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은 근대법의 가치에 충실한 사람이다. 법 집행의 공정성은 특권적 예외를 두지 않는 데에서 출발한다. 그 대상이 이명박, 박근혜, 최순실 등 권력을 가진 또 다른 누군가라 하더라도 기준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최순실이 2021년 5월에 〈문화일보〉에 독자투고 형식으로 게재한 ‘딸에게 보낸 편지’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내용인즉슨, 엄청난 사태를 겪으며 고통을 겪은 딸을 위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순실은 딸이 입시비리로 수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상처를 준 것은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사실을 전략적으로 감춘 채 자기 편 결집을 시도하는 것이다. 한국인이 정 (情)에 매우 약한 사람들임을 노린 전략적 메시지다. 공교롭게도 최순실은 윤석열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렇다고 적폐수사의 ‘구원(舊怨)’이 곰삭지 않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한때 “가는 9수할 정도로 머리가 나쁘다”고 윤석열을 비판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권주자로서의 행보가 본격화된 이후 “지켜보자”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알려진다. 옥중의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는 “안철수, 유승민, 홍준표보다 윤석열이 깜”이라며 자신을 면회 온 친박 정치인에게 한 수 가르쳤다고 한다. 형기를 마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측근을 통해 윤석열에게 소회를 전달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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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에게 가장 민감한 현안은 역시 ‘장모 문제’일 것이다. 대선 정국에 몸을 싣게 되면 거의 끝까지 따라다니는 네거티브 소재가 될지도 모른다.
물론 모든 네거티브는 들어보지 못한 이슈가 터졌을 때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법이다. 하지만 인간은 반복되는 언어와 메시지에 영향을 받는 존재기도 하다. 따라서 법률적 진실이 아니라 정치적 진실로 작동하게 될 장모 문제를 두고 윤석열이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보통의 검사들처럼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에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말하거나, 정치인들처럼 “가짜 뉴스”라고 밀어붙이다가는 큰코다칠 것이다. 21세기의 유권자들은 완전히 과학적이고 정밀한
설명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자신의 의심을 해소할 만큼의 설명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윤석열의 처가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안인 것 같으면서도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대부분의 문제는 윤석열이 김건희와 결혼하기 전인 2012년 이전에 터진 것들이다. 가족이 되기 전에 생긴 문제들까지 책임지라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니냐고 항변할 법도 하다. 남달리 많은 재산을 축적한 가족에 대한 시기나 질투 아니냐고 꼬집을 수도 있다. 하지만 리더는 공공재 아닌가. 그의 능력 못지않게 인간성과 주변의 평판 관리가 매우 중요한 경쟁력 요소다.
그래서 윤석열의 삶을 이야기할 때 장모 문제는 피해서는 안 되는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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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에게는 큰 테제가 있다. 법을 엄격하게 지킨 검찰총수였다는 사실과 별개로, 어떤 상황에서든지 공정과 상식을 추구한다는 상징자산이 있다. 소속 정당이나 선거 조직 같은 자원이 없는 그가 미디어에서 끊임없이 거론되고 유력 대선주자 1위로 떠오른 것도 결국 상징자산 덕분이다.
그런데 장모의 치부(致富) 과정은 과연 공정하고 상식적이었는지 물음표가 붙을 수 있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집 한 채 마련하기 힘든 사람들에게는 위화감이 들 수밖에 없는 이력이다. 정대택이나 안소현과 같은 브로커들에게 속아 넘어간 것도, 결국 남들보다 더 효율적인 방식으로 부동산을 낙찰받으려던 욕심이 원인 아니냐는 지적이 가능하다.
다만 이 과정을 사위가 일일이 알았는지는 의문이다. 친부모의 재테크 과정을 모르는 자식들도 많은데, 처가의 사정까지 어찌 알겠는가. 게다가 윤석열 본인은 통장잔고 1억 원도 없던 사람이었다. 수십억, 수백억 원대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처가의 모습은 원래의 윤석열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정진석 의원은 윤석열과의 면담 직후 “장모는 타인에게 10원 한 장도 피해를 준 적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풍자화가 가능한, 또 다른 논란거리를 만들었다. 정말 윤석열다운 처신을 고려한다면, 장모 문제는 정면돌파해야 한다. 마냥 ‘정치 공작’이라거나 ‘어거지 수사’라고 강변해서도 안 된다. 물론 “부인을 사랑한 것이지 장모를 사랑한 것은 아니다”라는 이준석의 말도 나름 합리적인 견해다. 앞으로 윤석열 본인의 책임 있는 해명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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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측근을 통해 들은 이야기다. 2012년 대선 당시 윤기중, 윤석열 부자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신촌 유세 현장에 간 적이 있다고 한다. 같은 해 윤 씨 집안 사람들 상당수가 박근혜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고 한다. 윤석열은 “나는 원래 보수주의자”라고 주변에 말해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깨어 있는 시민을 보루라고 주장했지만, 윤석열은 법이야말로 최후의 보루라고 강조한다. 법치주의자는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추구한다. 헌법의 틀을 흔들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은 우파가 확실해 보인다. 자유시장과 법치주의를 신념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좌파라는 규정이 가능할 법하지는 않다.
