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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이끄는 대로 1

마음이 이끄는 대로 1

틸다킴 | 동아 | 2020년 09월 2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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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9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496쪽 | 582g | 147*210*22mm
ISBN13 9791163023913
ISBN10 1163023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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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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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왜 이렇게 몸을 떨지?”
“…….”
곧, 턱 밑에 딱딱한 뭔가가 닿았다. 왕이 검집째로 이재의 턱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방금 물었잖아. 왜 이렇게 몸을 떠냐고.”
당신 뒤에 원귀들이 너무 많아서요.
왕의 어깨와 등 뒤에는 본인이 끌고 온 기사들보다 많은 수의 원혼들이 붙어 있었다. 이재는 온갖 일들을 겪어 왔지만, 저런 건 들어 본 적도 상상한 적도 없었다.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어서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남자의 눈을 바라보기만 했다. 새파랗고 짙은 눈동자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이재가 침묵하자 그 새파란 눈에는 옅은 짜증이 깃들었다.
“떨지 마라, 헤일리 던컨. 네가 나한테 죽을죄를 진 건 사실이지만, 지금 당장 죽이겠다고 온 건 아니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면 더…… 떨게 되잖아요.”
내가 지금 무슨 말을 지껄인 걸까. 미안하다, 헤일리 던컨. 네가 그나마 보존이라도 한 육신은 나 때문에 곧 목이 분리될 거야.
그러나 뜻밖에도 왕은 그 말에 픽 웃었다. 그의 눈빛은 가소롭다는 듯도 보여 이재에게는 저걸 어떻게 죽이지, 고민하는 사람 같았다. 바닥으로 향하는 이재의 고개를 다시 한번 검집으로 들어 올린 왕은 말했다.
“어쨌든 떨지 마라. 우선은 이야기를 하러 온 것뿐이니까. 생각해 보니 너와 세 마디 이상은 섞어 본 적이 없는 것 같기에.”
이 기회를 놓치면 정말로 죽을 것 같아서 이재는 고개를 크게 한 번 끄덕였다. 뭔가 심하게 잘못된 상태로 깨어났지만, 이 자리에서 허무하게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가 심호흡을 하는 걸 본 그는 이제야 대화가 좀 되겠다고 느꼈는지, 검집 끝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너, 이 결혼이 그 정도로 싫었던 건가? 목숨을 끊을 만큼?”
“…….”
“이 결혼은 너희 던컨가에서 먼저 제안했던 것이 아닌가.”
이재도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저 남자는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이긴 했다. 이재는 그걸 남들보다도 훨씬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저지른 일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추궁당해도 할 말은 없었다. 오히려 억울할 지경이었다.
“헤일리 던컨. 네 아비가 그런 것까지 가르쳐 주지 않은 모양이지만, 나는 여러 번 묻는 걸 많이 싫어해. 대답해라.”
결국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답안을 말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싫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하지만 왕의 그린 듯한 미소는 말하고 있다. 거짓말. 안 믿는다는 뜻이었다. 그는 빈정거리듯, 그렇지만 예리한 말투로 물었다.
“그럼 다른 남자를 잊을 수 없었다던가?”
“…….”
나는 남자가…… 아, 헤일리 던컨은 다른 남자가 있구나. 그래, 있다.
인생의 대부분을 외롭게 살아온 이재는 억울한 심정이 배가 되어 또 한 번 입을 다물고 말았다. 국왕은 그 침묵을 다른 의미로 이해한 것 같았다.
“네가 마음속에 어떤 사내를 품고 있든 나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다.”
사실은 관심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귀찮다는 얼굴이었다. 검집 끝으로 값비싼 러그를 딱, 딱 찍으며 왕이 말했다.
“네 순정을 응원해 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나는 역사에 이 이상 불길한 왕으로 기록될 수 없다. 그러니 너는 네가 살고 싶은 것보다는 오래 살아야 한다는 게 내 판단이다.”
“…….”
“그런데도 네가 꼭 죽어야만 하겠다면…….”
그는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헤일리 던컨. 왕관을 쓰고 죽어라.”
왕의 말은 상징적이었다. 이재는 문득 사위가 고요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착각이 아니었다. 그의 뒤에서 입을 쭉 찢고 있는 창백한 영혼도 고개를 내밀고 이재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 이번엔 진짜 제대로 봐 버렸어. 정면으로 눈이 마주친 이재는 속으로 윽, 하며 고개를 다시 숙였다.
“거절할 거라면 지금뿐이다. 너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도 오늘뿐이니까. 잘 알겠지만, 나는 지금 너를 굉장히 봐주고 있어.”
무척이나 망설이던 이재는 자신의 옷자락을 꼭 쥐고 고개를 들었다. 이 상황이 당혹스럽고 두려웠지만, 그녀는 그래도 이렇게 죽고 싶지는 않았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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