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자리에 앉아 부카티니 콘 레 폴페테를 허겁지겁 먹으면서, 어느새 의식의 흐름을 따라 추상화 역시 미트볼 스파게티와 같이 회생 가능할지 상상해 봤다. 생각해 보면 추상화와 이탈리아-아메리카 음식은 비슷한 역사를 지녔다. 둘 다 20세기 초반에 등장해 처음엔 푸대접을 받았고(마늘 냄새!) 둘 다 20세기 중반 들어 힙한 얼리어답터들 사이에서 유행을 탔지만 결국 사그라들었고, 이를 토대로 대중적 인기를 누렸으며, 이런 현상에 따분함과 싫증을 느낀 엘리트들의 눈 밖에 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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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미술의 현 상황은 어땠나? 입막음 값으로 받은 돈에 빠져, 진화론적 문제인 좋고 나쁨, 추상과 구상, 대중성과 진보성의 대립을 드디어 해결했다고 자화자찬 중이었고, 결과적으로 낙찰가 외에는 잃을 것도 없었다. ‘상업 미술’을 거부하는 정치적인 작업 또한 대개 비트코인, 은행 로고, 신용 부도 스와프, 그리고 모호한 상위 1퍼센트를 향해 비평의 칼날을 겨누며 금융에 집착했다. 이러한 시장과의 강박적 관계는 결국 무력감으로 귀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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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의 글쓰기를 비평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그럴 만한 이유도 충분했다. 태만하다거나 난해하다고 사람들이 혹평하면 ‘예술적’으로 글을 쓰려고 했다고, 논리적 수사가 아닌 탈속적 시상을 추구했다고 받아치면 됐다. 이런 글을 쓰는 작업은 꿈속 장면밖에 없는 영화를 만드는 일과 같아서, 비논리적이고 아무렇게나 만들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여기서도 물론 아무것도 잃을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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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잠식해 오는 문제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건방진 놈처럼 보이기는 싫으니까 이런 걱정들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하지만, 속은 타들어 간다. 들러리가 되는 일은 가슴 아프기는 해도, 사람들이 더는 호들갑을 떨어주지 않기 때문은 아니다. 더 걱정스러운 점은 모든 문들이 열린 뒤에는 닫히는 일만 남았다는 사실이다. 컬렉터들과 큐레이터들의 관심이 시들시들해지고, 작품의 질이 떨어지거나, 단순히 소재가 고갈된다. 하지만 이마저도 가장 큰 시련은 아니다. 제일 큰 문제는 문들이 열리고, 기계 장치의 일부분이 된 후 이게 다란 걸, 이 이상은 아무것도 없음을 자각하는 일이다.
--- p.26~27
어떤 사람들은 미술계가 학계의 지적 무게, 패션계의 화려함, 월가의 도박성을 모두 갖췄음에도, 겉보기에는 누구나 입장 가능한 무료 공연과 같은 파티임을 알았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이 파티로 몰려들었고, 모두를 위한 자리는 있었는데, 미술계는 자격증을 요구하지 않았고, 규제는 없다시피 했으며, 미술은 고정 관념의 파괴라는 미신이 이론, 패션, 경제적으로 별의별 말도 안 되는 것도 다 통용되는 분위기를 조성했기 때문이다.
--- p.32
한 시대의 기술은 당대 조각의 본질을 좌우했다.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 정보화 시대와 같은 용어들이 탄생한 이유는 사용 가능한 새로운 물질들에 의해 한 시대가 정의되고, 미술가들과 장인들은 새로운 작업 방식들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다가 구식이 되면 버렸기 때문이다. 오늘날 동으로 작업하는 조각가가 몇이나 될까? 이러한 작가들은 이 고대의 매체를 의도적으로 고대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했는데, 그게 의도가 아니라면, 안 됐지만, 관객들은 어쨌든 그렇게 인식할 터였다.
--- p.61
작품은 단순하고 즉시 이해돼야만 했다. 작품을 통해 미묘함, 은밀한 신비, 무상(無常), 또는 신비로운 느림 속에서 피어나는 우아함을 다루는 미술 작가들은 미술계 밖의 사람들에게 알려질 생각은 버려야 했다. 대중적으로 의미 있는 미술 작품을 만들 때는 권총의 특성을 본보기 삼으면 도움이 됐다?간단하고, 친숙하고, 장전된.
--- p.62
두바이 개발자들의 선견지명은 대단했다. 그들은 대중이야말로 커푸어의 신비한 「구름 문」을 ‘콩알’(The Bean)로 변신시키고, 렘 콜하스의 중국중앙텔레비전 사옥을 ‘큰 바지’(Big Pants)로 만들어 버리는 오묘한 힘의 소유자임을 알았다. 어떠한 예술적 기교도 자신들보다 거대한 무언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의 습성에 대적하지 못했기 때문에, 흐름에 따라 이미 불이 난 집에 부채질하는 편이 더 현실적이었다.
--- p.71~72
쿤스는 비틀스만 한 문화적 영향력을 갖겠다는 목표를 내걸었고, 비틀스는 자신들이 예수보다 더 영향력이 크다는 주장으로 사람들을 격분시켰으며, 이는 “나는 신이다”라고 선언한 웨스트에 의해 업데이트됐다. 이러한 야망들은 물론 실현 불가능했는데, 이렇게 영향력 있고 독보적인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틀을 평생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비틀스는 하나의 대중음악 현상으로 남았고, 쿤스는 영원히 많은 사람들이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미술 작가일 테고, 카녜이는 카녜이로 남을 테며, 하느님은 하느님이었다.
--- p.80
논의 대상이 광고든, 금융이든, 미술이든, 디지털 통신망이든 메시지는 비슷했다?가치는 오르락내리락한다. 불변성에 의존하지 말라. 무엇이든지 대체 가능하고, 변형 가능하며, 쉽게 합성되고, 옮겨지고, 버전화되고, 불법 복제된다. 가장 미천한 것이 고귀해지고, 고귀한 것이 미천해지는데, 이 흐름을 타고 놀지 못하면 쫄딱 망한다. 이를 즐겨라. 모든 것은 구제 가능하다! 기독교적인 관념처럼 들리지만, 뭔지는 몰라도 아마 그 반대일 테다.
--- p.96
불행히도, 그녀의 사고에는 근본적인 오류가 존재했다. “모든 것은 다른 무엇인가로 변모 중이다”라는 관념, 그리고 이와 연관된 예술의 변증법적 특성, 디지털의 급진적 합성 능력, 후기 자본주의의 교활한 불가피성에 대한 그녀의 공상들은 모두 외면할 수 없는 물질성, 또는 달리 말하자면 인간적 고통을 고려하지 않았다.
--- p.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