국정원 여론조작 수사 당시 주변인들은 윤석열을 많이 말렸다고 한다. “이미 결과가 나온 선거인데 검찰수사로 국정원을 뒤흔드는 것이 맞느냐”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당사자의 신념은 확고했다. “국가안보 자원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는 지극히 보수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 같으면 닉슨 행정부 치하에서 벌어진 ‘워터 게이트 사건’보다 더 크게 비화할 만한 일이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이었다. 우파 언론인 〈조선일보〉 역시 수사 자체의 당위에 대해서는 완전히 부인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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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말 검찰 원로들은 총장에게 ‘박근혜 구속 반대’ 의견을 냈다. 여러모로 다음 대통령에게 부담이 되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재판을 통해 형(刑)이 결정된 후에 대통령을 수감시켜도 늦지 않고, 설사 유죄가 확정된다 하더라도 정치적 결정을 통해 사면될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했다.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들어가면서 성역이 파괴되는 것과 비록 피의자이지만 민간인으로 활동하는 것과는 천양지차다. 19대 대선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태에서 박근혜 구속은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7년 3월 27일, 검찰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리고 3월 31일에 영장이 발부되었다. 김수남은 ‘운명’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윤석열은 일련의 흐름에 직접 관여하지도 않았고, 특검에서도 수사팀장으로 대기업 수사만 담당하는 상황이었다. 박근혜를 피의자로 만날 일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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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기 전 법무장관은 당시 윤석열이 ‘조국 낙마’를 건의했다고 주장했다. “어떻게 민정수석이 사기꾼들이나 하는 사모펀드를 할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는 것이다. “부부일심동체를 강조하며 정경심 교수가 사모펀드를 해서 문제가 있다면 그건 곧 조국 전 장관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말까지 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윤석열은 정반대의 입장을 내놓았다. 그는 박근혜 정부로부터 핍박받을 당시 조국으로부터 응원을 받았던 사람이다.
총장 임명 전후 검찰 인사에 대해서도 수차례 논의한 사이이기도 했다.
“인간이기 때문에 굉장한 번민을 했다.”
이것이 윤석열의 입장이다. 또 그에 따르면 박상기는 후임인 조국에 대한 선처를 문의했다. “여기서 그냥 사퇴를 하신다면 좀 조용해져서 검찰도 일 처리하는 데 재량이 생기지 않겠느냐”는 것이 대답이었다. 물론 박상기는 여기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다. 법적으로 지휘감독권을 갖고 있는 법무장관이 검찰총장에게 선처를 부탁할 일은 없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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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재판’의 정점은 인생 2모작 계획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었다. 야당의원이 검찰총장의 퇴직 후 진로에 대해 물었다. 이미 대선후보 여론조사에 지지율이 잡히고 있는 입장인데, 본격적으로 정치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뉘앙스가 담긴 질문이었다. 이미 국정감사 질의가 자정을 넘겨 그다음 날까지 이어지는 시점에 벌어진 일이었다.
“퇴임하고 나면 우리 사회와 국민을 위해서 어떻게 봉사할지 방법을 천천히 생각해보겠다.”
혹자는 이 발언을 계기로 윤석열을 향한 여권의 입장이 정리된 것 아니냐고 해석하기도 한다. 임기가 끝나면 현실정치에 뛰어들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몇 여권 인사들은 윤석열이 임기 중에는 정치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말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검찰수사가 정치적 행위가 된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하지만 언론이 규정한 윤석열의 ‘국감 정치’는 단순히 어떤 말을 했는지 아닌지 여부로 판가름 나는 것이 아니었다. 일찍이 박근혜가 강조했던 ‘전체적인 분위기’의 문제였다. 검찰 관료가 기세등등한 여당 의원들의 말에 눌리지 않고 꼬박꼬박 반박할 때부터, 이미 그는 위험한 존재였다. 정치인은 당장 닥친 일보다도, 이후에 일어날 사건의 불확실성을 더 깊이 염려하는 법이다. 윤석열을 눌러야 한다는 여당 의원들의 심리는 장래를 염려하는 과정에서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추미애는 루비콘 강을 건너는 윤석열에게 페이스북을 통해 메시지를 보냈다.
“검찰총장은 법상 법무부 장관의 지휘, 감독을 받는 공무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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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윤석열 현상의 반대편에는 조국 현상이라는 어마어마한 제사 공동체의 결집이 존재한다. 정권 재창출의 기로에 서 있는 여당 입장에서는 조국 현상을 전략적으로 이용할 것이냐, 아니면 그 흐름의 동력을 무시하고 국민의 마음을 끌 만한 새로운 기류를 만들 것이냐 고민할 수밖에 없다.
어떤 쪽을 택하든 윤석열을 누르지 않으면 민주당은 길을 낼 수가 없다. 유력 야권 주자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는 그는 이제 전술적으로 싸움을 걸어오는 여당을 향해 정치적으로 응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이전까지 전혀 해보지 않았던 일이다.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정치는 법처럼 정해진 질문에 답하는 게임이 아니다.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제대로 답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한국 정치사상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리더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아이디어를 참모나 보좌진에게 외주화하거나 남의 생각을 베끼는 경우가 많았다. 어쩌면 윤석열이 의회 정치인으로서 훈련받은 경험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큰 장점이 될지도 모른다. 눈치껏 말하고 쓰고 행동하는 집단 심리에 오염이 덜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게다가 그는 스스로를 벼랑 끝에 세움으로써 더 큰 기회를 얻어왔던 사람이다. 찰나의 이익에 매우 예민한 전형적인 정치인들과는 차별화되는 모습이다.
---「에필로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