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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함께 살아갑니다, 지금 이곳에서

우리 함께 살아갑니다, 지금 이곳에서

: 생명과 사랑을 찾아 전 세계로 떠난 11명 글로벌협력의사들의 이야기

리뷰 총점9.9 리뷰 19건 | 판매지수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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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2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235쪽 | 370g | 140*200*12mm
ISBN13 9791196267773
ISBN10 1196267774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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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복강경 수술 예찬론자도 아니고, 복강경 수술이 선진 기술이어서 반드시 전수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다만 활동 국가와 기관 사람들이 모두 복강경 수술의 도입을 바라고 있었기에 그 매개체를 통해 수술과 의료 전반에 걸쳐 함께 토론하고 고민할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나 역시 한국과 다른 나라의 의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 p.18

나는 특히 작은 성취가 있을 때마다 놓치지 않고 격려하며, 지난 단계보다 어떤 부분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간호사들은 “지금까지 이렇게 장기간에 걸쳐 새로운 것을 배우는 과정의 시행착오를 이해하며 인내심을 가지고 격려해 준 사람은 내국인과 외국인을 통틀어 처음”이라며 감사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 p.24

그래서 계획하게 된 것이 ‘엘알토 한국병원 신생아중환자실 치료 프로토콜’이었다. 나는 프로토콜을 통해 기존의 투박하고 일정치 못하던 치료가 세심하고 균일화된 치료로 바뀌기를 바랐다. 동료 소아과 의사들의 조언을 받아 가며 〈수액 치료〉 〈경구 영양 방법〉 〈다빈도 약물 용량〉 〈질환별 임상검사 이드〉 등의 총론을 작성했다. 또 총론을 작성할 당시 현지 의사들을 참여시켜 그들도 치료 프로토콜에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치료 프로토콜은 30% 정도가 진행되다가 아쉽게 좌초되고 말았다. 현지 의사들이 여전히 신념 본위의 치료를 고집했기 때문이다. 줄다리기는 파견 기간 내내 계속됐는데, 언젠가는 동료 의사들이 변화하기를 바란다
--- p.46

훌륭한 명의 한 사람 덕에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지만, 환자 치료와 의료발전에 있어서, 아무리 의료진의 역량이 뛰어나다 해도 적절한 의료장비의 도움이 없이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KOICA에서는 프로젝트를 통해 엘알토 한국병원에 많은 의료장비를 지원해 주었다. 이러한 지원품들은 병원에서 유용하게 잘 사용되고 있었다.
--- p.47

땀을 흘리며 병동으로 달려온 인턴은 다급하게 도움을 청했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분만실을 향해 달렸다. 그곳에서는 다른 인턴이 자가호흡이 되지 않아 몸이 푸른빛을 띠는 갓 태어난 신생아에게 산소를 주고 있었다. 산소에도 반응이 없자 인턴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내가 신생아의 등과 발바닥을 빠르게 자극했음에도 반응이 없었다. 나는 재빠르게 암부백으로 양압 환기를 했고, 마침내 아기가 우렁찬 울음을 터트렸다.
“응~~~애, 응~~애.”
기쁨의 소리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인턴들의 얼굴에는 경이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담당 인턴에게 다시 한번 심폐소생술을 재교육했다. 위급한 상황을 겪은 후라 인턴의 집중도는 최상이었다.
--- p.54

인턴들의 또 다른 어려움은 소아 환자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치료였다. 동료 전문의들은 주요 질환을 교육했고, 나는 중증질환 소아 처치와 피부질환을 가르쳤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실제 소아 환자를 치료할 때 숙지해야 할 ‘소아의 생체징후 판독법’ ‘수액 치료’ ‘진단법’이었다. 인턴들에게 병동 환자를 대상으로 가상 주치의가 돼 생체징후 평가, 수액치료, 약물치료 등에 대해 직접 오더를 내리는 연습을 할 기회를 주었다. 시험 후에는 답에 대한 첨삭지도를 통해 실수를 줄이도록 했다. 인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자신감 있는 태도로 환자를 치료하게 됐다. 그들은 어느덧 점점 진짜 의사가 돼 가고 있었다.
--- p.58

