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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는 사람들

: 자서전과 이력서로 본 북한의 해방과 혁명, 1945~1950

리뷰 총점9.5 리뷰 2건 | 판매지수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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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20년 06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472쪽 | 696g | 152*224*30mm
ISBN13 9791156121688
ISBN10 115612168X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879인의 ‘육성’으로 보는
해방공간(1945~1950) 북한 사람들의 생생한 일상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소설 『1984』에 나오는 유명한 테제이다. 다소 과장이 섞여 있을지 몰라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이 명제를 살짝 눙치자면 “과거를 모르고서는 의미 있는 한 걸음도 내디딜 수 없다” 정도가 되겠다.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에 서 있는지 알려면 지나온 과거를 더듬어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래야만 어디로 갈지 파악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통일을 민족적 과제로 삼고 있는 우리에게 북한사는 단순한 역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정치·경제·군사만이 아니라 북한의 역사를 알아야 민족적 동질성을 회복하고 평화와 통일의 길로 향하는 초석을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 전까지 북한의 민낯을 엿볼 수 있는 연구서라는 점에서 이 책은 출간 자체만으로도 큰 의의를 가진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머리말
서설
김삼돌의 고백

제1부 전략적 글쓰기
집안의 역사 고백
당국을 기만하기
자서전 쓰기의 전략|변명성 글쓰기|허위 기재|의도적 누락
평정서: 개개인을 해부하기
기만적 글쓰기 적발|눈가리개를 하지 않은 평정자들

제2부 해방의 소용돌이
해방의 전조
소련군 참전|수심에 젖은 피란민들
기록으로 포착된 해방의 순간
감격에 젖은 사람들|일본인들 사이에서 맞은 해방|일제의 군병에서 조선의 군인으로
해방의 두 얼굴
민족성 되찾기|혼돈에서 건설로
해방군의 나라
붉은 군대|러시아어 학습 열풍|소련계 한인 서춘식

제3부 대중조직 건설운동
해방기의 혼란 수습
질서유지에 앞장선 학생 치안대원들|임시 치안기구에서 영구 보안기구로|자치기구 결성에 나선 조선인들
북조선 청년층 장악
공산청년동맹|민주청년동맹
인민 장악과 동원의 가교 사회단체

제4부 일제 잔재 청산
공분의 표적 일본인과 친일파
보복 대상이 된 일본인들|친일파 척결
면죄부를 받은 일제시기 공직자들
참회와 속죄|비켜가지 않은 처벌

제5부 반체제운동
좌우 대립
우익을 지지하는 학생들|정치투쟁의 장으로 돌변한 학원사회
우익 기반의 몰락
사상투쟁의 선두에 선 민청|학내 경찰력 투입|수면 아래로 잠수한 저항운동

제6부 주도권 쟁탈에 나선 정당들
북조선공산당(북조선로동당)
혁명투사 선발과 육성|부적격자 처벌과 축출|“종파분자”로 몰린 고영찬
우당友黨: 연대와 갈등의 불협화음
조선의용군과 독립동맹의 만주 진출|조선신민당|조선민주당|천도교청우당

제7부 혁명의 시작, 토지개혁
몰수와 분여
토지개혁의 정당성|역사의 현장에서 본 토지개혁|과열된 계급투쟁, 2차 토지개혁으로
환호와 보답
토지개혁이 낳은 기적|체제의 버팀목이 된 빈농들
시련과 저항
토지개혁이 불러온 절망과 시련|불만을 넘어 저항으로

제8부 국가 건설
기술자 부족 사태
인재 충원과 간부 등용
일제시기 전문가와 생계형 부역자 재등용|이공계 출신과 고학력자 우대|‘국대안’ 파동과 남한 전문가 초빙
대중들의 국가건설운동 참여 열기
건국을 향한 열의와 헌신|공장관리운동|표창과 인센티브|건축 기술자 김응상의 국가건설운동 참여

