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서 그런 거라고, 너를 위해서 그런 거라고, 연인 사이에 다투다 보면 뺨 몇 대쯤 때릴 수도 있지 뭘 그렇게 예민하게 구냐고.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던 스무 살의 누군가가 들었던 말을 오늘 이 시간 또 다른 누군가가 듣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사랑의 매’라는 논리는 얼마나 무서운가. 사랑해서 때린다니, 사랑과 체벌이 함께일 수 있다니. 때리는 사람의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폭력은 그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체벌은 엄연히 별개의 인격체에 대한 구타고 폭행이라고 강조하는 저자의 말을 곱씹을수록 어쭙잖은 ‘자뻑’이 사라진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잘못을 빌게 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통제와 감시, 폭언, 협박, 폭행 모두가 ‘사적인 문제’ 아닌 ‘범죄’와 ‘폭력’임을 알 수 있도록, 내 아이가 그 끔찍한 폭력의 피해자가 되지 않을 수 있도록 나는 아이에게 올바른 사랑의 표현을 가르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가해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아이를 노려보고, 빈정대고, 거칠게 잡아채고, 위협하고, 과도한 학업을 강요하고, 선행학습을 강제하는 부모들의 흔한 태도 또한 학대고 폭력이라는 지적을 한시도 잊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경계하며 점검한다. 또한 나는 이러한 학대와 폭력을 사랑과 애정으로 포장하지 않으려 주의한다. ‘좋아해서 하는 괴롭힘’은 있을 수 없으므로, ‘사랑해서 휘두르는 폭력’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여자와 북어는 패야 제맛’이라는 속담이 돌 맞을 소리가 된 오늘날처럼, 학교 내 체벌이 금지된 요즘처럼, 가정 내 부모 체벌 역시 용인할 수 없는 범죄가 될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다. 아동 인권에 대한 감수성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지만 너무 늦기 전에 나도 한 걸음을 내디뎌 본다. 폭력은 결코 사랑의 표현이 될 수 없다는 당연한 진리를 향하여.
---「여자를 향한 폭력, 가정도 사랑도 예외는 없다」중에서
“오늘도 엄마 딸로 존재해 줘서 고마워. 하윤이가 엄마를 배려해 준 덕분에 엄마가 오늘 더 편안하게 일할 수 있었어.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느라 애썼어. 오늘도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잘 지냈다니 엄마는 하윤이가 엄마 딸인 게 자랑스러워. 오늘도 엄마의 힘이 되어 줘서 고마워, 우리 딸.” 그리고 말한다. 또 감탄한다. 아이의 외모 아닌 내면, 예쁨 아닌 노력과 성과, 존재 그 자체에 대해서 보다 정성스럽게, 게으르지 않게.
아무 생각 없이 반복하던 “우리 예쁜이, 우리 공주님, 너는 어쩜 이렇게 예쁘니? 세상에서 네가 제일 예뻐!”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예쁘다는 칭찬이 최고의 찬사이자 유일한 감탄이었던 시절은 이제 없다. 우리의 가치는 단지 ‘예쁨’으로 정의될 수 없으므로, 우리는 ‘예쁨’을 넘어 더 많은 것을 발견해야 하므로. 나는 끊임없이 우리를 구속하는 외모의 창살을 넘어 힘차게 나아갈 것이다. 나를 뒤따라올 아이의 자유를 위해서.
---「여자의 몸매, 날씬과 예쁨을 넘어서」중에서
보다 명확하고 적절한 단어를 찾아 바꿔 쓰는 노력은 비단 ‘단어 하나’의 교체로 머물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 문화를 바꿔 가는 길이 될 것이다. 나의 성기를 긍정하고 이해하는 일은 여전히 멀게만 느껴지지만 오늘의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반복해 본다. 무언가를 정확한 이름으로 부르는 행위, 그걸 표현하고 퍼뜨리는 일. 명명의 힘은 내 몸에서도 예외일 수 없다. 분명 이 한 걸음은 세상을 바꾸기 위한 작업이 될 것이다. 우리의 몸과 변화를 더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의 생리와 성기를 보다 긍정하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내 딸이 마주할 세상을 수정해 본다. 그 의미 있는 시작이 고작 단어 하나, 겨우 내 입술에 있음에 감사하면서.