나는 소아과가 ‘희망나무’를 심는 진료과목이라고 생각한다. 희망나무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잘 자란다면 볼리비아는 초록으로 물들 것이다. 인턴들과 함께 시작한 희망나무 심기가 볼리비아 각처로 이어져 건강하고 아름다운 열매가 많이 맺히길 간절히 소망한다.
--- p.59

생각해 보면 내게 의사라는 직업은 천직인 것 같다. 제주도가 고향인 나는 어려서부터 몸이 자주 아파 병원을 제집 드나들 듯했다. 태어날 때도 저체중이었던 탓에 의사 선생님은 부모님께 “이 아이는 달구지에 두부를 실어 가는 듯한 모양이니 조심조심 키우세요”라고 했단다. 그러다 보니 아픈 것을 고쳐 주던의사라는 직업이 멋있고 보람찬 일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레 했던 것 같다. 아직도 당시의 병원과 의사 선생님 그리고 나를 치료해 주던 간호사 누나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 p.64

그러던 어느 날 전신의 40%에 2도 화상을 입은 환자가 내원했다. 나는 이 환자에게 아침저녁으로 1시간씩 드레싱을 하며 2개월간 꾸준히 치료했다. 간호사들은 왜 이런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보내지 않고 매일 소독하는지 이상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고 꾸준히 환자에게 드레싱을하며 시간을 아끼지 않고 성심껏 환자를 치료했다. 그러자 환자는 점차 회복되고 마침내 완치돼 퇴원하게 됐다. 이후로 병원의 직원들은 나를 경계하지 않고 동료로 대해 주었고, 나도 병원에 잘 적응하며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나는 ‘상대가 누구든 그의 마음을 열게 하는 것은 나의 진심이 담긴 행동’이라는 것을 배우게 됐다.
--- p.66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네팔의 의료 상황은 현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열악했다. 의사를 만나려면 며칠씩이나 산길을 걸어서 병원에 오는 경우가 허다했다. 환자들의 상태도 대부분 심각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환자를 대하는 의사들의 마음이 꽉 막힌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나 또한 그러했는지 모른다.
--- p.67

회충은 좁은 공간에 머리를 집어넣는 습성이 있는데, 충수돌기 절제술을 시행하자 환자의 장 속에 있던 회충이 더 좁아진 충수돌기 입구를 비집고 들어갔다가 절제 부위의 봉합을 터트리고 점점 아래로 내려가 허벅지까지 간 것이었다. 나는 이 환자의 치료 과정을 겪으면서 환경과 문화가 다를 때 질병의 생태가 어떻게 바뀌는지 경험하게 됐다. 이후 우리 병원에서는 모든 수술환자에게 기생충 약을 투여하게 됐다. 기생충마저 내게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음을 배운 시간이었다.
--- p.70

때마침 ODA를 취득한 다음 해부터 글로벌협력의사제도가 시작됐다. 해외로 나가 의료봉사를 할 길이 KOICA를 통해 다시 열리게 된 것이다. 나는 1기로 도전해 고배를 마셨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음 해 또다시 도전했다. 시험에 재도전하며 ‘하나님, 이번에 떨어진다면 저를 해외로 보내실 생각이 없는 줄로 알겠습니다’라고 기도했다. 가족들에게도 “이번이 마지막이다”라고 이야기하며 배수의 진을 쳤다.
--- p.73

병원 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했다. 그러자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항문 수술을 잘하는 의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를 찾아오는 환자도 생기고, 다른 병원에서 대장내시경을 위해서 우리 병원으로 환자를 보내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분야를 넓혀 갔다. 한동안 하지 않았던 복강경 수술도 성공적으로 다시 시작해 지금은 일주일에 2~3케이스의 복강경 담낭절제술을 시행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네팔 최초로 유주비장(비장이 왼쪽상복부에 고정되지 못하고 밑으로 내려와 복강 내 위치한 질환)을 복강경 비장 절제술로 제거했다. 또 복강경 수술이 활발해지자 산부인과 의사들도 배우기를 원해 함께 복강경 난소낭종 절제술 및 난소 절제술을 시행하기도 했다.
--- p.78

