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침처럼 믿고 따르는 가설이 불합리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않고서는 삶 속에서 유기적이고 열정적이며 복잡한 관계를 구축해 나갈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문화적 혼란 상태는 절대 사소하지 않기 때문이다. 연일 쏟아져 나오는 멋진 상품이나 진심을 가장한 광고 문구, 괜스레 어려운 말을 지껄이는 전문가들의 화법과 페이스북의 자극적인 전개, 그리고 노래 가사와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그램 속 대화를 통해 우리는 승리의 언어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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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상에서는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삶에 실망한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런 메시지가 독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우리의 인간성 자체를 독이라고 여기며, 지극히 인간적인 욕망조차 외부의 도움을 받아 치료해야 할 일종의 병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자존심과 자부심과 분노는 개인적인 실패로 간주되고, 이는 우리가 자율권과 깨달음의 길에서 얼마나 멀리 벗어났는지를 보여주는 표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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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과 생활방식을 상상해야 한다. 빛나 보이지만 절대 오지 않을 피상적인 미래를 거부하고 현재의 불완전한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 배워온 것과 달리 우리는 영원히 축복받은 삶을 살지도, 영원히 저주받은 삶을 살지도 않는다. 축복을 받을 때도 있고 저주를 받을 때도 있으며 그 중간 어딘가에서 평범하게 살아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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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쾌활해 보일 때가 많다. 하지만 영 집중하지 못한다. 끊임없이 내 숫자들에 정신을 빼앗긴다. 그리고 때로는 소셜 미디어의 이중적인 캐릭터 인형들과 함께 천천히 미쳐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 인생은 스쳐 지나듯 흘러가지만 우리는 눈치 채지 못한다. 우리는 화면의 의미 없는 숫자들을 얻는 대가로 삶의 모든 것을 내주고 있다. 그냥 사라져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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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판타지는 식도락을 추종하는 집단에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부유층 구성원들이 새로 유입되면서 더욱 세련되고 복잡해졌다. 식도락 문화는 그 특유의 자기만족적 조야함에도 불구하고(열정적인 식도락가들은 “나는 그저 음식을 진심으로 사랑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인류 대부분이 그런 열정을 똑같이 갖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듯하다) 병에 담긴 생수의 인기가 끝나자마자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광풍을 불러왔다. 식도락가들은 단언한다.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또는 “살기 위해 먹지 말고, 먹기 위해 살라!”라고. 이런 구호는 대중을 뒤흔들어 가상의 단식투쟁에서 빠져나오게 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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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을 소비자나 상품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가치와 인기에 연연해 무기력하고 불안해하는 대신, 자신의 느리고 끈기 있는 발전 과정을 즐겨야 한다. 어떤 불가항력에 의해 신의 경지에 오르든 오르지 못하든, 우리가 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런 씨앗들을 세상에 심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들에게 말해주어야 한다. 이미 중요한 존재임을,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 실은 서서히 펼쳐지는 불가사의임을, 그리고 대수롭지 않은 선택과 너그러운 행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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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남들 앞에서, 직장에서, 심지어 사생활에서조차 서바이벌 연애 프로그램 〈배첼러(The Bachelor)〉에 출연한 참가자들이라도 된 양 공손하게 활짝 웃어야 하지 않는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신비롭고 탐스러운 것을 손에 넣게 되리라는 일말의 희망을 부여잡고서 말이다. 이제 우리는 이미 행복하다는 듯 미소 짓고 있어야 나름 행복한 결말에 이를 수 있다. 미소 짓기를 거부하고 타인과 합의하지 않으며 예의 바르게 행동하지 않는 태도는 자신이 까다로운 사람이며 불행해져도 상관없다는 뜻으로 해석되고 또한 주변인과 갈등을 겪으며 실패를 반복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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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에 꾸준히 등장하는 무자비한 남자들을 측은히 여김으로써 무엇이 남자를 강자로 만드는지, 무엇이 남자를 우러러보게 만드는지, 또 무엇이 남자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만드는지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관념은 알게 모르게 달라졌다. 그저 괜찮다는 착각 속에 살면서 피해자들의 존재가 거북하고 불편해지면 눈앞에서 치워버리면 그만이라고 믿고 싶게 만들고, 무모하게 원칙을 저버려도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된다고 믿고 싶게 만들었다. 이런 문제는 신경 쓰지 않는 것이 편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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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에 가장 눈에 띄는 러브스토리가 부에 대해, 그리고 환경에서 비롯된 불안에 대해 교훈을 주는 기능을 할 때, 우리는 우리의 문화적 DNA에 암호처럼 각인된 어떤 본질적인 병증이 있지는 않은지 의문을 가져야 한다. 사람은 자신의 위상이 소수의 상류층 또는 신격화된 인간에 이를수록 더 큰 보상과 만족을 원한다. 이것이 바로 가질 수 없기에 더 가치 있는 목표물, 즉 데이지 뷰캐넌을 개츠비가 목표로 삼은 이유다. 하지만 개츠비는 결국 자신의 자아 창조 능력에 압도당하고 만다. 드레이퍼가 그랬듯이 하찮은 존재, 즉 타인의 행복을 위한 그림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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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당신은 본래의 자신을 능가할 수 없다.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바로 이것이 로맨스다. 때로는 끊임없이 살아갈 방법을 탐색하며 완전히 녹초가 된 자신을 보고 비웃는 것, 바로 이것이 로맨스다. 자신의 성적 매력이 대단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누군가 한 사람에게는 여전히 매력적임을 느끼는 것, 바로 이것이 섹시한 것이다. 아마도 서로에 대한 긴장감은 불신이라는 어중간한 상태에 자리를 내줄지도 모른다. 또한 사랑의 증거를 찾는 노력은 함께 난관을 헤쳐나가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찾는 노력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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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안의 믿음은 빨간 하트 5천 개에 비할 바가 아니다. 나는 그 믿음을 맛보고 싶다. 그것을 굳은살 박이고 더러워진 내 손으로 느껴보고 싶다. 나는 내가 이 일을 할 운명이었음을 알고 싶다. 나는 뭔가 크고 멋진 일을 이뤄낼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은 나다. 이걸 큰 소리로 말해도 쑥스럽지 않다. 나의 교향악은 지금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그 절정은 무엇도 대체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고 짜릿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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