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의 탐정소설은 엄밀히 말하면 세 편이고, 넓게 보더라도 다섯 편밖에 안 되기 때문에 한때의 변덕이고 취미라고 간주하는 것은 일견 타당하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에세이나 평론까지 포함해서 연대순으로 나열해보면 탐정소설을 향한 포의 애정은 결코 일시적인 변덕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대표적인 문학론인 「구성의 철학?을 보면 이런 생각이 더욱 명료해진다. 「구성의 철학?은 표제가 다소 거창해서 그렇지 실제로는 포가 신봉하는 소설과 시의 창작 요령을 기술한 후 자신의 시 「까마귀?를 예로 구성 과정을 설명한 글에 불과하다. 이 글에서 포는 독창성을 중시한다. ‘효과’를 냉정히 고찰해야 하며 대단원에 대한 전망이 명확해야 작품을 시작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 p.9, 「탐정작가로서의 에드거 앨런 포」
고딕 소설의 여력이 쇠퇴하지 않은 시대에 태어나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작품에 영향을 받았던 포가 돌연 탐정소설이라는 전대미문의 문학 형식을 발명한 것은 아무리 경탄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만약 포가 탐정소설을 발명하지 않았더라면 콜린스나 가보리오는 몰라도 코난 도일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체스터튼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이후의 훌륭한 작가들도 탐정소설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탐정소설을 쓴다 해도, 예를 들어 디킨스처럼 계통이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형식의 탐정소설은 금세기에도 탄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어쩌면 1949년 현재까지도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pp.20-21, 「탐정작가로서의 에드거 앨런 포」
“… 모르그 가에서 벌어진 살육의 범인이 당신이 아니라는 건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어떤 방식으로든 거기에 연루되어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제 얘기를 들었다면 아시겠지만, 저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정보를 얻고 있습니다. 당신은 상상도 못 할 방법이지요. 당신에게 벌어진 일은 불가피한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책임질 것이 전혀 없습니다. 감쪽같이 도둑질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도 않았습니다. 당신은 아무것도 감출 게 없습니다. 감출 이유가 없지요. 하지만 당신에게는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털어놓을 의무가 있습니다. 어느 무고한 사람이 지금 그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되어 있고, 당신만이 진짜 범인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 pp.146-147, 「모르그 가의 살인」
“이제부터 우리는 이 비극의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시선을 옮겨볼 걸세. 이런 경우에는 방계를 완전히 잊고 직계에만 조사를 한정하는 오류가 심심찮게 벌어지거든. 모든 증거와 심리를 오로지 사건과 직접 연관 있어 보이는 부분에만 제한하는 건 법정의 오래된 악습이야. 누적된 경험이 여태까지 보여줬고, 정확한 사유가 지금도 계속 보여주고 있다시피, 진실은 대부분(혹은 거의 전부) 그것과 별 상관없어 보이는 곳에서 발견된다네. 현대 과학이 보이지 않는 것들을 계산에 넣기 시작한 건 바로 이와 동일한 원칙을 따른 것일세(물론 완전히 동일한 것은 아니겠지만). 지금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이해가 안 될 거야. 인류의 지성사는 대부분의 위대한 발견들이 중심 주제의 바깥에서 부수적으로, 혹은 어쩌다 보니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어김없이 보여준다네. 앞으로 계속 나아가고 싶다면,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새로운 것이 발명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어쩌면 그럴 가능성이 더욱 크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하지.”
--- p.254, 「마리 로제의 불가사의한 사건」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기교로 사건을 생생하게 전달하더라도 예술가의 눈에는 어딘가 어색하고 부족해 보이게 되어 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일정 수준의 복합성,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각색이고, 나머지 하나는 일정 수준의 암시성, 즉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는 의미의 저류이다. 특히 후자는 예술 작품에 (흔히 쓰이는 말로 표현하자면) 풍성한 양념을 제공하는데, 사람들은 간혹 이 양념을 주재료라고 착각하곤 한다. 의미의 암시가 과잉되기 시작하면 저류는 상류로 넘쳐흐르고, 시는 (따분하기 짝이 없는 부류의) 산문이 되어버린다. 이른바 초월주의 시인들이 자주 저지르는 실수다.
--- p.497, 「구성의 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