네팔 의사들은 매우 똑똑하고 열정이 넘친다. 하지만 정확한 수술의 과정을 잘 알지 못한 채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기보다는 과거에 배운 것만을 최고로 여기는 좋지 못한 관습이 있었다. 대개 윗사람들이 그런다. 나는 그런 이들에게 내가 아는 의료지식을 함께 나누고, 수술 술기와 원칙들을 가르치면서 많은 보람을 느끼고 있다.
--- p.79

한·몽친선한방병원은 2001년 설립 이후에 2019년까지 총 31만여 명의 환자가 내원할 정도로 몽골 내 전통의료 분야에서는 매우 잘 알려진 의료기관이었다. 이후로도 KOICA를 통한 정부파견의, 국제협력의, WFK 자문단 형태의 의료진과 물리치료사·방사선사·임상병리사 등 일반봉사단원들이 꾸준히 파견돼 왔다. 환자들은 KOICA에서 몽골에 이러한 병원을 만들어 주었다는 사실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며, 한국의 의료진에게도 고마움을 자주 표시했다. 만 19년 이상 같은 자리에서 ODA 활동을 펼친 한·몽친선한방병원은 그동안 KOICA에서 파견된 인력들의 땀으로 이룬 결실이라 할 수 있다. 나 역시 이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글로벌 협력의료진으로서 더욱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 p.91

비록 겨울이 길다고 할지라도 몽골의 1년을 통틀어 보면 4계절을 모두 가지고 있다. 봄은 3월에서 5월까지로, 아침저녁으로 춥고 바람이 많이 부는 매우 변덕스러운 날씨를 보인다. 황사가 많이 발현하는 시기도 이때다. 6월에서 8월까지인 여름은 최고 기온이 30도를 넘는 경우도 있지만, 한국처럼 끈적거리는 더위는 아니어서 비교적 쾌적하고 시원하게 보낼 수 있다. 선풍기나 에어컨을 사용하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이고, 산과 들은 아름다운 초원의 푸르름이 절정을 이룬다. 가을은 9월에서 10월까지의 기간이며, 밤낮으로는 많이 서늘해지고 나뭇잎이 단기간에 옷을 바꾸어 입고 떨어진다. 한국과는 다른 빛깔의 단풍이 색다른 아름다움을 선물한다.
--- p.93

문제는 내가 캄보디아에서 중요한 사람,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고자 하려는 욕심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시엠레아프(시엠립)에서 일할 당시만 해도 나는 협력의사의 역할을 할 수 있었고, 내가 꼭 필요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프놈펜으로 오고 나서는 상대적으로 나의 입지가 좁아지고, 내가 꼭 필요한 인력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나라에서 활동하시는 글로벌 협력의 선생님들과 내 활동을 비교해 보니 그분들만큼 눈에 띄는 활동을 하지 못한 것 같아 속상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 p.102

파견 초기에 나는 외국인 의사로서 특별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힘들어했다. 하지만 그 말씀을 계기로 환자와 소통하며 인술을 펼치는 것이야말로 글로벌협력의사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활동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 p.104

글로벌협력의사로 파견됐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고 누군가와 함께해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원하는 일이나 성과만을 좇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협력하고 배우며 격려하는 마음 말이다. 때로는 길 안내가 필요한 방문객에게 직접 데려다 줄 수 있는 여유 있는 마음, 때로는 일손이 필요한 병원 직원을 도와서 환자를 옮기는 일과 검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고 토론하며 도움이 필요한 곳에 손을 내밀어줄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꼭 KOICA 글로벌협력의사 제도에 함께하기를 권한다.
--- p.105

“에티오피아는 선발하지 않을 예정이고 우즈베키스탄에서 한의사를 요청하고 있는데, 우즈베키스탄으로 가실 수 있겠어요?” 이럴 때는 빈말이라도 ‘멸사봉공’의 자세를 보여주는 게 합격률을 높인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보내만 주신다면 달나라라도 가서 일하겠습니다!”
--- p.112

