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걱정은 우울감에서 비롯되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배출에 있다. 우울감은 멈춰 있을 때 발생하니 배출하는 방법도 움직임에 있다. 예전에 유가의 학자가 말했던 심성에 대한 이야기는 최근 심리학자들의 관점에서 봤을 때 아주 애매한 것들이 많다. 하지만 맹자가 이야기했던 ‘진성盡性*’만은 아주 뜻깊다. 진성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많은 철학을 배워도 매우 얕은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진성의 뜻을 명확하게 알아야 그 속에서 삶의 목적과 방식을 찾을 수 있다. (…) 나는 본가에서 살 때, 서재 정리하는 걸 좋아했다. 어질러진 책장을 정돈하고 먼지가 쌓인 곳곳을 직접 쓸고 닦았다. 그렇게 혼란스러웠던 공간을 깨끗이 치우고서 여유롭게 의자에 앉아 서재를 둘러보았다. 그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즐거움과 위로를 얻었다. 모든 몰입의 움직임이 그렇다. 테니스 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힘껏 라켓을 휘두를 때, 그 사람에게는 그 어떤 걱정도 자라나지 않는다.
--- pp.23-24, 「삶의 목적은‘진성’에 있다」 중에서
삶의 곳곳에서 재미를 깨달을 줄 아는 사람은 절대 적막하게 살지 않는다. 절대 걱정에 휩싸이지도 않는다. 주자朱子의 시에 “조그맣고 네모난 연못이 거울처럼 맑아, 하늘의 빛과 구름 그림자가 그 안을 떠돈다. 묻나니 어찌하여 그렇게 맑단 말인가? 샘이 있어 맑은 생명수가 흘러들어오기 때문이네.”라는 이야기가 있다. 아주 아름다운 풍경에 대한 감상이다. (…) 이제 눈을 감고 시 속 풍경을 머릿속에 그려보자. 그리고 이 연못이 당신의 마음이라고 생각해보자. 시가 담은 이야기가 삶의 희로애락과 얼마나 딱 맞아떨어지는지 느껴지는가? 사람들의 삶이 자꾸 메말라가는 것은 그들의 연못에 하늘의 빛과 구름의 그림자가 없기 때문이고, 생명수가 나오는 근원이 없기 때문이다. 이 생명수의 근원은 곧 ‘재미를 깨닫는 것’이다. 재미를 깨닫는 능력은 절반은 타고나고 절반은 스스로 수양하여 얻을 수 있다. 대부분 은 고요함 속에서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다.
--- p.29, 「분주함 속에 고요함의 재미가 있다」 중에서
우리는 모두 삶 속에 틈이 생기지 않길 바라고, 무언가가 항상 마음을 ‘점령’하고 있어 주길 바란다. 할 일이 없을 때도 할 일을 찾고, 일을 하고 싶지 않을 때도 한가로이 있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무언가를 찾아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싫증 나고 답답하고 괴로워지니까. 한가함이 습관이 되고 답답함이 습관이 되면 사람은 생기를 잃고 메말라가게 된다. 여가 활동은 곧 오락이고, 여가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은 곧 괴로움이다. 세상은 여가 활동을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 p.51, 「생기가 넘치는 사람은 다방면에 흥미가 있다」 중에서
우리는 일하는 시간이 길수록 더 많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루에 걸어갈 수 있는 거리가 100리라고 하면, 하루를 더 쉬지 않고 갔을 때 200리를 갈 수 있고, 이렇게 쉬지 않고 매일 걸어도 계속 100리를 걸을 때의 속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장거리를 걸어본 사람이라면 이 계산법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쉬지 않고 오래 걸으면 갈수록 속도가 느려진다. 결국엔 아예 움직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 p.58, 「삶에 재미가 있어야 생기가 생긴다」 중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감상은 ‘플라토닉 사랑’과 흡사하다. 사랑의 맛을 처음 느꼈을 때를 기억하는가? 다른 사람과 똑같은 평범한 인간이 순식간에 당신만의 신으로 변한다. 당신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아름다움을 상대가 충분히 지녔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당신 눈에 상대방은 더이상 그 본연의 모습이 아닌 당신의 이상화 과정을 거친 변형된 모습이 비친다. 당신의 이상 속에서 먼저 가장 아름답고 가장 훌륭한 인간상을 만든 뒤 그 모습을 상대에게 입히는 것이다. 사실상 요정의 몸에 의탁된 인간인 셈이다. 당신은 그 요정만을 보이니 흠잡을 것이 없다 생각하겠지만, 주위 사람들이 냉정하게 바라보면 종종 의아해할 것이다. “왜 걔를 사랑해? 너도 참 이상하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연애 중인 상대방은 이미 예술화를 거친 자연과 같다는 말이다.
--- p.174, 「아름다움에 대한 태도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중에서
삶은 원래 넓은 의미에서의 예술이다. 모든 사람의 인생사는 곧 자신의 작품이다. 이런 작품은 예술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돌멩이를 깎아 위대한 조각상을 만들 수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돌멩이가 ‘물건’이 되도록 만들지 못한다. 이 차이는 전부 성격과 수양에서 비롯된다. 삶을 아는 사람은 예술가이고 그의 삶이 예술 걸작이 되는 것이다. 삶을 한번 사는 것은 마치 글을 한 편 쓰는 것과 같아서 완벽한 삶에는 좋은 글에 반드시 존재하는 특징이 있다.
--- pp. 250-251, 「천천히 감상하며 간다」 중에서
알프스 산골짜기에 큰 기찻길이 하나 있는데, 길 양쪽의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그곳엔 “천천히 가, 감상해!”라고 쓰인 표어 판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정신없는 세상을 알프스 산골짜기를 달리는 기차를 타고 가듯 빠르게 살아간다. 아쉬워할 틈도 없이 빠르게 지나가버리면 화려함이 넘치는 세상이 아무런 재미도 없는 감옥이 된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 p.261, 「천천히 감상하며 간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