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해양력을 다룬 많은 말과 글이 있지만, 미국 중심의 우려와 대비가 주를 이루고, 중국 내부의 목소리는 잘 전해지지 않는다. 중국은 체제의 특성상 국가정책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가 전해지기 어려우며, 그 선전에 치우쳐 외부의 궁금증을 충분히 만족시켜주지 못한다. 이 글은 중국의 해양력을 연구하는 중국 학자의 목소리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외부에 의미가 있다.
우리 해군은 한반도를 둘러싼 잠재적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전력분석시험평가단을 중심으로 주변국 해군에 관해 연구하며, 격월간 「세계해군 발전소식」과 「중국 해양전략과 해군(2018)」 등을 발간하여 그 이해를 나누어 왔다. 이 책 역시 그 연장에서 시작하였으며, 2018년 당시 주중 해군무관 박노호 대령님의 제안으로, 중국통 해군 장교들이 번역의 뜻을 모아 국내에 전하게 되었다.
글쓴이는 오늘날 바다의 중요성과 중국의 굴기를 인정함과 동시에 중국 해양력의 한계도 받아들이고 있다. 핵심?중대?중요 해양이익을 지키기 위하여, 도광양회(韜光養晦, 재능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다)를 벗어나 근해통제, 지역존재와 전 세계 영향을 목표로 제시하고, 패러다임과 기술 그리고 제도의 혁신을 주장한다. 지금까지의 전략적 모호성은 오히려 독이 되었다고 평가하며, 중국 위협론을 씻어 버리기 위해 외교의 역할을 강조한다.
중국은 미국의 해상패권에 도전할 조건도 의지도 심지어 능력도 없다고 분석하고, 평화발전과 해양경제의 민간영역 확대 등 효율성 제고를 주장한다. 중국의 해양력과 경제체제의 한계를 인정하고 중국 특색 해양력의 길을 찾는 모습이다. 특히, 해양분쟁과 타이완, 극지 개발에 대한 논리와 입장, 대양해군을 위한 태평양함대와 남중국해 원양함대 구성 제안 그리고 항공모함 개발 논리는 우리에게 참고가 될 만하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날 중국 해양력의 발걸음은 어디로 향하는가? 주변국과의 해양 경계획정과 도서 영유권 분쟁에서 보이는 태도, 만두 빚듯 찍어내는 전력 증강, 해경의 인민해방군 편입과 해경법 제정 그리고 해상민병 운용 등 다양한 형태로 해양패권에 도전하는 모습을 감추지 않고 있다. 해양이익이 충돌하는 한?중 관계에서 평화발전과 선린외교라는 말에 우리는 경계를 늦출 수 없다.
앞으로도 중국 해양력의 길은 우리나라와 평행하기도, 교차하기도 하겠지만, 서로의 입장과 상황에 관한 인식은 그 마찰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역사와 이론 그리고 혜안으로 중국 해양력의 길을 제시한 후보 교수님께 감사드리고, 우리말로 쓰인 책이 우리나라에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신 우리나라, 우리 군, 한국해양전략연구소와 박영사 그리고 일과 가정 사이에서 시간과 노력을 쏟을 수 있도록 배려해준 가족들에게 감사한다.
- 2021년 5월 이진성, 이희정
--- 옮긴이 머리말 중에서
해양력에 관하여, 대부분 중국인은 근대 중국이 약한 해상역량으로 인해 겪은 ‘백 년의 굴욕’을 먼저 떠올리며, 약자와 피해자의 사고방식이 매우 뚜렷하다. 해양력은 많은 중국인의 인식에서 종종 강권정치와 패권주의로 연결되며, 오늘날에도 많은 중국 학자와 관리들은 여전히 해양력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인류문명이 시작된 날부터 지정학과 해양력의 경쟁이 영원하리라는 것은 인정하여야 한다. 세계 지역별로 바다의 색과 그 양이 크게 다를 뿐이다. 고대 그리스·로마 이후의 서방 문명과는 달리, 1840년 이전 동아시아 역사에는 세계 일류 해군이 여러 차례 있었음에도, 해양력과 해군은 동아시아 역사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중국의 해양력 굴기가 전 세계 해상 구도와 서방 중심의 해양질서에 전례 없는 도전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서방의 많은 학자는 ‘머핸(Mahan)’의 패러다임과 서방 해양강국의 흥망성쇠 경험에 근거하여, 중국은 굴기하면 반드시 ‘확장’할 것이며, 적어도 서태평양에서 그 주도의 해양질서를 세울 것이라고 여긴다. James R. Holmes, Toshi Yoshihara, Chinese Naval Strategy in the 21st Century: The turn to Mahan, New York: Routledge, 2009.
