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출간일 | 2020년 12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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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32쪽 | 318g | 125*200*13mm |
ISBN13 | 9791191248029 |
ISBN10 | 119124802X |
출간일 | 2020년 12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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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32쪽 | 318g | 125*200*13mm |
ISBN13 | 9791191248029 |
ISBN10 | 119124802X |
“구십구 방울의 슬픔이 아니라 한 방울의 기쁨으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시절과 마음을 찾아서 소설가 조해진과 시인 김현의 다정한 응답 타자에 대한 사려 깊은 시선으로 소설을 쓰는 조해진과 담대하고 힘 있는 시를 쓰는 김현이 함께 나눈 편지를 묶어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미디어창비)를 출간했다. 조해진과 김현은 10년 전 연대와 결집을 위해 소심한 각오를 나누며 처음 만났다. 차츰 일상의 안위를 묻고, 서로가 쓴 글을 응원하며 “머뭇거리는 우정”을 나눴다. 극장 속 1인용 좌석이 가장 평화로웠던 10대 시절을 지난 김현과 어느 한 시절을 영화를 통해 무사히 건널 수 있었던 조해진, 둘 사이에는 ‘영화’라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이 두 사람이 영화를 보고 서로를 떠올리며 쓴 편지는 자신도 모르게 잃어버린 사랑, 행복, 꿈, 믿음, 우정, 시절 등을 찾기 위한 항해의 기록이었다.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 속 등장 영화들은 소설가와 시인의 마음을 투과하고 나면 조금 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보며 조금씩 차오르던 슬픔이 경이로움으로 바뀌던 순간, 「인 디 아일」에 등장하는 인물 저마다의 비밀들이 자신과 다르지 않은 외로움의 결과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순간. 패딩턴역에 홀로 남겨진 어린 곰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다정한 얼굴을 내미는 「패딩턴」 속 배우의 얼굴을 보며 절로 열리는 마음을 느끼는 순간, 4월 16일마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누군가의 이름을 기꺼이 불러주겠노라 새로이 다짐하게 되는 「생일」을 감상한 순간 등 둘이 나눈 편지 속에 겹겹이 쌓이는 의미들은 한 편의 영화를 좀 더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이끈다. |
프롤로그 영화는 편지처럼 편지는 영화처럼 1부 상영 시간표를 확인해주세요 그렇게, 우리는 가까스로 인간 겨울 예감 외로움도 번역이 되나요? 나의 얼굴과 너의 얼굴이 마주 보는 일 저토록 작고 연약한 생명 앞에서 바라보는 마음 환대하는 마음 같은 날은 다시 오지 않아요 Happy birthday dear our······ 나는 살아 있습니다 마음이 동사와 일치하지 않을 때면 마음을 옮겨 나아갑니다 일하면 일할수록 능금 능금 능금 능금 능금 능금 이름이라는 첫인사 이야기 속에서 존재하는 것 같은 표정으로 같은 생각을 손가락을 움직여서, 씁니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은 외계인 우리 삶이 영화가 된다면 2부 모모 님이라고 부를게요 우리 각자의 장국영 남겨진 것들을 위한 빛 여성이 여성을 구한다는 것 시라는 선생님 연애편지를 써본 적이 있나요? 사랑은 잠 못 이루는 밤 끝을 알고도 선택하는 마음이라면 답장을 기다립니다 추억 채집자의 임무 여름날의 추억 에필로그 허공의 영화관에서 만나요 동시 상영 중인 영화 목록 |
한 달에 두세 번은 갔던 영화관에, 팬데믹 이후로는 한 달에 한 번도 못 가고 있다. 보고 싶은 영화가 생겨도 두 시간 넘게 마스크 쓰고 답답한 상태로 호흡할 생각을 하면 단념하게 된다.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가는 단순하고 흔한 취미가, 어쩌다 이렇게 어렵고 귀한 여가 활동이 된 것일까. 소설가 조해진과 시인 김현이 함께 쓴 책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를 읽는 내내 하루빨리 팬데믹이 끝나서 예전처럼 자유롭게 영화관을 드나들 수 있게 되기를 소망했다.
