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곧잘 주연보다도 빛나는 조연을 이야기한다. 조연의 한 마디가 그 연극을 살리기도 하고 망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조연도 혼신의 힘을 다 쏟아 연기를 하는 게 운명이듯, 우리들 개인의 삶 또한 자기 딴에는 최선을 다한다.
〈비나리〉는 우리들 인생살이의 애환이, 그 가운데서도 먹고살기 위해 떠돌아다니는 걸립乞粒패들의 삶이 잘 풀어지기를 기원하면서 부르는 가락이다.
딴에는 열심히 살았는데도 지내놓고 돌아보니 모두가 하나같이 엉거주춤이고, 오락가락이며, 어리바리하게 보낸 것 같아 부끄럽기 짝이 없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엄벙덤벙 돌아다닌 삶이라 남들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몰라 마냥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다.
〈비나리〉의 사연을 몰랐을 때는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는 예사로 듣고 넘겼는데 그 사연을 알고 들으니 마치 내가 그 가운데 있는 것 같아 너무 마음이 무겁다.
무대에 오를 때는 애드리브로 적당히 메우고 내려가면 되려니 싶더니만, 막상 올라와서 보니 연습도 제대로 못 하고 올라온 게 부끄럽고 창피하다. 엉성한 풋내기 배우의 엉거주춤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꼴이 되고 만 건 아닌지 모르겠다.
무대를 내려와 거울 앞에서 화장을 지우면서 생각해 본다. 관중들은 나를 어떻게 보았을까. 무난하다는 사람, 그냥 갑남을녀甲男乙女로 보는 사람, 별종으로 보는 사람 등, 관객들의 취향에 따라 여러 가지가 나올 것이다. 그들 가운데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는 사람도 분명히 있으리라 본다.
그들의 그런 모습들을 보기 위해, 그리고 그들이 쏟아놓은 이야기들을 듣기 위해 여기에 그동안의 삶을 풀어놓는다. 남은 삶을 그들의 표정을 거울로 삼으며 살아 보련다고 옹알이로나마 다짐해 본다.
--- 「머리말」 중에서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30여 년을 나와 함께 살아온 아내가 저세상으로 가버렸다. 손가락을 꼽아보니 정확하게 31년 7개월 24일을 같이 살았다. 꿈같은 세월, 파란만장한 세월이었다. 아내의 지병이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았을 때, 이런 날이 불원간 나한테 찾아오리란 걸 이미 예측은 했었지만 그날이 너무 일찍 찾아온 것이다.
우리가 결혼식을 할 때 주례는 우리 두 사람을 앞에 세워놓고 사회자가 일러주는 순서에 따라 맞절을 시키면서 이런 말을 했다.
“지금부터 이 주례가 하는 얘기를 잘 들으세요. 옛날에는 부부간에 세배도 했다고 하는데, 요즘 우리 문화로는 부부간에 절을 잘 하질 않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이 맞절은 두 사람이 살아생전에 하는 절로는 처음이며 마지막으로 하는 절이 됩니다. 그만큼 서로가, 나는 당신한테 정성과 예절을 지켜 사랑하고 존경하겠다는 뜻을 담아 해달라는 거지요. 무슨 뜻인지 잘 알겠지요. 자, 신랑신부 경례.”
그렇게 절을 시켜놓고 나서도 주례는 고개를 더 숙이라고, 일생일대에 한 번 하는 절을 이런 식으로 해서 되냐며, 더, 더, 더 숙이세요. 주문을 해서, 예식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어 놓은 일이 있었다. 오늘 식순에 따라 빈소에 놓여있는 아내 사진에 절을 하려고 드니 문득 그 생각이 떠오른다.
--- p.53~54, 2부, 「아내를 먼저 보내고」 중에서
나한테 아버지의 존재는 처음부터 없는, 기억의 어느 골짜기를 헤매 봐도 찾을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할머니가 간직하고 있는 낡은 명함판 사진이 한 장 있긴 하지만, 그마저 저 사람이 네 아버지라니까 그런 성싶을 뿐 나한테는 딴 사람이다.
아버지는 6.25 때 강원도 현리전투에서 전사했다. 내가 다섯 살 때 징집으로 전장에 투입되었고, 전쟁이 끝난 뒤 아무런 유품 한 점 없이 전사통지서란 종이 한 장으로 돌아왔다. 물론 모두 이야기로만 들은 나한테는 하나의 전설일 뿐이다. 어린 나에게는 엄청난 비극이었다.
비극은 그것으로만 끝난 게 아니다. 가난한 시골 살림살이에 남편 없는 생활이 힘들었던지 어머니마저 이내 어디론가 떠나버려, 그날 이후부터 나는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서럽게는 전쟁고아요, 좋게 받아들면 6.25 전몰장병 유자녀가 된 셈이다. 그렇다 보니 나에게 부모에 대한 기억은 전무했고, 그런 상태로 오늘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그날, 친구를 기다리며 시간 죽이기 삼아 바라본 그 가마솥이 나를 70여 년 전으로 데려다 놓아, 잃어버렸던 아버지와 나와의 부자유친의 관계 하나를 복원시켜 준 것이다.
어느 날인가, 한 남자가 철무리기 나를 데려다가, 쇠죽을 쑤어낸 가마솥 여열에다 물을 데워, 그 속에 나를 넣어 목욕을 시켰던 일 하나가 아슴푸레 떠올랐는데, 그 남자가 우리 아버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게 그것이다.
--- p.198~199, 4부, 「아버지와 가마솥」 중에서
이제는 인생 숙제가 끝났다. 아내는 먼 여행을 떠났고, 아들, 딸은 짝을 찾아 떠났다. 이젠 내 몸뚱이 하나만 잘 굴러다니다가 때가 오면 떠나면 된다. 먹고살 만한 형편도 되고, 누구한테 구속받지 않는 자유도 있다.
세상을 향해 기지개를 펴고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몸에 이상 기운이 있어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받았더니 의사가 몸 상태가 좋지 않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큰 병원에 한번 가 보는 게 좋겠다고 일렀다. 직감적으로 암이라는 필이 왔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하필이면 나한테 암이 찾아오다니 인생 2모작이 막 시작되려는 시점이어서 눈앞이 캄캄했다.
암(Cancer)은 취소(Cancel)에서 변형된 언어라는 말이 있다. 암에 걸리면 없어진다. 즉 사망이라는 말이다. 내 인생은 여기서 막을 내리는구나.
아들, 딸을 조용히 불렀다. 상황을 이야기하고는 혹 아버지가 없더라도 열심히 살라고 했더니 아무 말이 없다. 어머니도 일찍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가 중병에 걸렸다니 아이들도 막막했으리라.
--- p.205~206, 5부, 「암을 극복하면서 잃은 것과 얻은 것」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