제9부 교육: ‘새로운 인간형’ 만들기
무너진 교육제도
열악한 교육 여건과 교원 부족|빈곤층을 막아선 교육의 장벽|추천을 통한 대학 진학
새로운 세계를 약속한 마르크스-레닌주의
대중 앞에 나선 혁명가들|사상 학습이 불러온 놀라운 변화|혁명가 양성의 산실, 정치학교와 정치서클|알려지지 않은 이론가 이학모의 삶|알려지지 않은 이론가 이인범의 삶|진보적 사상에서 일반인들의 교양으로
인간 개조
인민과 개인|성격과 개성의 개조|종교는 아편이자 독한 마취약|김덕윤의 고백: 인간 개조의 성공 사례

제10부 가족
연좌제
가정 장악과 처벌
사상적 전염 예방|불순한 가족관계에 연대 책임 부과

제11부 계급
출신성분
성분 분류의 모호성|인성과 사상성을 비추는 거울
무산계급과 유산계급
노동자·농민 출신 우대|지주와 부유층 억압
궁지에 몰린 착취계급
희망의 상실|가로막힌 출셋길|끝없는 참회의 길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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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그는 열두 살 무렵 소작인이 전부 부담하던 비료대를 지주와 절반씩 분담하자고 선동해, 다른 지주들로부터 비난을 당한 반면 농민들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이 고백은 그가 “봉건적 착취자”가 아니라는 항변을 통해, 당국으로부터 동정을 얻으려는 전략을 구사했음을 보여준다.
---p..58

평양교원대학 화학과 학생 길성혁(18)의 자서전·이력서를 검토한 학과장 교수는 “빈농”이라 적혀 있는 그의 출신성분에 의구심을 품었다. 그는 같은 학과에 재학 중인 길성혁의 동향 친구 유강을 불러 사실관계를 따졌다. 유강은 그가 빈농의 아들이 아닌, 축출된 지주의 자식이라고 털어놨다.
---p..72

8월 15일, 학교에 나가 담소를 나누던 그들은 오전 라디오 방송을 통해 중대 발표가 예정돼 있다는 보도를 접했다. 오기혁은 두려움과 희망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 이윽고 “천황이 벌벌 떨며” 직접 전한 정오 속보의 요지는 다름 아닌 항복 선언이었다. 그와 동료 교사들은 “눈물을 흘리며 서로 부둥켜안고 조선 독립 만세를 외쳤다.”
---p.94

황수봉은 그들로부터 타이완 남부에 약 400명의 조선인 병사들이 집결해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 황수봉은 자신의 주도 아래 창설된 새 부대에 “인민의용군”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 독자적 세를 형성한 인민의용군은 일본군에 맞설 수 있었고, 그들에게 항의하여 식량·의복과 위생 물자를 나눠 가질 수 있었다. …… 황수봉은 1,300여 명에 달한 인민의용군의 총대장으로 선출되었다. 타이완에 중국국민당 중앙군이 진주한 시점은 1945년 10월 말이었다. 황수봉은 중앙군 사령관과 협상해 일본군 무장해제를 돕는다는 조건으로 귀국 시까지의 편의 보장을 약속받았다.
---p.107

와세다대학 이공학부를 졸업한 뒤 경성철도국에 취직한 신종립(25)은 “집집마다 조선의 장래를 걱정하며 정치를 논하는” 주변 분위기에서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수십 수백 개의 군소 정치단체들이 비온 뒤의 버섯처럼 솟아나고, 많은 정객들이 8월의 무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며 바삐 돌아다니는” 광경도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p.118

소련군이 송화군에 진주하기 시작했을 때, 한선일은 믿기 힘든 광경을 목격했다. 마땅히 그들을 환영할 줄로만 알았던 공산청년동맹과 적위대가 되레 사이렌을 울리며 주민들의 피신을 유도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소련군으로부터 재산과 부녀자들을 잘 간수해야 한다는 경고도 빠뜨리지 않았다. 좌익 단체들조차 불신했을 만큼, 해방 직후 소련군은 북한 주민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다.
---p.124

해방 직후 치안 유지 활동에 가장 적극성을 보인 이들은 학생층이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학도대”나 “학생대”라 불린 조직을 결성했다. 해방을 맞아 “학생대”에 참가한 황해도 해주 동중학교 학생 최광문(16)은 “무기를 들고 농촌과 지방으로 출동”했다.
---p.140

