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때론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나는 무엇을 위하여 살아가는가? 나는 왜 태어났을까? 나의 죽음은 어떤 모습일까? 죽음 이후에는 나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선(善)한 인생일까? 그러면, 나는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
인간의 존재와 가치 그리고 관계의 관점에서 인생에 대한 의미를 찾는 질문들이다. 우리는 이런 본질적인 질문들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답을 구해 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철학, 문학, 과학, 의학, 수학, 논리 및 삶의 경험적 관점에서 교훈과 답을 제시하고 있다. 자신이 바라보는 관점에서 깨달음을 얻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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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이라는 용어는 널리 쓰인다.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연구하다가 문득 알게 되는 것을 일컫는다. 깨달음은 ‘깨다’와 ‘달리다’가 합쳐진 단어이다. 또는 ‘깨다’와 ‘닫다’의 합성어로 이해해도 좋다. 무엇인가를 깨부수고 달음질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생각의 한계에 닫혀 있는 상태에서 그 한계를 깨고 나오는 일이다. 마치 병아리가 달걀 껍데기를 깨뜨리고 닫힌 공간을 벗어나 달음질치는 것과 유사하다. 우리의 생각과 사고는 달걀 속 병아리처럼 갇히기 쉽다. 갇혀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깨고 나올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그냥 갇힌 채 관성에 의해 살아간다. 바쁜 삶 속에서 시달리다 보면 이제는 나갈 때가 되어도 잊고 살아간다. 무엇을 깨고 나가야 할지 고민하거나 생각하지도 않고 삶이 이끌어주는 대로 살아간다. 선배들이 이야기하는 대로, 사회와 회사와 학교에서 정해주는 대로 살기도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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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절차를 우회하는 행위를 해킹이라 부른다. 해킹은 우리말의 ‘깨달음’과 의미가 통한다. 해킹의 어원은 ‘풀이나 나뭇가지를 마구 쳐내다’라는 의미에서 시작되었다. 정형화된 형태나 모습을 나의 마음대로 바꾸고, 깨부수고 싶은 욕구를 표현하는 단어이다. 현대에서는 컴퓨터와 인터넷의 세계에서 발생하는 침입을 한정해서 이야기하곤 한다. 주로 어두운 측면에서 해커라고 지칭한다. 대개는 불법적인 해킹을 이야기하지만, 해킹은 좋은 의미에서도 사용된다. 좋은 의도를 가지는 경우 화이트 해킹이라 구분해서 부르기도 한다.
해킹은 사물과 현상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일로부터 출발한다. 기존 질서와 규칙에 대한 탈피를 의미한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며 현재를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다. 틀을 깨고 싶은 열정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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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공(空)은 ‘비움’의 의미이다. 논리적으로 공(空)은 단순히 없음(無)이 아니다. 물질을 기준으로 존재의 유무를 구분하는 없음(無)으로 공(空)의 의미를 오해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의미라면, 무(無)와 유(有)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무(無)와 달리 공(空)이라는 글자에는 공(工, 장인/사람)이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다. 사람이 공(空)에 개입이 되어 있다. 즉, 공(空)이라는 개념은 물리적인 물질의 존재와 상반되는 무(無)의 개념보다는 사람이 개입된 비움이다. 사람이 굴(穴)을 파고 인위적으로 빈 공간을 만든 형상이다. 즉, 사람에 의해 발생하는 비움과 채움의 관점에서 사용되는 단어이다. 관계를 기반으로 사용하는 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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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능력은 아직 물질 생성에 관련한 이론적인 가설에 대한 기호화와 원자보다 작은 단위를 겨우 관찰할 수 있는 수준이다. 절대적인 공의 상태에서 물질, 즉 원자를 만들어 낸 적도 없다. 또한, 물질을 절대적인 공(空)의 상태로 보낼 능력 또한 없다. 현대 물리학이 설명하고 있는 부분은 물질의 원자 단위 이하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대한 모습이다.
우리가 한번도 경험하거나 증명하지 못한 일을 설명할 때에 사람들은 믿음의 힘을 이용한다. 그 믿음이라는 것은 신의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을 기초로 한 주장을 사실화할 때 당해 낼 재간이 없다. 아직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철학은 생각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사실과 사실이 아닌 믿음을 구분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고, 그 믿음이 올바르지 못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도록 예리하고 정교한 도구를 제공할 때 의미가 있다. 철학의 역사를 살펴볼 때에도 기존 사상과 믿음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이성은 지속적인 의문 제기와 해답을 구하는 데 사용될 때 그 존재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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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본 세계관과 하늘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신을 중심으로 한 세계관을 넘어서 우주를 이루는 스스로의 법칙이 존재하고 있음을 이해하고 있다. 인간을 도(道), 천(天), 지(地)와 같은 큰(大) 존재라고 표현하며 소중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인류 역사상 어 떤 철학도 인간의 가치에 대해 이렇게 소중하게 평가한 사상은 없다.
온 우주의 티끌 하나도 독립적인 나름의 운행이 존재한다. 그 모든 것은 서로 간의 상호작용으로 상생하고 있다. 지구 대지의 진흙 한 덩어리에도 70억 개 이상의 마이크로 단위 생명체가 살아 움직인다. 인간의 몸을 이루는 30조 개 이상의 세포와 박테리아를 포함한 100조 개 이상의 수많은 개체가 인간과 공생하고 있다. 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알게 되는 것은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져 이루는 세상의 모습을 이해함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삶의 올바른 길(道)을 찾고, 세상을 계속 평화롭게 이끌어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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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의 주요 사상인 유(儒), 불(佛), 도(道)의 관점에서 생명의 시작에 대해 살펴보자. 유가에서는 태어나기 이전과 죽음 이후에 대해서 특별한 언급이 없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한 구분이 명확하다. 모르는 것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스스로의 양심을 속이고 타인을 기만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언급이 불가한 사항이다. 모르기 때문에 다른 사상에서 인정하는 영혼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불가에서는 윤회(輪廻)를 기반으로 영혼이 육신의 삶과 죽음을 반복한다고 설명한다. 도가에서는 여성 뱃속에 들어 있는 아기의 영혼에 기(氣)를 불어넣어주는 과정을 통해 신체와 결합된 생명이 이루어진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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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어떤 모습일까?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가? 행복이라는 것은 주관적인 감정이다. 행복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생활에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상태’이다. 생활에서 일어나는 일과 주위의 환경과 상황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것 또한 사람마다 다르다. 행복에 대한 정의와 척도는 전적으로 주관적인 요소에 의존한다. 우리는 주관적인 사항에 대해서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싶어 한다. 누군가가 나 대신 행복이라는 것에 대해 정의하고 그 모습과 실체를 나에게 알려주기를 기대한다. 누가 정의하고 설명하더라도 100% 수긍하고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에 더욱 정답을 찾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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