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경제 발전과 산업 발전, 그리고 기술발전이 서로 다른 깊이의 층위를 이루면서 성장해 나간다. 경제 발전은 표층의 성장 결과를 보여준다. 산업 발전은 중층에서 이 표층의 경제 발전 내용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를 드러내고, 기술발전은 더 깊은 심층에서 다시 이 산업 발전이 어떤 기술의 힘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것인지를 보여준다. 이 세 층위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쉽게 말해, 한 국가 경제의 프레임이 얼마나 혁신지향적인지에 따라 산업발전과 기술발전의 양상이 달라질 수밖에 없고, 반대로 기술의 발전 수준이 결과적으로 산업 및 경제 성장이라는 결과로 표출되기도 한다. 표층의 경제사나 중층의 산업사와 달리 심층의 기술 발전사는 느리지만 강한 추세로 움직이는 특성이 있고, 그래서 기술경쟁력의 추세는 경제와 산업의 성장잠재력을 가늠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된다. --- p.25~26
과감한 도전, 끈질긴 시도, 그리고 성취의 과정은 거기에 참여한 모든 사람의 공감대가 있었기에 현실이 되었다. 그래서 놀라운 한국 산업기술 발전의 역사는 생산과 기술이 공진하면서 도입기술, 체화기술, 자체기술로 진화하는 논리적인 과정인 동시에 그 과정을 힘겹게 밀어올린 도전적인 사람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 p.41~42
천연자원도 없고, 문맹률도 높고, 삶의 수준도 열악하고, 물려받은 산업 기반도 없는데다, 근대 과학기술혁명의 물결로부터도 사실상 단절되어 있는 환경은 한국의 기술발전에서 특정한 패턴을 낳는 한 가지 원인이 된다.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해보면, 새로운 시도를 방해하는 기존의 관행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백지 상태에서는 상상하는 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1960년대와 1970년대 동안 국가적 마스터플랜에 따른 하향식 산업발전 계획이 만들어지고, 빠르고 효과적으로 집행될 수 있었던 데는 아무것도 없는 산업 기반의 긍정적 면이 큰 역할을 했다. 이 계획을 뒷받침하는 기술도 하향식으로 선정되고, 빠르게 도입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철강이나 조선 등 이때 한국이 시도했던 많은 대형 산업에 대해 선진국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반대했지만, 과감히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도 변화에 저항하는 기득권 산업이 없었기 때문인데, 쉽게 말해 손에 가진 것이 없으니 포기할 것도 없었기에 가능했다. --- p.73~74
한국 산업기술의 발전 과정은 전형적으로 최종재를 생산하면서 관련 기술을 확보하고, 이 최종재에 필요한 부품소재기술을 하나하나 내 것으로 만들어가면서 기술을 심화시켜온 역사다. 자동차를 조립하다가 엔진을 만드는 과정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개발도상국이 흔히 이러한 진화 과정을 염두에 두고 최종재 생산을 시작해 보지만, 부품소재기술로 진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종재를 생산하면서 얻는 얼마 안 되는 이윤에 만족해 거기서 멈추는 경우가 많고, 최종재와 달리 부품소재기술은 오랜 기간 경험을 쌓아야 하는 등 기술적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이다. --- p.94~95
산업은 생산을 하면서 각종 노하우를 익히고 선진국에서 도입한 기술을 해석함으로써 적용하는 힘을 키운다. 그러나 더 높은 수준의 수요와 맞닥뜨리는 순간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 다다른다. 이때 기술의 과학적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기술 자체의 변형이나 다른 기술과의 조합은 불가능하다. 이 기술의 원리를 파악하고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바로 연구개발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생산역량과 연구개발은 산업기술이라는 자전거를 굴리는 두 개의 바퀴라고 할 수 있다. --- p.143
수출시장에 나서면서 그동안 국내에서는 접하지 못하던 국제 수준의 산업기술 기준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알게 된 글로벌 스탠더드는 한국 산업기술의 발전 수준과 방향에 큰 역할을 하였다. (…) TV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오로지 수출용으로만 컬러 TV를 생산했던 당시에도 한국은 글로벌 기술 표준의 트렌드를 따라잡고자 노력했다. 그 결과 1977년 미국, 일본, 파나마 등에 최초로 컬러 TV를 수출한 것을 시작으로, 1978년부터 미국과 중남미에 50만 대 이상의 컬러 TV를 수출하는 성과를 올렸다. 당시 국내는 아직 컬러 TV 방송이 시작되기 전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수출시장으로 진출하지 않았다면 높은 수준의 기술 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어떤 동기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 p.204~205
한국 기업가는 기술 주기상에서 한 세대 앞선 기술에 선제적으로 투자함으로써 경쟁 기업과의 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했는데, LCD 디스플레이의 발전 과정이 이를 잘 보여준다. 1993~1994년 당시 LCD 디스플레이는 일본 기업이 주도하고 있었다. 당시 그들은 10.4인치 제품 이후 차기 표준제품으로 11.3인치를 설정한 상황이었다. 당시 국내 기업은 후발기업으로서, 일본 기업을 따라가기보다는 앞서나가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11.3인치를 건너뛰고 12.1인치 LCD를 생산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위한 양산 라인 투자에 나섰다. 일본 기업도 이에 재빠르게 대응하며 13.3인치 차기제품 표준을 내놓았으나, 국내 기업은 다시 한 번 14.1인치 표준을 내세우는 승부수를 띄워 LCD 디스플레이의 패권을 차지했다.
--- p.237~238
3차에 걸친 패러다임 전환은 매번 이전과 다른 사고방식과 전략, 정책의 틀을 요구했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은 매번 전환에 성공했다. 그 성공의 비밀을 요약하면 전환의 절박함과 전환 방향에 대한 공감대 및 모두의 동시변화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매 전환에서 이전 시기의 패러다임이 더는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 즉 전환의 절박감이 있었다. 1970년대 초, 1980년대 중반, 1990년대 말의 매 시기마다 이전의 전략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면서 성장에 한계가 왔음을 민감하게 감지하였다. 무언가 변화를 요구하는 이 문제의식을 국가적인 패러다임 전환의 신호로 읽었고 이는 모두에게 공유되는 단계로 나아갔다.
--- p.284
자체기술을 넘어선 ‘선도기술’은 글자 그대로 새로운 산업의 개념과 표준을 선도하면서 게임의 룰을 만들어가는 기술이다. 이 선도기술의 틀을 ‘뉴 투 코리아(New to Korea)’ 대비 ‘뉴 투 더 월드(New to the World)’ 패러다임이라고 부를 수 있다. 과거 세 번에 걸친 큰 탈피의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의 산업기술은 분명 놀라운 추격의 역사를 썼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뉴 투 코리아’ 패러다임이라는 하나의 습관을 각인했다. 이 습관은 끊임없이 글로벌 벤치마킹 사례를 참조하면서, 검증된 경로를 따라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그 수준과 같거나 더 나은 수준에 도달하고자 노력하는 관성을 말한다. 이제 한국 산업은 ‘뉴 투 코리아’에서 아직 검증되지 않은 기술과 개념에 도전하는 ‘뉴 투 더 월드’ 패러다임으로 옮겨가야 한다. ‘뉴 투 더 월드’ 패러다임은 글로벌 수준을 기준으로 좋은(good) 혹은 더 나은(better) 기술이 아닌 다른(unique) 기술을 목표로 한다. 한국 산업은 게임의 규칙이 주어졌을 때 더 좋은 성과를 내는 기술이 아니라 아예 게임의 규칙 자체를 새롭게 쓰는 기술에 도전해야 한다.
--- p.288~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