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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엘리자 수아 뒤사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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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김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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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의 우울함이 깃든 시베리아?동부의?끝자락?블라디보스토크?서커스?공연장
3회전 공중 돌기 연속 4회에 도전하는 목숨을 건 ‘러시안 바’ 트리오 “항상 두려워요.” 니노가 대답했다. “연기자가 도약할 때마다 두려운걸요. 아픈 게 두렵고. 안나를 다치게 할까 봐 두렵고. 관객도 두려워요. 난 겁이 나요. 하지만 그것도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모든 것에 대해 좀 더 책임 의식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그만큼 실수도 덜 하게 되죠.” (p. 77) 블라디보스토크는 출발지인 동시에 도착지이고, 한국에서는 아주 가까운 도시이자 스위스에서는 너무나 먼 도시이며, 유럽과 연결된 유일한 도시이다. 바로 이 혼란스러움에 대한 도취가 『블라디보스토크 서커스』 줄거리를 구상하는 데 큰 영감을 주었다. 이 소설은 또 다른 형태의 도취와 맥락을 같이한다. 현기증을 불러일으키는 이러한 감정은 운 좋게도 내가 여행 중에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 러시안 바 위의 공중 곡예사를 비롯한 모든 아티스트들과 서커스 곡예사들의 그것과 맞닿아 있다. - 저자 서문 중에서 ※‘러시안 바’: 길이 3미터, 너비 25센티의 긴 널판 양 끝을 남자 두 명이 어깨로 받치고, 다른 한 명의 멤버가 그 널판 위에서 연기하는 묘기 낯선 관계 속의 ‘신뢰’와 ‘소통’, 그 속에 비쳐나는 고독한 삶의 빛깔 엘리자 수아 뒤사팽의 세 번째 소설인 『블라디보스토크 서커스』는 전작들의 배경이었던 한국(『속초에서의 겨울』, 2016)과 일본(『파친코 구슬』, 2018)에 뒤이어, 이번엔 러시아의 국경선 근처 블라디보스토크 서커스 무대와 객석으로 독자를 데리고 간다. 1992년생인 저자는 이번에도 늦가을의 풍경을 아주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늦여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즌. 공연이 없는 황량한 서커스 울타리 안에서 세 명의 단원이 러시안 바 훈련을 한다. 아버지와 아들로 보이는 두 남자가 러시안 바를 어깨 위에 올리고서 트램펄린 챔피언이었던 안나를 공중으로 날아오르게 한다. 울란우데에서 열리는 국제 서커스 경연대회를 준비 중인 이들은 3회전 공중제비 연속 4회 성공을 목표로 삼고 있다. 서로가 최고 수준의 유대감을 갖춰야 한다. 가까워졌다가도 어느 순간엔 “마치 원자핵이 터진 것처럼” 서로 멀리 떨어져야 하는 그들은 고독한 존재들이다. 의상 제작을 위해 러시아에 온 나탈리는 이미 친분이 형성되어 있는 이들 팀에 끼어들려고 애쓰지만, 왠지 자신감이 없다. 낯선 곳,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러시안 바’라고 하는 서커스 종목을 통해 의사소통을 이루고 서로 간 ‘신뢰’와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섬세하고 감미로운 소설. 내 임무에 대해 생각해봤다. 내가 만들어야 할 의상들. 짜릿한 흥분이 온몸을 훑고 지나간다. 나에 대한 그들의 신뢰가 자부심을 느끼게 했다. 난 경험이 거의 없다. 울란우데 경연대회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다 더럭 의심이 든다. 우린 서로를 잘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들의 신뢰가 비정상으로 느껴진다. 실력도 검증되지 않은, 잘 알지도 못 하는 여자한테 맡길 정도라면 의상 제작이라는 내 역할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닐 확률이 높다. (p. 54) 일상의 침묵과 긴장된 삶 속에 유연함을 만드는 적절한 거리와 암묵적인 동조 러시아인이며 65세로 가장 나이가 많은 안톤은 젊은 파트너인 니노를 여덟 살 때부터 훈련시켰고, 니노는 독일에서 서커스를 운영하는 가정에서 자랐다. 그리고 공중 곡예사인 안나는 우크라이나인으로, 전직 트램펄린 챔피언이었으나 최근 이들 팀에 합류했다. 레옹은 퀘벡 출신의 기술 전문가이자 트리오 공연의 연출가이다. 서커스 무대 의상을 제작해본 경험이 없는 젊은 여인이자 화자인 나탈리는 전혀 알지 못하는 이들 코카서스인들의 세계를 발견하고, 모두가 함께 섞여 사는 공동체 삶의 환경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자 애쓴다. 