드디어 기다리던 물고기가 낚싯바늘을 물었다. 짜증을 최대한 억누르고 ‘올 것이 왔다’라는 마음으로 나는 가능한 한 모든 치료방법을 동원했다. 그렇게 병원장은 처음으로 한의학을 접했고, 이후 한의학에 대해 점점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2017년 한국한의학연구원, 2018년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지원으로 병원장은 한국을 방문했다. 짧은 시간이나마 발전된 한의학을 경험하고 돌아온 후로 그는 우즈베키스탄의 ‘한의학 수호자’가 됐다. 보건부에서 예산을 받아 제2병원에 두 번째 한의진료센터를 만드는 한편 보건부 관계자들에게 한의학을 소개하는 일도 해 주고 있다.
--- p.121

나에게 진료를 받으러 1300㎞를 택시 타고 1박 2일로 달려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그 고려인 아저씨에게 몸 둘 바를 모르게 미안해졌다. 내가 노벨의학상을 받은 사람이라면 모를까 굳이 그렇게 먼 거리를 그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서 오실 필요는 없다고도 말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그분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고, 나에게 기대하는 게 있다면 최선을 다해서 기대를 만족시켜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신 수고로움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치료하겠습니다!”
--- p.131

내가 천연덕스럽게 기도사로 화답하면 백이면 백 우즈베키스탄 환자들의 얼굴엔 놀라움과 미소가 가득해진다. 간혹 저 환한 미소가 내가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그 어떤 치료보다도 값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나에게 기대는 환자들의 약하고 불안한 마음을 부담스러워하거나 피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짧은 식견과 경험을 통해 그런 마음에 보답하는 것은 그저 부지런히 출근해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진료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그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그들에게 미소와 기쁨을 보답해 주기 위해 나는 오늘도 두 손을 모으고 기도문을 외운다.
“비스밀라!(신의 이름으로!)”
--- p.135

우즈베키스탄 제자들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한의과대학 학생들이 실습 과정을 위해서 한의진료센터를 찾아왔다. 찾아온 학생들은 글로벌 협력의료진으로 일하는 한의사의 주요 업무 내용을 궁금해했고, 본인들도 나중에 이런 일을 하고 싶다는 희망을 이야기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한국의 학생들이 배우고 싶고, 해 보고 싶어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곤 한다. 그렇게 나는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 속에서 힘을 얻고 있다.
--- p.137

우즈베키스탄에서의 삶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오늘도 나는 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다. 때로는 이 길의 끝에 결승점이라는 게 있기나 한 건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물음표만 잔뜩 짊어지고 무작정 달려가고 있지만 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때가 되면 나도 나 자신만의 결승점을 지날 것이란 사실과 나에게도 환호를 보낼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뿐이다. 그것만을 믿는다. “비스밀라!”
--- p.138

나는 혼자 하는 일이 아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처음 라오스에 왔을 때 당시의 아동병원을 보고 모든 것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요한 것은 그들과 같은 속도로 걸으면서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눈높이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글로벌협력의사로 라오스에 살면서 배운 행복의 온도는 더도 아닌 덜도 아닌 36.5도였다.
--- p.147

글로벌협력의사는 의료진을 교육하거나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한민국 의사들이다. 아플 때 쉽게 의사를 만나고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 70억 인구 중에 50%도 되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전문의를 만날 수 있는 사람은 그 숫자가 더욱 줄어든다.
--- p.151

피지는 많은 이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멋지고 아름다운 나라다. 구글에서 이미지를 검색하면 나오는 연푸른색의 멋진 남태평양과 하얀 모래밭이 곳곳에 펼쳐진다. 하지만 그 모습이 전부는 아니다. 333개 섬으로 이루어진 이 나라에는 9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살고 있고, 그 90만 명이 넘는 사람 중에는 당연히 아픈 사람들도 있다. 특히 당뇨나 고혈압과 같은 만성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고, 합병증으로 인해 12시간에 1명꼴로 무릎 밑 다리 절단 수술을 받는다.
--- p.152

