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전나무에는 금빛 은빛 사과가 가득 매달려 있었다. 가지마다 설탕 발린 아몬드와 알록달록한 사탕, 그리고 그 밖에 온갖 종류의 맛있는 먹을 것들이 마치 꽃송이나 꽃봉오리처럼 열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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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는 호두까기 인형의 빠진 이들을 주워 모았고, 다친 턱에는 자기의 옷에서 떼어 낸 예쁜 하얀 리본을 묶어 주었다. 그러고는 놀란 듯 아주 창백해 보이는 이 작고 불쌍한 남자를 아까보다 더 조심스럽게 손수건으로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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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마리는 말을 다 끝마칠 수가 없었다. 마리가 드로셀마이어라는 이름을 대자, 친구인 호두까기 인형이 아주 심술궂게 입을 실쭉거렸기 때문이다. 또한 두 눈에서는 초록빛의 가시 같은 섬광이 번쩍였다. 그러나 마리가 소스라치게 놀라려는 순간, 충직한 호두까기 인형은 다시 슬프게 미소 짓는 얼굴로 마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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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때 난로 뒤에서, 의자 뒤에서, 장식장 뒤에서, 사방에서 소리를 죽여 나직하게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속삭이며 달그락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는 사이에도 벽시계는 점점 더 크게 덜거덕덜거덕 소리를 냈지만, 시계추를 움직여 시간을 알리지는 못했다. 마리가 쳐다보니, 금을 입힌 큰 올빼미가 날개를 축 늘어뜨려 벽시계 전체를 덮으며 그 위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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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는 눈을 크게 뜨고 드로셀마이어 대부를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왜냐하면 대부가 다른 때와는 아주 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대부는 평소보다 훨씬 더 못생겨 보였으며, 마치 줄 달린 인형처럼 누가 잡아당기는 듯이 오른팔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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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궁정 점성술사가 별자리에서 읽은 대로 되었지. 이제 갓 수염이 난 청년들이 구두를 신고 와서는 순서대로 이와 턱뼈가 으스러지도록 크라카툭 호두를 깨물었지만, 공주에게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했어. 그리고 그 청년들은 반쯤 기절한 상태로 그곳에 불려와 있던 치과 의사들에 의해 실려 나가면서 탄식 섞인 목소리로 말했어. ‘그건 정말 단단한 호두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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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염둥이 마리야, 너는 나나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있단다. 내가 아니라 너, 오직 너 혼자만이 호두까기 인형을 구할 수 있단다. 네 뜻이 변치 않도록 마음을 단단히 먹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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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으로 펼쳐진 신비로운 작은 숲에서 흘러나오는 아주 달콤한 냄새가 호두까기 인형과 마리를 감쌌다. 어두운 나무 잎새에서는 밝은 빛들이 반짝거리며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금빛 은빛 열매들이 화려하게 채색된 줄기에 달려 있고, 그 줄기들과 나무둥치가 리본과 꽃다발로 장식되어 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솔솔 부는 미풍처럼 오렌지 향기가 살랑대는가 하면, 줄기와 잎사귀에서는 솨솨 하는 바람 소리와 금장식들이 타닥타닥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 p.134
“대부님은 그런 것을 결코 만드실 수 없을 겁니다. 오히려 슈탈바움 양 자신이라면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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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까기 인형은 작은 손으로 또 한 번 박수를 쳤다. 그러자 장미 호수가 더 힘차게 소리 내며 출렁거렸고, 물결은 더 높이 찰싹였다. 그리고 마리는 물결 위로 조가비 배 한 척이 먼 곳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이 배는 태양처럼 찬란하게 번쩍이는 화려한 보석으로 만들어졌는데, 황금빛 돌고래 두 마리가 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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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는 호두까기 인형의 말소리가, 아니 절구 소리마저도 점점 더 멀어지고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이어 마리는 은빛 장막이 마치 가느다란 안개구름처럼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 속에는 공주들, 시동들, 호두까기 인형, 심지어 마리 자신까지 떠돌고 있었다. 아주 이상한 노랫소리와 붕붕, 윙윙대는 소리가 들려오다가 먼 곳으로 사라져 갔다. 이제 마리는 솟구치는 물결을 탄 듯 붕 떠올랐다. 점점 더 높이, 더 높이, 더 높이, 더 높이, 더 높이…….
--- p.154
“오, 경애하는 나의 슈탈바움 양, 그건 피를리파트 공주가 아니랍니다. 장미 물결마다 그렇게 사랑스럽게 미소 짓고 있는 건 바로 당신이랍니다. 당신 자신의 귀여운 얼굴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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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라에서는 어디에서나 크리스마스 숲과 투명한 아몬드 설탕 과자 성들, 요컨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신기한 것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것들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고 있기만 하다면 말이다.
--- p.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