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훈련의 또 다른 원칙은 억누르지 말고 내버려두는 것이다. 침묵이 말하게 해야 한다.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받아들여야 한다. 털어놓기 불편한 이야기를 빼버리면 독자들이 금세 눈치 챈다. 숨겨왔던 일이나 꺼내놓기 위험한 일에 대해 쓰다가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울거나 웃을 수야 있겠지만 죽지는 않는다. 수업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어떤 학생이 다가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저는 글을 쓰다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겠어요.”
그렇게 해요, 아가씨.
그러나 나머지 우리들은 어머니나 형제, 애인, 동료, 신부님이 어떻게 생각할지 같은 걱정은 나중에 하기로 하자. 지금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지면에 옮겨 적으면 된다. 한사코 숨기고 있었거나 떠올리기 싫은 일, 지우고 싶은 사건을 찾아보자.--- p.31
쓴 글을 공개하고 싶지 않거나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을 수 있다. 괜찮다. 앞으로도 절대 공개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그걸 쓰라고 하고 싶다. 쓴 다음 검토해보고 그래도 묻어두고 싶다면 그 때 그렇게 하면 된다. 단, 묻어버린 내용들이 다른 글에 안 좋은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 하지만 결국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무엇이든 숨겨진 것은 탈출구를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구운 치즈 샌드위치에 대해 쓰려고 하면 그 치즈 한 가운데에서 근친상간, 사기, 간통사건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것이다. 그런 일이 있었음을 드러내고 샅샅이 살펴본 후에야 비로소 자유로워질 것이다.
감춰두고 싶은 일을 무조건 공개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선택권은 당신에게 있다. 다만 그 비밀을 글로 쓰고 난 다음에 공개할지 말지를 선택해야 한다. 비밀을 등 뒤로 숨기면 그 비밀이 언제까지나 당신을 쫓아다닐 것이다.--- p.54
현재의 순간에서 벗어나보자. 당신이 기억하고 있는 인상적이고 선명한 순간들을 적어보라. 볼링대회에서 우승했을 때, 주례 앞에서 혼인서약을 했을 때처럼 짧은 순간일 필요는 없다. 우리의 두뇌는 평범하고 하찮은 순간들을 떠올린다. 필라델피아 교외의 어느 주택가에서 크레파스를 사던 때, 피츠버그에서 노벰버스틸러 팀의 경기를 앞두고 있던 때, 다리 아래에 트럭을 세우고 맥주를 팔던 아저씨가 무서웠던 때, 어느 초여름 미네소타 북부의 낡은 수도관에서 흐르던 쇠 냄새 나던 물.
5월 어느 날 산타페의 어느 골목을 돌다가 맞닥뜨린 라일락 나무. 그때 당신은 라일락을 좋아하던 어머니를 떠올렸을지 모른다. 그래서 나무에 다가가 꽃봉오리를 만져봤을지도 모른다. 전율이 몸을 훑고 지나간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어머니의 마지막 며칠, 그런 날을 평생 견뎌내야 한다는 직감이 폐부를 찌른다.--- p.97
나이가 지긋한 학생 한 분이 나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걸으며 말을 꺼냈다.
“제 어린 시절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제가 나고 자란 곳은 일리노이인데…….”
“별 사건도 없이 평범하게 살아왔는데, 그래도 자서전을 쓸 수 있는지 묻고 싶으신 거죠?”
내가 도중에 끼어들어 물었다.
그 학생이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답을 알고 있잖아요. 미즈 반 데어 로에가 뭐라고 했죠? 신은 디테일 속에 있다고 했잖아요. 차분한 목소리로 그 사소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세요. 우리는 평범한 유년시절을 알아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어떤 게 평범한 유년시절인지도 모를 테니까요. 그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겠죠.”
그 학생의 걱정스럽던 표정은 순식간에 안도의 표정으로 바뀌었다.
우리에게는 평범한 당신이 필요하다. 기침감기에 걸렸을 때 시럽을 먹여줄 어머니와 할아버지가 있었던 당신이. 그런 경험을 우리에게 들려 달라. 아마도 그런 경험이 당신의 흔들리는 삶의 토대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그 토대를 우리에게도 나눠 주는 것이다.--- pp.156-157
앞서 말했던 기본 훈련 두 가지를 다시 언급하고 싶다. 글이 방향을 잃었다고 느낄 때 이 방법을 써보기 바란다.
간단한 첫 번째 규칙은 눈앞에 있는 것을 쓰는 것이다. 하나도 멋지지 않은 것, 눈에 보이는 사물의 이름을 부르는 것부터 시작한다. 담에 기대어 자라는 화초, 창문 유리 여섯 장, 벽에 있는 전기소켓……. 머릿속에서 다른 것들이 떠오르면 그것을 적어도 좋다. 하지만 곧바로 눈앞에 있는 것으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그것이 당신의 닻이라는 점을 잊지 마라.
두 번째 규칙은 무척 좋아하는 잘 쓴 책을 소리 내어 읽거나 속으로 읽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은 레이더와 비슷하다. 어떤 단계의 생각이든 피사체에 접근하면서 다른 생각을 만난다. 읽고 있는 글이 현재형이라면 그 영향을 받아서 당신의 생각도 현재형이 된다. 글이 애매하고 두서없으면 그 영향을 받아 당신의 생각도 집중력이 떨어진다.--- p.269
당신은 누구를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는가? 쓰려는 충동은 어디서 나오는가? 당신은 여러 가지 대답을 생각해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당신은 옛날의 당신에게 말을 걸기 위해 몸을 돌리고 있다. 30년 전의 당신, 2년 전의 당신, 바보처럼 느껴졌던 당신, 실패하거나 승리했던 당신, 하찮고 내숭떨고 용감하고 젊었던 당신, 사랑에 빠졌던 당신. 당신은 빈틈을 메우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이해하려 하면서 완벽한 원을 그리려는 것이다. 누구를 위해 쓰는가? 더 나은 당신, 더 나쁜 당신, 좌절한 당신, 박탈된 당신, 갇힌 당신, 사랑받는 당신 자신을 위해서다.
--- p.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