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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이야기
전민정 | 청어 | 2021년 06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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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6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12쪽 | 145*205*20mm
ISBN13 9791158603410
ISBN10 115860341X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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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코드

저녁 무렵이다
장을 보러 나갔다
나란히 누운 고등어
그들에겐 가격표가 없었다

검은 비닐봉지 안으로 들어와
내 것이 되기까지
수없이 뒤적거림 당하며
몇 번의 이력서를 썼을까

해동으로 풀린 빨간 눈의
생선을 들고
해피 포인트에 덧셈을 한다
지금 이 순간 선택되기까지
수없이 이력서를 쓴 나도
어딘가에서 바코드로 찍힐까
얼마의 해피 포인트로 기록될까

집으로 가는 보도블록 위로
나의 바코드가 찍힌다
2 0 6 9 5 1 9
――――――――――――――――

**꽃도둑

오른쪽으로만 감아 돌며 맺힌
콩꼬투리 속 4개의 씨앗
잎 겨드랑 사이에서 형제들은
모두 굵직하게 잘 자라주었다

철없던 시절 동네 꽃이란 꽃은
이름도 모르고 죄다 꺾던 날부터
나는 꽃도둑이 되었다

화병에 물이 마를 때
밤 깊도록 꽃 찾아 맴돌다 돌아온 밤
꽃향기까지 따라와 멀미를 하던 순정

곱기만 한 꽃들의 사연들은 나 몰라라,
야생화가 최고여, 어머닌
은근히 꽃을 꺾어오도록 부추겼다

보잘 것 없는 덩굴나무 가지를 휘어잡고
보랏빛 한 세기를 사신 어머니,
살아계실 동안 꽃도둑은 면할 수 없으리
――――――――――――――――

**절반의 행복

미끄러지듯 집으로 향하는 밤이면
오후를 갉아먹은 불빛이
포장마차 빈틈으로 새어 나온다

가슴팍까지 파고드는 추위와 허기
매달려 있던 그리움조차
대열에 끼어 앉아 자리를 펴고
따끈한 국물 한 사발에
녹아지는 영육이 가볍다

장맛처럼 묵직한 추억을 마시면서
오늘도 채워지지 않은 그 절반을 찾아
겨울 긴 의자에 앉아 미로를 걷는다
――――――――――――――――

**나를 찾아서

조각난 단어들을
여러 개의 이름으로 갈라놓고
아픈 소리로 조율하다보니
반쯤 감긴 쉰 목소리

헐거운 옷을 반쯤 걸친 채
누구도 의식하지 않은
조용한 혁명을 한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나라는 한 권의 책 속에
결박당한 채 꼼짝할 수가 없다

단어들이 몸 안으로 퍼지면
중추신경은 페이지마다 날카로워지고
추스르는 숨소리는 책갈피 속 언어가 된다
――――――――――――――――

**찻잔에 띄우는 고요

아픔을 통해 깊어지는가
온몸 뒤틀며 빼앗긴 수분
명치끝이 아리더니 체기는
물 한 방울 허락하지 않는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마음과 몸속에 쌓였던 적
한 땀씩 질기게 풀어내고
비로소 깨달은 부질없는 집착

허겁지겁 소유했던 탐욕
정신줄 놓으며 떠밀려가던 시간
일엽차 한 잔을 우려낸다
찻잔에 띄우는 고요
비로소 온전해진 마음

맑게 퍼지는 사유의 향기
문 밖에 섰던 마음이 걸어온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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