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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문학 17

동서문학 17

: 풍경에 닿다

노기화 등저 | 몽트 | 2021년 06월 1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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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6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328쪽 | 153*224*30mm
ISBN13 9772671779004
ISBN10 26717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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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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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잘못이 아니어도
죄인처럼 머리를 숙여야 했던
어제의 분노가 관절을 빠져나간다
고집불통처럼 끈질기게 따라붙던
통증이 멈추고 걸음걸이도 가벼워진다

숲의 품에 들어
조용히 숨고르기 하다 보면
한발 두발 흔적 남길 때마다
내 안의 불순물이 날아간다
짊어진 삶의 무게를 내려놓는다

눈에 담는 풍경마다
속삭이듯 말을 걸어오고
상처 난 마음에 새살 돋는 듯하다
--- 한명숙, 「산길을 걷다」 중에서

인생이 그러하듯이, 결혼이야말로 빛과 어둠이 공존한다. 결혼은 밖에서 보는 사람에게는 천 개의 빛나는 거울이지만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천 개의 조각들이 아슬아슬하게 이어진 거울이다. 결혼은 이제 행복을 위한 유일한 선택도, 사랑의 자명한 진리를 보여주는 제도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함께 살아 있음의 기쁨을 누려야 한다는 것….
6년 전, 군에서 전역한 큰아들을 위해 조촐한 가족 모임을 하던 날이었다. 몸과 마음이 힘들 때, 가족은 자신에게 깊은 위로가 되는 존재였다며 잘 키워주셔서 감사하다고 나를 꼭 안아주었다. 부모로서 그 마음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이제 그 아들이 결혼하겠다고 한다. 새로운 가족을 만들려는 것이다. 기쁘고 대견하다.
사람 人,
같이 기대어 살고 싶은 사람과 서로 지지하고 격려하며 오래도록 그 행복이 이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강미애, 「결혼을 위하여」 중에서

나는 똑같은 수술복과 두건을 쓰고 똑같은 얼굴, 심지어 똑같이 포니테일로 묶은 머리스타일의 여러 의체들이 똑같은 목소리로 나를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그들에게 니들이 하는 말이 내 귀에 정확히 다 들린다고 말을 해야 할까 하다 체념한다. 그들도 내 귀가 정상적이고 교체하지 않은 것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듣는 사람 입장 의 배려가 없다. 거르지 않고 하고 말들을 해댄다. 왜 그들에게 말을 하게 만들었을까. 수술 후에 의료조합에 입을 열지 못하도록 건의해봐야겠다.
의체들을 보면서 마치 어릴 때 읽은 걸리버 여행기 동화책 속의 인물들이 되살아난 것만 같았다. 나는 내 몸의 장기들을 하나씩 교체하는 그들에게 내 몸 하나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장기들을 교체하고 수선하고 메뉴얼대로 스캔하면서 고장 난 자가용의 부속품을 교체하듯 그들의 기계적인 움직임이 일상이 된 행동들을 살피며 눈만 바삐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메뉴얼에 없는 내 부탁조는 그들에게 비아냥거리니 소통이란 것을 시도하는 짓은 포기했다.
장기들을 교체하는 동안 국소마취가 안 되는 내 체질에도 고통을 느끼지 않았고 다행히 나는 말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마치 기계 부품을 처리하듯 하는 인간미가 없는 그들의 행위 하나하나에 인간만이 느끼는 고통, 슬픔이 떠나지 않는다.
장기들을 교체하는 동안에도 내 고통지수를 확인하며 마약을 주사하고 있다. 아직까지 등에서부터 척추, 갈비뼈, 엉치뼈의 고통은 느껴진다. 어쩌면 내 몸의 뼈들을 교체할 수 있다면 간단할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장기와 뇌를 바꿀 수는 있어도 몸의 뼈는 교체하지 않는 감가상각비를 계산한 아이러니가 슬픔과 함께 그나마 종양덩어리인 뼈라도 내 뼈로 남을 수 있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 전이영, 「유통기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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