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매의 깃털은 보호용 광택이 건강하게 흐르며, 비에 젖지 않는 방수 기능을 장착하고 있다. 완벽한 깃털을 지닌 매의 활기는 신성하다. 꼼꼼하게 치료를 마친 두 매는 이제 묵직한 곰팡냄새, 부드러운 흙냄새, 시들어가는 복숭아 냄새, 마른 나뭇가지에 달라붙은 이끼 냄새를 풍긴다. 이렇게 좋은 냄새를 풍긴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두 매가 건강을 회복했고 자유롭게 떠날 준비가 되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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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생적인 아웃사이더다. 마음을 편하게 먹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의미 있는 유대감을 쌓는 일이 대단히 힘들다. 하지만 자연은 내게 평화의 공간이자 내 감정을 어루만져주는 아늑한 통로이며 끊임없이 중재자 역할을 해준다. 그 공간에서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드러내고 소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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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맹금류를 발견한 것은 계시였다. 처음 매를 잡았을 때의 그 놀랍도록 강렬하고 선명한 느낌은 충격적이었다. 내면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그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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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연을 향한 나의 감정을 이해했고, 맹금류를 향한 감정과 내 아들에 대한 감정이 나란히 흘러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나는 그 감정들이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를 향해 품은 깊은 사랑과 따스한 관찰은 또 다른 대상을 향한 깊은 사랑을 깨우쳐주고 열어주었다. 이 깨달음을 통해 나는 내 아들과 그의 어머니와의 관계를 조심스럽게 재정립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법을 배웠고 내 아들을 통해 그리고 아들을 위해 나 자신을 긍정적으로 표현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이것이 내 이야기의 핵심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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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키보다 높은 신선한 공기층에서 만들어진 눈이 굵게 뭉쳐 내리기 시작한다. 땔감도 구하고 우물에서 물도 길을 겸 아침 숲속을 거닌다. 폐쇄공포증을 유발할 정도로 빽빽한 숲에서 맑은 소나무 향기가 스며 나온다. 발아래로 눈이 뽀드득 소리를 내며 뭉개지고 희미한 햇빛 줄기가 나뭇가지들을 가로질러 눈 위에서 분홍색, 겨자색, 파란색, 녹색으로 반사된다. 산토끼며 여우, 사슴, 밍크, 담비 등이 눈밭 위에 어지러이 남긴 흔적과 발자국이 나무들 사이로 흩어져 있다. 이곳은 독수리를 위한 최고의 사냥터이며 근사한 고독감이 오롯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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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보기에 나는 정상처럼 보인다. 내 머릿속에는 형편없이 조율된 그래픽 이퀄라이저가 들어 있는 기분이다. 나는 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뒤죽박죽 겉치레를 하며 보냈다. 내 기억이 가장 멀리 닿는 지점부터 생각하자면, 나는 세상을 불규칙하게 경험했다. 내 발달 과정의 모든 면들이 어딘가에 구속당했거나 정상 궤도를 크게 벗어난 지점으로 엉뚱하게 던져진 것 같았다. 내가 매일 지배적으로 느끼는 감정은 늘 대혼란과 두려움, 불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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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생겼다는 혼란스러운 상황과 맞서 악전고투하던 나는 다니던 직장을 잃고, 집에서 48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물리적으로 고립된 채 홀로 내 마음속을 떠다녔다.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 나갈 곳도 뒤로 물러설 곳도 없었다. 나는 공황상태에 빠져 꽁꽁 얼어붙은 채 끊임없이 밀려드는 원초적 불안과 자멸적이고 파괴적인 분노를 느꼈다. 지독히도 불안스레 헤매다가 무력하게 길을 잃었다. 머물고 싶지도 않았고 떠날 수도 없었다. 존재와 불안한 분리 사이의 좁은 공간에 갇혔다.
--- p.141
자유와 비행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비행은 중력으로부터의 순간적인 탈피다. 변덕스럽고 어느 방향으로나 움직이며, 자유롭게 이동하고, 이주하고, 방랑한다. 비행은 자유로운 영혼이며, 빙글빙글 돌고, 질주하고, 사냥하고, 그저 재미로 날기도 하는 행위다. 매잡이인 나는 그저 은유나 상징적 비유가 아닌 구체적 경험으로서의 비행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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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주 진지하게 실망했어.”
아들의 말에 웃음이 터진다. 내 심정과 완전히 똑같기 때문이다. 솔직한 말이다. “완전히 부적당해.” 나도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아들은 모른다. 자신이 지금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해주었는지.
문득 깊은 생각이나 고민 없이도 예기치 못했던 감정의 물결이 나를 휩쓸고 지나간다. 나는 이 자연스러운 힘에 충격을 받는다. 그 감정을 제어하려고, 억지로 누르려고 애쓰다가 결국 포기하고는 그것이 흐르는 대로 내버려둔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이렇게 말한다.
“사랑해.”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건 처음이다. 아들이 이 말을 알아들을 만큼 큰 것도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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