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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시대사 - 구약편

성서시대사 - 구약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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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6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332쪽 | 316g | 128*190*18mm
ISBN13 9791187295570
ISBN10 1187295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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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The Bible라고 하면 통상은 그리스도교의 성전(聖典)을 가리키며, 이것은 구약성서The Old Testament와 신약성서The New Testament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에 신약성서는 그리스도교 고유의 성전이지만 구약성서는 그리스도교 성립 이전의 고대 이스라엘 유대 민족이 지은 종교 문학의 집성이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유대교의 성전을 이루고 있다. 그리스도교가 이 유대교의 성전을 이어받아 자신들의 성서에 포함시킨 것은 그리스도교가 유대교를 모태로 해서 성립한 종교이며 거기에서 많은 사상을 계승했기 때문이며, 무엇보다도 구약성서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수많은 예언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구약성서의 또 하나의 초점을 이루는 예언서군(群)에 그 언어가 모여 있는 예언자들 또한 무시간적인 보편적 진리를 직접 고찰의 대상으로 한 인도나 그리스 철학자와는 달리, 파국으로 향하는 시대의 이스라엘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러한 역사의 운행의 의미를 밝히고, 동시에 도래할 ‘미래의 역사’를 가리킨 역사 해석자들이며, 크고 작은 15개의 책으로 이루어진 예언서(〈이사야서〉-〈말라키서〉, 단 〈다니엘서〉는 제외)는 각각의 예언자의 시대 배경과 역사적 상황에 관해 알지 못하고서는 거의 이해할 수 없다.

이처럼 구약성서 안의 대부분의 문서는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이스라엘 유대의 역사와 밀접하게 연관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여기에 구약성서를 이해하는 데 이스라엘 유대의 역사에 관해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가장 큰 이유가 있다. 이것은 또, 예를 들어 고대 인도나 그리스의 사상이나 문서를 연구할 때와 완전히 다른 구약성서 연구의 특수한 사정이 있다. 즉 구약성서의 경우, 이스라엘 유대 민족의 역사는 사상이나 문서 성립의 단순한 ‘전제’나 ‘배경’일 뿐만 아니라, 그 본질적인 내용,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 주제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모세 오경이나 〈여호수아기〉는 한 명의 저자가 단숨에 써내려 간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복잡한 편집 과정을 거쳐 단계적으로 발전해 온 것이고, 최종적으로 현재의 형태가 된 것은 바빌론 포로 생활(기원전 6세기) 이후의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족장시대라고 상정되는 시기로부터 보면 거의 천 년 가까이 후대의 일이 된다. 그 때문에 ‘구제사’의 이야기는 실제로 일어난 일의 정확한 기록이 아니라, 후대의 이스라엘인이 자신들의 조상이 체험했다고 믿었던 신앙의 내용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구약성서는 이집트 탈출을 당연하다는 듯이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공통 체험으로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이 가나안 땅 내부에서 잡다한 기원을 가지는 집단의 점진적 결합에 의해 비로소 형성되었다고 한다면, 당연히 ‘이스라엘의’ 이집트 탈출은 존재하지 않았던 셈이 된다. 그러나 이것은 이집트 탈출 전승 전체가 완전히 가공의 이야기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중에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을 형성하게 되는 여러 집단 중의 일부분이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과 그곳으로부터의 탈출을 체험한 뒤, 그 기억과 전승을 다른 집단에 전했다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집트 탈출 이야기의 세부에는 도저히 후대의 창작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정확한 역사적 정보가 포함되어 있고, 많은 연구자들은 이 전승에도 역사적인 ‘핵’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하비르라고 불린 사람들이 메소포타미아, 히타이트, 우가리트 등의 문서에서 ‘하비르’ 내지 ‘하피르’라고 기록되고, 게다가 앞 장에서도 서술했던 이집트 문서의 ‘아피르’라고 불린 사람들과 관련이 있다고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노예, 고용인, 용병, 산적 행위를 하는 약탈 집단 등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것은 특정 민족을 가리키는 호칭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종류의 사회 계층-즉 기성 사회 질서 내부에 포함되지 않고 법적 보호망 바깥에 존재하는 ‘무법자’ 집단-을 일반적으로 나타내는 개념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게다가 이 하비르/아피르라는 단어는 음운학적으로 ‘헤브라이인(이브리)’이라는 단어와도 통한다.

