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월룡의 그림 그리는 모습을 지켜본 북한 화가들은 그의 능수능란하고 거침없는 손놀림에 찬사를 보냈다. 빠르면서 정확하고, 부드러우면서 힘 있는 필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거기에다 미술이론 지식까지 해박한 변월룡에게 금세 매료되었다. 또 북한 화가들은 그의 인간적인 면모에도 이끌렸다. 항상 미소 짓는 부드러운 인상과 조용조용한 말투, 몸에 밴 예의와 겸손한 태도 등은 호감을 자아내는 데 충분한 요인이었다.
--- p.130, 4장 꿈에 그리던 고국의 품에 안기다,「동경하던 고국으로」 중에서
김주경 학장은 1954년 9월 28일자 편지에서 “양시 정거장에서 선생님과 사모님이 떠나실 때 찍은 사진을 몇 장 보내드립니다. 이때 양시 정거장에서는 특별히 우리를 위해서 발차 시간을 2분 늦추었다고 합니다.”라고 썼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환송을 지켜보기 위해 모여들었으면 발차 시간을 늦추었을까. 이 대목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 p.235, 6장 지란지교를 나누던 북한의 화가들, 「고국을 떠나오던 날의 풍경」 중에서
변월룡은 나라의 정신과 민족성이 깊이 반영돼야 좋은 그림이 된다고 말한다. "설령 선진국에서 좋은 재료는 빌려 올지라도 그림에서는 민족혼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민족 고유의 특징이 없어져 모방하게 된다.”
--- p.255, 7장 고국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며,「동양화 연구에 몰두하다」 중에서
변월룡은 이번 고국방문이 무산된 것뿐만 아니라 앞으로 고국으로 갈 길이 영영 막혀 버렸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일을 겪은 후 변월룡은 거의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깊은 시름에 잠겨 있던 탓이다. 그런 시점에 이팔찬에게서 새해 그림 연하장이 왔던 것이다. 그 연하장이 시름에 잠겨 있던 변월룡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는지, 새해로 접어들면서 그는 조금씩 의욕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곧바로 ‘재일교포 북송’에 관한 동판화를 그렸다. 1960년 새해 무렵에 그려진 다음 장의 동판화는 순전히 변월룡의 상상만으로 창조되었다. 변월룡은 이 동판화에다 당시의 자신의 심경을 솔직하게 글로 새겨 놓았다. 그는 판화 우측에 한글로 제목과 함께 보다 작은 글씨로 다음과 같이 적었다. “보고 싶은 청진을 보지 못하고 레닌그라드에서 깊은 생각만 가지고 그렸습니다. 변월룡”
--- p.324, 9장 그리움을 그림에 담다,「1960년 새해를 맞다」 중에서
“그렇다. 우리의 직업은 정말 힘든 직업이다. 미술가는 또 데생 선생은 잠시도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려야 한다. 배우지 않고서 그림을 잘 그릴 수는 없다. 사람이 연필을 종이에 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데생을 잘하는 사람인지 소질이 없는 사람인지 말이다.”
--- p.371, 10장 한국미술사의 위대한 거장, 「화가로서의 삶」 중에서
변월룡은 전 생애에 걸쳐 인물화에서 특히 좋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인물화는 유화에서부터 데생, 동판화, 석판화, 수채화 등 장르도 다양하다. 어떤 작품들은 주문을 받아 그린 것이고 어떤 작품들은 작가 스스로가 원해서 그린 것이지만 어떤 작품이든 모두 심혈을 기울이지 않은 것이 없다. 변월룡에게 흥미를 끌지 않는 인물이란 없었기 때문이다.
--- p.373, 10장 한국미술사의 위대한 거장, 「다양한 장르의 인물화」 중에서
변월룡은 굳이 총칼을 겨누지 않아도 어떤 전쟁화보다 주제와 감정이 확실히 드러나게 했다.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드러나게 하는 힘, 바로 이러한 점이 그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 p.415, 글을 마치며, 「역사적 관점의 작품들」 중에서
변월룡의 작품은 장르적으로 유화, 판화, 데생, 수채화, 포스터 등이 있고, 내용적으로는 인물화, 풍경화, 전쟁화, 정물화, 역사화 등으로 구분된다. 또 판화에는 동판화와 석판화가 있고, 데생에는 연필화, 파스텔화, 펜화 등이 있다. 이처럼 그의 작품은 한 사람이 그렸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장르의 폭이 넓고 내용도 다양하다. 그중 동판화는 생전에 존경했던 서양화가 렘브란트와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동판화는 큰 사이즈로 제작하는 것이 특히 어려운데, 변월룡은 무려 가로 90센티미터에 근접하는 크기의 작품까지 많이 남겼다.
--- p.419, 글을 마치며, 「그 밖의 변월룡 작품의 특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