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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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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1월 29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219쪽 | 246g | 116*183*16mm
ISBN13 9788932035871
ISBN10 8932035873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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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멀리서 왔고, 시간이 없었다. 그에게 딸을 보여주려고 기다리는 집들이 더 있었다. 그는 사이공 출신으로, 스무 살 때 보트피플로 베트남을 떠났다. 태국의 난민 수용소에서 몇 년을 보낸 뒤 몬트리올로 갔고, 그곳에서 일을 구했다. 하지만 완전한 고향은 구하지 못했다. 그는 캐나다 사람이 되기에는 베트남에서 산 시간이 너무 길었다. 반대로 다시 베트남 사람이 되기에는 이미 캐나다에서 너무 오래 살았다.
--- pp. 17~18

그는 벤치에 수북이 쌓인 선홍색 꽃잎들을 조금 밀어낸 뒤 그 자리에 앉았다. 나는 그대로 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정작 그는 꽃에 둘러싸인 자기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앞으로 늘 이렇게 서 있게 되리라는 것을. 늘 혼자이고 외톨이인 그는 나를 위해 자기 옆에 자리를 만들어줄 생각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 pp. 22~23

엄마가 아버지를 본 것은 그날 두리안 나무 아래서가 마지막이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그 나무를 ‘서우리엥s?u rieng’이라고 부른다. 그때까지 엄마는 ‘개인적인 슬픔’이라는 두 단어로 이루어진 두리안의 이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이 두리안의 뜻을 자주 쉽게 잊는 것은 아마도 두리안에 담긴 슬픔이 가시 돋은 두꺼운 껍질 아래 따로따로 밀폐된 방들에 봉인된 과육을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 p. 46

손님들 중에는 베트남 아내를 기다리고 있거나 베트남에 다녀올 비행기표를 사려고 돈을 모으는 독신 남성들이 많았다. 그들은 일주일에 서너 번씩 찾아왔다. 토요일 혹은 일요일 아침에는 식당 문을 열기도 전에 와서 남편과 함께 드립커피를 마셨다. 잔 바닥에 깔린 연유 위로 천천히 떨어지는 커피 방울은 그들이 감내해야 하는 긴 기다림의 시간을 환기했을 것이다.
--- p. 56

그날의 요리가 무엇인지는 식당에 와서 창유리에 걸어놓은 흑판을 보기 전에는 알 수 없었다. 하루에 딱 한 가지메뉴였다. 나는 한 번에 한 가지 추억만 되살렸다. 추억으로 흥분한 가슴이 접시 밖으로 넘쳐흐르지 않게 하려면 힘겨운 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 p. 59

실제로 토마토와 파슬리가 들어간 수프의 맛은 조리법을 소개하는 사진들보다는 배를 타고 탈출하다 붙잡혀 몇 달 동안 수용소에 갇혀 있어야 했던 아홉 살 소녀의 이야기가 더 잘 설명해주었다. [……] 홍이 간직한 아버지와의 마지막 추억은 빛바랜 노란색의 우묵한 플라스틱 그릇에 담겨 있던, 토마토 한 조각과 자른 파슬리 줄기가 들어간 맑은 수프였다. 홍의 아버지가 지나가면서 아들 옆 한구석에 그릇을 내려놓았고, 홍의 오빠는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도록 두 다리를 세우고 앉아서 그 밑에 두 손으로 그릇을 받치고 기다렸다. 그렇게 홍은 그 수프를 조금 마실 수 있었다. 홍에게는 먹어본 모든 음식 중에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
--- pp. 108~109

그의 어머니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그 음식을 만들어 데친 양배추 혹은 둥글게 썬 오이, 그리고 밥과 함께 식탁을 차렸다. 허락 없이 저녁 외출을 할 수 있게 된 나이부터 뤽은 어머니가 저녁 식사로 ‘까코또ca kho t?’를 준비하는 날이면 집에 있지 않았다. 자신이 싫어하는 것이 느억맘 냄새인지 혹은 강박적 추억들과 무력감으로 잔뜩 무거워진 분위기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머니를 위해 요리해줄 수 있나요?”
--- pp. 135~36

나는 항상 일상의 일들, 엄마로서 수행해야 하는 임무들, 그 불가능한 일들과 가능한 일들에 맞춰 살아왔다. 내 엄마가 그랬듯이 나 자신을 위한 목적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새 나는 스스로 계획하고 욕망한 분명한 목적지로 나를 실어갈, 무엇보다도 나를 반갑게 맞이하고 나를 환영하고 나를 받아줄 사람에게 데려갈 비행기에 올라 있었다.
--- pp. 169~70

이름 자체가 열에 닿은 액체가 튀는 소리를 환기하는 ‘반쌔오banh xeo’는 센 불에서 익혀야 하지만 그렇다고 기름이 끓어오르면 안 된다. 그 안에 숙주나물과 녹두콩을 수북이 채운 뒤 내용물이 부서지지 않도록 반으로 잘 접어내는 데 반쌔오의 성패가 달려 있다. 완성된 반쌔오 첫 조각을 자를 때마다 나는 늘 긴장했다. 하지만 뤽을 위해 만든 반쌔오를 자를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나는 그에게 새가 날갯짓 한 번 하는 짧은 순간에 얇은 껍질이 입안에서 녹아 사라져버리는 느낌을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
--- p. 187

뤽과 함께 있을 때의 내 얼굴은 ‘evidence(자명한 이치)’로 나와 닮았다. 뤽은 그날까지 음화陰?로만 존재하던 내 얼굴을 사진으로 만들어준 현상액이자 정착액이었다.
--- pp. 188~89

나의 시간은 영원했다.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으니 나의 시간은 무한했다. 그래서 나는 여러 종류의 견과류와 볶은 수박씨로 속을 만들기로 했다. 우선 단단한 껍질을 벗겨야 한다. 힘껏 깨야 하지만, 섬세한 속살을 건드리지 않으려면 힘 조절을 잘해서 알맞은 순간에 멈춰야 한다. 안 그러면 속살까지, 마치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사라지고 마는 꿈처럼 순식간에 전부 깨져버린다. 워낙 품이 많이 드는 일이기에 그 일을 하는 동안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나의 세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 p.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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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짧고 경이로운 책은 사랑과 음식, 열정과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 [맥클린스]
“섬세하고 활력이 넘치는 사랑 이야기…… 가슴이 미어지는 동시에 우직하다.”
- [토론토 스타]
“영원하고 보편적인 이야기가 아주 아름답게 전해진다.”
- [위니펙 프리 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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