가나인인이나 주변 민족과의 싸움에 관해 이야기하는 〈판관기〉의 현재의 형태는 명백히 후대의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거기에 수많은 고대의 전승이 편입되어 있다는 것 또한 확실하다. 거기에서 묘사된 카리스마적 군사 지도자나 영웅들의 활약에 대한 전승은 이러한 힘든 싸움이 연달아 일어난 시대의 분위기 속에 태어났을 것이다. 다만 〈판관기〉의 편집자(이른바 신명기 사가, 7장 참조)는 가나안 정착과 왕국 성립 사이의 시기에 어떤 의미로든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한 사람들을 전부 획일적으로 판관(쇼페트shophet), 즉 ‘심판하는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그 역할에는 개별적으로 다양한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부족연합의 명칭은, 그것이 당초부터 야훼라는 신의 숭배를 중심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창세기〉 33:20 참조). 이스라엘이란 ‘엘 싸우시다’ 내지 ‘엘 지배하시다’를 의미하지만(〈창세기〉 32:29 참조), ‘엘’이란 셈어 공통의 ‘신’을 나타내는 보통명사인 것과 함께(아라비아어의 ‘알라’도 같은 어근에서 유래한다), 한편으로는 우가리트에서 출토된 문서에 보이듯이 페니키아=가나안 신화에서 최고신의 고유명사이기도 하다.

필리스티아인은 말하자면 이스라엘인이 그때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종류의 적이었다. 이러한 조직적인 군사력을 가진 침략자와 호각으로 싸우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또한 직업군에 의한 강력한 군대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서는 이스라엘이 제 부족의 평등하고 자발적인 결합을 기반으로 하는 느슨한 부족연합에서 중앙집권적인 통치 체제와 강력한 군대를 지닌 왕권제 국가로 변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전투에 전념하는 전사 계급과 상비군을 만들어서 생산자로부터의 징수 등을 통해 이것을 정치적 경제적으로 뒷받침하는 사회 구조가 불가결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 안에서 왕을 바라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래야 우리도 다른 모든 민족들처럼, 왕이 우리를 통치하고 우리 앞에 나서서 전쟁을 이끌 수 있게 될 것입니다’(〈사무엘상〉 8:20)라고 하는 백성의 목소리에는 이스라엘에서의 왕권제가 주로 그러한 군사적 필요성 때문에 요구되었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이 천도에는 다윗이 뛰어난 군인이었던 동시에 교묘한 정치가이기도 했다는 것이 드러나 있다. 우선 첫 번째로 예루살렘은 남의 유다와 북의 여러 부족의 영토의 중간에 있고, 이곳이 그대로 선주민의 손에 남겨져 있으면 남북이 분단되는 형태가 되어 국가 전체의 통일이 방해를 받는다. 두 번째로 예루살렘은 세 방향이 산이나 골짜기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충지였고, 세 번째로 예루살렘은 북왕국(이스라엘)과 남왕국(유다) 사이에 있으면서 게다가 그때가지 양쪽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른바 어느 부족에 대해서도 ‘중립적’인 곳이었다. 네 번째로 그때까지 가나안인의 도시였던 예루살렘에는 야훼 종교의 전통이 존재하지 않아 종교적 세력이 왕권에 대해 간섭할 가능성이 없었다. 다섯 번째로 다윗 이후 ‘이스라엘’(연합왕국)은 이미 이스라엘인만의 것이 아니라 명백하게 가나안계 주민을 포함한 영토국가가 되었다. 이 점에서 ‘가나안인의 도시’ 예루살렘은 새로운 국민이 된 가나안인을 대상으로 한 정책을 시행하는 데 있어서도 절호의 장소였던 것이다.