이들 각자에겐 내면의 고통이 존재한다. 완벽한 운동선수였던 안나는 이전에 겪은 사고에 대한 강박이 있지만 이를 외면하며 거짓말을 하고, 관객의 퇴폐적인 욕망을 두려워한다. 안톤은 자신이 이제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안톤이 바를 놓친다고 상상해봐. 그가 자기에게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는 걸 느끼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평생 해오던 일을 그만둬야 한다는 걸 넌 어떻게 알 수 있을 거 같아?” (p. 174)] 니노는 중압감을 떨치기 위해 열네 살 때부터 술을 마시곤 했었고, 지금은 속귀에 문제가 있다. 속귀의 문제는 균형 감각을 잃을 위험이 있고 따라서 다른 사람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지만 그는 그것을 고백하길 거부한다. 나탈리는 때로 자신이 이들과 거리를 두고 있음을 느낀다. 이렇듯 각자가 지닌 비밀스러운 고통과 의사소통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점차 서로에게 익숙해진다. 모두가 서로에게 이방인으로, 내면의 긴밀한 관계가 없는 이 인물들은 공동의 창조적 행위 안에서 결속되어 겉으로 표현은 안 해도 서로를 돕는다. 적절한 거리와 암묵적인 동조 속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신뢰를 찾는 일인데, 신뢰야말로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위험에 맞서게 해주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균형 감각이 사라진 허벅지를 있는 힘껏 양손으로 꽉 움켜잡고 있었다. 어떻게 당신들을 믿고 쓰러지라는 거야? 난 속으로 화가 났다. 아무 보호 장비도 없이 바닥에서 1미터 60센티나 떨어진 데 떠올라 있다니! 등 뒤에서 니노로부터 계속 지시가 떨어졌다. “당신은 다칠 수가 없어요. 절대로 안 다친다니까요! 그냥 똑바로 서 있기만 해요. 그 상태에서 그냥 레옹 쪽으로 쓰러지라고요. 허리에서 움직임이 나와야 해요. 그 자세를 똑바로 유지해요.” (p. 131) 무거움과 가벼움, 무력과 긴장감 사이의 아름다운 균형 그녀의 글을 읽고 있으면 긴장된 근육이 보이고, 도시까지 올라오는 바다 냄새가 나고, 새콤한 사탕의 맛을 느끼게 된다. 저자의 글쓰기는 그녀가 묘사하고 있는 관계들만큼 아름답다. 자신에게 충실한 그녀는 문화들과 대륙들이 서정적인 입맞춤을 하게 만든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스펙터클. 《르 피가로》 다른 사람들에게 노출되지 않게 숨는 것. 이 침묵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엘리자 수아 뒤사팽의 글쓰기 특징이다. 그녀는 환경 속에서 비밀의 비율을 훌륭하게 측정한다. 《텔레라마》 이 소설의 이야기 속에는 서커스 아티스트들의 얼굴에 젖어 있는, 진짜도 아니고 가짜도 아닌 그런 묘한 미소가 떠돌고 있다. 왠지 불편한 어떤 것이 지속되고 있는 게 분명한데도, 작가는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드러나지 않는 수수께끼를 공들여 다듬어낸다. 《르 몽드》 이 소설에는 작가의 전작들에서 독자들이 사랑했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무거움과 가벼움, 무력과 긴장감 사이의 균형. 눈길을 끄는 화려한 러시안 바 공연에 저자는 요란한 북소리도, 지나친 탐구도 없이 신중한 기술과 단음계적 색조를 부여한다. 하지만 더 확실한 건, 이 젊은 작가가 우아함과 유연성을 잃지 않으면서 힘과 포용을 얻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리브르 엡도》 안전그물이나 눈속임 없이 삶의 실체를 붙잡아 낸 놀라운 작품 『블라디보스토크 서커스』는 작가와 실제 ‘러시안 바’ 트리오와의 만남을 통해 탄생했다. 작가가 만난 이들은 부모로부터 스타라이트 서커스단을 물려받은 서커스 아티스트 조니 가세가 구성한 트리오였다. 작가가 그들을 만난 것은 대륙횡단 열차 여행 도중 경유한 모스크바에서였다. 낯선 세계 속에 빠져든 엘리자 수아 뒤사팽은 소설 속의 화자와 같았다. 서커스 세계에 문외한인 초보 의상 제작자를 화자로 그린 것에 대해 작가는, 소설 속 여주인공은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또 하나의 피부 같은 의상, 즉 정체성을 창조해야 했다고 말한다. 의상은 하나의 상징성을 덧입히기 때문이다. [난 다시 의상에 대해 생각했다. 안나는 편안함을 느껴야 한다. 옷이 꽉 조이지 않고 그녀의 동작과 혼연일치를 이뤄야 한다. 피부처럼 착 달라붙지만, 너무 꼭 끼지는 않게. 관객에게 안나의 몸을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보이게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 (p. 189)] 적나라하게 펼쳐 보이지 않으면서 암시하거나 떠올리게 하는 기술에 있어서는 엘리자 수아 뒤사팽에게 필적할 사람이 없다. 