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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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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들레름 | 장락 | 2000년 01월 3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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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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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0년 01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94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5262712
ISBN10 8985262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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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사람이 또 있다는 건 정말 좋아!
--- 00/02/14 김선희(rosak@hanmail.net)
긴 여행 끝에 오랜만에 집에 돌아와 보니 보일러가 고장나 있었다. 온기라곤 하나 없는 집, 보일러 수리공은 내일 날이 밝아야 올 수 있단다. 흔하디 흔한 전기 장판도 전기난로도 없는 집에서 유일한 난방기구는 부엌의 오븐이었다. 음식을 만들 것도 아니면서 뚜껑을 열어 둔 채 계속 오븐을 켜둔 적이 있었다. 알량하게도…….

그 덕에 냉장고에 있던 오래된 고구마와 감자가 구워지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추위와 배고픔은 항상 함께 온다. 허겁지겁 구운 감자를 먹자 당연하게도 목이 말라왔다. 찬 맥주밖에 없는 냉장고가 야속했지만 어찌하랴?

그 첫 맥주 한 모금. 그 우연하게 찾아온 맛을 알기에 '필립 들레름'의 <첫 맥주 한 모금>을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 으스스한 서늘함. 진저리를 몇 번 치고 나서야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며 가슴을 적시는 상쾌함을 느낄 수가 있다.

'필립 들레름'의 <정말 좋아>는 <아무 것도 하지 않기>와 더불어 우리 나라에 소개되는 그의 두 번째 책이다. 이 글 속의 화자는 이름과 성별도 나와 있지 않은 열 여섯이 채 안 된 평범한 프랑스 청소년이다. 그가 일상에서 느끼는 잔 기쁨들, 예를 들면 공포소설을 읽는 따위, 월간지를 구독하거나 연극구경을 가는 것, 또는 단지 날씨가 몹시 추운 것까지도 '정말 좋다' 라고 말하고 있다.

하도 사소한 것들이라 '별 우스개 소리가 다 있네' 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화자는 사뭇 진지하다. 그리고 문득 어머, 나하고 똑같은 생각이네, 하며 맞닥뜨리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면 이 책이 꽤 반갑기도 할 것이다. '필립 들레름'의 사소한 즐거움 중, 하나를 조우하는 것도 때론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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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들어와보니, 이건 또 웬 난리람! 난방이 안 된다니…… 하지만 이런 난리 소동이 우린 정말 신난다. 엄마는 부엌 안을 따뜻하게 하려고 오후 내내 오븐을 틀어놓으신다. 아무것도 굽지 않으면서 오븐을 그냥 틀어두는 건 바보짓이지. 이때를 이용해 케이크를 세 개나 굽기로 한다. 그리고는 모두들 오븐 곁의 식탁에 둘러앉아 케이크를 먹으면서, 저녁 때까지 범인 찾기 주사위 놀이를 한다. 저녁을 먹고 나서도 엄마, 아빠는 걱정이 태산 같으신지 표정이 영 안좋으시다. 아빠는 헤어 드라이어로 난방관을 녹이려고 애쓰셨지만, 난방관이 녹기는커녕 헤어 드라이어만 열을 받아서 타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이런 날은 축제 기분이다. 전기난로가 하나 밖에 없기 때문에 모두가 한 방에서 잠을 자게 된 것이다. 이럴 땐 고무 튜브매트에 공기를 채우고, 집에 있는 담요란 담요, 이불이란 이불을 모두 꺼내 덮어야 한다. 우리는 마치 모스크바 전쟁터에서 밤을 새우던 나폴레옹의 용감한 근위병이 된 느낌이다. 이렇게 신나도록 추운 날이 오래오래 계속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 pp.3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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