함경남도 함흥시 영생여자중학생 김경옥(17)은 공청이 해체되고 민청이 창설된 뒤, 가입을 촉구하는 교사들과 “상급생 언니들”의 집요한 설득에 시달렸다. …… 1946년 6월 24일 참다못한 담임교사가 가입 원서를 돌리며 작성을 강요하자, 그녀를 비롯한 반 학생들은 마지못해 민청에 가입했다.
---p.152

모든 북한 주민들은 연령, 성별, 직업에 따라 분류된 각종 사회단체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했다. 어린이들은 소년단에, 청년들은 민청에, 여성들은 여맹에, 노동자·사무원들은 직맹에, 농민들은 농맹에 가입하여 조직생활을 했다.
---p.158

서울 영등포 소화정공주식회사 직원 조성준(23)은 …… 1945년 7월경 고향인 함경남도 신흥군으로 돌아왔다. …… 그의 눈에 비친 해방된 고향의 모습은 말이 아니었다. 그는 특히 “신경찰”을 자처하며 “구경찰”을 비판한 청년단체인 “건국보좌회”의 결성에 실소를 금치 못했다. 일제시기 관리 출신 청년들이 주도한 이 조직은 자신들의 과거 행적을 반성하기는커녕, “조선 민족을 위해 싸우겠다!”는 허울 좋은 선언문을 발표하며 해방 후 지역사회의 주도권 장악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였다.
---p.180

친일파 재산 몰수는 법적 절차에 따라 엄정히 집행되지 않았다. 그들의 재산을 몰수해 사복을 채운 이들 중에는 지역 내 “건달꾼들”이 많았다. 해방 직후의 혼란에 편승해 사리사욕을 채운 그들은 남한으로 도주하거나, 보안기구에 체포되어 교화소에 수감되었다.
---p.181

지주 토지의 몰수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예외 없이 단행되었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산업국장 이문환(43)은 북한의 산업 부문을 총괄한 고위 인사였지만, 토지개혁 시에 2만 평(6.7정보)의 경작지를 몰수당했다. 그 탓에 그의 재산은 30만원에서 1만원으로 줄어들었다.
---p.251

토지개혁과 더불어 기존의 소작제가 폐지되고, 분여 받은 경작지에 한해 매매가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이제 분여지의 임대와 매각은 불법 행위로 규정되었다. 따라서 자경할 여력이 없는 토지는 국가에 반환해야 했다.
---p.254

빈농들이 토지개혁의 혜택을 받은 반면, 일하지 않는 5정보 이상의 경작지 소유자들인 이른바 “불로지주들”은 법령에 명시된 “요이주자要移住者” 규정에 따라 토지와 주택을 몰수당한 뒤 다른 지역으로 축출되었다.
---p.254

토지를 분여 받은 빈농들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들 중 일부는 자서전에 그 기쁨을 생생히 묘사했다. 평양교원대학 지리과 학생 전순애(20)는 토지개혁의 혜택을 농민들이 “움 안에서 거저 얻은 떡”에 비유했다. 그녀의 가족들에게 토지개혁 이후의 나날은 “화창한 봄날” 같았다.
---p.263

토지를 분여 받은 빈농들은 감격에 빠졌을 뿐만 아니라, 국가 건설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2,000평의 토지를 분여 받은 조선인민군 장교 태은섭(22)의 가족들은 하나같이 국가사업에 발 벗고 나섰다.
---p.266

악질적 친일 행위에 연루되지 않았다면 일제시기 전문직 종사자들은 그들의 기존 지위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강원도 평강축산전문학교 교장 주범(40)은 일제시기에 각종 공직을 두루 거친 전문가였다. 그는 시학으로부터 “일제 전직자”라는 이유로 학교장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나 시학은 그가 기술학교를 맡고 있다는 점을 들어 마지못해 그의 유임을 승인했다.
---p.295

경성대학 이공학부 교수 이한희(27)의 북한 정착 과정은 초빙 사업의 구체상을 잘 드러낸다. 1946년 9월 초 ‘국대안’에 반대해 사직서를 제출한 그는 북한의 초빙을 받아들여, 9월 19일 김일성종합대학 공학부 교수로 취임했다.
---p.301

