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재단의 미션은 대중모금과 배분을 통해 여성운동단체 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여성인권이 보장되고 호혜와 돌봄이 실현되는 성평등 사회의 실현을 앞당기는 것이다. 한국여성재단은 모금과 배분이라는 양 바퀴로 성평등 사회를 향해 달리는 마차와 같은 모습의 사회적 건축물이다. 마차가 달려갈 방향에 관해서는 “딸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슬로건에 진영의 구분없는 합의를 담았다. 다만 어떻게 얼마나 모금하여, 얼마나 투명하고 공정하고 적절하게 한국의 여성운동을 지원하고 견인할 것인가가 한국여성재단의 실존의 질문 이었다. 모금의 효과성이 배분의 규모를 결정하고, 배분의 책임성과 회계의 투명성이 모금의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서문 한국여성운동의 미래를 위한 기록」중에서
한국여성재단이 설립될 당시, 한국여성들의 상황은 당시의 경제위기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1997년부터 시작된 IMF 경제위기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실업으로 내몰리는 상황에서 여성들은 가장 먼저 위기의 피해자가 되었다. 1980년대 말부터 남녀고용평등법이 제· 개정되면서 노동시장에서의 성 불평등 문제가 다소 완화되는 듯하였 으나, 경제위기 상황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 다. 실업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남성 가장이라는 규범이 소환되면서 여성은 우선 해고대 상이 되었다. 맞벌이 여성은 남성 가장에게 일자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압력에 시달렸다. 매스컴은 연일 ‘가장 기 살리기’담론을 쏟아내고 있었고, 여성은 한편으로는 실업으로 내몰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실업위기에 처한 가장을 돕기 위해 아무 일이나 찾아 생계전선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여성운동은 이런 여성의 현실과 ‘남성 생계부양자’ 담론과 힘겹게 싸우고 있었다.
---「제1장 홍미희 한국여성재단설립, 여성운동사에 한 획을 긋다」중에서
당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여성운동과의 협력지원을 위한 법제화가 막 첫걸음을 떼고는 있었다. 1995년 말 「여성발전기본법」이 제정되었고, 제29조에서 “사업 등의 지원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하여 여성발전기금 설치”를 명시했다. 1996년 서울시에 최초로 여성발전기금 (현 성평등기금) 이 설치되었고, 뒤이어 정부 차원에서도 여성발전기금이 조성되었다. 1998년부터는 정부가 여성발전 기금 공모사업을 통해 여성단체 사업을 지원하기 시작했지만, 초기에는 기금 조성에 중점을 두어야 했고, 지원사업은 소규모에 그쳤기에 여성운동 단체들의 필요를 충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가 여성발전기금이 자리를 잡고 안정적으로 확대되기도 전인 2001년 여성정책 전담부처인 여성부가 설치되면서 역설적으로 국회에서는 여성발전기금의 폐지가 제기되기도 했고, 정부의 기금 통폐합 논의와 맞물려 여성발전기금 폐지가 검토되면서6 여성운동은 여성발전 기금 존치를 위해 나서야 했다. 한국여성재단은 이 활동에도 맏언니 역할을 감당했다.
6. 2003년 당시 기획예산처 기금운용평가단의 평가 결과가 나오면서 여성발전기금 폐지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제2장 김은희, 여성운동의 벗바리, 지역 풀뿌리 활동가들의 비빌 언덕」 중에서
여성복지사업이 대부분 사회적으로 배제되거나 소외된 여성들의 어려움을 완화시켜 주기 위하여 현물, 현금, 서비스를 지원해준다는 의미로 접근하다보니, 마치 여성들이 ‘부족’하거나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도움을 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의미가 퇴색되는 경향이 뚜렷했다. 한국여성재단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통해 2010년 이후 ‘여성복지 사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여성기본인권보장’과 ‘다양성 존중과 돌봄사회 지원’이라는 사업영역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여성 기본 인권보장 영역에서는 여성가장 및 미혼모 지원, 여성의 건강증 진을 위한 지원, 성폭력 및 성매매 여성 자립 지원 등이 이루어지고, ‘ 다양성 존중과 돌봄사회지원’ 영역에서는 다문화 여성과 지역사회 내돌봄사회 구축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제3장 송다영, 소외에서 주체로」중에서
2018년 1월, 서지현 검사의 8년 만의 성폭력 피해 사실 폭로를 전후한 미투운동의 시작, 새로운 세대의 온·오프라인 집단 세력화 (급진주의 페미니즘을 위시한 분리주의와 혜화역 시위로 페미니즘 운동 내 갈등과 논쟁 촉발 등) , 최근의 한국사회의 페미니즘 시대정신 속에서 개개인 여성들의 체계적인 여성주의 학습에 관한 갈증과 열망, 변화에의 참여 열기가 뜨겁게 고양되고 있다. 결론에서는 이처럼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젠더 지형 속에서 여성운동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필요한 새로운 주체 구성 및 여성주의 기획·실천의 자원을 모으고 배분하는 데 여성재단의 역할과 과제에 대해서 탐색해보려 한다.
---「제4장 김영선, 사람을 키우는 재단으로」중에서
한국여성재단이 연결망이자 공론장인 여성회의를 기획한 것은 무엇보다 여성운동의 동력을 만들고 지속하고자 한 것이었다. 상황은 어땠을까? 국가정책으로 제도화되는 페미니즘은 그 급진성을 잃어가 고, 시장에 포섭된 페미니즘은 개인적 소비문화 안에서 탈정치화하는 세태였다. 게다가 1980년대 급진성을 표방하며 출현한 여성운동은 시간이 지나면서 노화되고 새로운 여성운동 주체들이 여기저기서 등장하지만 서로 단절된 채 산재했다. 한편, 페미니즘 운동은 지속되 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여성활동가들은 자신의 삶과 전망을 그 운동 안에서 가늠하지 못한 채 생존을 염려해야 했다. 이 가운데 ‘좀 더 나은 여성의 삶과 성평등을 위한 여성운동은 무엇이어야 할까?’라는 물음은 한국여성재단의 촉각이자 활동 사업이 됐다.
---「제5장 김엘리, 새로운 페미니즘의 디딤돌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