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0년 12월 08일 |
---|---|
쪽수, 무게, 크기 | 316쪽 | 304g | 125*180*15mm |
ISBN13 | 9791159350757 |
ISBN10 | 1159350752 |
발행일 | 2020년 12월 0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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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16쪽 | 304g | 125*180*15mm |
ISBN13 | 9791159350757 |
ISBN10 | 1159350752 |
오프닝 우리가 좋아하는 그 이름 라디오 어쩌다 보니 매일 쓰고 있습니다 어떻게 매일 글을 써요? 내일 오프닝엔 무슨 얘길 할까? 내일이 기다려지는 디제이의 끝인사 비슷한 사연, 전혀 다른 반응 쓰기 어려운 날은 없나요? 내 얘기, 듣고 있나요? 디제이가 바뀌면 작가의 생각도 바뀐다 _ 1 디제이가 바뀌면 작가의 생각도 바뀐다 _ 2 운이 나쁜 여자, 운이 좋은 작가 나는 내가 쓴 글처럼 살고 있을까? 숫자는 정말 중요할까? 그 사람이라서 좋아요 라디오를 만드는 사람들이 고민하는 것들 그래도 방송은 계속되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라디오 라디오를 왜 들으세요? 꼭 해보고 싶은 일 짐작과는 다른 일들 대나무숲의 원조, 라디오 한 번쯤 다 해본 거 아니에요? ‘나는 오늘’로 시작하는 얘기 라디오가 참 좋다 디제이에게 기대하다, 디제이에게 기대다 배철수 아저씨의 말씀은 늘 옳다 청취자가 던진 물음표, 디제이가 건넨 위로 익숙하고 편안하게 있어 주면 돼 ‘타인’이라 쓰고 ‘가족’이라 읽는다 라디오엔 당신의 ‘하찮은’ 인생이 있다 그래서 라디오 20년째 라디오 작가 그날 일정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요! 매일 조금씩 나아지려고 합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은 있다 내 글을 기억해주는 청취자도 있을까? 저는 연예 매거진이 아니라 라디오 작가입니다만 라디오 작가에겐 없는 것 Top 10의 의미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라디오가 알려준 디제이의 마음 5초 후의 일을 어떻게 알겠어 어디에나 있는 이별 라디오가 없었다면, ‘너’와 ‘나’는 있어도 ‘우리’는 없었겠지 클로징 잠시라도 그때를 떠올려보셨기를 |
창밖의 별들도 외로워 노래 부르는 밤
다정스런 그대와 얘기 나누고 싶어요.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그랬다. 내가 라디오와 함께 말 그대로 울고 웃으며 보냈던 시간, 그때 나의 하루를 토닥토닥 위로해주고 때로는 장난스럽게 맞장구 쳐주기도 했던 별밤지기는 다름아닌 이문세 아저씨였다.
이렇게 쓰면 너무 연식(!)이 드러나는 건 아닌가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이문세 아저씨는 장장 11년간이나(1985~1996) 마굿간을 지켜 그 가늠의 폭을 넓혀주었다(그래봤자 옛날 사람 인증일테지만). 예나 지금이나 내 마음을 찰떡같이 알아주는 별밤지기이다. 그러기에 내가 그의 콘서트에 가서 야광봉을 그렇게나 팔이 빠져라 흔들어댄 것 아니겠는가
라디오 작가인 저자는 [별이 빛나는 밤에] [두 시의 데이트] [꿈꾸는 라디오] [푸른 밤] [오후의 발견] [펀펀 라디오] [FM 데이트] 등등 타이틀만 들어도 아, 그 방송? 하고 알 법한 많은 프로그램에서 글을 쓰며 디제이 그리고 청취자들과 소통했다.
책에는 20년이라는 시간동안 저자가 라디오 프로그램을 함께 하며 만났던 사람들, 마주했던 상황들 그리고 그 속의 기쁨과 슬픔이 빼곡하게 담겨있다. 글을 쓰는 작가로서 맞닥뜨려야 했던 고민과 좋아하는 일을 오랜 시간 계속 하고픈 한 사람의 고단함과 조바심은 어느새 동료애마저 느껴지게 한다.
