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의사소통 능력과 이해 교육
1.1. 이해 교육에 대한 관점
사람은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를 통하여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을 한다. 듣기와 읽기를 통하여 다른 사람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며 말하기와 쓰기를 통하여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한다. 그런데 의사소통의 과정에서 이러한 이해 기능과 표현 기능은 밀접하게 상호 관련되어 있다. 특히 언어 수행에서 이해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표현 활동에 지장을 초래하여 성공적인 의사소통에 이르지 못하게 되므로, 성공적인 의사소통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Krashen(1981)에 따르면 ‘이해’는 언어 학습의 전반적 과정에서 가장 중심적이고도 지배적인 부분이다. 언어의 이해는 다른 의사소통과도 밀접하게 관련이 되며, 학습자의 모국어에서의 이해 기술과도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고 알려져 있다. 모국어의 언어 습득에서도 어린 학습자들에게는 일정 기간의 ‘침묵 기간’이 존재하여 이해의 과정이 선행됨을 알 수 있다. 언어 학습의 단계에서 이해는 표현을 앞서며, 표현을 시도한 이후의 시기라도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는 더 많은 이해가 가능한 것이 일반적이라는 점에서 이해의 비중은 매우 높다. 언어 교수법에서도 이해 기반 접근은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이러한 접근은 학습자 스스로 동기나 자신감을 가지도록 한다. 전신반응교수법(TPR)이나 공동체언어학습법 등에서는 학습자가 섣부른 목표 언어로 응답하지 않고 모국어를 사용하여 응답하게 함으로써 즉각적 표현 부담을 배제했다. 이러한 교수법에서는 외국어를 배울 때 ‘이해 가능한 입력(comprehensible input)’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며, 학습이란 학습자 스스로 화자의 전달 내용에 대해 구성하여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라고 본다.
초기 언어 교육에 있어서 듣기 교육은 말하기 교육을 위한 보조적인 수단으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이해 중심 교수법인 60년대의 전신 반응 교수법과 80년대 자연적 교수법에서는 적극적인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듣기가 말하기에 앞장서야 된다고 보았다. Krashen & Terrell(1983)은 실험 연구를 통해 청취의 이해가 발화에 선행될 때 언어 학습이 더 효과적으로 이루어짐을 입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어 교육에서는 듣기가 말하기 훈련과 함께 저절로 습득되는 것으로 보고 많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는데, 사실 듣기야말로 체계적인 교육적 접근이 필요한 영역이다. 외국어 교육에서 듣기는 청취력과 이해력을 키우는 영역으로 구분하는데, 청취력이란 음을 대조하고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고, 이해력은 들은 것을 청자의 목적과 기대에 따라 해석하고 기억하며 나아가서 표현 영역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청자는 발화 상황을 대략적으로 인지한 뒤, 음의 분절화를 통해서 음운을 인식하고 문장과 담화의 단위로 내용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고 나서 이것을 청자 나름대로 재구조화해서 장기 기억 장치에 기억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이해의 단계이다.
그런데 이해에는 언어적 요소 외에 비언어적 요소와 문화적 요소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말은 물론, 화자의 표정, 몸짓, 분위기 등과 발화가 이루어지는 시간과 장소 등의 환경도 이해에 역할을 하게 된다. 나아가서는 언어 표현의 배경이 되는 목표어의 사회 문화적인 요소 또한 의미 파악에 영향을 주게 된다. 하지만 외국인 학습자들에게 이러한 과정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목표어의 언어적, 비언어적 특성 외에도 사회와 문화에 대한 이해 학습은 필수적 요소가 된다. 또한 듣기를 하면서 대화 상대에 대한 효율적 반응을 통해 양방향 상호 작용 기술을 증진하면서 사교적 목적과 정보 수용의 목적을 구현하게 되므로, 듣기 전략에 대한 학습도 매우 중요하다.
