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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 다니는 별

걸어 다니는 별

시작시인선-0378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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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6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132쪽 | 210g | 128*208*9mm
ISBN13 9788960215603
ISBN10 8960215600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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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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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우리는


그때 우리는, 아무 데나 머리를 들이미는
하루살이 날벌레, 아무렇게나 튀어 오르는 철부지 땅강아지, 목이 꺾인 버러지 풍뎅이……,
물인지 불인지 따져 볼 겨를이 없었다

계속되는 밤, 밀려오는 땅거미
멀기만 한 새벽, 두렵지 않았다 타오르는 생명들, 뛰어내리는 청춘들……, 매일매일 최루탄 속으로, 백골단 속으로
포물선을 그으며 날아갔다 화염병으로, 사랑으로, 짱돌로

급하게 석유를 붓고, 불을 붙이지 않아도,
뿌지직 온몸이 타올랐다 숯이 되지 않아도, 재가 되지 않아도 좋았다 무엇이, 어떤 것이 되지 않아도
하루하루 가슴 벅찼다 그때 우리는.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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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봉의 열두 번째 시집을 원고로 읽는다. 때로 미소 짓고 때로 감탄한다. 시집에는 「그때 우리는」이나 「폭포」 같은 작품에서처럼 열정에 가득 찬 청춘의 행적이 들어 있고, 「구절초 이별」이나 「저녁 길을 가며」 같은 작품에서처럼 원숙한 깨달음의 경지가 형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주로 꽃과 나무와 별과 이웃 등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노래의 소재로 삼는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객지에서의 오랜 교직 생활을 마감하고 고향에 돌아와 텃밭을 가꾸며 자연에 감응하며 살아가는 시인 자신이야말로 이 시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나이 들어 낙향하는 것은 예전 선비들의 오랜 관행이었다. 젊은 시절 공직에 나아가 여러 임지를 떠돌다가도 때가 되면 물러나 귀향길에 오르는 것은 글 읽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로망이었다. 하지만 농촌공동체의 붕괴와 더불어 이제 우리 모두는 ‘고향 상실자’가 되었다. 오늘날 이은봉의 시들이 특별하게 읽힌다면 그것은 「근대 적응」 같은 작품의 예리한 역설에도 불구하고 그가 고향에 뿌리내린 건강한 삶을 확고하게 지키면서도 감수성의 바탕에 선비다운 고전적 감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은봉의 시들이 끊임없이 자연 풍경을 향하면서도 동시에 우국憂國의 정서를 감추지 못하는 것은 그가 한국 서정시의 가장 치열한 전통 위에 서 있음을 증명한다. 우리 시단으로서는 이 얼마나 귀한 자산인가.
칠순 가까운 노인의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은 예민한 감각과 섬세하기 그지없는 언어의 운용, 그리고 전진적인 역사의식을 가장 짧은 형식 안에 압축한 송곳 같은 시 「내일이여 역사여」를 읽어 보시라! “따스한 봄바람으로, 부드러운 봄볕으로, 은여우의 꼬리털로, 당신의 꽉 닫힌 가슴, 활짝 열어 젖히고 싶은,// 시여 내일이여 역사여.”
- 염무웅 (문학평론가, 영남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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