그녀의 소설에서 감동적인 표현 같은 것은 없다. 이 지점에서 독자들은 인물들의 감정을 추측하게 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감정들을 느낀다. 그녀가 다루는 깊이 있는 주제는 신중한 접근, 첨예한 연구, 효과적인 글쓰기로 표현되었다. 엘리자 수아 뒤사팽의 이 세 번째 소설은 서커스의 안전그물이나 눈속임 같은 것 없이 뛰어난 솜씨로 작품을 성공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이로써 엘리자 수아 뒤사팽는 그녀가 단어들을 사용해서 공중 곡예를 시킬 줄 안다는 점을 또 한 번 확인시켜주었다. “난 말이죠, 관객이 오는 건 그저 서커스가 아직도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어디까지 버티는지 보려는 거죠. 사람들은 꿈을 원하지만, 솔직히 그들이 바라는 건 흠을 찾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에게서 단점이나 결함 같은 걸 발견할 때, 오히려 자신은 안심하게 되거든요.” (p. 83) 프랑스 문예비평지 《리테라튀르》 저자와의 인터뷰 엘리자 수아 뒤사팽의 글쓰기는 다름 아닌 자신의 경험을 통한 영감에서 비롯된다. 프랑스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이 유라시안 여성은 자전적인 소설들을 통해서 자신을 알고자 한다. 조국을 떠난 사람에게 이런 글쓰기는 정체성 탐구에 속한다. “이곳과 저곳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 그 어디에서도 진짜 속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오랫동안 내게 불편한 것이었어요. 하지만 이제 나는 더불어 사는 것을 배웠고, 그런 상황이 오히려 나의 창조성을 살찌우는 풍부함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저자의 말대로 그의 소설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딛고 일어난 성숙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의 인터뷰 내용을 통해 우리는 저자와 그 작품 세계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Q. 소설의 배경이 러시아인데, 어떤 점에서 이 여행지가 중요할까요? A. 이 여행지는 우연의 산물이에요. 2018년에 넉 달 동안 포렌트루이에서 도쿄까지 기차와 배를 타고 여행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처음으로 러시아를 횡단했죠. 사실 그때까지 난 한 번도 러시아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어요. 유럽 국가들과 인접한 땅이라는 것만으로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기대와 달리, 러시아에서 아주 큰 문화적 충격을 경험했어요. 그리고 모스크바에서 우연히 ‘러시안 바’ 트리오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세 사람은 처음 본 순간부터 내게 영감을 주었어요. 거기에다 블라디보스토크라는 도시가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왔죠. 난 직관에 따라 행동했어요. 첫째는 러시안 바 트리오를 따라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둘째는 블라디보스토크를 소설의 무대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부다페스트까지 트리오를 따라가서 수천 개도 넘는 질문을 퍼부었죠. 실은 앞선 두 작품에 이어 세 번째 이야기는 뉴욕에서 일어나기를 바랐어요.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았어요. 언젠가는 그 도시에 관해 글을 쓰게 될 거라는 건 확실하지만요. Q. 서커스라는 다소 낯선 세계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죠? A. 서커스 공연장이라는 장소를 택한 것도 우연이었어요. 그 장소는 정말 생각지 않게, 강요라도 하듯 내게 다가왔어요. 내가 만났던 트리오로부터 받은 영감을 글로 쓰고 싶었거든요. 이 아티스트들이 서커스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훈련이나 기술, 추구하는 방향은 정말 차원이 다른 것이었어요. 이들과의 만남이 내게 특히 중요하게 여겨졌던 건, 그들이 구현한 ‘모험과 신뢰’의 관계가 결국 ‘인간관계’를 은유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게다가 늘 내 안에서 되풀이되는 것이지만, ‘소속’이라는 것, 한 존재가 하나의 그룹에서 차지하고 있는 ‘자리’라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싶었어요. Q. 사랑의 감정은 흔히 말하듯이 ‘복잡한’ 방식으로 전개되는데, 여주인공과 토마 사이의 관계가 바로 그렇죠. 