해방 후 북한은 “입시 지옥”이라는 오명을 얻은 식민지 조선의 열악한 교육여건을 개선하고자 많은 학교를 세웠다. 그러나 학교 증설사업은 교원 부족난을 더 악화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 사범학교나 교원대학 출신뿐만 아니라 중학교·전문학교 출신들까지 교원양성소에서 약 1∼2개월의 단기 교육을 이수한 뒤 교사로 발탁되었다. 20∼30대의 젊은 나이에 교장이 된 이들도 적지 않았다.
---p.326

해방 전 13년간 일제의 황민화 교육 보급에 앞장서온 강원도 김화군 통구인민학교 교장 박학영(35)은 지난날 자신의 직업에 비판의식을 품기는커녕, 그저 “밥 벌어 먹기에” 급급한 소시민일 뿐이었다. 그러나 해방 후 그는 한 혁명가에게 사흘 동안 “사회 발전의 사적 고찰”에 관한 강습을 받고 새로운 세계에 눈뜨게 되었다.
---p.339

마르크스-레닌주의 학습이 강조됨에 따라 전공 학습에만 몰두하는 태도는 더 이상 미덕이 될 수 없었다. 강원도 금화고급중학교 교사 유창술(20)은 “자기 전공 과목인 광물과에만 열중하고 있는 반면, 맑스-레닌주의로 무장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p.354

종종 노동 행위도 과오와 결점을 교정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이를테면 사업 중 과오를 범한 평양시 교육부 간부 이길선(31)은 북조선로동당 평양시당의 지시에 따라 7개월간 국영 연탄공장 노동자 생활을 했다. 1948년 말 교정을 마친 그는 평양 제12중학교 교장으로 복직했다.
---p.364

친일파 가정 외에 지주 가정, 월남자 가정, 기독교인 가정, 남한에 거주하는 가족·친척을 둔 가정 등이 억압을 받았다. 심지어 부농·기업가·상인 가정 및 노동당과 반목한 조선민주당·천도교청우당 가정도 경계 대상에 속했다. 그들 가족 성원들은 차별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위의 수직 이동기회를 제약 당했다.
---p.373

황해도 재령군 하성중학교 교무주임 황충환(22)은 단지 처갓집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은 탓에 당국의 주시를 받았다. 기독교 장로인 장인과 평양신학교에 재학 중인 처남을 둔 그는 “불순한 가정”과 혼인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처가의 오점에 대한 책임을 함께 떠안아야 했다.
---p.373

새로운 계급 질서는 노동자-고농-빈농-사무원-중농-수공업자-상인-기업가-부농-지주 등의 순으로 위계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곧 피착취계급으로부터 착취계급에 이르기까지 착취당하거나 착취한 정도에 따라 계급 서열이 고착되었다.
---p.392

평양의학대학 교수 김태하(31)는 큰돈을 벌 수 있는 의사들이 착취계급으로 간주되었음을 간파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과거 의료인들의 저열한 사상과 갖가지 죄악을 청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며, 자신이 속한 계급을 향해 신랄한 비판을 퍼부었다. 더 나아가 그는 의료기관 국영화를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p.425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북한사 연구의 새로운 지평 제시

국내에서 북한사 연구 분야는 그 역사도 짧고 연구진도 두텁지 못했다. 게다가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자료 입수에 많은 제약을 받았다. 이제는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사료 개방정책 덕분에, 중국 당안과 몇몇 러시아 아카이브를 제외하고, 북한 관련 자료의 제한이 대부분 풀렸다. 그에 힘입어 이 책은 결이 다른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다. 역사학자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신선한 사료를 바탕으로 과거를 추적하기 때문이다.

