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학의 지평을 새롭게 열어가기 위해 지리학자는 자신의 눈을 크게 뜨고 깨어 있는 의식으로 앞을 내다보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정신과 신체에 내재된 혼신의 힘으로 자신의 학문적 지평을 확인하고 그 지평을 넓혀나가야 한다. 사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지리학자이지 않겠는가?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이 땅에 관한 지식 없이 살아갈 수 없고, 지리학은 바로 이 땅에 대한 지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겪는 경험과 얻은 지식으로 신체적·정신적 삶의 지평을 열어나간다. 때로 이 땅에서의 삶이 고단하고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 그 원인을 밝히고 해소하려는 노력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간다.
--- p.7, 「책을 펴내면서」 중에서
요컨대 오늘날 우리는 돈과 권력을 위해, 또 이들에 의해 창출된 공간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현대 공간이 아무리 심각하게 금력화(즉 자본주의화)되고 권력화(즉 관료주의화)되었다고 할지라도, 공간의 의미, 즉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의 의미를 재회복시켜줄 수 있는 실천적·도덕적 잠재력은 우리의 삶이 영위하는 생활공간 속에 내재되어 있다. 따라서 현대 비판적 공간이론의 논제들은 식민화된 생활공간을 되찾기 위해 체계공간화 메커니즘의 이론적 분석뿐만 아니라 생활공간 속에 잠재된 규범적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의사소통적 표출공간 이론’의 정립으로 수렴되어야 할 것이다.
--- p.43, 「제1장 비판적 공간이론을 위한 논제들」 중에서
사회주의 사회에서 달성되어야 할 것은 자연 그 자체의 도구적 통제보다 자연과 인간의 ‘상호교환’의 합목적적 및 규범적 통제이다. 생산력의 증대, 기술의 발달, 또는 자연의 통제 증대는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는 인간 생활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물론 사회주의하의 자연과 인간 간 관련성에서 생산은 근본적인 인간 필요를 계속 만족시키지만, 자본주의의 아래에서와는 다른 형태를 취할 것이다. 맑스에게 있어 사회주의의 지침 원리는 생산에 참여하는 사람들 모두에 의한 공동적이고 합리적인 통제에 종속되는 생산 조직의 수립이다. 인간 개인들이 소외된 외적 자연이나 착취적 사회관계에 종속됨 없이, 공동 생산의 성과의 직접적 배분을 통해 인간 필요는 충족될 수 있다. 따라서 사회주의 사회는 여전히 인간과 자연 간의 관계, 그리고 인간 개인들 간의 관계를 통제하기 위해 생산적 정의와 분배적 정의 양자를 모두 요청한다.
--- p.203~204, 「제5장 맑스의 생태학과 생산적 환경정의」 중에서
동아시아 지역 발전을 위한 새로운 공간환경론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 새롭게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지리학 및 여타 공간환경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학문 분과들(나아가 사회과학 일반)은 서구적 배경에서 개발된 이론이나 모형들을 도입해 아시아적 상황을 설명하고자 함으로써, 한편으로 지역적 차별성을 무시한 채 과학적 보편성을 강조했으며,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보편성에 대한 요구가 자본주의적 규정력에 의해 좌우되었다는 점을 알지 못했다. 이제 우리는 동아시아의 위기 과정을 겪으면서, 한편으로 자본주의의 보편적 추동력을 이해하고, 다른 한편으로 동아시아의 공간환경에 특수한 이론들을 개발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동아시아 지역의 비판적-대안적 지리학자들의 과제는 바로 이러한 이론을 개발하고 이를 현실의 변화에 적용하는 것이고 할 수 있다.
--- p.253, 「제6장 동아시아 경제위기의 발생 과정과 영향」 중에서
테러주의와의 세계적 전쟁이 시작된 이후,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에서 제국적 성격은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신제국주의와 이들이 추구하는 신세계 질서는 전적으로 탈냉전시대의 산물이라고 할 수는 없음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이는 단순히 뉴욕과 워싱턴에서 발생했던 9·11 테러라는 만행으로 인해 유발된 결과라고 할 수도 없다. 미국의 신제국주의는 부시 행정부의 신보수주의자들에 의해 계획되고 실행되고 있다고 할지라도, 자본주의의 세계화와 서로 긴밀한 연계 속에서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제국주의는 정치적(영토적) 논리와 경제적(자본주의적) 논리의 변증법적 관계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제국주의에 대한 이해에 기초해, 역사적으로 현재 전개되고 있는 이른바 ‘신제국주의’는 어떠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
--- p.374, 「제9장 미국의 신제국주의와 동아시아의 미래」 중에서
앞으로 한국의 신자유주의화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대한 전망과 관련해, 신자유주의가 아무리 발전한다고 할지라도 국가의 개입이나 규제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물론 국가와 시장 간 관계가 어떻게 설정될 것인가는 개별 국가들의 발전 경로와 내외적 발전 조건들의 차이에 따라 다양하게 유형화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국가와 시장이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의 문제보다는 이러한 결합이 무엇을 지향할 것인가, 즉 국민 복지를 지향할 것인가 또는 산업(자본) 발전을 지향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정부의 경제적 및 공간적 정책들은 효율성이나 개혁의 문제라기보다는 시민들의 복지와 삶의 질 개선에 어느 정도 기여할 것인가를 기준으로 입안·시행·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 p.429, 「제10장 발전주의적 신자유주의와 도시정책의 혼종성」 중에서
도시공간의 재편 과정은 항상 사회적 약자의 배제와 공적 공간의 탈취를 전제로 했다. 이러한 도시 재개발은 도시공간이 자본의 지속적 축적과 자본주의의 재생산을 위해 필수적이며, 특히 과잉축적으로 인한 경제적 위기를 해결하는 핵심적 수단임을 알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이러한 도시 재개발을 통한 자본 흡수의 또 다른 측면은 이른바 ‘창조적 파괴’, 도시 젠트리피케이션, 도시 인클로저 등을 동반하면서, 한편으로 도시공간의 독점적 사유화 증대와 이를 통한 자산 이득의 배타적 전유, 다른 한편으로 공동체적 도시 장소의 해체와 도시 서민들의 사회공간적 배제를 초래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 같이 자본 축적 과정에서 발생한 경제적 위기는 도시공간에서 집중적으로 드러날 뿐만 아니라 도시 건조환경을 통한 자본 축적의 위기,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채 위기와 이로 인해 피해와 희생을 강요받는 도시 서민들의 사회적 위기, 즉 도시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 p.550, 「제13장 한국의 자본 축적 과정과 도시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