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한 8년은 내게 몇 가지를 가져다주었다.
늘어나는 근육만큼 탄탄해진 몸과 그 사이 쌓인 운동부심, 건강, 깡다구, 그렇게 에피소드. 그 시간 글감이 되기에 충분했으며, 소재가 도처에 널리고 깔렸는데 굳이 쓰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다. 삶 일부인 운동을 글로 써 보기로. “헬스장 사람들”이라는 진부하지만 구수한 제목과 함께!
그리고 오늘은 출발을 예고하는 첫 자리다. 몸과 더불어 쓰는 근육도 늘어나는 내가 되길 바라며, 나에게 건투를 빈다.
--- 「들어가는 글」 중에서
힙 키우려면 엉덩이를 써야한다. 어깨 쓴다고 힙이 자라진 않으니까. 머리가 자라기 위해 야한 생각을 해야 하고, 하늘을 봐야 별을 따는 것과 같은 이치다. 때문에 엉덩이만 방실방실 부각되는 자세가 주되다. 예를 들면 스쾃할 때 엉덩이 뒤로 쭉 내밀거나, 덩키 킥할 때 엉덩이 왔다 갔다 하는 거. 그 날도 신나게 터는 중이었다. 동작마다 오는 자극에 제대로 쪼고 있음을 느끼며, 우리 헬스장 엉짱은 내가 되겠다 소리치며, 중력을 거슬러 탄력에 힘쓰고 있는데 낯선 눈길 하나가 들어왔다. 대단히 열심히 하는구나,의 시선만은 아니었다. 감으로 안다. 악으로 버티는 작은 나 말고, 움직이는 내 엉덩이를 대견히 여겼음을. 한 남자 회원 벤치에 앉아 엉덩이에 꽂힌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운동하러 와서 운동하는 사람 처음 보나요?
당신의 시선 유쾌하지 않음을 나 또한 감으로 내보였다. 보지 마시라, 힙 운동 중이다, 당신이 목표한 부위 운동 열심히 하시길 바란다. 그러다 내가 남탕에 있음을 새삼 인지하고, 하던 스쾃을 마저 한다. 남탕에 들어 온 여자는 희소한 존재긴 하니까.
--- 「2. 스쾃하는 엉덩이 처음 보시나요?」 중에서
신뢰할 것은 오직 거울과 옷과 브라다.
거울은 나를 반영한다. 타이트한 운동복 입고 있으면 더욱 적나라하게 나를 비춘다. 좀 빠졌네, 좀 쪘네. 헬스장은 사방이 거울이라 피할 방법도 없다. 거의 매일을 들러 찌고 빠지고를 체크한다. 여리여리 길쭉한 몸매는 못 되어도 이만하면 됐다. 그언(건)강하다. 옷이야 늘 정직하다. 딱히 세탁기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갑자기 작아졌달지, 훌렁훌렁 쉽게 들어가거나 한 뼘이 남는달지. 체감, 몸으로 어떤 감각을 느끼는 건 이때 아닐까 싶다. 아주 더럽거나, 아주 가뿐한 기분을.
브라는 차는 여성만 알 수 있는 느낌이다.
벨트마냥 뭘 둘러 에워싸야 하여 느낄 수 있는 특정 체감이다. 아침에 눈 떠 매일 하는 짓이 둘러싸 채우는 일인데, 나의 경우 여기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 쪘다, 썅.
오늘 브라가 걸쳐있는 등라인 주변으로 끼임이 느껴진다.
브라 살에 겹친 등구리 살 때문인 것 같다. 한 손을 등 뒤에 대어 본다. 얼마나 삐져나왔는지 손으로 느껴본다. 브라 라인을 기준으로 볼록, 볼록 한 지방이 만져진다. 예감은 왜 틀린 적이 없는지, 젠장. 영락없이 살 쪘다. 팔목에 잡히는 지방감도 말해준다.
--- 「브라가 건네는 말」 중에서
걔가 나를 늙은 여자 취급하는 사이, 나는 나보다 동생인 그를 한결 같이 존경했다. 선생 대접을 잊지 않았다. “선생님” 소리를 놓지 않았다.
사실 우기는 밑밥이다. 얘랑은 썸도, 쌈도, 된장도 없다. 다만 트쌤 노릇 하려는 이 친구 덕에 오늘 이야기가 전개 된다. 어느 수업 날이었다.
“누나! 주말에 뭐해요?”
(뭐야 얘. 볼꼴 못 볼꼴 서로 다 봐놓고, 작업?)
“왜요? 이유부터 말해 봐요.”
“주말에 같이 운동하고 저녁이나 먹자고요.”
“밥? 밥 먹고 싶어요?ㅋㅋ”
“사실은. 누나! 소개팅 할래요?”
“네? 뭔 소개팅이에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됐어요. 안 해요.”
“왜요! 함 해봐요! 진짜 좋은 사람이에요.”
“됐어요ㅋㅋㅋㅋ 안함!”
“알겠어요. 누나! 그럼 나랑 밥이나 먹어요!”
--- 「헬스장도 남녀가 만나는 곳이라」 중에서
그렇게 약 2달을 살아냈다.
우선 사람을 끊었다. 단절과 동시에 먹으며 소통하는 즐거움을 잃었다. 대부분 약속은 3달 뒤로 미루었고, 이 기간이 겁나 쓸쓸하다는 나에게 “원래 바디 프로필 찍는 과정이 외로운 거 에요. 몰랐어요?”라며 진정시키는 선생이다. 뱉은 “오케이 콜!”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자발적 절교를 외친 뒤. 출근을 하고, 때로 출근 전 새벽 운동을 하고, 퇴근 후 운동을 하고, 집에 가 닭 찌찌와 고구마를 씹었다. 점심 메뉴로 샐러드를 찾았고, 심하게 배가 고파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 때면 편의점에 들러 간단히 바나나 사먹는 사치를 부렸다. 생에 가장 맛있는 바나나였다. 먹는 게 부실할수록 힘이 달리기 시작했다. 때로 무게 들다 정신을 놓기도 했는데, 그럴 때 마다 지난한 과정을 수번은 더 거친 트레이너 선생과 선수에게, 그들의 다부진 정신력을 향해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하여튼 해보지 못했던 경험을 지난 두 달에 걸쳐 다양한 모양으로 해보게 되었다.
그렇게 3분의 2를 보냈다.
근육을 만들고 지방을 덜어낸다는, 몹시 심플한 고통으로 남은 1달만 기다리던 내게. 지난 두 달을 무색하게 만든 이가 찾아왔다.
“COVID19,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생한 신종 바이러스에 의한 호흡기 감염질환.”
“코로나 특보입니다.”
마침 두 달의 근육노동과 불충분한 영양섭취로 면역체계에 위기를 맞이한 나는, 지난 8주의 수고를 없던 일 하더라도 바이러스로부터 나를 지키기로 한다.
--- 「바디프로필 시도와 실행미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