영화를 볼 때, 책을 읽을 때도 ‘이건 비 안 올 때 오프닝으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고, SNS에서 어떤 내용을 보면 ‘이건 나중에 타블로랑 방송할 때 오프닝해야지’ 하고 메모해 둘 때도 있다. 제발 책을 책으로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농담처럼 한 적도 있을 만큼 눈으로 보는 모든 활자들, 귀로 듣는 어떤 얘기들도 작가들은 방송의 소재로 쓴다. 모든 것이 오프닝의 소재다. p.32
“뭐 좀 새로운 거 없을까 ”
(중략)
매번 비슷비슷하고 그 코너가 그 코너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만들어놓고 보면 그랬다. 그리고 가끔은 청취자들의 지적도 있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모든 라디오 프로그램이 비슷한 것 같다’는. 그렇기에 어쩌면 제작진들은 프로그램을 만들때마다 늘 같은 질문을 던지는지도 모르겠다. ‘뭐 새로운 거 없을까.’ pp.33-34
시작도 물론 중요하지만, 어떻게 마무리하는지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될까. 디제이의 인사가 그렇듯,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일을 마무리하는 태도에서도 말이다.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이미 끝인사를 정하듯, 어떤 인연들의 끝을, 어떤 일의 끝맺음을 미리 준비해야 어떤 마지막 순간들을 조금은 단단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까. 그렇더라도 세상에 쉬운 마지막이란 건 없을 테지만 말이다. p.40
오랫동안 해온 어떤 일을 그만두기 좋은 때라는 건 언제일까 그런 때가 있긴 할까? 다른 동료 작가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멋진 이별’을 꿈꾼다. 초라하지 않은 뒷모습이기를 바란다. 이왕이면 모두가 박수치면 좋겠다. p.305
가끔 ‘나는 그들에게 어떤 작가였을까’가 궁금해지듯, 어느날에 그들이 혹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디제이였을까’를 궁금해한다면 적어도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각자의 이유로, 당신들 모두 내게는 최고의 디제이였다고. 당신이 내 디제이라서 참 좋았다고.
요즘의 나는 더 이상 시간에 맞춰 주파수를 돌리고, 볼륨을 높이지 않는다. 라디오를 듣는 것도 출퇴근길 또는 출장을 가는 차 안에서가 대부분이고 예전처럼 내가 좋아하는 디제이에 열광하지도 않는다(이건 조금 슬프기도 하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라디오를 통해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선물이라도 받은 듯 기뻐하고, 소개되는 사연을 들으며 얼굴을 몰라도 같은 방송을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친구가 될 수 있었던 내 시간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시그널이 흐르고 디제이가 오프닝의 첫음절을 발음하는 순간, 나는 깨닫는다.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 그게 얼마나 나를 편안하게 하는지, 그 편안함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를 말이다. p.211
오래전 그 익숙함을 떠올리다 보니 나의 기억은 어느샌가 라디오 프로그램만이 아닌 책상 위 한 구석을 차지했던 라디오로도 이어졌다. 카세트 테이프를 재생할 수 있는 기능이 함께 있고, 다이얼을 돌려서 주파수를 맞춰야 했던, 종종 접혀있던 안테나를 뽑아 휘휘 방향을 맞춰보곤 했던 네모난 라디오 말이다(이 글을 읽으며, 그 모양을 떠올리고 미소지으신 분 반갑습니다ㅎㅎ). 이제는 차량에 부착된 형태이거나 아니면 집에서도 휴대폰의 어플로 더 익숙한 라디오를 떠올리니 그때의 내모습도 함께 떠올라 괜시리 웃음이 난다.
이 책은 이렇게 나를 과거로 회기시키는 힘을 발휘한다. 지나간 시간이 다 좋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이 책을 읽는 동안 떠올린 많은 순간들은 내게 따뜻한 기억들로 다가왔다.
어쩌면 그런게 바로 ‘라디오’가 지니고 있는 힘이 아닐까? 저자가 책의 말미에 적어둔 그 바램처럼 말이다.
“어느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한 당신,
그 시간의 틈을 운 좋게 이 책이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다면,
그래도 어느 한 줄쯤으로,
그때, 우리의 그 시간을 떠올려 보셨기를.“ p.315
*기억에 남는 문장
오늘은 이거 하나만, 생각해 보죠.