---「여자의 생리, 은밀하게? 당당하게!」중에서
아이가 책을 가까이하기 바라는 이유 중 8할은 ‘세상에 대한 이해와 그로 인한 자유’다. 언제 어느 때에 닥칠지 모를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책을 통해 스스로를 지켜 낼 수 있기를, 그로 인해 단단해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독해력과 사고력, 성적과 교양, 입시와 출세와는 조금의 접점도 없는 읽기라도 좋다. 아니, 그거라야 더 좋다. 관계 속에서 사랑하고, 그 안에서 상처받고, 거기서 무너지고 때때로 울기도 하겠지만 나를 둘러싼 세상의 감춰진 말들을 찾아가라 말하고 싶다. 알아보라고 권할 것이다.
나아가 그렇게 찾은 언어는 침묵 아닌 말하기로 발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할 것이다. 우리는 진실을 말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재수 없는 계집애”로 규정하는 이 세상에 맞서야 한다. 우리의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 불편한 감정은 외면하라고, 조용히 침묵하라고, 그게 바로 ‘착한 소녀’라고 강요하는 문화에서 벗어나 서로의 감정을 인정하고, 보다 건강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관계의 시작일 것이다.
---「여자의 관계, 나 혼자 외따로 존재해야 할 때」중에서
나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접촉이 타인에게는 불쾌감을 유발하는 접촉이 될 수도 있다는 인식. 내가 대수롭지 않게 한 행동이 타인에게는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인지. 우리가 어렸을 땐 이런 가르침을 전해 주는 젠더 수업이 전혀 없었음에도 그는 알고 있었다. 적절한 거리를 지키는 것이 상대를 향한 진정한 존중이고 매너라는 것을. 그리고 그게 조금도 당연하지 않은 세상 속에서 그는 분명하게 인지하며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 없는 손길은 여전히 만연하고, 나는 그 안에서 애를 쓴다. 내가 길들여지고 주입당한 세상의 문화를 비틀어 보기 위해서, 바로 세우기 위해서. 그리고 아이에게 속삭인다. 친하지 않은 사람과 손을 잡고 싶지 않은 네 마음은 존중받아야 할 결정이라고. 그 누구도 그걸 비난할 수 없는 거라고. 너는 언제나 당당하게 거절할 수 있다고, 아니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리고 조금 더 용기를 내 말해야 할 것이다. 나에게 불쾌한 스킨십을 친절하게 참아 주는 ‘센스’가 필요한 세상이 아닌, 너에게 불쾌할 스킨십을 하지 않는 ‘배려’가 당연한 세상을 위해서.
---「여자를 위한 매너, 진정한 존중의 시작」중에서
‘허락하다’라는 동사의 의미는 ‘청하는 일을 하도록 들어주다’, 다시 말해 ‘상대의 요구를 들어준다’는 뜻이다. 인터넷 검색창에 ‘첫 경험’을 입력하면 남자 친구가 잠자리를 요구하는 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부터 첫 경험을 하기 적절한 시기에 대한 조언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진다. 하지만 첫 경험에 있어 ‘상대가 얼마나 간절히 원하느냐’와 두 사람의 ‘연애 기간’ 따위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한 달을 만났으면 어떻고, 1년을 만났으면 어떠랴. 중요한 건 오직 단 하나, 나의 욕망과 마음이다.
첫 경험을 하기 좋은 때, 섹스를 해도 좋은 날은 간단하다. ‘내가 하고 싶은 날’이다. 내가 너무도 간절히 원하는 날, ‘저 사람과 자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쳐 그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는 날. 바로 그때 관계를 가지라 말하고 싶다. 물론 원치 않는 임신을 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계획을 한 상태로!
(중략) 지금도 “널 너무 사랑해서 참을 수 없어”, “네가 너무 예뻐서 멈출 수 없어”라고 말하며 마음을 흔드는 상대가 있다면 가볍게 무시해 버리자. 코웃음을 치며 돌아서 버리자. 우리가 선택해야 할 섹스는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하는 첫 경험이 아니므로, 상대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하는 허락이 아니므로. 나는 아이에게 말하고 또 말하고 싶다. 상대가 아닌 나의 욕구에 집중하라고, 제대로 사랑받고 제대로 사랑하라고. 그 말을 건넬 수 있을 때를 기다리며 오늘도 사랑을 한다. 나를 존중하고 사랑해 주는 사람과 함께.
---「여자의 섹스, 오로지 ‘나’를 위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