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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밤드리

서울밤드리

: 작가 구보 씨의 서울 트레킹

[ 컬러 ]
리뷰 총점10.0 리뷰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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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top100 3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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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2월 17일
판형 컬러?
쪽수, 무게, 크기 376쪽 | 153*224*30mm
ISBN13 9791196843359
ISBN10 119684335X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예로부터 ‘길’은 이중적 의미로 쓰여왔다. 걷는 길과 방법으로서의 길이었다. 길을 걸으며 방법을 찾는다는 의미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道’와 ‘Way’를 모두 이중적 의미로 사용하며 길 속에서 길을 찾으려 한 거 보면 길을 걷는 행위는 사유를 동반하는 것이 된다. 그러한 사실을 필자는 2004년 가을 스페인 북부의 엘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걸으면서 확인한 바 있다. 한 달여간 프랑스 남부의 생 장 피에드 포르에서 피레네산맥을 넘어 스페인 북부를 가로질러 대서양 가까운 산티아고까지 8백여 km를 걷는 동안 줄곧 생각에 빠졌다. 혼자 길을 가야 했으므로 다른 방법이 없었던 까닭이다.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자신에게 묻고 답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몸과 마음이 모두 홀가분해지는 경험을 하며 희로애락의 감정들에서 벗어나 편안한 마음 상태로 바뀌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걷는다는 것의 위대함을 깨치게 되었다. 스님들이 왜 만행을 하며, 수도사들이 왜 순례의 길에 오르는지 이해되었다. 불편함과 부족함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고요함과 고독함에 익숙해지며, 따뜻함과 친절함에 감사하고, 아름다움에서 힘을 얻던 여정이었다.
--- 「서문」 중에서

역설적으로 사람들 간 관계의 강도가 약해지는 게 혁신과 창의를 촉발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구보 씨는 SNS에서 만나는 외국 친구가 “코로나가 밉지만, COVID 이후 공원을 산책하고 벤치에서 책을 읽고 준비해 간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듣고 빵집에서 빵을 사서 먹거나 싸간 도시락으로 늦은 점심을 때우고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내는 일상을 갖게 돼 행복하다.”라고 피력하는 걸 보면서 시선이 차분하고 마음이 고요하면 풍경도 그에 걸맞게 평화로운 모습으로 찾아온다는 사실과 함께 그 평화를 코로나가 가져다주었음을 발견한다. 구보 씨는 어쩌면 코로나 위기 상황이 부조리 속에서 재미를 찾으며 살아가는 법과 그 필요성을 비로소 이해하게 만드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겠다는 전망도 해본다. 해방 이후 오랜 세월 편을 갈라가며 격렬하게 대치했던 진영의 싸움도 개인의 무관심 속에 덧없이 종결되면서, 역설적으로 관용과 연대의 문화가 정착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 p.23

충신교회 뒤에는 ‘크레이지 호스’와 ‘전원’ 등의 카페도 있었다. 당시로서는 세련된 분위기였던 이 카페들은 장안의 애주가들 사이에 명성이 자자했다. ‘전원’의 여주인은 가수 서유석 씨와 인연을 맺어 더욱 유명해졌다. 구보 씨는 ‘크레이지 호스’를 1983년 소설가 김주영 선생이 이끌어 처음 가보았다. 김 선생은 둘이 마시는데도 안주를 이것저것 많이 시켰다. 미안한 마음에 만류하자 선생이 말했다. “많이 먹읍시다. 나는 푸짐하게 차려놓고 먹는 게 좋아요.” 그는 경상북도 청송에서 어려운 집안 형편 탓에 배를 곯았던 서러운 기억을 안고 있었다. 남의 집 밭 무를 뽑아 먹다 야단맞고, 학습 준비물을 마련하지 못해 혼나고, 진달래꽃으로 허기를 달랬다. 크레파스 살 돈이 없어서 빌린 흰색 크레파스로 하늘을 처리했다가 벌을 받기도 했다. 스무 살 무렵 서울을 보고 싶다는 일념으로 안동역에서 중앙선을 무임 승차했다가 몇 차례나 역무원에게 적발돼 강제 하차당했던 눈물겨운 사연도 갖고 있었다. 경상북도 어느 간이역의 캄캄한 어둠 속에 내팽개쳐지던 때의 절망감과 비애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 p.27

