, 잘못된 사업 가능성 타진, 미흡한 활용 등으로 인해 지역 예산이 낭비되는 사례가 속출했다. 울주군은 ‘울주농어촌테마공원’을 조성함으로써 생산유발 효과 199억 원, 고용유발 효과 1천 436명, 부가가치유발 효과 83억을 예상했지만, 100억 원이 넘게 들어간 공원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고 관리비와 유지비에 곤욕을 치렀다. 현재 울주군은 투자를 추가함으로써 공원의 활용 방안을 찾고 있다. 이렇듯 지역문화콘텐츠에 대한 기대와 전망이 언제나 지역의 밝은 미래로 연결된 것은 아니다. 지역과 지역민을 위한 희망, 그 너머에 지역문화콘텐츠의 어두운 그늘이 존재한다.
지역문화콘텐츠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움직임은 관련 제도와 정책적 변화에서 시작된다. 특색 없는 콘텐츠가 지자체별로 쏟아지자 행정안전부는 2010년 유사?중복 축제 행사를 통폐합하는 지방재정법 시행령과 심사규칙 개정안을 내놓는다. 각 지자체에서도 전시행정에 따른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해 무분별한 축제와 효율성이 떨어진 지역사업을 정리하는 일에 착수한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매력을 담지 못한 유사 콘텐츠들의 향연은 아직 지역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다행인 것은 지역의 특별한 콘텐츠를 찾고 제작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공감한 지자체에서 내실 있는 지역문화콘텐츠를 꾸리기 위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