혹시 내가 잊지 않고 있는 거-
그거, 빨리 잊어버려야 더 좋은 건, 아닌가요
반대로 우리가 잊고 사는 것들 중에,
절대 잊지 말아야 했던 건, 없었을까요? p.63
답 안 나오는 뻔한 위로보다 함께 울어주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 더 큰 위로라 믿는다. p.75
신뢰가 쌓이지 않은 사이에는 농담이 통하지 않는다. 만약 가벼운 농담이라도 상대방이 기분 나빠한다면 해서는 안 될 농담이다. p.101
뻔하고 흔한 얘기지만 준비되지 않으면 운이 찾아오더라도 잡을 수 없을 게 분명하다. 무엇보다 정말 운이 나쁘다면 그게 운인지조차 알아보지 못한 채 그냥 보내버릴 수도 있다. 운도 실력이라는 말은 그래서 생긴 말이라고 생각한다. 다가오는 행운을 알아채는 능력, 그 행운을 받아들일 수 있게 내 그릇을 키워두는 능력. p.110
‘내가 쓴 방송 원고대로만 살면 나는 성인이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실제로 그 문제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다. 나는 왜 내가 쓴 글처럼 살지 않는가, 혹은 살지 못하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p.113
라디오에서 겪은 많은 일들을 통해 나는 자랐다. 때론 슬픔을 잠시 내려둘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지금의 슬픔이 당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 조금은 냉정해 보이더라도 위기의 순간에 이성적으로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p.142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어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이 문장을 다양한 곳에서 발견할 때가 있다..(중략)..이유 따윈 필요 없다. 삶은 계속되고 있으니까. p.142
어느 시인은 물음표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했다.
“물음표는 낚싯바늘처럼 생겼죠. 우리는 인생, 혹은 세상이라는 망망대해에 그 물음표를 던집니다. 그런데 그게 꼭 마침표나 느낌표로 돌아오진 않아요.” p.204
그때의 나는 왜 그런 급작스러운 취소를 다들 양해해 줄 거라고 내 마음대로 생각했던 걸까..(중략)..그때의 나는 왜 그런 것들이 미안하고 상대를 서운하게 하는 일이라는 걸 알지 못했을까. 왜 다들 나를 이해해 줄 거라고, 이 정도는 양해해 줘야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했던 걸까. p.234
그럴 때마다 주저앉을 수는 없다. 화만 내고 있을 시간도 없다. 준비하던 일이 어그러졌다면 누군가는 반드시 그 자리를 채울 다른 안을 준비한다. 내가 여기서 끝낼 생각이 아니라면 거기서 화를 멈추고 누군가에 대한 비난과 불만을 멈춰야 한다. 그 순간에 해야 할 일은 분명 따로 있으니까. 어차피 일어나야 할 일이었다면 거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잘해내야 했다. pp.251-252
내가 경험했던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 덕에 나는 더 단단한 사람이 되었다고 믿는다. p.252
‘우리 사이가 이 정돈데 내가 이렇게 말해도 나를 이해하겠지’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오류라는 걸 알았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나를 이해할 거라 생각하는 건 내 바람일 뿐이다. 상대에게 너무 많은 포용력과 배려를 바라는 얘기다. p.281
Special Thanks to 추억책방님
예스마을 클래식 알리미 '추억책방님'께 선물받아 감사하고 즐겁게 읽은 책입니다 : )
기타 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시그널송.
"창 밖에 별들도 외로워 노래 부르는 밤~ 다정스런 그대와 얘기 나누고 싶어요.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중학교 까까머리 시절 나의 수많은 밤과 추억을 함께 한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1990년 초반 시그널송이 바뀌었지만 밤10시가 되기 전 치지직~ 주파수를 맞춰가며 이문세를 기다리던 그 시절. 신청곡과 함께 보낸 사연이 방송에 나오는지 몇 날 며칠을 기다리고(끝내 나오지 않았지만), 지금은 고인이 되었거나 TV에서 자주 볼 수 없는 무한궤도, 김광석, 신승훈, 변진섭 등이 나오는 공개방송은 나의 깊은 밤을 잠 못 들게 했다.