이 책의 1부는 조해진과 김현이 서로에게 쓴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인생 영화로 차이밍량의 <애정만세>와 시드니 루멧의 <허공에의 질주>를 든 조해진은 추상미의 <폴란드로 간 아이들>,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 김보라의 <벌새> 등을 보고 느낀 감상을 나눈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보면서 저자는 탈북자가 나오는 자신의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를 떠올린다. 영화와 소설은 모두 허구지만, 실재하는 인간이 나오고 현실의 문제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인간에 대한 책임과 윤리 의식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식으로 다른 장르의 창작물을 보면서 자신의 일을 생각한 점이 작가로서 프로답고 인간으로서도 미덥다고 느꼈다.
누구와도 함께 보고 싶은 영화로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을 고른 김현은, 전업 작가인 조해진과 다르게 직장에 다니며 출퇴근하는 입장이라서 그런지, 새로운 영화를 언급하기보다는 조해진이 본 영화에 대해 코멘트하거나 과거에 본 영화를 주로 소개한다. 그중에는 <일일시호일> 같은 계절감이 풍부한 영화들도 있고, <굿바이 마이 프렌드>나 <천장지구>처럼 한 시절을 풍미한 옛날 영화들도 있다.
이 책의 2부에는 서로가 아닌 모모라는 이름의 허구의 독자를 상대로 쓴 편지들이 실려 있다. 대상은 바뀌어도 '영화를 보고 편지를 쓴다'는 설정은 그대로라서 읽기에 무리가 없다.
인생 모른다. 나인투식스 생활을 할 줄이야. 그러면서 바뀐 건 책을 읽는 횟수. 예전에는 이틀에 한 권꼴로 읽었었는데 요즘엔 일주일에 한 권 정도. 한 권 읽기도 힘든 주가 있기도 하다. 그래도 주말에는 책을 완독하는 걸로 정했다. 유일하게 집에서 안 나갈 수 있는 시간이니까. 할 수만 있다면 집 밖으로 위험한 이불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다. 지금의 나는 박명수 말대로 꿈은 없고요, 그냥 놀고 싶어요다.
11월의 첫째 주는 어땠더라. 금목서 향기가 나는 천변을 부지런히 걸었다. 출퇴근을 걸어서 한다. 버스가 오지 않으면 어쩌나. 버스를 못 타면 어쩌나. 쓸데없는 걱정을 하기 싫어서. 걷는다. 집으로 들어갈 때 워치에 만보를 걸어 축하한다고 찍히는 문구를 보는 게 즐거움이다. 만보라니. 만보를 걸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니. 기준점을 어디에 두냐에 따르지만 이걸로만 보자면 열심히 살고 있다는 실감을 느낄 수 있다. 하루에 만 보 걷기.
소설가 조해진과 시인 김현이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주고받은 편지를 묶은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는 유독 오래 읽었다. 책에서 소개한 영화를 한 편씩 보느라. 전부는 보지 못했고 글을 읽다가 마음이 끌리는 영화가 있으면 봤다. 총 세 편의 영화를 보았다. 내 마음이 마음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 마음이 있기나 한 걸까 의문이 들 때. 마음이 있지만 그건 돌이 아닐까 멀리 차버리면 날아갈 정도로 하찮게 느껴질 때.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를 읽으면.
숨겨져 있던 내 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건 사라지지도 날아가지도 않은 채 내가 다시 발견해 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책의 표현대로 영화를 본다는 건 영화 자체만을 보는 게 아니다. 영화를 보던 날의 기억과 함께 한다. 영화를 보러 가야지 계획하고 가는 것도. 영화관 앞을 지나가다 시간이 맞아서 우연히 들어가는 것도. 다 괜찮다. 영화를 소개해 주는 프로그램을 보다가 혹은 책을 읽다가. 이 영화는 지금의 나에게 필요해 하면서 보는 것도.
전문적인 영화 리뷰 책은 아니다.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는. 그래서 더 좋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가볍게 일상을 이야기하면서 일상에 스며든 어떤 영화 한 편을 서로에게 소개한다. 오늘 영화 한 편을 봤는데 혹시 보셨나요? 과거에 봤던 영화가 떠오르는 하루네요. 하는 식으로 책은 흘러간다. 9시에서 6시까지의 사회적 자아가 왕성하게 활동한 나머지 6시 이후에도 좀처럼 나로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을 두고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6시 이후의 시간들.