옛 양정고를 나서면서 구보 씨는 길 건너 만리재 골목에 있는 이발소 한 군데를 떠올린다. 서울에서 가장 유서 깊은 이발소이다. 이 ‘성우이용원’은 나그네의 걸음을 절로 멈추게 한다. 이 건물의 외관에 시선을 빼앗기면 들어가 보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되는 까닭이다. 곧 무너질 것만 같은 이 낡은 건물은 유려한 아웃 라인으로 생명감을 유지한다. 구보 씨는 그 선이 예전에 보았던 만화가 박수동의 선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구보 씨의 눈에 사물은 선이 예뻐야 돋보이는 법이다. 나무나 돌, 집, 자동차, 그릇 등도 그러하지만, 사람의 자태도 그러하다. 승무를 추는 비구니의 춤사위나 골퍼 타이거 우즈의 스윙, 노 목수의 대패질 등이 이루는 동작 선은 미감으로 충만하다고 느낀다. 구보 씨는 잠시 다리를 쉴 겸 머리를 다듬기로 한다. 이발사의 손길을 느껴보기 위함이다. 내부는 의자 둘, 대기석 그리고 세면대로 4평 공간을 구성한다. 아니나 다를까 ‘바리칸’ 대신 가위로 머리를 깎고, 물뿌리개로 머리를 감기고, 비누 거품으로 면도를 한다. 선풍기를 가운 아래에 넣어 에어컨을 대신한다. 모두가 아련한 옛 이발소 풍경이다. 밀레의 〈만종〉 그림만 붙어 있으면 영락없는 50~60년대 이발소 풍경이 완성될 터이다. 정적 속에 싸각거리는 가위 소리를 듣고 있자니 사르르 졸음이 몰려온다. 1952년생인 이발사 이남열 씨는 1927년에 외조부가 문을 연 이곳을 선친에 이어 3대째 이어오고 있다. 허물고 새 건물을 짓자는 유혹을 여러 차례 거절했다. 의자와 가위, 면도기 그리고 거품 솔도 모두 윗대 어른들이 쓰던 그대로이다. 그는 '문화유적지'를 지키는 완고한 '문화지킴이'이다. 이 이용원 덕에 이 길의 역사성은 그 깊이를 더한다.
--- p.57~58

구보 씨는 남대문에서 시청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시청 앞 ‘먹자 타운’에는 구보 씨가 스무 살 무렵에 자주 찾던 고추장돼지불고기집이 아직 남아 있다. ‘남매집’이다. 손바닥 크기의 동그란 돼지고기 덩어리에 고추장을 발라 연탄불 위에서 구워 먹는 그 음식은 떠올리기만 해도 입 안에 침이 고인다. 저녁 장사를 하는 집이라 낮에는 닫혀 있다. 구보 씨에게 그 음식점은 일주일에 4일 가르치고 2만 원을 받던 1973년 무렵, 아르바이트 월급을 받던 날에만 올 수 있었던 곳이었다. 하숙비 1만 2천 원을 내고 나면 남는 8천 원으로 한 달 용돈을 해야 하던 시절이어서 여유가 없었다. 그런 절절함이 작용한 연유로 이 집 고추장돼지불고기는 맛을 더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맛을 결정하는 절반의 요소는 그 음식을 둘러싼 환경에 있다고 구보 씨는 생각한다. 잠시 회상에 빠져 있던 구보 씨는 플라자 호텔 방향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기다가 어떤 술집 앞에 놓인 글귀를 발견하고 미소를 짓는다. 문장이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술이 사람을 나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원래 나쁜 사람을 술이 드러나게 해 준다.”