요즘은 휴대폰 하나만 있어도 할게 많아서 굳이 라디오를 듣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지만 여기 20년 차 라디오 작가가 들려주는 [그래서 라디오] 속 이야기를 듣다보면 아직도 라디오는 우리 곁에서 ON AIR 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저자는 20년째 라디오 작가를 하고 있는 남효민 작가로 <별이 빛나는 밤에>, <두 시의데이트>, <꿈꾸는 라디오>, <푸른 밤> 등의 프로그램을 거쳐 지금은 TBS의 순수 음악방송 <아닌 밤중에 주진우입니다>와 MBC 캠페인 <잠깐만>에서 디제이와 사람들의 말을 쓰고 있다.
[그래서 라디오]는 총 세 장에 걸쳐서 청취자 사연, 디제이들에 대한 이야기, 디제이의 클로징 멘트의 비밀 등 라디오 부스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친근하고 따뜻하게 풀어낸다.
ON AIR
1부. 어쩌다 보니 매일 쓰고 있습니다
리뷰 하나 쓰기에도 버거워 글과 씨름하는 내게 라디오 작가들은 어떻게 매일 글을 쓸 수 있을까 궁금하곤 했는데 20년째 라디오 작가를 하고 있는 저자 남효민 작가는 매일 글을 쓰기 위해 '우리 디제이가 오늘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을 걸까?'를 생각한다(15쪽) 고 한다. 즉 방송 원고는 작가의 글이기도 하지만 디제이의 말이기도 한다는 이야기다. 디제이를 빌려 라디오 작가들이 말을 걸고 있는 것이다. 물론 디제이들이 방송 원고를 무조건 따라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1장에서는 실제 방송 되었던 라디오 오프닝 글들로 재미와 감동을 주고 있는데 2009년 2월 3일의 <내 얘기, 듣고 있나요?>는 소개팅 이야기로 '그를 만난 지 딱 10분이 되던 순간부터, 그녀는 계속, 시계만 쳐다보고 있었다(24쪽).'로 시작한다. 아마도 소개팅을 주선한 친구의 성의를 봐서 딱 1시간만 버티리라 마음 먹고 시간을 보내는 두 남녀의 그 어색하고 불편한 시선을 담고 있는데, 결국 각자 서둘러 자리에 일어나면서 그녀의 생각으로 마무리 한다.
우리는 아직도 혼자인 이유,
현실적인 조건을 따져서가 아니라
눈이 높아서가 아니라
아직은 외로워도 견딜 만해서.
내 애기, 듣고 있나요?(28쪽)
라디오 오프닝은 이렇게 자신이나 청취자의 경험일 수도 있고 눈으로 보는 활자나 귀로 듣는 어떤 얘기들도 방송의 소재로 쓰인다. 다시 말해서 하루에 마주치는 일상의 모든 것이 방송의 소재가 되는데 저자는 스마트폰의 발달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메모지와 펜이 없어도 스마트폰의 사진 촬영 기능으로 방송의 소재를 발견하면 바로 촬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개팅 오프닝 글을 읽다보니 대다수의 남녀가 경험 했듯이 내게도 지인이나 친구 소개로 소개팅을 했던 기억이 난다. 서로 마음에 안 들어 만나는 시간내내 곤욕인 경우도 있었고, 소개팅녀가 마음에 들어 온 정성(?)을 쏟았지만 소개팅녀는 끝내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 않았거나, 나는 별 느낌이 없었는데 소개팅녀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마음을 전하다가 흐지부지 관계가 끝난 적도 있었다. 큐피트의 화살은 왜 나만 빗겨갔는지... 당시에는 오프닝 글처럼 외로워도 견딜 만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당시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 했던 나는 저녁마다 술 자리를 찾아다니며 술로 외로움을 달랬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술로 외로움을 달래던 노총각을 구제(?)해 준 아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비록 두 손은 가볍게 마음으로만 전하지만...
