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문학 전문가와 정신과 의사가 공동으로 문학 작품 속 인물들을 선정하여, 상담 의자에 앉혔다는 설정 아래 인물 심리와 사회 전반을 흥미진진하게 분석한다. 물론 유머
와 지식을 그 바탕으로 했다. 일종의 역할놀이처럼, ‘만약 그들이 제때 정신과를 방문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여 가상의 상담과 분석을 진행하는 식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상담을 받았더라면 정말 무엇인가가 달라졌을까? 인물에게서 드러난 결함은 개인 문제일까, 아니면 주변 환경 탓일까?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동시에 심리학에도 흥미가 있는 독자라면, 우리와 함께 세계 문학사를 두루 살펴보며 재미난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이 여행을 통해 당신은 소설 속 유명 인물들이 적나라하게 정신 감정을 받는 일종의 ‘모독’ 행위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 pp.6-7
이야기를 아무리 돌리고 뒤집어 보아도 로미오와 줄리엣은 절대로 함께 행복해질 수 없는 사람들이다. 두 사람이 품은 사랑의 환상은 죽음 속에서나 유지될 수 있다. 죽음에 묻힌 환상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이들의 사랑이 오늘날까지도 높이 평가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종종 현실보다 환상을 더 선호하니까. 사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불행했다. 사랑 때문에 결국 죽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두 사람은 불행했다. 둘은 서로를 하나의 인간으로서 사랑한 게 아니라, 각자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을 좇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과 우리의 사랑에 대한 비교를 경계해야 한다. 이들의 사랑은 깊이도 없으며, 흔히 말하듯이 죽음까지 불사한 고결한 사랑도 아니다. 그저 사랑이라는 환상에 빠진 열애일 뿐이다. 그리고 사랑을 오인한 두 연인의 환상을 영원히 보존하기에 이들의 죽음은 충분히 관대하다.
--- pp.77-78
베르테르의 성장 과정을 들여다보면, 관계 형성에 있어 굉장한 어려움을 겪었음을 단번에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의 감정 상태에 대해 명확히 알지 못하는데, 이야기 초반에 소개되는 어머니와의 복잡 미묘한 관계에서 이에 대한 징조가 은근히 드러난다. 소설 첫 부분에서 베르테르는 어머니의 유산 상속분을 해결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그가 맨 처음 로테를 보고 ‘탐낼 만한’ 여성으로 여기는 대신, 일종의 여신처럼 숭상한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첫 만남에서 로테는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어머니의 역할을 성실하게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테를 향한 마음이 플라토닉 수준을 넘어선다는 걸 깨닫자, 그는 로테에게 약속된 결혼을 상기시키며 이를 계기로 도망친다. 이 도망은 그에게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어머니와의 유대 관계가 제대로 풀리지 않은 그는 자신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신격화된 로테에게 그대로 옮겨놓았기 때문이다.
--- pp.86-87
셜록 홈즈라는 인물은 오늘날이었다면 지체 없이 정신과 전문의에게 보내, 아스퍼거 증후군이 아닌지 검사해봐야 할 정도로 이 증상에 부합하는 여러 특징을 보인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적 상호작용’에 어려움을 겪는다. 즉 사회적 의사소통과 사회관계에 대한 이해에 제한이 있다. 그밖에도 자극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며, 특정 관심사에 강도 높은 관심을 보이고, 하나에 빠지면 끝까지 지속하려는 욕구가 두드러진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지닌 사람들은 ‘구체주의적’ 성향을 나타내며 사건이나 사물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셜록 홈즈는 이런 구체주의적 성향을 통해, 종종 다른 이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어떤 지점을 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문제를 풀어가곤 한다.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들에게 상대방의 얼굴 표정과 몸짓 언어를 사회적 맥락을 바탕으로 정확하게 해석하기란 상당히 어려우며, 그로 인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 pp.149-150
정신의학적인 관점으로 해리의 발달 과정을 들여다보면 ‘살아남은 아이’라는 명칭만큼 적절히 들어맞는 표현도 없는 듯하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정신적으로’ 살아남은 아이다. 그는 하나의 온전한 인간으로 존재하며, 치명적인 수준의 정신적 외상에 시달리지도 않는다. 또한 옳고 그름 앞에서 절대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성격을 지닌다. 그리하여 해리는 친구들 사이에서 늘 도덕적 나침반 역할을 한다. 부도덕한 일은 결단코 저지르지 않기 때문에, 친구들은 해리가 향하는 방향을 기꺼이 따른다. 그에게 부도덕한 일은 생각조차 불가능하다. 해리는 사촌 더들리를 향해 시기심 한번 느끼지 않는다. 주어진 상황을 의연히 받아들인다. 어쩌면 그는 더들리가 근본적으로 자신보다 훨씬 더 가엽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아무런 제약 없이 오냐오냐하며 자란 더들리는 꿈도 목표도 없으며, 그로 인해 스스로의 좌절감에 통째로 삼켜져버렸기 때문이다. 해리의 어린 시절은 불우하지만 그럼에도 그에게는 여전히 꿈과 목표가 있다. 즉, 지금보다 더 나아질 일밖에 없다.
--- pp.238-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