20년 넘게 북한사를 연구해온 지은이는 북한 당국이 체제 유지 혹은 강화를 위해 개개인들로부터 수합한 879인의 자술서·이력서 그리고 이에 대한 상급자의 평정서들을 중심으로 북한사의 핵심 이슈들을 흥미롭게 엮어냈다. 이 자료들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 진주했던 미군이 노획해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 보관 중이던 사료들이다. 교수 교사 학생 공직자 간부 노동당원 군인 등 북한의 젊은이들이 생존을 위해 혹은 출세를 위해 털어놓은 그들의 삶은 그만큼 진솔하다. 그러기에 그간 정치사 제도사 중심으로 진행돼 왔던 북한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참고: 미군이 전시에 북한지역 공공기관에서 탈취한 이 문건들은 그 기관에 근무한 직원들 개개인의 기록물이다. 구체적으로 김일성종합대학 교수진, 평양공업대학 교수진, 흥남공업대학 교수진, 평양의학대학 교수진, 함흥의과대학 교수진, 청진의과대학 교수진, 평양교원대학 역사과·지리과·노어과·수학물리과·화학과·체육과 학생들, 황해도 재령군 내 각 중학교 교사들, 강원도 김화군·평강군 내 각 중학교 교사들, 함경남도 영흥군·함주군 내 각 중학교 교사들, 황해도 벽성군·송화군·은율군 내 참심원들, 조선인민군 하사관과 병사들, 조선중앙통신사 직원들 등의 자서전·이력서이다.)

이제까지 연구자들이 주로 활용한 북한 관련 자료는 잡지나 신문처럼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자료들이 대부분이다. 철저한 검열의 전통이 지속돼 왔기 때문에, 북한의 공식 간행물에서 생동감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자서전·이력서는 당시를 살아간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들의 집단 경험은 혁명에 착수한 북한의 시대상과 사회상을 생생히 보여준다.

‘아래로부터의’ 진솔한 이야기들

흔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대체로 맞는 말이다. 일상사 미시사 연구의 활성화는 이를 보완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북한 연구가 통치자나 지도자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해 왔다면, 이 연구는 북한을 살았던 이름 없는 일반인들을 조명하고 있다.

이제까지의 북한 연구가 통치자나 지배층의 시각을 통해 역사상을 바라보는 방식이었다면, 지은이는 대중 또는 민중으로 일컬어지는 일반인들의 관점을 통해 북한사를 재구성함으로써 나름의 성취를 보여준다. 즉 이 책에는 진정한 “아래로부터의 역사”가 풍성하게 담겨 있다.

황해도 송화군에 소련군이 진주했을 때 공산청년동맹과 적위대는 사이렌을 울리며 주민들의 피신을 유도했을 뿐만 아니라, 재산과 부녀자들을 잘 간수해야 한다는 경고도 했단다(124쪽). 한선일이라는 젊은이가 소개한 대목인데, 소련군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당시 좌익 단체조차 불신했을 만큼 좋지 않았음을 드러낸다. 공식 기록과 다른 민초의 시각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우리가 놓쳤던 역사의 이면들

역사를 읽는 큰 재미 중 하나는 종종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다는 점이다. 여기서 무릎을 치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이를테면 군의軍醫로 타이완에 끌려갔던 황수봉이란 젊은이 이야기가 그렇다. 그는 해방 후 진급을 시켜주겠다는 사령관의 회유를 뿌리치고 탈주해 현지에서 1300여 명에 달하는 조선인 병사들을 모아 ‘인민의용군’을 창설해 일본군은 물론 중국국민당 중앙군과 협상해 1946년 무사 귀국을 성사시켰다(107쪽).

북한의 국가건설에 경성대학 교수 등 남한 전문가들이 참여했다는 사실은 어떤가?· ‘국립 서울대학교 설립안’에 반대했던 경성공업대학 수학교수 홍성해, 경성대학 이공학부 교수 이한희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301쪽). 1947년 김일성종합대학에 임용 예정인 전문가 중 남한 출신이 절반 가까운 44.4퍼센트라는 기록도 보인다.

따지고 보면 역사라는 것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당대를 살았던 이들의 육성을 생생히 전달하고 있는 자서전·이력서야말로 정사가 놓치고 있는 역사를 재현하기에 최적화된 자료이다.