시내를 걷다 보면 가끔 이런 촌철살인 글들을 만나곤 한다.
--- p.79

더러 매운 걸 한번 먹어줘야 할 때가 있다. 몸이 원하는 것이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무교동 낙지’가 당기고 입에는 절로 침이 고인다. 일단 그 생각에 사로잡히면 찾지 않고는 배겨낼 재간이 없다. ‘무교동 낙지’에 대한 구보 씨의 향수는 커서 요즘도 옛 ‘무교동 낙지’ 맛을 계승하고 있다는 몇몇 집들을 찾곤 하는데 무언가 아쉬움을 느끼곤 한다. 중국산 냉동 낙지를 쓰는 데다 마늘 값이 비싸진 까닭에 매운맛을 내는 방법이 예전 같지 않은 탓일 것으로 여긴다. 설탕을 넣는 까닭도 있다. ‘달달한’ 것을 선호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입맛을 고려한 까닭이겠지만, 낙지볶음은 단맛이 나면 무언가 ‘옳지 않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무교동 ‘원조 낙지집’과 청계천 1가 천변에 있다 종각으로 옮긴 ‘우정낙지’가 마늘로 매운맛을 내고 있어서 지금은 그 두 집을 주로 찾는다. 구보 씨는 지금도 무언가가 허전하다고 느끼는 날엔 통통한 낙지의 식감을 느끼면서 마늘로 매운맛을 내던 옛 ‘무교동 낙지볶음’을 간절히 만나고 싶어진다.
--- p.116

남산 순환로는 서울을 찾는 배낭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코스이기도 하다. 일본과 중국의 젊은이들이 자주 목격된다. 구보 씨는 2년 전쯤 이 길에서 젊은 러시아 여성 두 명과 조우한 적이 있었다. 20대 초중반의 대학생과 직장인이었는데 남산 전망대 가는 길을 물어오면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구보 씨가 “어떻게 배낭 여행지로 한국을 택했느냐?”라고 물었더니 대답이 의외였다. “BTS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 나라를 보고 싶었다.”라는 대답이었다. 의외였다. 단순히 좋아하는 가수의 나라라는 이유로 찾아온 것이었다. 구보 씨는 원래 남산 케이블카를 거쳐 명동 쪽으로 빠질 생각이었으나 그들을 안내해 타워까지 같이 걷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밀레니얼세대의 젊은이들은 확실히 그 전 세대들과 달라!”라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BTS가 빌보드 1위에 오르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을 때긴 했으나 러시아에서까지 팬들이 찾아올 정도라고는 짐작도 못 했었다. 모스크바도 아니고 첼랴빈스크라는 카자흐스탄과의 변경 도시에서도 BTS가 인기몰이를 한다니, 구보 씨는 그저 놀랄 따름이었다. 타워에서 생맥주를 한 잔씩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들은 전망대로 올라가고 구보 씨는 다시 을지로로 방향을 잡고 걸으며 K-pop의 위상을 곰곰이 생각했었다. BTS 열기는 2020년 6월 현재도 수그러들 줄을 모르고 있다.
--- p.166

종로 2가 낙원상가와 종로 3가 사이에 익선동이 위치한다. 이곳은 자그마한 한옥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서울지명사전을 보면, 1914년 일제시대 때 동명을 정하면서 익동과 정선방의 이름을 합성하면서 익선동이 되었다.
이 유서 깊은 공간은 조선 최초의 뉴타운이었다. 1920년대에 부동산 개발업자였던 정세권의 건양사가 기획했다. 모두가 10평 남짓한 작은 평수의 조선집이었다. ‘한옥’은 1990년대부터 쓴 표현이고 이전엔 ‘기와집’, 그리고 그 전엔 ‘조선집’이라 불렀다. 경남 함양 출신의 정세권은 경성 땅을 일본인에게 내주지 않기 위해 경성으로 올라와 이런 주택사업을 시작했다. 이 익선동은 당시 가성비가 좋아 조선인들의 환영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정세권은 익선동의 성공을 발판으로 삼아 당시 친일파들이 소유하고 있던 가회동 일대 땅을 사들여 필지를 쪼갠 다음 작은 조선집들을 다량 지었다. 1930년대에 형성된 이 뉴타운이 오늘날 ‘북촌’이라 부르는 서울의 북쪽 마을이다. 정세권의 노력으로 청계천 이북 서울은 조선인의 집단 거주지로 자리 잡았다. 정세권은 잘 알려지지 못했지만, 자기 방식으로 애국 활동을 펼쳤던 민족의 영웅이었다.
--- p.196~197