북왕국 사람들은 처음부터 불문곡직하고 나라를 분할하자고 결의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그들은 새로운 왕에게 자신들의 권리를 인정시키고, 솔로몬 치하에서 더 이상 감내하기 힘들어지게 된 자신들의 부담을 경감해 줄 것을 바랐다. 그들이 기도한 것은 일단은 간단히 말하면 조건 투쟁이었다. 그러나 르하브암이 경험 풍부한 고문관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사람들의 요망을 물리치고 강압적인 태도를 취했으므로 북왕국 사람들은 태도를 바꾸어 ‘다윗의 가문’의 왕에 의한 더 이상의 지배를 거부하고 통일왕국으로부터의 이탈을 선언했다. 그것이 단순히 르하브암 개인의 왕위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다윗 왕조와의 절연을 의미했다는 것은 그들이 그때 내건 슬로건을 봐도 명백하다.

사마리아에 이주해온 사람들은, 잔류해 있던 이스라엘계 주민과 섞였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사마리아인’들은 야훼와 신참자들이 가져온 이교의 신들을 나란히 숭배하는 종교 혼합적 제의를 만들었다. 이것이 훗날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대립의 원인(遠因)이 된다.

마나세 시대의 이교의 만연과 야훼 종교의 후퇴 분위기 속에서 전통적인 야훼 종교를 고집하고, 그것의 부흥을 목표로 싸움을 계속한 사람들도 결코 없지 않았다. 이러한 사람들에 의해 구약성서 중 〈신명기〉의 중핵 부분(편의상 〈원(原)신명기〉라고 부른다)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들은 오랜 종교적, 사회적 법 전통을 새로운 시대에 적합하게 해, 하나의 신, 하나의 백성, 하나의 성소라는 이념을 기반으로 해서, 모세 시대의 야훼 종교로 정신적으로 회귀하는 것을 목표로 했고, 또한 신과의 계약의 현재적 의미를 강조했다.

그들은 예루살렘의 몰락 후 자신들의 수중에 있던 풍부한 사료를 가지고 미츠파로 도망쳤고, 아마도 거기에서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부터 왕국 멸망에 이르는 하나의 장대한 역사서(〈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열왕기〉)를 편집했다. 이 사서는 용어적, 사상적으로 〈신명기〉와 뚜렷한 공통성을 나타내기 때문에 독일의 구약학자 마르틴 노트 이래 일반적으로 〈신명기 사서(史書)〉라고 불리고 있다. 그들이 이 사서를 편집한 것은 단순히 과거의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우선, 앞에서 말했듯이 왕국 멸망과 바빌론 유수가 불러온 야훼의 힘에 대한 회의(懷疑)에 응답하고 사태를 신의론(神義論)적으로 해명하기 위해서였다. 즉 그들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백성 측의 죄와 계약 위반의 역사로 그려냄으로써, 왕국의 멸망과 바빌론 유수라는 파국이 신으로부터의 정당한 벌이고, 그 책임은 오로지 백성 측에 있음을 보이고, 이 사태가 결코 야훼의 패배나 무력함을 나타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진실로 야훼의 뜻과 역사에서의 힘을 보여준 것이라는 사실을 논증하려고 한 것이다. 한편으로 그들은 등장인물들의 말이나 행동을 빌려, 죄의 회개와 야훼로의 복귀를 설파하고, 민족 부흥의 희망을 주려 했다.

이러한 요나탄의 영달은 유대 내부에서 하스몬 가의 지위와 의의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즉 그때까지 종교 박해에 대한 저항 운동과 유대인 해방전선의 지도자였던 하스몬 가 사람들이 이제는 시리아의 왕권과 결탁해, 사실상 시리아의 속왕(屬王)으로서 유대인을 지배하는 정치적, 종교적 권력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하스몬 가가 대사제의 지위를 손에 넣은 것은 커다란 문제점을 품고 있었다. 제2신전 시대의 대사제직은 아론 계의 차독 가가 독차지하고 있었고, 그 외의 사람들은 이 지위에 오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 사제의 가계에 지나지 않는 하스몬 가의 대사제직 취임은 이러한 종교적 전통에 반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전투의 지도자로서 수많은 유혈(流血)과 관련이 있는 요나탄은, 죽음과 연관되어서는 안 된다고 되어 있는 대사제의 엄격한 청정 규정(〈레위〉 21:10-12)으로 보아도 대사제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었다. 보수적인 유대인 중에는 이렇게 하스몬 가의 대사제직 장악에 반감을 가지는 자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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