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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수평선상에 놓인 수직일 뿐이다

우리는 수평선상에 놓인 수직일 뿐이다

: 대학 대신 여행을 택한 20대의 현실적인 여행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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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2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386g | 133*210*21mm
ISBN13 9788962918533
ISBN10 8962918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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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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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피리소리와 뿌연 안개, 가트에 모인 사람들의 오고 가는 이야기, 김치볶음밥과 윤태원, 비쩍 말라 버린 개와 길바닥에 누워 있는 암소, 한 잔의 짜이와 멍 때리기, 그리고 멍, 하릴없이 그저 멍.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내 옆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행복하다. 입시공부에 매달려 교재에만 집중했던 지난날을 뒤로한 내가 바깥세상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아름다운 나날이 계속되겠지만, 이마저도 익숙해져 덧없는 자유를 다시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만큼은 괜찮다고 내게 말해 주고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 p.40

하늘은 거대한 방공호가 되어 평원에 서 있는 이를 감싸 안는다. 왼쪽 끝 지평과 그의 대척을 연결해 반구를 이루는데, 반구의 중앙엔 은하수가 흐르고 그 주변을 별자리와 별자리가 아니어도 좋은 이름 없는 별들이 무한한 검정을 수놓는다. 간간이 떨어지는 별똥별 또한 지극히 일상적이며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니 몽골의 별똥별이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다간 몽골에 있는 모든 이의 소원을 들어줘야 했음이 분명하다. 나를 비롯한 모든 여행자가 침낭을 덮고 하늘을 향해 누워 있는데, 고비로 떠나기 전의 삶과 앞으로의 삶에 관한 이야기만 오갔던 이전과는 달리, 지금은 대자연을 목전에 둔 사소한 인간의 감상이라든가, 별똥별을 얼마나 더 많이 보았는가에 관한 이야기밖에 오가지 않았다. 고국에 직장을 두고 온 이나, 세계 여행을 갓 떠나온 이 모두 수평선상에 둔 수직일 뿐이다.
--- p.120

초입부터 들어선 설산은 좌중을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와라즈에서 본 동네 뒷산이 아닌 산맥의 일원이 되어 다가온 안데스는 더 이상 얕보이지 않는다. 트레킹을 하는 레인에서 2위와 3위를 함께 앞다투던 프랑스인 가족이 저만치 멀어져 가고, 이내 모든 이들이 멀어져 내 앞뒤엔 오롯한 자연만이 남는다. 뒤에서 몇 번째라든가, 앞 사람을 따라잡겠다는 일념은 조용히 접어 두자. 스스로가 만든 경쟁과 싸움에 마음을 쓰기엔 너무나도 아까운 자연경관이다. 자연은 일등을 하는 자에게 칭찬을, 꼴등을 하는 자에게 뭇매를 던지지 않는다. 좁쌀보다 작을 우리는 좁쌀만큼 소중한 존재일 테니. 고산병은 하늘 높이 오르려는 인간을 향한 벌과도 같다. 어떻게 보면 벌보단 아무나 오르지 못하게끔 일종의 핸디캡을 주는 것이다. 천상과 지상의 경계, 그 사이에 휘황찬란한 풍경을 새겨 넣은 건 도전하는 이로 하여금 심장을 멎게 하기 위함은 아닐까. 고도를 거듭할수록 풍경은 아름다움을 더해 가고, 힘 좋고 체력 좋은 서양인들도 껄떡이는 자잘한 숨을 내쉬며 서로를 향해 안위를 묻는다.
--- p.256

터미널 D, 무슨 일이 있어도 터미널 D로 가야 한다. 여러 대의 트럭이 멈춰 섰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가 튕겨져 나갈 뿐이다. 그렇다면 택시를 잡아타기로 하자. 누구보다도 절박하고 초조하게, 설령 차에 사람이 타 있더라도 말이다. 지금 와서 보면 그런 배짱이 어디서 나왔나 싶다가도 한국으로 가야 한다는 절실함을 어느 것도 이길 수 없음을 깨달았다. 50만 원에 달하는 티켓값이 무서워서일 테지. 택시기사는 황당해 무어라 화를 내면서도 말도 통하지 않는 이의 한결같음에 차를 돌렸다. 나는 그저 ‘스바시바’만 외칠 뿐이다. 그가 나를 향해 말한 러시아어는 암호와 같다. 그전에 한국어, 영어와 같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욕을 들어도 이보다 단단해지진 않으리라.
---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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