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떠돌이처럼 살아가는 삶을 제법 즐기는 편이다. 그리고 지금은 강원도의 어느 조용한 도시에서 길가에 무심히 놓여 있는 작은 돌멩이처럼, 또는 강가의 둥그스름하고 작은 조약돌처럼, 아니면 낡은 시골 간이역 철도에 무심코 피어 있는 이름 모를 잡초 또는 그런 들꽃처럼 살아가고 있다. 사실 그렇게 살고 싶다.
--- p.4
나는 이 책에서 이런 것들을 정리하듯 적어보고 싶었다. 우선은 가장 먼저 ‘여행과 나’라는 것의 의미, 그리고 그것을 투과한 ‘나, 자아, 개인’이라는 것을 관통시켜 바라보게 되는 시선(視線), 그것으로 ‘여행’이라는 과제를 바라보며 적고 싶었다. 그런 속도와 내부의 걸음으로 여행의 길을 걷고 싶었다. 그런 ‘나’라는 존재에 좀 더 깊게 집중해 보는 것(어쩌면 우리에겐 ‘나’라는 존재가 유일한 현실일지도 모른다).
--- p.5
제법 먼 길을 떠나왔지만 무척 기쁘고 행복했던 그날 하루의 기분. 그 건조한 산들바람에 흩날리던 내 영혼의 기분.
삶의 기쁨과 행복은 분명 우리들 주변 매우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지만, 먼 길을 돌아다녀오는 순례의 정화(여과)작용을 통해, 그 가까운 곳의 기쁨과 행복을 비로소 내 삶의 것으로 깨달을 수 있고, 얻을 수 있다. 그것이 ‘순례(필그리미지)’가 갖고 있는 의미다.
그래서 우린 종종 길을 떠나야 한다. 무거운 일상의 반복과 주변에 화석처럼 쌓여 있는 먼지를 털어내고, 떠나야 한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되돌아와, 당신만의, 나만의 기쁨과 행복을 찾을 수 있다.
--- pp.73~74
하나의 긴 여행이 시작되고, 그 끝이 생겨난다. 모든 것이 그저 한철 부는 바람일 뿐일 수도 있다.
잠시 아릿하게 스쳤던 순간의 마음 같은 것. 순간은 영원하지 않다. 모든 것은 처음과 끝이 있다.
처음을 보았다면, 그 끝의 가장자리도 볼 수 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찾아오고, 떠난다. 다 제 갈 길을 가는 것, 제 갈 길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끝은, 또 다른 시작과 맞닿는다. 출구이면서 입구가 된다.
--- p.139
그래서 어느 날 문득, 우린 길을 떠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길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 마음이 드는 것인지 모른다. 그런 멍한 의문 같은 것들을 풀어내기 위해….
어쨌든 풀어내 보기 위해, 풀어내 보고 싶어서, 너무 무겁고 버겁게 느껴지는 삶의 무게를 좀 가볍게 하거나, 또는 너무나 얄팍하고 가벼운 삶의 무게를 조금은 묵직하게 하기 위해, 우린 길을 떠나게 된다.
--- p.148
나는 오물투성이의 바닷가 빈민촌 그 필리핀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물질적으로 풍요로운가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아주 보잘것없는 작은 것에도, 그 아이들은 무척 행복해하고 감사해한다. 그것은 나의, 우리들의 오랜 옛 기억과도 겹친다. 그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 속에서, 내 행복의 초점을 어디로 맞추어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 같은 것을 얻는다. 그리고 나는 나를 좀 더 잘 추스를 수 있게 된다. 나를 잘 추스를 수 있다는 그것이, 나는 좋다.
--- p.201
어쨌거나 하노이에는, 도시의 바쁨 속에도, 부족해 보이는 가난 속에도 그런 여유가 느껴지곤 한다. 지독해 보이는 생활력(베트남인들 특유의 영리함과 독함) 속에서도 그런 여유를 느끼게 한다. 그런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는 모습이 내 눈에는 보인다.
--- p.223
무언가를 천천히 즐길 수 있다. 이해할 수 있다. 시간을 둔다. 우린 무엇인가에 그렇게 천천히 다가갈 수 있다. 그럼으로써 현실의 표면 위에 자신만의 이상이 꽃처럼 여름풀처럼 서서히 자라나게 된다.
그렇게 긴 시골길을 바람처럼 나뭇잎처럼, 오베흐의 작은 길들을 걸었다. 파리의 근교로 잠깐 나와도 이렇게 완벽한 자연들이 펼쳐진다. 저 멀리 푸른 숲속으로 긴 열차가 지나고, 그리고 하루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저녁 시간쯤(하지만 프랑스의 여름은 아직 밝은 빛으로 쨍쨍하다), 나는 다시 오베흐 쉬르 우아즈 기차역으로 되돌아왔다.
--- p.276
프랑스의 동화 속 같은 시골을 걷는 것도 좋지만, 도시 파리를 걷는 시간 또한 행복하다. 그래서 파리를 걷고, 또 걷는다. 그리고 내가 입버릇처럼 따라 하게 되는 말, ‘걷는 사람에게 절망은 없다(자크 레다, 걷기를 무척 사랑했던 프랑스 시인).’
걷기는 많은 생각들(혹은 복합적인 감정들)을 정리해 주고, 일단 걷는 것만으로도 우울, 혹은 무력감 같은 부정적 상태가 개선되고, 기분이 좋아지고 상쾌해진다. 그리고, 그래서 육체적으로(또는 정신적으로) 자기 면역력이 좋아지기도 한다.
--- p.297
푸르른 초원, 허허벌판 위의 유목민(유랑인)이라는 인간 태초의 세계관을 통해, 그런 감각을 통해, 정착되어 있고 고정된, 제자리를 계속 맴돌아 표류하는 삶과 도시와 인간(자아)을 되짚어 볼 수 있다.
그런 과정과 음미의 시간 속에서 도시에 정착되어 살고, 어쩔 수 없이 뿌리내려진 그 삶과 자아(인간)를 찬찬히 둘러볼 수 있다.
그런 다른 각도와 거리(a distance)에서, 다른 공기 속에서 각자의 답(answer) 비슷한 것을 더듬어 볼 수 있다.
먼 여행길의 ‘내가’ 한국 서울에서 이리저리 부대끼며 살아가던 ‘나를’ 유심히 바라보곤 했다. 태생적인, 태어나고 자란 곳이지만 힘들었다. 어쩌면 그래서 힘들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거기 몹시 지친 내 모습이 보였다.
흔들렸고, 그 사이로 틈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 안으로 새로운 공간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 p.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