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은 오랫동안 중요하지 않은 색, 아무 의미가 없거나 별것 아닌 색, 고대에는 심지어 경멸받는 색이었다. 그러다 점차 멋진 옷으로 갈아입고 그 누구와도 충돌하지 않으면서 자기의 자리를 잡아 갔으며, 이윽고 신성한 색, 만장일치의 색,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색이 되었다.
---「파랑 유행을 타지 않는 색」중에서
“색에 대한 취향은 매우 더디게 바뀝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파랑은 앞으로 30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람들이 선호하는 색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파랑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공감과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색이기 때문입니다. 또 파랑은 여론 조사에서 가장 덜 미움을 받는 색입니다. 공격적이지도 않고 어떤 것도 위반하는 일이 없으므로 안정감을 주며 사람을 결집하는 역할을 합니다. 국제연합, 유네스코, 유럽의회, 유럽연합 같은 국제기구들도 이런 이유에서 파랑을 상징색으로 선택했을 것입니다.”
---「파랑 유행을 타지 않는 색」중에서
소심한 파랑과 달리, 빨강은 오만하고, 야심만만하며, 권력 지향적이다. 다른 사람들이 쳐다봐 주기를 원하는 색, 다른 모든 색을 압도하고자 하는 색이다. 하지만 이런 빨강의 거만한 속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과거는 썩 영광스럽지 않았다.
---「빨강 불과 피, 사랑과 지옥의 색」중에서
“중세 시대에는 성모 마리아의 영향으로 파랑이 여성적 이미지였고, 권력과 전쟁을 상징하는 빨강은 남성적 이미지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뀌게 된 것이지요. 이후 파랑은 눈에 덜 띄는 색으로 여겨져 남성의 색이 되고, 빨강은 여성 쪽으로 이동합니다. 그 흔적은 오늘날에도 남아 있습니다. 남자아이의 색으로 파랑을, 여자아이의 색으로 분홍을 선택하는 경향이 그것입니다.”
---「빨강 불과 피, 사랑과 지옥의 색」중에서
‘불쌍한’ 하양은 제대로 된 가치 평가를 받기까지 숱한 어려움을 겪었으며, 역사적으로 말도 안 되게 융통성 없는 대접을 받았다. 사람들은 이 색에 좀처럼 만족하지 않았다. 항상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면서, “하양보다 더 하얀” 것을 원했다.
---「하양 순수와 순결을 주장하는 색」중에서
“백인은 사실 백색 인종이 아닙니다. 화이트와인의 색깔이 흰색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죠.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나르시시즘이 우리를 우쭐하게 하는 이런 종류의 상징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인들은 백인의 하얀 피부색에서 죽음을 떠올립니다. 그들이 보기에 백인은 병자의 안색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처럼 우리들은 각자의 고유한 상징체계로 다른 사람을 바라봅니다.”
---「하양 순수와 순결을 주장하는 색」중에서
모두가 녹색을 외치는 바람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녹지대, 녹색 번호, 녹색 교실, 녹색당… 심지어 녹색이 자연이나 청결과 연상된다고 믿고 길거리 휴지통까지 녹색으로 칠하고 있다. 어쩐지 조심을 해야 할 것 같다. 겉보기와 달리 녹색은 정직한 색이 아니기 때문이다.
---「초록 도통 색을 알 수 없는 색」중에서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색의 가치나 상징의 모든 시스템을 부정하고, 색이 문화적 현상이라는 사실도 고려하지 않은 이론입니다. 그런 분류 방식은 역사 자체에 대한 몰이해를 보여 줍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이 잘못된 이론은 초록의 또 다른 상징체계를 불러옵니다. 초록이 금지의 색인 빨강의 ‘보색’으로 간주되는 바람에 오히려 ‘허용’의 색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입니다.”
---「초록 도통 색을 알 수 없는 색」중에서
노랑, 사람들은 이 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색이라는 작은 세계에서 노랑은 이방인이요, 무국적자다. 또한 사람들이 경계하며 불명예스럽다고 여기는 색이다. 노랑 하면 빛바랜 사진, 쓸쓸히 스러지는 낙엽, 배신자가 떠오른다.
---「노랑 온갖 오명을 다 뒤집어쓴 색」중에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노란색은 높이 평가받았습니다. 로마인들은 종교 의식이나 결혼식 등에서 흔쾌히 노란색 옷을 걸쳤습니다. 아시아나 남아메리카 같은 비유럽 문화권에서도 노랑은 항상 훌륭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중국에서는 오로지 황제만이 노란 옷을 입을 수 있었습니다. 중국인들에게 노랑은 언제나 좋은 것이며, 권력과 부와 지혜를 상징했습니다. 대조적이게도, 서양에서도 노란색은 여섯 가지 기본색 중 가장 덜 선택되는 색입니다. ‘선호하는 색’에 관한 여론 조사를 보면, 노란색의 순위는 파란색, 초록색, 빨간색, 흰색, 검은색 다음으로 맨 꼴찌입니다.”
---「노랑 온갖 오명을 다 뒤집어쓴 색」중에서
검정은 동료인 하양과 함께 우리의 상상계를 별도로 구성한다. 그 세계는 흑백사진과 흑백영화가 우리에게 보여 준 세계, 즉 컬러가 묘사한 것보다 더 ‘진실’되게 표현될 수 있는 세계와 닮아 있다. 과거의 낡아 빠진 산물이라고 생각해 내쳐 버린 흑백의 세계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우리의 꿈과 사유 속에 깊숙이 뿌리를 내린 채로.
---「검정 애도와 우아함의 색」중에서
“모든 가독성 테스트에서 검정 바탕 위에 쓴 노란 글씨가 하얀 바탕 위에 쓴 검정 글씨보다 더 잘 읽힌다는 결과가 나와 있습니다. 색의 대비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깰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흑백의 대비는 - 다른 색들 간의 대비보다 - 그리 강력하지도 적합하지도 않습니다.”
---「검정 애도와 우아함의 색」중에서
“기술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색이 계속 발견되고 있지만 색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서구 사회가 물려받은 여섯 가지 기본색은 앞으로 수십 년이 지나도 그대로일 것입니다. 색조에도 다양한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하지만 색의 상징체계는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색이 기술로 좌지우지할 수 없는, 추상적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바야흐로 ‘빨강, 파랑, 검정, 하양 등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를 물어야 할 때입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우리의 행위와 사유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레인 그레이, 캔디 핑크 등 중간색」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