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프랑스어판 편집자의 글 … 7
상당한 위험: 미셸 푸코와 클로드 본푸아의 대담, 1968 … 11 옮긴이의 말 / 글쓰기란 무엇인가? … 71 필립 아르티에르의 해설 / 말의 체험을 만들기 … 87 |
저미셸 푸코
관심작가 알림신청Michel Paul Foucault
미셸 푸코의 다른 상품
역허경
관심작가 알림신청허경 의 다른 상품
나는 나의 이야기를 이런 말로 시작하고 싶네요. 나는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나는 내가 왜 불안을 느끼는지, 왜 잘 해내지 못할까 봐 걱정을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이것이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이 아닐까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이건 아마 내가 대학에 몸담고 있기 때문에, 말의, 말하자면 규정된, 일련의 형식들을 사용하기 때문이 아닐까?
---p.12 사람들은 나의 글쓰기 안에 자신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느낍니다. 사실, 나는 그보다는 훨씬 더 순진한 편입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리지 않습니다. 나는 다만 사람들이 이미 죽어 있다고 가정할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내게 소리칠 때 그렇게 놀라게 되는 이유입니다. ---p.29 나는 진단을 내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의 작업은, 글쓰기라는 절개 자체를 통해, 죽어 버린 것의 진실일 무엇인가를 드러내는 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내 글쓰기는 죽음으로부터 삶으로 또는 삶으로부터 죽음으로의 옮겨 가는 축이 아닌, 죽음으로부터 진실로 또는 진실로부터 죽음으로 옮겨 가는 축 속에 존재합니다. 나는 죽음의 대체물은 삶이 아니라, 오히려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음의 무기력과 공백을 가로질러 우리가 되찾아야 하는 것은 삶의 잃어버린 기미가 아니라, 진실의 세심한 펼쳐짐입니다. ---pp.32,33 이곳에서 우리는 또 한 번 글쓰기가 말하기와 아주 다른 것임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더 이상 얼굴을 갖지 않기 위해, 자신의 글쓰기 아래 스스로를 묻어 버리기 위해 글을 씁니다. 우리는 우리의 주변에, 곁에, 바깥에 있으며, 종잇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재미없고 지루하며 근심으로 가득 차 있으며, 타인들에게 노출되어 있는 이 삶이, 우리 눈앞에 있고 우리가 그 주인인 이 작은 직사각형의 종이 속으로 서서히 스며들어 가도록 하기 위해 글을 씁니다. ---p.53 |
푸코와 문학평론가 클로드 본푸아,
글쓰기를 말하다 “글쓰기란 본질적으로, 그것을 통해 그리고 그 결과로서, 내가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무엇인가를 찾을 수 있게 해줄 어떤 작업을 감행함으로써 실현됩니다. 내가 하나의 연구, 한 권의 책, 또는 또 다른 무엇이든, 어떤 것을 쓰기 시작할 때, 나는 그 글이 어디로 갈지, 어떤 곳에 다다르게 될지, 내가 무엇을 증명하게 될지, 정말 알지 못합니다.”(본문 33쪽)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알기 위해 글을 쓴다고 한 푸코의 글쓰기론. 철학자 푸코와 문학비평가 클로드 본푸아가 나누는 대담을 통해 푸코의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듣는다. 이 책은 1968년 여름과 가을에 걸쳐 문학비평가 클로드 본푸아와 나눈 10여 차례의 대담 중 첫 번째 것으로, 이 시리즈 대담은 미셸 푸코 센터의 소장을 지낸 역사가 필립 아르티에르의 편집을 거쳐 그의 해설을 달고 2011년 파리의 ‘고등연구’(Hautes Etudes) 총서의 한 권으로 출간되었다. 