흐름을 짚으며 디테일을 함께 살리다

지은이는 자서전·이력서를 단순히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해방의 감격과 혼란, 국가건설 과정, 토지개혁, 연좌제 등 해방공간 북한에서 벌어진 굵직한 이슈들을 따라 자서전과 이력서를 정교하게 엮어냈다. 예컨대 북한의 토지개혁이 수많은 ‘혁명의 밀알’을 낳아 체제의 버팀목이 되었다는 의미를 짚어내며, 이를 둘러싼 환호와 탄식을 섬세하게 보여주는 식이다.

황해도 재령군의 머슴 출신 오남제는 토지개혁으로 논 800여 평을 분여받고는 어엿한 가정을 이루었다. 얼마나 기뻤던지 첫 수확 후 가장 먼저 현물세로 쌀 네 가마니를 납부하고도 ‘애국미’ 여섯 가마니를 추가로 헌납했을 정도였다(272쪽). 해방 직후 북한에 불어 닥친 러시아어 학습 열풍을 “인텔리나 대학생이라면 러시아어 서명을 만드는 일이 유행처럼 번졌다. 정성스레 자서전을 마무리한 그들은 작성일과 성명을 기입한 뒤, 멋들어진 러시아어 서명을 남겼다”(130쪽)고 그리거나, 출신성분과 사회성분을 따진 북한에서 황충환이란 이는 기독교 장로인 장인과 평양신학교에 재학 중인 처남을 둔 “불순한 가정”과 혼인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시달림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여느 역사책에선 볼 수 없는 세밀화이다.

북한사가 중요한 이유는 현재 우리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 미래의 삶의 질에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 사람들의 일상 삶과 문화 그리고 그들의 생각을 들여다봄으로써 통일의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 실린 자서전과 이력서를 통해 엿볼 수 있는 일상사 사회사 미시사는 북한 사람들의 의식과 심리에 다가갈 수 있는 훌륭한 길잡이 구실을 할 수 있다.

회원리뷰 (2건) 리뷰 총점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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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고백하는 사람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l**y | 2021.09.06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고백하는 사람들>은 해방 이후 북한 사회가 성립되는 과정을 일반인의 이력서와 자서전을 통해 재구성했다. 해방 후 한국전쟁 이전까지 북한 지역에 살았던 879명의 자기 서사는 '전략적 글쓰기, 해방의 소용돌이, 대중조직 건설 운동, 일제 잔재 청산, 반체제 운동, 주도권 쟁탈에 나선 정당들, 혁명의 시작 토지개혁, 국가 건설, 교육-'새로운 인간형' 만들기,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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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는 사람들>은 해방 이후 북한 사회가 성립되는 과정을 일반인의 이력서와 자서전을 통해 재구성했다. 해방 후 한국전쟁 이전까지 북한 지역에 살았던 879명의 자기 서사는 '전략적 글쓰기, 해방의 소용돌이, 대중조직 건설 운동, 일제 잔재 청산, 반체제 운동, 주도권 쟁탈에 나선 정당들, 혁명의 시작 토지개혁, 국가 건설, 교육-'새로운 인간형' 만들기, 가족, 계급' 등 모두 11개의 주제로 직조되었다.

 

이 책은 다양한 일반인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의 모습을 아래로부터 그려내고자 했다. 많은 이들의 이력서와 자서전을 활용했기에 주제별로 나누어 놓았어도 본문에서는 산만해 보인다. 자료에서 바로 인용하느라 찍은 따옴표도 많다. 주자료의 특성에서 비롯된 일일 것이다.

 

이력서와 자서전 제출 및 활용이 특정 사회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지만, 해방 후 북한 사회를 완전히 새롭게 조직하는 데 작동한 방식 중 하나다. 저자의 첫 단행본 <북한 체제의 기원>에서도 이 이력서와 자서전은 주요 자료 중 하나였다. <고백하는 사람들>은 건조한 학술 논문이 아닌, 실제 사람의 목소리를 끌어내고 싶었던 바람의 실현이겠다.

 

역사가는 과거라는 낯선 세계를 탐험한다. 해방 직후부터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38도선 이북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새로운 사회와 생소한 체제에 적응해야 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만나고 싶다면 일독을 권한다.

