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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숲에서 길을 찾다

글 숲에서 길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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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6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55쪽 | 150*230*30mm
ISBN13 9791160841510
ISBN10 116084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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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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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도는 비교적 섬이 커서 전기가 들어왔는데, 용초도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전기가 두 섬을 현대와 근대로 구분하고 있었다. 한번은 교육청으로부터 전통이 왔다. 교육청에서 하소국민학교에 연락이 오면, 하소국민학교에서 용초국민학교로 전달해주어야 했다. 하소국민학교에서 스피커를 용초국민학교에 맞추고, “용초, 용초, 들리면 깃발을 흔드세요”라며 크게 외쳤다. 용초에서 흰 깃발을 흔들면 “내일 오전 중으로 교육청에서 공문 찾아가랍니다. 알아들었으면 깃발을 흔드세요”라고 외쳤다. 저쪽에서 깃발을 흔들면 전달된 것이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면 전화를 놓을 수도 없었고,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라 이렇게 근대적인 방법으로 연락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는 학교와 교육청이 인편으로 공문을 주고받았다.
--- 「섬마을 선생님」 중에서

14일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늦은 밤,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잠에서 깨어나 보니 봄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이승에서 뜻대로 하지 못한 일들이 많아 한으로 맺혀 떨어지는 아버지의 눈물 같아 마음이 아팠다.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였다. 낡은 지갑과 용돈, 연락처를 기록한 메모장, 닳은 내 명함, 오래된 폴더 폰, 서류철 등. 아버지의 유품이 가난을 말해주고 있었다. 아버지는 너무 이른 나이에 가난한 집안을 떠맡아 어른들 봉양과 가난이라는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가난과 진학포기, 자식에 대한 실망 등을 스스로 삭이며 살아온 처절함이 느껴져 숙연해졌다. 젊어서는 집안 어른들 봉양으로 숨 쉴틈 없었고, 연로해서는 자식들 걱정으로 노심초사하였다. 자식과 손자들이 아버지의 자존심이었고 희망이었는데, 자식 된 도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가슴이 미어졌다.
--- 「아버지의 풍화」 중에서

처음엔 혼자 낯선 곳으로 멀리 가는 것이 주저되었다. 이산 저산을 찾아 경기도며 강원도, 전라도와 충청도 등지를 다니다 보니, 낯선 곳에 대한 서먹함이 어느 정도 사라졌다. 이젠 고속도로 변의 아름다운풍광을 만끽하면서 당연한 듯 장거리 운전을 하게 되었다. 젊은 시절지리산, 설악산, 한라산만 산인 줄 알고 산을 가리는 편이었는데, 100대 명산을 다니면서 그보다 작은 산들도 나름대로 아름다움과 기품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했다. 편향되었던 생각의 폭이 조금 넓어진 것 같았다. 펜션에 하루내지 이틀 머물면서 취사하는 것도 익숙해졌다. 처음엔 불편하게 느껴졌던 취사도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이 매식하는 것보다 훨씬 편하고 맛있었다. 여럿이 산행을 하는 재미도 좋지만 홀로 홀가분하게 산길을 걷는 것은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혼자 펜션에서 밤을 보낼 때면 외로움인지 그리움인지 모를 고독 속으로 빠져들 때가 많았다. 그 고독은 나를 시적이거나 철학적인 갈구를 느끼게 했고, 그런 것이 나를 더욱 산으로 내몰았다. 산을 찾지 않는 날엔 독서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 「나는 왜 산길을 걷는가?」 중에서

나는 초임지에서 6학년 담임을 맡았다. 경력은 16개월로 나름대로 욕심은 있고, 요령은 부족했던 시절이었다. 전날 아침과제를 제시하지 않아 평소보다 20분 정도 일찍 학교에 도착했다. 4층 복도에 올라서자 우리 교실 쪽에서 웃음소리와 함께 쿵쿵거리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렸다.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세 명의 남자 아이들이 일찍 와서 잡기 놀이를 했는데, 한 학생이 책상 위에 올라가 쿵쿵거리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내 고함소리에 깜짝 놀란 그 녀석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책상 위를 뛰어다녔던 철호는 평소 조용하고 성실했는데, 어떤 배신감 같은 것을 느꼈다. 그 녀석을 불러내어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그 녀석은 “억”하며 얼굴을 감쌌다. 세 녀석을 앞에 꿇어앉혔다. 철호는 너무 놀란 나머지 뺨을 맞는 순간 오른쪽으로 돌려 피해야 될 얼굴을 왼쪽으로 돌리는 바람에 왼쪽 눈 부위를 맞고 말았다. 순간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어 그 녀석의 얼굴을 보니, 왼쪽눈 주변에 하얀 손가락 자욱이 선명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손가락 자욱 부분이 벌겋게 부어올랐다. 보건실로 보내 치료를 받게 했지만, 상태가 좋아지지 않아 한 시간 후 보건교사가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치료를 받았다. 안과에도 데리고 갔으나 다행히 눈에는 큰 이상이 없다고 했다. 나는 철호의 부모에게 연락하여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고 사과했다.
다음날 철호의 큰 형이 학교로 찾아와 거칠게 항의했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동료 교사들이 나서서 그를 말리고 그의 기분을 달래주었다. 그 녀석의 부모를 만나 사과하고 그 형과도 결국 화해했다. 철호의 부모나 형과 화해를 했고, 녀석에게도 미안하다고 했지만, 녀석에게 들키고 만 성난 표정이나 표독스러움은 지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설사 그 녀석이 그 일을 깨끗이 잊었다 하더라도, 내 마음에 새겨진 손자국은 지워지지 않았다.
--- 「인연의 옹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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