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주거 프로젝트 건물들의 가장 큰 특징이자 차이점이라면 1층은 모두 신발을 신고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1층은 사람들에게 개방되어 그가 추구하는 동네 커뮤니티의 플랫폼 역할을 한다. 사람들이 편하게 드나드는 이유는 풍년빌라나 여인숙의 1층이 카페인 점도 있지만 좀 더 근본적인 것은 신발을 신기 때문이다. 해방촌 해방구의 1층은 카페가 아닌데도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사랑방이 되었다. 주인이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좋아하고 사람을 환대하는 성격인 이유도 있지만, 그냥 가게처럼 신발을 신은 채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1980년대 이전만 해도 동네마다 하나씩 있던, 슈퍼마켓 앞에 놓인 평상이 이런 역할을 했다. 지금은 편의점 앞 파라솔 테이블이 그 역할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 도로에 있는 편의점과 그야말로 주택가 속에 있는 ‘집’은 분명히 동네 커뮤니티 플랫폼으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다르다. 아무래도 후자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성별에 관계없이 모일 수 있을 것이다. 편의점과 옆집은 다르기 때문이다.
---「동네와 집이 만나는 접점, 중간주거 프로젝트」중에서
시모키타자와 개발 계획 중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단연코 보너스 트랙이다. 보너스 트랙은 2020년 4월 오픈한 복합 시설로 음식점이나 잡화점, 주거 병설의 점포를 중심으로 코워킹 스페이스와 공유 키친, 이벤트 광장이나 갤러리 등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참여형 공간’이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일본의 오래된 전통주거 양식으로 여러 세대가 나란히 이어져 외벽을 공유하는 나가야 형식을 빌렸다는 것이다.
게다가 2층에는 1층 상점의 주인이 살 수 있도록 했다. 일종의 상가주택으로 일본의 상점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물이지만, 지금은 상점가가 쇠퇴하면서 일본 내에서도 많이 사라진 상황이다. 그러나 보너스 트랙에서는 점포와 주택이 함께 있는 건축물을 되살리면서, 젊은이들을 위해 직장과 주거가 함께 있는 새로운 직주일치를 추구했다. 1층에는 가게가 있고, 주인이 2층에서 살면서 손님을 맞이하는 것은 이곳이 단순히 방문객이 오는 동네가 아닌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라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영업종료’ 표지판이 문에 걸린 후에도 이 지역의 일상은 계속된다.
---「거리와 사람을 연결하는 공간, 시모키타자와의 보너스 트랙」중에서
제주도의 경우 처음 스테이를 만들고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어요. 스테이를 만들 때부터, 제주도라는 지역에 대한 고민과 이해를 통해 지역의 문화를 해치지 않고 맥락을 지켜가며 공간을 만들자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그 원칙은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어요. 스테이가 생긴다고 지역에 큰 변화가 생긴다거나 지역의 어떤 변화가 스테이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다만 조천의 스테이들은 마을 주민들과 함께, 상생하는 방향으로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서울의 서촌 역시 마을의 역사와 특성이 뚜렷한 동네예요. 오래된 한옥을 고쳐 만든 작은 스테이들이 하나둘 모여 이제 다섯 개가 되었죠. 지랩과 스테이폴리오의 사무실이 있는 동네라 아침에 출근하고, 점심 먹고, 커피 마시고, 저녁을 먹는 삶의 공간에서 다양한 마을 주민을 만나요. 서촌도 워낙 커뮤니티가 단단한 동네다 보니, 서촌에서 생활한 지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그 커뮤니티에 녹아들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죠. 이제 이들은 스테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이어져, ‘마을호텔’이라는 이름으로 한걸음 나아가려는 순간에 있습니다.