[그래서 라디오]에서는 우리에게 아픈 기억인 4월 16일 세월호 침몰 당시의 순간도 이야기 한다. 당시 디제이의 스케줄 때문에 방송을 미리 녹음해 놓았는데 세월호 침몰 소식이 보도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녹음에 쓴 오프닝이 "봄바람이 너무 좋아 집에 들어가기 싫은 저녁"이었는데, 절대로 그대로 나가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다시 오프닝을 급하게 써야 하는 상황에서 저자는 한 글자도 쓸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저 앉아서 울기만 했다는 저자. 그날부터 한 동안 대부분의 라디오는 모든 코너를 없애고 음악만 나오는 방송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지만 저자는 그 이후로 매년 4월 16일이 되면, 디제이가 누구였든 그날에 대해 얘기를 쓴다고 한다. "잊지 않아야 하니까. 잊지 않기 위해서(61쪽)." 저자는 작가로 남아있는 날까지 그날의 얘기를 쓸 것이라 말한다.
6년 전 져버린 꿈들에게 부끄럽고 싶지 않았습니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았고
이제 최선을 다해서 그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여기는 순수 음악방송
아닌 밤중에 주진우입니다.
- 2020년 4월 16일의 오프닝 중(64쪽)
내게도 그 날의 슬픈 기억이 생생하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고등학생들이 탄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 그리고 전원 구출했다는 오보, 그리고.... 어느덧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날을 외면하거나 잊어서는 안 되겠다. 우리 어른들의 잘못으로 꿈 많던 아이들이 꽃도 피우지도 못 하고 세상을 떠났기에 다시는 그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아야 하니깐....
이 밖에 1년 여전 친정엄마를 하늘을 떠나 보낸 청취자가 냉장고를 정리다가 친정엄마가 마지막으로 담가준 김치를 발견한 사연(49쪽)으로 코 끝을 찡하게 하거나 방송에 출연했던 신해철과 주중에 미리 녹음을 한 가수 터틀맨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슬퍼할 시간도 없이 방송을 어떻게든 수습해야하는 이야기를 통해 "그래도 방송은 계속되어야 한다(143쪽)"고 이야기 한다.
2부. 그래서 라디오
라디오에서 음악만 들린다면 사람들이 좋아할까? 간혹 방송사가 파업을 하게 되면 디제이 목소리는 들을 수 없고 하루종일 라디오에서 음악만 틀어 줄 때가 있다. 카페 같은 곳에서는 음악만 하루종일 틀어주면 좋아할 지 모르겠지만 라디오 디제이와 함께 일상을 공유하는 청취자들에게는 속상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방송이 중단됐음에도 매일 찾아와 글을 남기고 "사람 목소리가 없으니까 라디오 같지 않아요(149쪽)"라고 말하나보다.
"바로 그거였다. 우리가 라디오를 좋아하는 이유, 라디오는 사람이었다(149쪽)."
만약 라디오에 디제이가 없다면 방송이 끝날 때까지 방송국에 보낸 사연이 디제이의 목소리를 통해 방송에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리지도 않을 것이고 우리네 주변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를 들을 수 없을 것이다. 다행히 우리에겐 디제이가 있고 그 속에 사람 이야기가 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종이신문도, 극장도, 종이책도 점점 사라질 것이라고 했지만 아직 우리 곁에 존재하는 것처럼 라디오도 오랜 시간 우리 곁을 지킬 것이다. "왜냐하면, 라디오엔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까, 라디오 안엔 사람이 있으니까(150쪽)."
요즘 내가 제일 관심가는 분야 중 하나가 클래식 음악인데 고전음악이라는 클래식 음악을 졸지 않고 끝까지 듣게 해 준 일등공신이 바로 라디오다. 몇 해 전 운전 중 당시 즐겨 듣던 라디오 프로가 그날 따라 지루한 이야기가 나와서 정차 중 다른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피아노 소리에 매료 되었다. 피아노 연주가 끝난 후 연주자가 누군지 궁금하던 차에 디제이의 설명으로 알게 된 후 그 방송을 듣기 시작했는데 디제이의 클래식 음악에 대한 친근한 소개와 청취자 사연 소개가 내 귀를 사로잡았다. 아마 클래식 음악만 틀어주는 라디오 방송이었으면 클래식과 친해지지 못 했을 것이다. 클래식을 사랑하는 애호가들의 사연과 친근한 디제이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요즘은 종종 디제이를 볼 수 있는 "보이는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고 라디오 방송을 녹음해서 유튜브나 TV로도 방송을 하곤 한다. 이렇게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라디오도 발전하는 것 같지만 내겐 귀로만 듣는 라디오가 왠지 더 정감이 간다. 라디오에 비밀 연애 사연이 자주 온다고 한다. 이런 사연들이 들어오면 디제이마다 코멘트가 다른데, 소녀시대 써니는 이런 식으로 얘기를 했다고 한다.