빨리 돌아올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를 읽으면서. 영화 한 편을 보는 것. 예전에 봤던 영화도 괜찮고 책에서 두 작가가 보면서 감동했던 영화를 한 편씩 보는 것도 좋다. 그래서일까. 책의 뒤에는 '동시 상영 중인 영화 목록'이 친절하게 딸려 있다. 의욕 없음을 넘어서 무기력의 시간을 살고 있는 '사무 생활자', '출퇴근러'인을 위한 약 처방전처럼. 의외로 나 영화 많이 봤네.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를 읽으며 안도했다.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였구나.
문화생활을 누리는 게 아니라 간절하게 문화생활을 하고 싶어 했던 시간에 한 일이라고는 책 읽기와 영화 보기였다. 어떤 때는 개봉 중인 영화를 전부 봤던 한 주가 있었다. 구체적인 할 일이 없어서 봤던 영화를 또 보러 가기도 했다. 책은 특이하게도 보지 않은 영화라도 위화감이 들지 않도록 소개해 준다. 서로가 가진 일상의 안전함과 편안함을 바라는 두 작가의 다정한 마음 때문이다. 자주 만나지 않아도 소설가와 시인의 우정은 이어진다. 친한 관계란 무엇일까 고민하는 요즘에 조해진과 김현의 관계를 보고 있자면 글 읽기와 쓰기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 반갑고 고맙다.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를 읽다가 본 영화 세 편의 이야기.
《패딩턴》. 사랑스럽고 따뜻한 이 영화를 왜 나는 모르고 있었을까. 지금에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페루에서 영국으로 밀항한 곰이라니. 마멀레이드 잼을 좋아하고 말하는 곰이라니. 인간 가족과 허물없이 살게 되어 다행한 곰의 이야기. 공손하고 예의 바른 패딩턴. 내가 제일로 여기는 가치는 존댓말과 예의 바름이다. 인간도 하지 못하는 일을 말하는 곰 패딩턴은 한다. 먼저 인사를 하고 다른 이의 말을 경청한다.
《생일》. 영화가 나온다고 했을 때. 영화가 개봉했을 때. 차마 볼 수 없으리라고 여겼다. 보지 못하겠다고. 영화를 보는 내내 전도연은 최고다,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어려운 영화 설정이고 연기였을 텐데. 전도연은 한다. 그저 하는 게 아닌 감당해낸다. 영화 밖의 현실을. 엄마, 나야. 영화의 마지막 장면들은 배우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들은 모여서 애도를 한다.
《걷기왕》. 멀미 때문은 아니지만 다행히 일하는 곳이 가까워 왕복 한 시간을 걸어서 출퇴근을 한다. 영화의 주인공 만복이는 4살 때부터 시작된 선천성 멀미 증후군 때문에 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걸어서 학교에 간다. 지각은 다반사. 당이 떨어져 담임과 면담할 때 사탕을 폭풍 흡입한다. 상상력이 과도한 담임이 가정 면담을 오고 집으로 걸어가는 만복이를 보고 육상부에 들어갈 것을 제안한다. 뛰지 않아도 좋아. 멈추고 싶으면 멈춰. 영화는 할 수 없음에 대해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해준다.
단 한 장의 책도 읽을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옆으로 누워 영화 한 편을 때리는 것도 좋지. 당분간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의 영화 목록에 줄을 그어가면서 6시 이후의 나를 달래줘야지. 오랜만에 시를 생각했다. 김현은 추신의 자리에 오늘 쓴 시를 조해진에게 보낸다.
주말 이틀은 왜 이틀뿐일까 사흘이거나 나흘이어도 좋을 텐데 빨간색으로 가득 찬 한 장의 달력을 갖고 싶어 내가 울 때 네가 그걸 가지고 온다면 나는 기쁠 거야 일어나 앉아서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을 거야 오로라를 보러 가는 일도 어렵지 않겠지 쓰지 않은 머그컵을 꺼내는 일부터 할 거야
내가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한 시절 영화를 보면서 살아낼 수 있었다. 불 꺼진 상영관에 들어가 앉은 내 곁으로 어제의 기억과 추억이 될 오늘이 찾아온다. 다음에 개봉될 영화의 예고편이 끝나면 영화는 시작된다. 잠깐의 어둠 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