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실패라는 걸 겪지 않으면 좋겠지만, 삶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그러니까 누군가의 성공담에 어깨를 축 늘어뜨릴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실패담에 ‘이런 일까지 겪다니…. 차라리 내 상황이 낫군’혹은 ‘이렇게 해도 실패를 했는데, 이번엔 내가 부족한 거야’라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위로해 보는 건 어떨까. 그럴듯한 성공담과 합격수기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이야기 대신 사람냄새와 짠내가 어우러진 누군가의 고군분투기를 읽고 바닥까지 내려앉은 자존감의 먼지를 툭툭 털고 일어나는 거다. 나보다 나은 사람을 찾아도 끝이 없지만, 나보다 더한 처지의 사람도 사실 끝이 없다. 세상엔 아픈 사람 천지다. 솔직히 어떤 상처든 내 상처가 제일 크고 아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탕하게 웃고, 하늘 한 번 노려봐주고 다시 일어서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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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은 신기하다. 처음엔 고작 아르바이트 한 번이었는데 내게 또 다른 길고 긴 인연이 시작되었다. 행사용 테이블보를 빳하게 다리고, 갑자기 웨딩용 장갑을 구해오라고 하면 파리를 뒤져서라도 찾아오는 나의 집요한 수행능력을 인정받아 결국 기획팀 팀장으로 덜컥 채용되었다. 생각지도 않은 기회가 왔고, 나는 지난번에는 어이 없이 탈출계획에서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되지 않겠다는 굳은 믿음과 함께 회사 프로젝트에 전념하고 싶었다. 교수님께는 다른 일을 좀더 잘 해보려고 자발적으로 학교를 그만두겠다는호기로운 인사와 나의 확고한 의지를 표명한 메일을 마지막으로 그토록 꿈꾸던 건축학교 탈출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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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조직이나 국가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게 계획에 실패하고 있는 듯해 보이니 나 하나쯤, 여기서 한 번 더 실패한들 범인류적 관점에서 그게 무슨 큰일이겠냐는 대수롭지 않은 마음도 생겼다. 그래도 사랑은 남겠지. 나쁘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굉장히 멋진 일이 될 거 같았다.
“젊은 시절 한때를 파리에서 보낼 수 있는 행운이 그대에게 따라준다면, 파리는 ‘움직이는 축제’처럼 평생 당신 곁에 머물 것이다. 내게 파리가 그랬던 것처럼.” 헤밍웨이가 이십 대 시절 7년을 파리에 살고 노년에 내린 결론이라는데, 난 나의 이십 대를 몽땅 파리에서 보냈다. 나의 삼십 대는 동네를 찾아드는 유랑극단의 공연 정도가 아니라 여름 락 페스티벌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묘한 오기도 무럭무럭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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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배낭여행’이라는 이름이 주는 ‘자유’와 ‘개인의 만족’이라는 두 가지 토끼를 잡으려는 수요가 확장되었다. 신기술의 발달과 각종 SNS에 넘쳐나는 정보들은 낯선 여행지가 주는 자유의 가치가 혹시나 하는 두려움에 침식당하는 것을 강력하게 밀어내고 있었지만, 여전히 ‘자유여행’이라는 단어는 ‘위험성’을 동반했다. 이때 등장한 마이리얼트립은 자유여행이 주는 높은 개인적 만족도와 패키지여행의 가이드가 담보하는 안전성, 현지를 잘 아는 준전문가급 가이드가 제공하는 동선과 정보를 책임지는 낯설지만 익숙한 상품을 제공하면서 문을 열었다. 이 ‘발칙한’ 플랫폼을 페이스북 광고에서 처음 발견했을 때, 개발자의 정밀한 의도를 한눈에 읽을 수 있었다. 이 플랫폼을 개발한 이들이 바로 여행업계의 ‘창조적 파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 p.75
구불구불 엉겨 이어진 골목들 그리고 계단 너머 새롭게 열리는 풍경들, 발코니에 정성스레 놓인 화분들, 어떤 거리건 집집마다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다. 그 어떤 것도 어느 순간 갑자기 불쑥 생겨난 일이 아니다. 낭만은 이 동네 고유의 전통이다. 그렇기에 전 세계를 사랑에 빠트린 프랑스 영화 [아멜리에Amelie of montmartre]의 주인공 아멜리에가 몽마르트의 주민으로 설정된 것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그 사랑이 몽마르트의 평범한 주민들로 이뤄진다는 것도.
하지만 몽마르트만큼 관광객들에게 악명 높은 관광지도 없다. 관광객들에게 몽마르트는 치안이 나쁘고, 팔찌를 강매하는 흑인들과 소매치기를 일삼는 집시들이 득시글대는 무서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 편견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중세, 예루살렘을 향한 순례길, 그리고 그 길에 오른 순례자들의 주머니를 터는 떼강도의 이야기는 오늘 몽마르트를 찾은 여행자에게도 아직 유효하다.
--- p.101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은 시간 속에 붙잡혀 꼼짝없이 이불 밑에 갇혀있을 때, 그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이불 밖 세상으로 날 꺼내주었다. 감히 두려워 밖으로 나갈 생각도 못했는데, 내 곁에 든든하게 버티고 선 누군가가 있다는 느낌이 정체 모를 두려움을 걷어냈다. 이제부터는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겠다며, 이리저리 부딪히며 다닐 때도 나의 방황과 고민에 대해 한 번도 비웃지 않았다. 그는 답을 찾지 못하고, 자꾸 주저 않으려는 내게 늘 한결 같았다. 언제나 묵묵한 모습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걱정하지 말라고, 혹여 그가 변할까 두려워하는 나의 숨겨진 불안에 대해서도 절대로 자신은 변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너의 행복만을 생각하라고 응원해주었다. 어떤 책의 제목대로 ‘네가 무엇을 하든 나는 언제나 너만을 응원할 거야’라는 마음을 말로,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내가 아는 세상과 너무 달라 작은 체구가 더 쪼그라들 것 같은 날에도 어떤 일을 해도 너는 성공할 수 있다며 응원해주었다. 첫 투어를 하러 나가는 아침, 몽마르트를 향하는 버스를 탈 때, 버스가 떠날 때까지 창문 밖에서 한결 같은 모습으로 내게 응원과 격려의 눈길을 보내주었다. 그는 언제나 내편에서, 내 입장에서 나를 생각한다.
--- pp.302-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