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아, 그럼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도 될까? 어쩐지 편지 바깥에서 너는 이미 항복한 듯 난감하게 웃고 있을 것만 같다. 하긴, 인간이 아름다운지 - 혹은 인간을 아름답게 보는지 - 의 기준은 모호하고 우리의 생각이나 신념은 가변적이지. 어제와 오늘의 나는 다른 사람일지도 모르고, 아침과 저녁 사이에도 우리는 유빙인 듯 먼지인 양 생각과 생각 사이를 표류하는 존재들이니까. 고민하고 방황하고 배회하는 과정 안에서 우리는 가까스로 인간일 테니까.
--- p.16~17
저는 요즘 안식에 대하여 자주 생각합니다. 안식일의 평화에 대해서요. 가까이 어울려 지냈던 친구의 죽음 때문입니다. 산다는 건 기쁨의 흔적들을 남기는 일이며 그런 것들이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을 중화시키기도 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체감했습니다. 가까운 사람이 홀연히 떠나는 슬픔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경험하게 될까요? 지난밤 짝꿍은 잠에서 깨어 그 친구가 꿈에 나왔다고,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습니다. 짝꿍의 등을 어루만져주면서 감히 ‘우리의 삶’을 갸륵하게 여겼습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의 “유일한 청자”가 되어주는 일을 사랑이라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 p.20
어리석게도 그때 나는 말이야, 외로움은 느린 사람에게, 가만히 서 있는 사람에게, 우두커니 앉아 있는 사람에게, 발길을 잘 떼지 않고 한곳을 응시하는 사람에게, 멈춰 있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거라고 믿었어. 활력이 넘쳤지. 근데 외로움과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결투도 다 힘이 남아돌아야 할 수 있는 거더라. 머리에 새치가 하나둘 생기고 보니 외로워서 뜨거웠던 시절은 지나갔구나, 하고 나를 홀로 세워두게 되더라. 비로소 고독해지더라. 내가 아니라 네가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더라. 아, 저이는 지금 얼마나 외로울까, 하고. 누나, 이 겨울에 나는 타인의 외로움이나 우울을 번역하는 데에 마음 쓰고 있어. 다가가서 물어보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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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누구니?
어디서 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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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앉는 것이 외로움과 잘 사귀어 지내는 방법이더라.
--- p.35~36
누구나 언젠가는 그런 장소에 도달하겠죠. 그때 나는 떠올리고 싶어요. 환대하고 환대받은 날을, 웃고 떠들며 맛있는 것을 나눠 먹고 체온을 나누고 손끝으로 감정을 느끼던 순간들을. 가령 산 정상에서 나눠 마신 아이스커피의 달콤하고 시원한 맛이 혀를 휘감던 순간과 기차와 기차 사이의 연결 통로에 나란히 앉아 노래를 불렀던 순간 같은. 그리고 출판사에서 첫 책을 받아온 날, 카페 창가에 앉아 마치 그 책이 연약한 새끼 새의 심장이라도 된다는 듯 표지에 조심스럽게 손바닥을 올려놓았던 2008년의 늦가을을 말이에요.
--- p.57~58
마음은 동사라는 말뿐 아니라 시인이 ‘허무맹랑하게 다정하다’는 말에도 공감합니다. 시인님과 나는 사실 전화도 자주 하지 않고 따로 만나는 일도 드물며 함께 여행을 하거나 서로의 집을 방문한 적이 없죠. 그러나 멀리 있어도, 자주 만나지 못해도, 나를 걱정하는 시인님의 다정이 전해지곤 합니다.
시인님, 나의 다정도 이 편지에 담아요.
--- p.86
누나.
걷다 보면 생각이 없어지기도 하고 생각이 생겨나버리기도 하지요. 누나는 생각하기 위해 자주 걷나요, 생각하지 않기 위해 걷고자 하나요. 오늘 저는 걷다가 생각했습니다. 집에 가면 깨끗이 씻고, 잘 먹고, 푹 자자. 어느새 저는(우리는) 이런 것도 결심하는 사람(들)이 되었을까요.
--- p.92
그렇다면 동시 상영 극장에 드나들던 학창 시절 얘기도 해볼까요. 저는 그때…… 철 지난 개봉 영화들을 두 편씩 묶어 상영하는 소읍의 극장을 드나들며 활기찼습니다. (…) 한 번 끊은 표로 몇 시간이고 죽치고 있는 게 가능해서 하루 대부분을 극장에서 보낸 날도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혼자 있고 싶어서였죠. 어둠 속에서 홀로 인생을 돌아보았어요.
--- p.117
그러니 조금은 장담할 수 있습니다. 철원 읍내의 극장들을 순례하며 어둠 속에 혼자 앉아 있기를 자청한 김현과 서울의 강서 지역에서 뜨거운 얼굴을 숨긴 채 어서 학교를 떠나고 싶다는 마음으로만 버티던 나, 우리는 생의 어떤 모서리에서 같은 영화를 보며 같은 표정으로 같은 생각을 했으리란 것을요.
--- p.128
죽음이란 어쩌면 빛이 가득한 문 뒤에 있는 작디작은 알갱이에 불과하진 않을까요. 이런 비유는 지나친가요. 허무맹랑한가요. 그렇지만 그리 생각해야 우리는 죽음을 담대히 받아들이며 산 사람은 살아야지 같은 말을 내뱉을 수 있습니다. 친구의 죽음을 통과하며 저는 사는 동안 더 많은 기쁨을 누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기쁨을 산 사람들과 나누자고요.
--- p.164~165
모모 님, 그 진심이 퇴색되고 거부되는 과정 역시 진심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했던 시간에 포함된다는 것이, 나아가 내 진심의 순도를 강조하고 피력하는 것이 상대에게는 또 다른 상처가 된다는 것이 저를 주저하게 합니다. ‘어떤 장면이나 기억 덕분에 단단하게 응고되었다가 이내 흩어져버리는 순간적인 상태’가 지나면 행복했던 나날도 믿어지지 않을만큼 강렬한 슬픔의 덩어리로 남는다는 게 저는 여전히 의아하기만 하니까요. 그리고 이 편지를 다 써가는 지금, 어쩌면 진심이란 그 후회마저 포함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 p.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