구보 씨는 자하로 길을 따라 계속 내려와 청와대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입구에 의연하게 서 있는 오래된 회화나무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수령이 5백 년이니 이 지역이 경복궁에 속했던 시절부터 그 자리를 지켜온 노거수였다. 그 나무가 지켜본 광경은 어떤 것이었을까, 생각하며 구보 씨는 청와대를 관통해 삼청동 쪽으로 빠지는 코스를 택했다. 대통령 관저 앞은 중국 관광객들로 늘 붐비던 곳이었으나 코로나로 인해 한산해졌다. 언젠가 이곳에서 만난 중년의 중국인 남성에게 “한국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이 어디냐?” 물었더니 “없다.”라고 잘라 말하고선 “그나마 청와대가 볼만하다.”라고 말했다. 권력 지향적인 중국인다운 소감이었다. 그들은 왕궁인 경복궁을 보고 심드렁해한다. 자세히 살펴보면 자금성보다 훨씬 아기자기하고 미감이 있는 건축물 공간임을 발견할 수 있겠지만, 그들은 그저 자금성의 축소판 정도로 여길 뿐이다. 수와 크기의 시각이 먼저 작용하는 탓이다. 수와 크기는 고래로 중국인들의 사고를 결정지어온 절대적인 인자이다. 넓은 땅과 많은 인구라는 요소로 인해 중국인은 인내심과 무관심 등으로 대표되는 특성을 DNA 속에 형성해왔다.
중국인들은 한국에 오면 “곳곳에 산이 가로막고 있어 갑갑하다.”라고 말한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까닭이다. 지평선을 바라보며 살아온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게 느껴질 만하다 싶다. 그들은 한국 대통령이 거주하는 청와대 역시 중국 최고 권력자의 사무실이 있는 땨오위타이보다 규모가 작다고 비교하겠지만, 개방하지 않는 땨오위타이와 달리 청와대는 일반에 공개하므로 중국인들의 발길을 끄는 것이다.
--- p.267