서방 세계의 주류 관점은 대부분 자기도 모르게 오만하여, 비서방 국가가 세계 해양강국으로 도약하는 것의 정당성을 의심하며, 돋보기를 끼고 중국의 해상행위를 관찰하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 책은 중국의 예외주의를 부추기거나 강조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해양력은 세계 보편적 개념이지만 오늘날 해양력의 의미와 사용 방식은 크게 달라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국 간 핵 억제, 경제 세계화와 정치문화의 발전, 국가 간 대규모 폭력의 비용 급증과 효과 급감으로 시대는 변하였고, 이제 다시 대규모 전쟁을 통한 해상굴기의 가능성은 없다. 이는 힘의 차이가 크지 않는 한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절대적 권력을 갖기 어렵고, 해양력을 사용하는 방식을 조정하여야 함을 의미한다. 해양력은 점차 절대적인 권력에서 공유와 타협의 권력이 되고 있다. 오늘날의 해양력은 평시의 영향력과 위상에서 더 잘 나타난다. 물론, 해상역량은 전시 제해권을 차지하기 위해 싸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지만, 평시에 더 많이 사용되며, 해양질서의 안정을 유지하여야 한다. 제프리 틸이 말했듯이 21세기 대국 해군들은 ‘근대적 해군(modern navy)’과 ‘탈근대적 해군(post-modern navy)’의 절충이다. 전자는 전통적 임무를 수행하고, 제해권 다툼에 대하여 배타적이고 경쟁적이나, 후자의 우선 임무는 제해권을 놓고 상대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해상질서를 보장하여 전반적인 해양안보를 유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미 해양력의 ‘머핸시대 이후’에 와 있다. Geoffrey Till, Seapower: A Guide for the 21st Century, Taylor & Francis Group, 2009, pp.6-19.
동시에 군사기술의 발달로 육·해·공·우주·2. 등 전 영역에서의 경쟁이 등장하고, 영역과 영역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해상에 사용할 수 있는 무기와 플랫폼이 다양해져, 각 군종은 모두 해양력에 이바지할 수 있다. 해양력의 도구가 풍부하여지는 것의 문제는, 어느 한 나라도 모든 ‘공간’과 기술 영역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해양통제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해양거부는 점점 쉬워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서양 특히 머핸식 패러다임의 해양력은 쇠퇴할 운명이다. 미래의 어느 나라도 오늘날 전 세계 해상에서 미국이 가진 주도권을 따라 하거나 추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예외가 될 가능성이 더 작다. 중국은 해양지리가 불리한 국가로, 관할해역의 면적이 좁고 도련(島聯)에 갇혀있으며, 육·해 복합국가로 육·해 방어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 이는 중국의 해상역량이 지역 중점으로 배치하여야 하며, 미국과 같은 ‘전 세계 배치, 전 세계 공방(攻防)’을 영원히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21세기는 바다의 세기이다. 세계 전체가 바다를 향하고 있다. 많은 나라가 다 같이 부상하는 가운데, 중국은 가장 눈에 띄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그것은 주목할 만하지만, 중등 해양강국이 부상하여 중·미와 같은 대국을 견제하는 것도 무시하여서는 안 된다.
중국이 오늘날 마주한 지정학적 환경과 처한 시대, 기술적 여건은 머핸이 살았던 19세기 말의 미국은 물론, 역사에서 떠오른 다른 해양강국과도 다르다. 역사의 관성은 매우 크지만, 경험과 교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머핸의 책은 읽어야 하지만, 그의 계획은 분명히 오늘날 중국에 적합하지 않다. 이 책의 주요 목적은 세계 해양력 이론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를 통해, 중국 근대 이래 해양력 건설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돌아보고, 중국의 해양 천성과 처한 시대적 조건, 세계 군사기술의 발전 추이를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파악하여, 중국 해양력 부상의 길을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이는 나 한 사람의 말일 뿐 중국 정부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과 한국은 그 크기에서 차이를 보일 뿐, 모두 해상에서 ‘부상(浮上)’하고 있다. 두 나라의 역사에는 모두 강한 해군과 해상 영웅, 역사에 길이 남을 정화(鄭和)와 이순신이 있었으며, 해양활동 역시 매우 왕성하였다. 하지만, 지금처럼 한 국가의 모든 영역이 육지에서 해양으로 향하는 것은 두 나라 모두 처음이다. 해양에 관한 인식과 이해 그리고 해양의 이용은 모두에게 어렵고 힘든 과제이며, 해양력을 어떻게 차지할 것인가는 더욱 힘들고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해양전략연구소와 이희정 대령, 이진성 소령의 이 책에 관한 관심과 노력에 감사드리며, 이 책이 한국 독자들을 한국어로 널리 읽혀 중국의 해양굴기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아울러 이 책이 ‘타산지석’으로서 한국의 해상굴기에도 본보기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중국 베이징대학교 후보 교수
--- 한국어판 머리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