나는 이곳에서 말도 서툴고 모습도 다른 외국인 의사이지만 고마운 피지 환자들 덕분에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지낼 수 있다. 본인이 아파하면 내가 미안할까 봐 처치 중 아파도 소리를 내지 않고 꾹 참는 이들이 많다. 이런저런 치료를 해도 좋아지지 않아서 몇 달째 계속 치료 중인 외이도염 환자는 병원에 계속 불러주어서 고맙다고, 언젠가는 좋아지지 않겠냐며 본인 걱정은 말라며 웃는다. 후두암이 전이돼 수술도 어렵고 피지에서는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가 불가능해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으면, 살 수 있을 때까지 잘 살겠다며 오히려 나를 위로하고 가는 분도 있다.
--- p.155

언제까지 피지에 있을지는 모른다. 계획을 하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니듯이 떠나고 싶을 때 또 다른 곳으로 계획 없이 가볍게 떠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아직 가 보지 못한 곳에서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들 과 설레는 만남을 준비한다.
--- p.157

환자는 2개월이 걸려도 이비인후과 의사를 만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고, 수술실 문제로 수술을 못 받고 퇴원하는 환자는 다음에라도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것에 감사했다. 마취과 의사와 간호사도 여유롭게 아침을 준비하며 수술을 시작하고 티타임과 식사시간을 가졌다. 심지어 수술을 받기 위해서 15시간 넘게 금식하고 있던 환자마저 이제 밥을 먹고 내일 수술할 수 있다면서 감사해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은 한국인 의사뿐이었다. 피지 사람들은 아무리 재촉해도 안 되는 문제가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문제 안에서 가장 최선의 방법으로 감사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 p.166

지금 가르치고 있는 레지던트가 전문의가 돼 피지에서 이비인후과 질환을 겪는 환자들의 어려움을 피지어로 부족함 없이 들어주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보건소에서 일하는 모든 피지 일반의들과 진료 간호사들이 간단한 이비인후과 질병은 직접 처치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그런 날이 조금이라도 빨리 올 수 있기를 바라기에, 오늘도 이렇게 다짐한다. ‘나는 피지 의사가 아니다’라고….
--- p.169

해발고도 2300m가 넘는 고지대인 아디스아바바에서는 강한 자외선에 노출돼 투명한 수정체가 혼탁해지는 백내장이 이른 나이부터 발생하고 빠른 속도로 심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환자가 병원을 찾아올 때는 한국에서는 더는 보기 힘들 정도로 진행된 과숙 백내장인 경우가 상당수다. 동공 확장제에 반응하지 않는 작은 동공, 수정체를 붙잡아 주는 소대가 약해서 끊어진 경우 등 백내장 수술을 어렵게 만들고 수술 결과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상당수 합병된 사례가 많아 수술 때마다 살얼음 위를 걷는 기분이다.
--- p.178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 모든 나라의 경제성장률이 예년에 비해 매우 낮아진 상황이고, 에티오피아 역시 예외가 아니다. 특히 젊은 층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2020년 3월 13일 첫 확진자가 발생했고, 이후 두 달간은 매우 느린 증가 수를 보이다가 최근 한 달 사이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첫 확진자 발표 이후 단원들을 포함한 대다수의 KOICA 비필수 인력은 한국으로 일시 귀국했고, 필수 KOICA 인력과 대사관 직원 그리고 교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내가 가족과 함께 이곳에 남았다.
--- p.180

처음 이들을 수술할 때 주사기 사용 중 의료진이 찔리는 경우도 있어 몸을 사렸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모든 것이 일상이 됐고, 지금은 두려운 마음은 사라지고 그저 안타까운 마음만 크다.
많은 환자가 수술 후 시력을 되찾은 것에 대해 내게 고마움을 표현한다. 특히 젊은 AIDS 환자들은 조금 다른 의미에서 더욱 감사를 전한다.
--- p.184