구보 씨가 종로4가로 들어서는데 거리의 가게 어디선가 노래가 들려온다. “보랏빛 엽서에 실려 온 향기는~” 설운도의 원곡을 임영웅이라는 신인 가수가 리메이크한 〈보랏빛 엽서〉다. 같이 흥얼거려본다. 2019년 봄부터 한국은 바야흐로 ‘트로트 시대’를 맞고 있다.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촉발된 트렌드이다. (중략) 구보 씨는 최근의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들을 통해 소리로 기량을 닦은 한국음악 전공자들이 부르는 대중가요가 미래 한국의 경쟁력이 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중략) 한국음악인 소리와 미국 대중가요인 트로트를 접목한 장르를 ‘소리짝’으로 이름 지어보기도 했다.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한국 고유의 대중가요 장르를 탄생시킨다면, 이 장르에 세계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대단히 궁금해졌다. (중략) 유지나, 하윤주, 송가인, 조엘라, 이미리, 권미희, 고영렬, 강태관, 김준수, 최예진, 김다현 등 소리꾼들이 각종 무대에서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한국음악 밴드들도 점차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연예매체들의 보도로는, 2019년에 결성된 ‘이날치’의 공연 현장에는 매번 공연 현장마다 팬들이 떼창을 부르며 호응한다. 판소리 수궁가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범 내려온다〉는 조회 수가 2020년 7월 현재 2백 만을 상회한다. 춤추기 좋은 리듬과 강렬한 비트, 유머러스한 노랫말이 매력 요소를 이룬다는 평들이다. (중략) 구보 씨가 믿어 의심치 않는 ‘대중의 진화’는 2019년 연말부터 일고 있는 ‘양준일 선풍’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90년대 초에는 부정적이던 대중의 마음이 지금은 무한 긍정으로 바뀌며 그의 지난 노래들이 다시 차트 순위에 오르는 ‘역주행’ 현상이 일었던 까닭이다. (중략) 구보 씨는 2020년을 강타하고 있는 트로트 열풍이 임영웅의 노래 두 곡에서 촉발됐다고 본다. 《미스터 트롯》 경연에 나와 부른 첫 곡 노사연의 〈바램〉과 두 번째 부른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가 그 주인공이다. (중략) 이 두 곡은 노사연과 김광석이라는 대단한 가수들이 불렀던 곡이었지만, 임영웅이 표현하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탤런트 김영옥 씨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임영웅의 이 두 곡에서 “큰 위로를 받았다.”라고 고백한다. 임영웅을 비롯해 〈막걸리 한잔〉의 영탁, 〈진또배기〉의 이찬원 그리고 장민호, 김희재 등의 스타 탄생 과정을 지켜보면서 구보 씨는 “저런 후진들에게 등용의 기회를 많이 주어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한국 가요는 ‘미스터 트롯’을 기점으로 전과 후가 나눠질 것이다. 그런 스타들이 음지에서 눈물 밥을 먹어야 했고, 그들의 스타성이 청중에게 전달되지 못한 것은 대중에게도 큰 손실이었다. 트로트는 ‘미스터 트롯’ 덕에 목하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비단 가요계뿐만 아니라 몇몇 노장들이 독과점을 보이는 MC와 예능 등 다른 장르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야 옳다. 신인 발굴 노력 여하에 따라 그 장르의 생명력이 좌우된다. 정치 분야의 세대교체 갈증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 p.300~309

낙산이 공원으로 복원되면서 이 일대는 변모를 거듭했다. 그림 계단과 벽화마을이 명소가 되어 일본과 중국에서도 찾아오고, 그 주변에 공방이며, 카페, 음식점 등이 들어서 젊은이들을 부르고 있다. 청춘들은 이곳에서 서울의 야경을 조망하며 탄성을 지른다. 이곳에는 유서 깊은 야학도 남아 있다. 1964년 경희대학생이던 마대복 씨가 구두닦이를 하며 시작한 야학은 3천 6백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아픔이 아픔을, 설움이 설움을 알아보고 챙긴 미담이다. 60, 70년대 낙산 아래 창신동 일대는 봉제공장들이 밀집돼 있었다. 동대문 시장에 신속히 납품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던 까닭이었다. 그때보다 숫자는 줄었지만, 지금도 봉제공장들이 많이 보인다. 1970년 평화시장 재단사로 일하다 열악한 노동 현실을 고발하며 22살의 나이에 분신자살했던 전태일을 추모하는 기념관도 낙산 아래에 있다.
낙산 정상에서 구보 씨는 파노라믹 뷰를 감상한다. 왼쪽부터 남산, 안산, 북악산,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그리고 멀리 아차산과 불암산까지 두루 조망되었다. 한양도성이 길게 꼬리를 물고 혜화문과 성북동을 거쳐 북한산성과 연결돼 있다. 태조 때 삼봉 정도전이 책임자로 쌓기 시작해 성벽과 성문을 보수해가며 고종 때까지 관리했다. 시대별로 다른 모양의 성 돌이 그 노력들을 반영한다. 정사각형, 장방형, 큰 돌, 작은 돌 등이 혼재한다. 군데군데에 조성된 암문을 바라보다 구보 씨는 다산 정약용의 일화를 떠올린다. 다산은 중앙 관료이던 서른 살 무렵 이 암문으로 한양을 몰래 빠져나가서 살곶이 다리에서 배편으로 양수리 고향에 가서는 천렵을 하고 놀다 이튿날 새벽에 다시 한양으로 입성했다. 공직과 유배를 거듭했던 다산이 자유인이 되고 싶어 했던 일면을 내비친 에피소드이다.
--- p.324

