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나는 아침에 눈을 뜨고 침대 옆 탁자에서 나를 기다리는 맛있는 커피 한 잔을 볼 수 있다. 한 걸음 떨어져 있으며 내가 그것을 만지지 않는데도, 어떻게든 그 자신을 나에게 드러내고 있다. 내가 그것을 본다(see)는 것이 어떻게 일어날까? 어떻게 시각 체계는 커피 한 잔의 이미지를 나의 인식이나 마음에 전달할까?
대답은 별로 간단하지가 않다. 매우 대략적인 물리적 이야기는 이렇다. 커피 잔에서 온 빛이 내 눈에 들어가고, 이 빛이 양 눈 뒤쪽에 있는 두 망막에 충돌한다. 그 다음은 생리학에서 배운 대로 두 망막이 전송하는 전기 신호가 시신경을 따라 내려가 시신경교차를 통과한다. 이 신호들은 뇌의 뒤쪽에 있는 소위 시각피질로 전달된다. 그런 다음 일종의 기적이 있다. 시각피질이 활성화되며, 나는 커피 잔을 본다(see). 심지어 내가 컵을 의식하고 있다(conscious)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내가 컵을 본다(see)는 말과 어떻게 다른지가 분명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1장 마음과 몸의 문제」중에서
심-신 문제의 역사에서, 평행론은 부분적으로 데카르트의 상호작용적 이원론이 작동할 수 없던 이유들에 대한 생생한 자각의 결과로 발생했다. 이원론은 상호작용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심-신 문제가 탄생했다. 평행론자들은 이원론에 전념했다. 그래서 무엇이 남았는가? 그들은 단지 이원론이 참이기 때문에 마음과 몸이 상호작용할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마음과 몸은 동시에―말하자면, 동기화되어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커피를 마시고 싶은 욕구가 마음에 일면 그 다음에 몸이나 몸의 일부가 나가서 커피 잔을 집는다. 그 다음 마음이 “충분해, 됐어”라고 자기에게 말하고, 몸은 더 이상 커피를 들이키지 않고 컵을 내려놓는다. 그렇다면 왜 몸은 정확히 그 순간에 그렇게 하는가? 마음은 어떻게 몸이 커피를 마시는 것을 멈추게 만들었는가?
---「2장 이원론적 심-신 이론들」중에서
게다가 마음이 뇌라는 주장은 또한 뇌는 마음이라는 주장과 동등한 것으로 드러난다. 왜냐하면 논리학자와 수학자들은 동일성을 ‘교환적(commutative)’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만약 a = b라면 분명히 b = a이다. 그러나 뇌가 정말로 실제로는 마음이라는 주장은 완고한 중추-상태 유물론자에게 호소되길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유물론(모든 것은 물질이다)보다 관념론(모든 것은 마음이다)을 더 시사하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3장 마음에 대한 물리주의적 이론들」중에서
차머스의 좀비에 대한 반론들 대부분은 좀비의 가능성에 대한 것이었으며, 추상적 가능성에 관한 정교한 고찰들을 전개했다. 좀비들은 가능한가? 그것들은 존재할 수 있을까? 만약 우리가 좀비들이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이는 물리주의에 호소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는 물리적 좀비는 의식이 없다고 가정하고, 또한 좀비의 의식 같은 것은 없기 때문에 좀비의 물리적 부분은 좀비의 의식에 책임이 없다고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만약 우리가 의식 없는 좀비들은 존재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이는 그저 물리주의를 가정하고 나서 반물리주의에 호소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으로 보인다.
---「4장 마음에 대한 반유물론」중에서
비복합과 복합 결속 양쪽 모두에서 언급한 곤란함은 소위 색과 형태, 또는 색과 소리를 다루는 뇌 영역들이 완전히 상이한 영역이라는 점이다. 색채 정보는 뇌 영역 V1, 1차 시각피질, V2, V4에서 처리되는 반면, 형태는 대상 처리 또는 형태를 다루는 외측 후두피질인 LOC에서 처리된다. 실제로 V1 활동은 LOC 활동에 의해 실제로 억제된다는 fMRI(기능적 자기공명영상)의 증거가 있다. 색채 정보와 형태 정보는 뇌에서 분리되어 있다. 그것들은 아마 다시 합쳐져야만 할 것이다. 이것은 두뇌의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그리고 그것들은 어떻게 올바른 방법으로 합쳐지기에 빨간 정사각형과 파란 원이 파란 정사각형과 빨간 원으로 바뀌지 않는가?
---「5장 과학과 심-신 문제」중에서
옳다. 사유가 연장으로 환원될 수 없음은 빨강이 장파장 빛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과 같다. 우리는 분홍이 연한 빨강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분홍이 연한 장파장 빛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이는, 빨강 색을 지닌 모든 것은 그것의 현상적 측면에서는 빨강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그것의 물리적 측면에서는 장파장 빛을 내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우리가 말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렇게 말하려면, 우리는 두 측면들 간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 준비되어 있어야만 할 것이다. 빨강은 어째서 특별히 장파장의 빛과 제휴해야만 하는가? 무엇이 연결 고리인가? 이중 측면론은 어떤 설명도 없이 존재의 모든 부분에서 심-신 문제를 재생산할 뿐이다. 범심론도 마찬가지이다.
---「6장 중립적 심-신 이론들」중에서
솔크 연구소(Salk Institute)의 마틴 굴딩(Martyn Goulding)과 그의 연구팀은 가벼운 접촉의 찌르거나 쏘는 느낌과 관련된 척수신경세포들은 모기 물림에 의한 것과 같은 (‘화학적인’) 가려운 통증과 관련된 신경세포들과 똑같은 세포들이 아니라는 놀라운 발견을 발표했다. 그것은 가려운 통증을 담당하는 신경 경로가 있다는 것이기에 만성 가려움증의 치료에 통찰력을 제공할 희망이 있다. 몹시 놀랍게도, 가려움에는 가벼운 접촉의 생리와 전혀 다른 그 자체의 복잡한 생리가 있다. 과학은 이런 종류의 방식으로 점점 더 감각의 생리에 대한 구체적 이해를 촉진하리라 기대된다. 그리고 궤양의 경우와 또 다른 감각 양식들의 다른 많은 사례에서도 이미 그렇듯이, 생리학과 심리학이 점점 더 가까워져서 결국에는 통합될 것이라 믿는다.
---「7장 중립적 일원론」중에서
어떤 것이 ‘순수하게 심적인’ 요소들인지에 대한 의견 차이는 확실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심-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그것들이 무엇이건 상호작용하는 요소들은 물리적 연쇄나 심적 연쇄에 배정될 수 있으며, 모든 요소들이 이런 특성을 갖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7장 중립적 일원론」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