"본인들만 비밀이라고 생각하지 남들은 다 알고 있던데"
이렇게 청취자의 사연들도 많지만 디제이들의 비밀 연애도 있다고 한다. 전날 밤 술자리에서 전해 들은 디제이의 연애 얘기를 다음날 사랑에 관한 에세이 코너에 쓰기도 하고 여자 디제이가 첫 방송을 하는 날 청취자가 보낸 문자에 "여자친구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날입니다. 떨지 않고 무사히 잘 해내기를 바라요(176쪽)."라는 여자 디제이와 열애설이 돌고있는 상대방이 문자 메시지가 온 적도 있다고 한다(후배 작가가 상대방과 함께 일한 적이 있어서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개그맨 박명수가 <박명수의 펀펀 라디오>를 진행할 당시에 한창 아내분과 열애 중이었는데 데이트를 하다가 함께 방송국에 와서는 아내분은 스튜디오 밖에서 기다리고 박명수는 2시간 내내 방송에서는 호통을 치면서도 아내분을 사랑의 눈빛으로 바라 보며 방송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청취자의 비밀 연애, 디제이 연애, 그리고 작가들의 비밀 연애들이 가득했던 곳은 모두가 달콤해 하는 라디오라고 한다.
부끄럽지만 고백을 하자면 아내와 사내 커플이었다. 연애 초기 분명히 비밀 연애를 한다고 직장으로부터 먼 곳에서 데이트를 하고 직원들과 함께 모이는 자리에서는 티를 안 내려고 멀리 떨어져 앉는 등 노력을 했는데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고 한다. 아무리 속이려고 해도 연애하는게 티가 났나보다. 예전에 사내 커플로 결혼한 동료가 있었는데 다른 직원들은 둘이 결혼한다고 할 때 언제 둘이 사귀었냐고 놀랬는데 나는 이미 낌새를 차리고 있어서 놀라지 않았다. 이미 사내 커플 경험자였기에~ 그 느낌 아니깐...
이 밖에 라디오 개편으로 20년 만에 라디오에서 잘리며 상처를 받았지만 그래도 라디오가 좋아 떠날 수 없다는 "나는 라디오가 참 좋다"는 이야기(187쪽), 내게도 영원한 아저씨인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배철수 아저씨와 저자의 인연, 그리고 "배철수 아저씨의 말씀은 늘 옳다(198쪽)"는 이야기 등이 흥미를 끈다.
3부. 20년째 라디오 작가
저자는 메인 작가가 된 이후 10년이 넘게 밤 프로그램 위주로 일을 했다. 그러다 예전에 함께 했던 피디로부터 <두 시의 데이트>라는 낮 시간대 프로그램 제안을 받게 되어 고민 끝에 낮 시간대 프로그램으로 도전을 했고 2년간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좋은 스태프들과 함께 잘해냈다고 한다. 그렇게 2년여 방송을 하는 사이 몇 번의 개편을 지나 또다시 개편 시즌에 저녁 8시대 프로그램 제안이 들어와 마음이 많이 흔들렸다. 10년 넘게 해온 밤 프로그램이라 다시 저녁 프로그램으로 가면 평균 이상은 할 수 있다는 생각도 있었는데 그때 함께 했던 피디가 해준 이야기를 오래 기억한다고 한다.
낮 시간대 프로그램에 결국 남기로 한 저자는 피디의 그런 비유나 설득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남고 싶어서 결정했다고 한다. 여기서 더 잘해보고 싶었던 거라고. "중학교 과정에 오랫동안 머물다 고등학교 과정까지 어렵게 올라갔으니 라디오 작가로서의 끝은 그 이상이 되어야 한다. 뭣도 없는, 볼품없는 퇴장이 되지 않기 위한 그럴듯한 핑계를 계속해서 찾고 노력할 것이다(247쪽).