 

이러한 이력서와 자서전을 직접 읽어보고 싶은 독자는 지체 말고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해외한국관련기록물에서 '이력서', '자서전', '평정서'를 검색해 보기 바란다. 검색 결과 중 미 국립문서관리기록청이 수집한 북한 문서 파일에서 이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누구나 자기 집에서 원문 이용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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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생존을 위한 치열한 고백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q*****2 | 2021.03.13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던데, 오로지 기억되고픈 마음에서 자서전을 써내려가진 않았을 것이다. 적극적인 변명 혹은 열렬한 자아비판.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 차원의 기록과 그 기록에 반하는 평정서. 지금도 비슷할 거 같은데, 북한의 1940-50년대는 원치 않는 고백의 시대였다.   글 쓰는 게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넘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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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던데, 오로지 기억되고픈 마음에서 자서전을 써내려가진 않았을 것이다. 적극적인 변명 혹은 열렬한 자아비판.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 차원의 기록과 기록에 반하는 평정서. 지금도 비슷할 같은데, 북한의 1940-50년대는 원치 않는 고백의 시대였다.

 

쓰는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넘치는 시대다. 헌데 이번에 읽은 책은 여러 모로 독특했다.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기술했다. 잊혀지고 싶지 않은 바람이 듬뿍 담긴 것일까. 의도가 궁금했다. 거기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 말하지만 알려 들수록 없는 북한 사회에 속한 이들의 기록하는 점이 신선했다. 물론 지금으로부터 50년도 전의 생활상이 담겼으므로 오늘날의 모습과는 사뭇 다를 분명했다. 허나 북한의 현재 못지 않게 북한의 과거에 대해서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말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고자 택한 책은 설명이 어려운 여러 감정을 내게 선사했다.

정리되지 않은 과거사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친일 부역자들의 자손이 떵떵거리는 와중에도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들의 후손은 겨우겨우 입에 풀칠을 하며 산다. 적잖은 수는 여전히 고국 땅을 밟지 못한 전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 그나마 북한의 청산은 우리보다 한결 강고했다고 들었다. 어떤 방식이었을지 궁금했는데, 책을 읽으며 면모를 약간이나마 엿볼 있었다.

기록으로부터 끊임없이 읽어낼 있었던 출신성분에 대한 내용이었다. 부모, 형제 등의 일거수일투족이 주도면밀하게 고려됐다. 일제 강점기에 크고 작은 자리를 차지했던 이들은 가차없이 좋지 않은 성분으로 취급됐다. 사람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에 반응했다. 일부는 자서전을 기술하면서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을 고의적으로 누락시키거나 축소했다. 당국의 실로 막강한 힘이 그들의 의도를 간파하는 시간 문제였음에도, 그럼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할 있으리라 믿었던 같다.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은 물론 나아가 철저한 반성의 태도를 강조한 이들도 됐다. 특정 계기를 언급하며 지난날의 자신과 결별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모습으로부터 왠지 모를 처절함을 느꼈다.

저자는 신분제의 혁파,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구현하겠다는 이상의 실현을 부르지는 과정에서 하나의 신분제가 안착했다고 보았다. 그와 같은 주장에 동의한다. 그와 동시에 스스로의 결백을 끊임없이 주장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주장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감시하는 사회의 고착화가 오늘날 북한사회의 경직으로 이어졌다는 생각을 책을 읽는 내내 했다. 책에 수록된 기록이 과거의 것이면서 왠지 현재도 유효할 것만 같았다. 그러잖아도 부족한 에너지가 사적 영역에까지 지나치게 침투하면서 성장 쪽으로는 어떠한 힘도 발휘하지 못하는 형국이 오래도록 지속되고 있다는 무섭기도 했다.

동떨어진 세계를 접한 3 자의 시선을 취한 책을 읽었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 또한 이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했지 싶다. 도처에 설치된 CCTV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기록의 형태가 아니어도 사람들 사회의 평판에 의해 나는 하루에도 수시로 살아났다 죽었다가를 반복한다. 어느 편이 나으려나. 인간의 탈을 비정한 사회, 무뢰배의 얼굴을 폭력적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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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시간과 공간 속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당대의 역사상에 다가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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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 | 2020.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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