---「동네와 지역의 맥락을 담은 스테이를 디자인하다, 지랩」중에서
지역 주민들은 로컬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팝업 숍을 만들면 지역이 살아나는 게 아닙니다. SNS로 잠시 붐이 일면 외부인이 잠깐 왔다가 사라집니다. 지역을 위해서는 지역 주민이 나서야죠. 로컬을 움직이는 젊은 사람들, 운영자가 지역 상권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상업적인 홍보가 중요하다는 걸 일깨워줘야 합니다. 이를테면 요즘은 이런 빵이 인기가 많다고 알려주고 그걸 만들어 팔게 해야 합니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나면 주민들은 자기 가게로 돌아가 연구를 합니다. 지역 주민들의 실력을 키우는 것은 지자체의 후원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실리적인 접근성을 위해서도 디자인은 중요합니다. 저도 일을 하면서 디자인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요즘 스타일의 디자인을 하니 그냥 지나치던 사람도 접근합니다. 심리적인 접근성이죠. 동네에 건물을 지을 때는 이웃집과의 상관관계가 보였습니다. 다른 건물과 너무 이질적이면 안 됩니다. 지저분한 동네는 아예 바꿔야 합니다. 한 곳이 앞장서서 바꾸고 따라오게 만들어야 합니다. 랜드마크처럼 건축물의 보기를 제안하는 거죠. 그 후에는 공간을 채우는 사람, 스타를 찾게 됐습니다. 이웃한 동네라 해도 ‘내가 거기까지 갈 이유가 있을까?’를 질문해보니, 공간을 채우는 플레이어에 대해 자연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들을 하려면 지역 주민들과 소통이 가능해야 합니다. 지역적인 입장에서 고민하고 진정한 도시재생에 귀를 기울여야 하죠.
---「기존의 것에 새것을 더하여 ‘수익’을 내는 공간을 만들다‘ 중에서.
도시의 공동 공간이 활성화되는 건 중요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고독을 즐길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죠. 저는 독일 철학자 니체의 ‘고독은 나의 고향이다’라는 말을 좋아하는데요, 집 안에만 틀어박히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6기 건물의 카페는 식사도 할 수 있는데요, 사무실과 가까워 종종 점심을 먹으러 갑니다. 자주 마주치는 장년의 손님이 있었는데,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서 처음에는 화이트 와인 4분의 1병을 주문하고, 반 정도 마신 후에 샌드위치를 주문한 후 커피로 끝냅니다. 그러고는 구 야마테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카페 사람에게 물으니 근처 교회의 목사라고 하더군요. 그에게 이곳에서의 한때는 잠시나마 고독을 즐기는 그만의 작은 의식이 아니었을까요. 많은 사람이 다른 사람은 모르는 의식을 행하는 거죠. 그것이 도시의 생활을 풍성하게 만들죠.
---「다이칸야마의 어반 빌리지, 힐사이드 테라스」중에서
반드시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먼 곳으로 이동하지 않아도 우리는 늘 일상을 여행하며 살아간다. 내가 사는 도시와 동네를 걷는 것 역시 일종의 여행이다. 내 여행의 특징은 ‘오래 보기’와 ‘재방문’으로 나눌 수 있다. 둘 다 건축물과 그를 둘러싼 사람, 도시와의 관계성을 보는 데 아주 좋은 방법이다.
이렇게 여행하다 보면 멈추어 있는 건축물과 움직이는 사람들이 대비되며, 건축물과 사람들의 상호작용이 눈에 들어온다. 특히 건축물의 기능(미술관, 오피스, 주택, 공공건물, 상업시설, 복합기능의 단지)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패턴이 달라지는데, 디자인을 연구하는 나에게는 이 사실이 무척 흥미롭게 다가온다. 주변의 역사적, 지리적, 사회적, 지역적인 맥락이 공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발견하는 것도 도시 여행자의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그 지역만의 맥락을 지닌 공간들을 하나둘씩 찾아낼 때마다 도시를 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시야는 넓어진다. 이 책 또한 그러한 공간과 시간이 만들어낸 결과물일 것이다.
---「에필로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