작년 여름 인사 때 2년 가까이 능숙하게 하던 업무를 계속 하며 조금은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생소한 다른 팀으로 가는 도전을 했다. 물론 처음에는 업무가 낯설어 적응하기에 힘들었고 전임자보다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밥 먹듯이 했다. 작년 연말까지 바쁜 나날의 연속이었지만 그래도 팀을 옮기길 잘 한 것 같다. 다른 분야의 업무 능력도 키울 수 있었고 무엇보다 직장 상사에게도 신뢰를 받았다. 솔직히 곧 다가올 인사 때 다른 부서로 인사 이동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가죽 가방을 오랜만에 들고 싶은데...)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리라 마음 먹는다.
3장은 이 외에 의도치 않은 일로 방송을 옮기면서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283쪽).'고 이야기 하고, 방송 전에 오늘 방송을 준비하지만 예정되어 있던 게스트가 갑자기 못 오게 되는 등 돌발사항이 생기지만 변수가 방송을 흔드는 경험은 항상 재밌다며 '우리가 하려고 했던 방향이 정확하게 준비돼 있을 때 어떤 변수가 다가와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297쪽)'고 이야기 한다. 20년간 라디오 작가를 하면서 마지막 방송을 하는 디제이 이야기를 통해 '어느 날엔가 반드시 찾아올 라디오와 나의 이별을 따뜻하고 다정한 이별이기를 바란다(306쪽).'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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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라디오]는 20년째 라디오 작가로 일하고 있는 남효민 작가의 첫 에세이로 실제 방송 되었던 오프닝과 사연 등을 각색한 원고들을 만날 수 있어 라디오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게 특징이다. 요즘은 팟캐스트나 유튜브 방송 등 쌍방향으로 소통 하는 매체들이 많이 있지만 라디오는 라디오의 오랜 역사만큼 그 어떤 매체보다 따뜻함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오랜 시간 함께한 청취자들과 그들의 일상 속 사연들, 디제이들의 말로 전해지는 작가들의 정감어린 글, 그리고 저자가 20년간 라디오 작가를 하면서 느낀 인생 경험까지... 평소 라디오를 즐겨 듣는 독자라면 라디오의 매력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을 것이고, 라디오 작가를 꿈꾸는 지망생들에게는 20년차 라디오 작가가 전해주는 라디오 이야기가 생생하게 다가올 것이다. 무엇보다도 옛날 라디오와의 추억이 하나라도 있는 독자들에게는 추억을 소환하는 행복한 시간이 되리라 생각이 든다. 이문세 이후 디제이들은 많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변함없는 오프닝송과 우리의 깊은 밤을 든든히 지키고 있는 "김이나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오랜만에 들어봐야겠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라디오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 어릴 때 사실 (호기심에) 들어보려고 노력해봤으나, 주파수 잡는 것도 귀찮았고, 또 겨우 나왔던 내용들은 ‘내가 왜 이걸 듣고 있어야 하지’ 라는 의문이 들었다. 굳이 남의 얘기를 왜 듣고 있어야하지, 차라리 나는 내 얘기를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이것도 하나의 성향일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너무 어릴 때였을까. 지금은 재밌게 들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나밖에 모르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만나고 알아가는 사회를 느꼈으니. 같은 일에 대해서 다르게 느끼고 반응하는 일들, 그리고 충분히 ‘나였다면’이라고 상상할 수 있는 경험이 쌓여있다. 각자 모두에게 배울 수 있는 다양한 가치관들, 이런 맛에 하는 걸까.
그래서 라디오. 나와 전혀 상관없는 세계의 이야기. 심지어 20년차 라디오 작가. 매일 다다른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이유. 사소함 속에서 나오는 관찰력. 그리고 사람과 이야기, 일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나는 라디오와 연애한다. 연애. 이렇게 드라마틱하고 즐거운 연애가 또 있을까. 매일같이 -오프라인이 아니어도- 소통하는 즐거움이란. 디제이와 청취자와 하루에 2시간씩 꼬박꼬박 이야기를 나눈다면, 정으로 쌓일 수 있다. 실제 친구도 이렇게 지내기가 힘들걸.
라이브/방송 세계, 프로그램 이전의 사람 모습, 연예인 전의 동료, 각 사람들 대상에 따라 자유자재로 바뀌는 말투, 말을 텍스트로 남기는 작업이자 직업. 그래도 라디오. 덕분에 새로운 세계, 매력적인 직업의 이야기를 이렇게 또 하나 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