말이라는 것이 참 오묘해서 말이 안 통해도 마음이 통할 수 있고, 말이 버젓이 통하지만 마음이 틀어지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말이 통하면 분명 더 많이 마음이 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땅을 섬기러 왔다면 그들의 곁에 오래 머물며 소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p.191

나는 두렵고 불안했다. 그렇지만 세상 어디든 가난과 생명이 교차하는 곳은 있고, 그곳이 언젠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인 것 같았다. Why 외의 나머지들은 어딘가 준비돼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나는 그렇게 미래가 보이지 않는 여정을 시작했다.
--- p.200

그를 전원하던 날, 응급센터 주변에는 1000명에 가까운 인파가 모여들어 온종일 병원을 에워싸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나는 군중 사이를 지나 중환자실로 올라갔다. 송의 호흡과 혈압 등 모든 징후는 안정적이었고, 진정제 투여가 중단되자 서서히 눈을 떴다. 마침 그때 송의 어머니와 부인이 카메룬 보건부 장관과 함께 면회를왔다. 언제든 재출혈이나 혈관 경련이 올 수 있는 상태였지만, 일단 의식이 돌아온 것을 보자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응급센터의 초기대응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 p.207

“캡틴, 당신은 꼭 일어날 거예요!”
“캡틴, 우리가 함께 있어요!”
“CURY(야운데 응급센터) 고마워. 잘했어!”
병원을 둘러싼 군중의 산발적 함성은 어느샌가 한목소리의 응원가가 되었다.
--- p.208

불행한 재난이었지만 의료대응만은 응급센터가 중심이 돼 선진국 이상으로 침착하고 능숙하게 진행했다. 짧은 시간에 이런 수준에 올라선 동료들이 나는 참 놀랍고 자랑스러웠다. 현지 언론에서도 1998년 열차 폭발사고 시의 의료대응과 비교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처럼 야운데 응급센터는 평범한 병원의 역할을 넘어서 카메룬 국가 응급의료체계의 구심점이 돼 갔다.
--- p.210

“Piece of Africa(아프리카의 조각).” 나의 멘토는 “아프리카를 향한 마음의 조각이 심장에 박혀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때는 당연히 내 안에도 그 조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을 만큼 부끄러운 일도 많았고, 허세를 부린 일들이 생각나 현지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 날도 많았다. 나는 그렇게 부끄럽고 미안해지고 나서야 ‘아프리카의 조각’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알게 됐다. 이 글을 읽은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 자신의 심장 속에 박혀 있는 이 귀한 조각을 발견한다면 가난과생명이 만나는 곳, 카메룬 야운데 응급센터를 기억해 주길 바란다.
--- p.215

갓 외과 전문의를 따고 혈기왕성하던 무렵, 모든 것을 다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으로 갔던 방글라데시에서 나는 오히려 부족함을 느끼고 그곳의 사람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때 좀 더 나 자신을 갈고 닦아 의학적으로 전문가가 된 후에 다시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렇게 국내로 돌아온 지 년이 되던 해인 2016년부터 내 마음 밭에는 해외봉사의 갈증이 심해졌다.
--- p.220

우간다에서 복강경 수술은 아직 초기 단계라 맹장염으로 불리는 충수돌기염이나 담석증 등 간단한 수술부터 시작해 조금씩 그 범위를 확대해 가는 것이 좋다. 그러나 빌려 쓰는 입장인 데다 매주 월요일 계획된 수술만 가능해 결장암·직장암 환자와 염증성 장질환 환자 등 시작 단계치고는 큰 수술 위주로 시행할 수밖에 없다. 수술시간도 짧게는 2~3시간, 길게는 5~6시간 걸리는 터라 마취과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잘 협조할지가 의문이었는데, 수술이 큰 문제 없이 끝나고 환자들이 잘 회복돼 현지 의료진도 만족해했다. 다만 복강경 장 절제술에는 여러 가지 기구들과 문합기 등이 필요한데, 이 부분을 환자들에게 부담시키는 것이 풀어야 할 숙제다.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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