또한 듣기란 화자의 말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 경험에서 얻은 배경 지식을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되는 능동적 특징도 있다. 청자는 내용을 들으면서 과거 자기가 경험한 지식을 떠올려 비교해 봄으로써 이해에 도움을 얻으려고 하는데, 사적인 대화체인지 혹은 공식적인 면담인지, 대학의 강의인지 혹은 라디오의 뉴스인지 등의 형식과 장르를 구분하여 예측하고 해석을 하게 된다. 아울러, 들으려고 하는 학습자의 동기도 중요한데, 모국어의 경우에도 청자가 기대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것만을 듣고 그밖의 것들은 집중하지 않고 잡음으로만 듣게 되므로, 주의를 기울인 듣기 연습도 필요하다. 이러한 듣기의 선택성은 청자의 듣기의 목적과 기대가 듣기의 효과에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을 알게 한다.
그간의 언어 교육에 있어서 읽기 교육은 문법번역식 교수법의 영향으로 단어나 문장의 의미를 모국어로 전환하는 데 주력하였으며, 읽기는 듣기와 마찬가지로 수동적인 기술로 인식되어 왔다. Goodman(1967)에 이르러 독자를 능동적인 존재로 파악했는데, 독자는 이미 읽은 것을 바탕으로 예측, 확인, 수정하는 과정을 통해 읽기 자료의 내용을 재구성하는 존재로 보았다. 이후 Coady(1979)에서는 배경 지식의 역할을 강조하였는데, 배경 지식이 있으면 어느 정도의 통사 구조상의 부족함을 보충할 수 있어서 글의 해석에 긍정적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Carrell & Eisterhold(1988)의 스키마 이론도 읽기 교육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 읽기는 독자의 정보, 지식, 감정, 경험 등을 모두 포함하는 스키마를 이용하여 이해하는 과정이며, 학습자가 가지고 있는 스키마가 읽기 자료의 내용과 맞을 때 읽기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읽기는 문자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는 이해 활동이므로, 쓰기와 함께 문자 언어의 특성을 바탕으로 한다. 또한 이해 활동이라는 점에서 듣기와 그 특성을 공유한다. 언어 교육이 구어 중심의 의사소통능력을 강조하면서 읽기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다소 약화되었지만 언어 교육에 있어 읽기 교육을 간과할 수는 없다. 읽기는 기본적으로 학습의 도구적 성격이 강한데, 학습자들은 읽기 행위를 통해서 대상 언어에 대한 많은 지식과 정보를 획득하게 된다.
또한 읽기의 범위는 글자나 단어를 확인하여 지각하고 암송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가를 시작으로 담화의 해독에 이르는 해석으로서의 읽기까지를 모두 포함한다. 즉, 읽기란 문자 텍스트를 단순히 판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텍스트에 담긴 내용 및 필자의 의도를 이해하는 것이다. 외국인 학습자들의 읽기는 목표에 따라 생존을 위한 읽기, 학습을 위한 읽기, 즐거움을 위한 읽기로 구분된다. 우선, 생존을 위한 읽기는 ‘하차 시 벨을 누르시오’와 같은 교통 안내 글이나, ‘비상구’와 같은 재난 표지 등의 실생활에서 부딪히는 문자를 예로 들 수 있다.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메신저나 문자, 광고물 등의 기본적 의사소통으로서의 읽기가 포함되는데, 목표 언어 국가에 체류하는 학습자들에게는 필수적인 읽기 자료가 된다. 다음으로 학습 목적 학습자 등에게 필요한 학술적 읽기가 있다. 직업이나 학업을 수행하기 위한 자료로 해당 학습자들에게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마지막으로 즐거움을 위한 읽기는 즐거움 그 자체를 위해 이루어지는 읽기로 특정한 목적을 벗어나서 일반적인 독자가 되는 활동이며, 그 결과로 유창성을 얻게 된다. 신문 읽기나 인터넷 게시판 읽기 등을 포함하며 목표 문화의 가치나 특정 주제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된다. 이 때는 흔히 필자의 의사소통 의도를 가정하면서 이를 해석하고자 하는 능동적 이해가 함께 이루어진다. 그런데 즐거움을 위한 독자의 읽기는 매우 선택적이어서 읽기의 목적과 요구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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