글을 쓸 때 ‘사랑’에 어떤 위치를 부여합니까? A. 아마도 내 소설에선 사랑이 가장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일 거예요. 난 한 번도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적이 없어요. 하지만 내 소설 속에 항상 사랑의 감정이 나타나는 것은 사실입니다. 비록 조심스럽게, 은근하게 나타나긴 하지만요. 『속초에서의 겨울』에서는 젊은 여인에 대한 남성 시각의 효과를 통해 나타나죠. 『파친코 구슬』과 『블라디보스토크 서커스』에서는 여주인공들이 애정적인 면을 갖고 있어요. 다만 그 부분을 인생에서 우선으로 삼지 않았을 뿐이죠. 이 모든 건 결국 인물들이 평범한 삶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거예요. 그리고 그들은 매번 정체성과, 사회에서 차지하는 올바른 자리를 추구하고 있기에 사랑 역시 그들이 추구하는 것의 일부를 이루고 있어요. 러브스토리는 항상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고, 또한 다른 이를 고려하게 하고, 자신의 흠과 필요를 고찰하게 이끌죠. Q. 다른 작가들의 수많은 책이 그러하지만 『블라디보스토크 서커스』에서도 전작의 두 소설과 마찬가지로 불안을 봤어요. 글쓰기에서 주인공의 불안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A. 그 점에 대해선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난 소설의 인물들을 매우 본능적으로 만들어요. 그런데도 주인공들, 여기서는 나탈리죠, 그들에게서 발견하는 불안은 사실 나의 어떤 면을 말해준다고 해야 할 거예요. 어쨌든 나탈리라는 인물, 젊고 어딘가 서투른 인물은 뭔가 내가 경험한 것, 그리고 아마도 독자들이 경험한 것들을 전해준다고 할 수 있죠. 난 불안이 글쓰기를 유발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편하게 느끼는 주제에 관해서는 쓸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요. 나의 주제들은 모두 내 개인적인 삶이나 내가 문제 삼는 것들 안에서 발견되는 불편한 것들에서 나오죠. 또, 나의 글쓰기는 불안으로 인해 더 긴장감을 갖게 돼요. 내게 글쓰기는 쉽지 않은 것이거든요. 난 계속해서 의심해요. 내 인물들도 그렇죠. 정말이지 난 내 글에서 불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릅니다. 글을 쓸 때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아요. 내 소설 안에 있는 요소들을 내가 의식하게 될 때는 토론이나, 지금 같은 이런 인터뷰를 할 때예요. Q. 소설의 스타일이 독특합니다. 화자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 말인데요, 이야기 중간중간 네 번에 걸쳐서 삽입되었어요. 이 편지는 어떻게 쓰였나요? 소설을 다 끝내고 쓴 건가요? A. 이 편지는 없었을 수도 있어요. 그랬더라도 이야기에 변화를 주진 않아요. 반대로 편지가 소설에 주는 시제에 있어서, 편지가 중요한 건 사실이에요. 소설의 스토리에 노스텔지어를 느끼게 해주는 게 그 편지거든요. 화자의 이야기가 하나의 추억이라는 걸 편지를 통해 알게 되죠. 말하자면 이 소설의 이야기는 주인공의 삶에서 지나온 한 과정이었음을 의미해요. 다시 말해 그 편지의 내용은 소설의 씨실 역할을 하는 거죠. 나는 소설을 거의 다 쓴 시점에서 방향을 바꿨어요. 스토리가 나의 개인적 이야기와 너무 흡사했기 때문이에요. 이 스토리는 포렌트루이에서 도쿄까지 내가 경험했던 여행을 거의 그대로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 이야기와 나 사이에 거리를 둘 필요를 느꼈던 거죠. 이 편지가 내게 매우 중요했다는 사실을 꼭 이야기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나와 아버지와의 관계에 관한 생각을 끼워 넣고 싶었거든요. 비록 그 미션이 이 소설에서 완전하게 성취되진 못했지만요. 아무튼, 난 여주인공이 자기 아버지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기를 바랐고, 그 점을 편지를 통해 끌어들일 수 있었어요. 그것이 내가 소설을 마무리해갈 즈음에 편지를 삽입하게 된 이유예요. 마음에 걸리는 요소 하나를 더 추가했던 셈이죠. Q. 독자들은 책을 통해서 작가를 알게 되지요. 이 소설은 당신에 대해서 무엇을 이야기해주고 있나요? A. 나는 이 소설이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나에 관해 여실히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나의 세계관, 세밀한 것들에 대한 과도한 민감성, 그리고 현실을 말할 때 지적인 사고에 의존하기보다 감각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는 경향 같은 거요. 그리고 내가 이중적 문화에 대한 강박을 덜 느낀다는 점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