구보 씨는 성북천을 따라 다시 걸음을 옮기다가 세 갈래 길에서 잠시 멈춰 섰다. 그 언저리쯤에 있었던 찻집 하나를 떠올린 것이다. 1974년 5월 말 여기 하천 변에서 ‘무우수’라는 이름의 허름한 찻집을 하나 발견하고선 이름이 주는 호기심에 이끌려 들어갔다. 가게 이름은 집 가운데에 큰 느티나무 한 그루가 지붕을 뚫고 서 있었던 데서 연유했다. 가게 주인은 그 나무에 많은 위로를 받는 듯했다. 고등학교 교사를 하다 교수로 발탁됐던 부군이 뒤늦게 학위 하러 캐나다로 갔는데 거기서 젊은 여자와 눈이 맞는 바람에 졸지에 혼자 몸이 된 아주머니였다. 소반에 내오는 들깨 차며 커피며 맥주 따위를 주문할 수 있어서 방앗간 드나들 듯했다. 어느 날 보니 이름이 구명수로 바뀌어 있었다. 가게 앞 비탈길에 세워놓은 트럭이 미끄러지면서 가게를 덮쳤는데 그 느티나무가 온몸으로 막아 참변을 당했을 수도 있었던 주인의 목숨을 살려낸 연유였다. 그 사연으로 해서 이 가게는 한동안 구보 씨의 방앗간이 되었다.
--- p.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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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의 역사와 공간을 엮어 짠 이야기 카펫

21세기 떠오르는 문학비평은 문화지형학이다. 철학적 심리적 비평이 아니라 작품 속의 공간적 배경이 뿜어내는 외면 풍경과 화자의 내면 풍경이 상호 침투하는 과정을 해석하는 문화지형적 비평이다. 이 비평은 당연히 거대담론을 거부하며 결코 융합될 수 없는 일상의 잔편들을 긁어모아서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보여줌을 비평의 목표로 삼는다. 안상윤 작가의 《서울 밤드리: 작가 구보 씨의 서울 트레킹》은 문화지형적 비평에 안성맞춤인 작품이다. 구보 씨에게 서울 거리 하나하나는 시공간적으로 정교하게 교직된 페르시아 카펫이다. 외견상 무늬가 또렷하게 보이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자의 내면 풍경, 의식의 흐름과 뒤섞여 시냇물에 비친 하늘 구름 그림자처럼 어른거려 제대로 형상을 포착하기가 쉽지 않다.
호머의 《오디세이》도 지중해 연안 지역의 문화지형학을 다룬다. 여기서 화자 오디세이의 내면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외눈박이 키클롭스나 마녀 사이렌 그리고 아마존의 문화행태나 일상생활이 이야기의 중심을 이룬다. 20세기 영국의 제임스 조이스는 오디세이의 모험 여행기를 유대계 아일랜드인 레오폴드 블룸의 내면 탐사 여행기 《율리시스》로 바꾸어 버렸다. 1930년대 중엽 박태원은 조이스를 본떠서 더블린을 서울 공간으로 옮겨서 내면 여행을 감행한다. 1960년대 최인훈은 더욱더 깊은 내면 모험 여행을 시도한다. 이제 안상윤은 2020년도에 풍광도 바뀌고 풍속도 바뀌고 그 속의 등장인물들조차 알아보기 힘들게 바뀐 서울의 풍경화를 그리는 시도를 한다. 그의 그림은 내면 풍경보다 외면 풍경 특히 격세지감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골목의 역사와 공간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여기 멋진 이야기 카펫을 완성한다. 그 과정에서 작가가 보여주는 역사 문학 음악 미술 등 인문 예술 전반에 걸친 압도하는 박학강기와 그것을 풀어놓는 현하지변은 필자와 같은 눌변의 댐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다.
- 황훈성 (시인, 동국대 영문학과 교수)
낭만적 인본주의자의 도시지형학

