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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 많고 소심한 희정이도 살았습니다

겁 많고 소심한 희정이도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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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에세이 top100 5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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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2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380g | 136*200*14mm
ISBN13 9791189586263
ISBN10 1189586266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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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좋았다. 글이 쓰고 싶다고 말했지만 실은 뭘 딱히 하고 싶어 떠난 게 아니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도망치듯 온 제주다. 누구와도 말도 섞기 싫었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나무늘보처럼 온종일 나무에 가만 매달려만 있고 싶었다.
--- p.29, 「와랑와랑」 중에서

어른이란 존재는 같은 학교에 가서 똑같이 배워 오는 말이 있는 게 아니었다. 말 그래도 젊음이 부러웠던 거다. 그 젊음이, 그 풋풋한 에너지가, 지나간 세월이. 어느새 눈 깜짝할 사이 흘러버린 나이가 서글픈 거였고, 세월이 야속한 거였으며, 자신도 모르게 어른이 되어버린 어른들의 솔직한 마음이었던 거다.
--- p.67, 「나도 어른이 된 어른이었다」 중에서

버킷리스트는 내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고, 매 순간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단 하나의 꿈만 꾸고 살 때는 그 하나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느껴졌다.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고, 사는 게 아무런 재미도 없다고 여겼으며, 모든 것이 지겨웠다. (중략) 더 무서웠던 것은 설령 죽기 살기로 노력하고 운도 따라줘 그 꿈 하나를 이룬다 해도 계속 행복할 것 같지 않은 불안함이 있었다.
--- p.75, 「나만의 버킷리스트」 중에서

아무래도 이 나라 유학은 포기해야겠다. 제주 할머니가 흥분해 화내면서 쏘아붙이는 제주 방언은 도저히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종류의 언어가 아니었다. 반 토막도 알아듣지 못하겠다. 분이 풀리지 않는 듯 보이는 할머니에게 눈물 콧물 쏙 빼가며 연신 고개 숙여 사과하고 나서야 아까 그 버스정류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고작 5천 원으로 이 난리인데 50만 원이었으면 식음을 전폐하고 앓아누웠을 위인이 나다.
--- p.135, 「이 나라 유학은 포기할게요」 중에서

냄새도 다들 어떻게 하면 이런 냄새가 나나 싶은, 지독한 지린내가 안을 진동했다. 서둘러 나가려 해도 오줌보가 터지려 할 때 간 거라 돌이키기에는 늦었다. 숨을 참고 입으로만 간간이 죽을 것 같을 때 미세하게 숨을 내쉬면서 바지를 내려 변기에 쪼그려 앉으려는데, 이런 문이 고장이다! 이 와중에 변기는 수세식. (중략) 눈물이 앞을 가리고 오줌보는 터질 기세라 하는 수 없이 한 손으로는 문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바지를 잡고 겨우 볼일을 보았다. 지금 생각해도 그 순간이 치욕스럽고 짜증 난다.
--- p.185, 「제주 화장실」 중에서

사려니 숲 입구에 도착하자 우리 둘만 딴 세상이었다. 나랑 언니만 빼고 다들 등산복에 등산화를 신고 걷고 있었다. 반면 우리는 둘 다 하늘하늘한 스커트에 위는 블라우스에 해변 모자까지 써 튀어도 너무 튀었다. (중략) 숲이나 오름은 사진으로만 봐도 음산하고 눅눅하고 오묘하면서도 무서운 느낌이 살짝살짝 나곤 했는데, 실제로 보니 더 숲이 울창하고 기묘했다. ‘사려니’는 ‘신성한, 매혹적인’이라는 뜻을 가졌다고 하던데, 과연 그 말이 잘 어울렸다. 요컨대 요정과 박쥐가 함께 숨어 살고 있을 것 같은 신성하고 묘한 숲이었다.
--- p.235, 「요정과 박쥐가 사는 숲」 중에서

분명 담백하게 인사하고 헤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며 악수하는 순간 눈앞이 어룽어룽해지더니 생각하지 못한 순간에 눈물이 툭 하고 떨어졌다. 본래의 내 자리로 돌아가는 거라 생각만 했지 이 순간도 이별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야 이별이 실감이 났다. 하마다 식구와의 이별. 제주도와의 이별.
--- p.264, 「뜻하지 않은 마중 그리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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