글쓰기의 즐거움과 어려움 당연한 말이지만 글쓰기와 말하기는 다르다. 대담에서 말을 함으로써 “글을 쓰며 보호하려고 하는 모든 진지한 것들을 흩트려 놓고 있다”는 푸코 자신의 말에서 우리는 글쓰기와 말하기 관계에 대한 푸코의 통찰을 본다. 책 제목이 ‘상당한 위험’이 된 이유 역시 이 대담이 ‘글쓰기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기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곳에서, 우리는 글쓰기라는 비밀스럽고 어려우며 조금은 위험한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는 푸코의 말은, 반대로 풀자면 말하기의 가능성이 회복되면 글쓰기의 가능성은 물러날 수 있다는 말이다. 글쓰기와 말하기 사이에는 어떤 양립 불가능한 지점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푸코는 스스로에 대한 역설적인 면을 지적하며, 이 대담에서의 말들이 다시 글로 출판되는 것에 약간의 두려움을 느낀다고 밝힌다. 하지만 글쓰기는 푸코에게 즐거움이기도 하다. “어디에서 온 것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해서 우리에게 부과된 것인지도 모르는 이러한 의무에 복종한다는 것, 의심의 여지 없이 나르시시즘적이며, 당신을 짓누르며 사방에서 당신을 압도하는 이 법에 복종한다는 것, 이것은 다름 아닌 글쓰기의 즐거움입니다.”(본문 55쪽) 어떤 것의 진실일 무엇인가를 드러내는 ‘진단으로서의 글쓰기’를 말하며, 현존하면서도 동시에 잘 보이지 않는 것, 자신과 타인들 간 담론의 거리를 측정하고 위치 짓는 것, 진실의 펼쳐짐을 드러내는 것이 곧 자신의 글쓰기라 밝히는 푸코. 그는 글쓰기를 죽음, 익명, 빈 공간 등의 개념과 연결시킴으로써 그 지점에서 파생되는 글쓰기의 즐거움과 의무에 대한 논의로 우리를 이끈다. 상당한 위험은 어디에 있는가, 지식의 고고학과 권력의 계보학 사이 『상당한 위험』은 글쓰기에 대한 푸코의 다성적인 사유뿐만 아니라, ‘지식의 고고학’에서 ‘권력의 계보학’으로의 이행에 관한 예비적 단서 또한 제공한다. 1968년 여름과 가을에 이루어진 이 대담은 1966년 『말과 사물』을 발표한 푸코가 1961년 『광기의 역사』 이래 유지해 오던 텍스트/이미지, 문학/미술, 언표가능성/가시성 사이의 ‘이중의 놀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마지막 텍스트, 혹은 반대편에서 바라보면, 니체적 진단(diagnostic)에 대해 말하는 첫 번째 텍스트이다. 이 대담은 이러한 이중의 측면에서 지식의 고고학에서 권력의 계보학으로의 이행을 보여주는, 그러나 지식의 고고학에 조금 더 가까운 텍스트이다. 이 대담이 푸코가 ‘지식의 고고학’이라 부르는 시기의 마지막에 위치한다는 것(『지식의 고고학』의 1967년 초고와 1969년 출간 사이), 그리고 무엇보다 이 대담이 이루어진 1968년의 여름과 가을이 프랑스를 포함한 동시대 유럽의 모든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68년 5월 혁명 직후라는 시기에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68혁명 이후 프랑스의 억압적 상황에서 푸코가 집중한 것은 회견과 언론 등에서 나타나는 ‘말하기 권력’의 전복이었는데, ‘글쓰기를 말하는’ 이 위험한 대담은 그 68혁명 직후의 일이기 때문이다. 에피스테메를 언표로 대치하며 언표의 조건과 한계를 살피는 작업을 수행했던 『지식의 고고학』은, 1967년 초고로부터 1969년 출간을 거치며 구조주의적 함축을 갖는 언표 개념을 검토하고 파기했으며, 이를 대체하는 ‘담론’ 개념을 등장케 했다. 구조주의에서 니체주의적 담론으로 넘어가는 중간시기 1968년, 우리는 이 대담 『상당한 위험』을 통해 푸코 사유가 속한 위치에 대한 비교적 정확한 좌표를 확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