동작대교 남단에서 출발해 성북동에서 끝나는 여정.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강남에서 출발해 우리에게 익숙한 종로구와 중구의 장소들을 거쳐 북한산 자락에서 끝이 나는 도시 여행을 그려낸 책을 통해 상윤 형은 우리에게 무수한 추억을 소환한다. 그러나 그냥 길을 걷는 것이 아니다. 길에서는 문화에 대한 형의 해박한 지식이 거리와 지역에 대한 역사적, 개인적 기억과 교차한다. 서양의 문학작품, 영화, 가요와 팝송이 수시로 등장하며, 로맨티스트의 감성에 들어맞는 많은 술집도 예외일 수 없다. 명증한 시선이 바라보는 세상만사가 취한 눈으로 보는 세상과 즐겁게, 때로는 고통스럽게 만나고 있는 느낌이다. 무수한 삶이 명멸했던 도시를 채우고 있는 기억을 불러내면서 상윤 형은 한 개인을 점철한, 그리고 서울이라는 도시 공간을 거쳐 간 다양한 코드들을 정직하고도 성실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인본주의자의 성찰이다. 상윤 형은 개인의 기억을 넘어서서 스러져가는 모든 것, 시간의 흐름에 떠라 변색해가는 무수한 대상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책을 한결같이 관통하고 있는 입장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고,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광풍인 편 가르기에 대한 거부다. 일견 ‘회색인’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형은 근본이 휴머니스트다. 그리고 저잣거리의 악다구니를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미학자다. 스쳐 지나가는 많은 거리가 상윤 형에게 각인시킨 이미지를 들여다보며 우리는 우리의 소소한 일상이 대한민국의 거대한 단위와 얼마나 살을 맞대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다. 그건 공포스러운 느낌이자 행복한 경험이기도 하다.
길과 거리는 거대한 역사를 구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단위다. 예를 들어 프랑스 도시 아미엥은 쥘 베른의 기억과 체코 도시 프라하는 프란츠 카프카가 그려낸 인간의 광기와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자신의 고향 알제리의 산들 풍경과 닮았다는 이유로 카뮈가 말년에 찾아간 남프랑스의 루르마랭을, 자크 카르티에가 대서양 바다 건너편 미지의 세계를 꿈꾸었던 생말로를 우리는 기꺼이 찾아간다. 그 속에서 작가의 절망을, 하나의 도시가 뿜어내는 열기와 분노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이다. 아마 그런 모습은 길이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고, 살아있음에 대한 경외감을 제공하기 때문이며, 우리가 택해야 할 길에 대한 고민을 제공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기에 길을 가며 각성하는 풍경은 그 어떤 모습보다 더 경건해 보인다.
상윤 형은 박태원, 최인훈의 계보를 이어 서울의 지형학을 새로 보완하려 든다. 그 누가 형의 의도에 감히 반기를 들 수 있으랴. 우리 모두에게 서울역은, 삼청공원은, 정동길은 모두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소녀 혹은 소년에 대한 기억을 채운 장소들이 아닌가. 다시 만나고 싶어도 영원히 만날 수 없고, 만에 하나 다시 만난다 할지라도 처음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픈… 오늘날 그 어떤 집도 대학생 학생증을 내밀 때 외상 술을 주지 않는다. 그 누구도 사랑하고픈 대상의 집 전화번호를 따낼 때의 떨림을 거의 공유하고 있지 않다. 그 시절의 도시라는 공간은 참 넓고도 막막했으며, 그런 만큼 시공간의 크기도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도시의 비정함은 점점 더 강도를 더해가면서 낭만의 공간을 잠식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의미에서 길과 거리에 대한 기억은 더욱 소중해지고 있지 않은지? 서울에 대한 상윤 형의 그 풍요로운 기억 속에서 나는 사람의 땀 냄새를 찾아낸다. 오늘도 서울 어느 구석의 술집에서 〈April come she will〉을 부르면서 옛 추억을 소환하고 계실 형 모습이 그립다.
p.s. : 갑자기 등장하는 남프랑스와 반 고흐에 대한 기억. 생뚱맞고 신선했다. 서울을 그토록 사랑하는 형도 때로는 숨이 막혔던 모양이다.
- 이상빈 (한국동서비교문학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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