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눈을 돌려 내 몸에 시선을 주었다. 몸은 홑이불이 덮어져 있어 해수욕장의 모래 속 생각이 났다. 모래를 젖꼭지까지 덮고 가만히 내려다보면 내가 무슨 지렁이나, 아니면 모래 속에서 솟아 나온 나무둥치 같은 기분이 들었었다. 나무둥치와 잎은 어떻게 자기의 보이지 않는 뿌리를 인식할 수 있을까, 지렁이는 땅속으로 기어들면 자기의 실체를 어떻게 수긍할 수 있을까?
--- p.378, 「2월 30일」
“모두들 날 가두어두려 한단 말야. 아무 장난감도 없는 방 속에다 처넣고 문을 잠가버린다니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어 난 싀어 있었어. 문이 열렸을 때도 난 나갈 수가 없었다. 나가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방에서 방으로 건너다니다 제자리로 돌아왔을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렇게 되진 않는다, 자살이라도 할 수 있으니깐, 나는.”
--- p.397, 「시인 일가네 겨울」
“자정은, 어제의 끝이고…… 내일의 시작이고…… 헌데 오늘이 끼이질 못했고…… 하 그것은[零時] 묘혈(墓穴)이며 산실(産室)이고…… 그건, 정말, 그래! 거기서 아마 거소를 잃은, ‘말’은 살고 있는 모양이다.”
--- p.518, 「뙤약볕 3」,
그녀의 얼굴은 달빛의 뒤쪽에 있어, 그로서는 읽을 수 없었지만, 그녀 어깨 위의 달빛이 포르르 떠는 것으로 보아, 어머니는 울고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사실로 그녀는 울고 있었던 모양으로, 돌아서 달빛을 올려다보았을 때의 그 눈에는 눈물이 웅덩이처럼 괴어 있었다. 그 아들은, 그 눈물이 자기를 안고 겨울밤을 새우던, 그 청상과부의, 접자 불빛 어린 그 눈물과 너무도 같다고 추억했다.
--- pp.722~723, 「유리장」
무덤에까지 가져갈, 그렇게나 귀중한 것이 있다면, 또는 꼭히 놓아두고 갈 소중한 것이 있다면, 오늘 늙은네가 믿기엔, 그것은 사랑일 것이라고
--- p.934, 「두 집 사이」
―자기는, 운명적으로 시인이라고 생각하는 자가 있어, 자기의 죽음은, 자기가 뿌린 말의 씨앗들이 터, 불의 꽃을 피울 때, 그 불의 고랑에 누워 산화하는, 그런 것이 되기를 바란다면, 그건 너무 사치스러운 꿈이나 될까요?
--- p.1062, 「두 집 사이: 제7의 늙은 아해(兒孩) 얘기」
그러면 나는, 어머니를 빼앗아 가는 모든 아버지들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질투와 증오 같은 것으로, 비질비질 울며 바다로 달려 내려가서는, 그 고요한 물속에 나를 파묻어놓는 것이었다. 상점이 잇대어진 거리를 다니고도 싶었었지만, 그러다 보면 나만 한 또래 애들의 돌팔매에 맞기가 일쑤였고, 개가 물려 달려들어도 아무도 말려주려고 하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바다로밖에 내가 갈 곳은 없던 것이다. 그래서는 눈물을 떨어뜨리며 어머니를 저주하고 있노라면, 나도 모른 새, 저 어린 잠지가 불어나서, 물속에 잠겨 앉은 아이는 아이가 아니라, 그것은 하나의 돌출한 남근, 하나의 더러운 아버지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저 정중스럽지 못한 손들로 쳐들어 보이던, 저 음모 푸석한 사타구니며, 물그레해 보이는 둔부 같은 것을, 그러며 나는 훔쳐보고 있는 것이다. 나도 그러며 내 손바닥을 펴 보는데, 그러면 내 손도 또한 저 때 낀 아버지들의 마디 굵은 손으로 변해져, 저 까스스한 바다를 물그레 더듬고 있었다. 손바닥에 가득 채워졌다 빠져나가는 바다의 감촉은 그리고 그런 것이었다.
--- p.1478, 『죽음의 한 연구』
자다 깨어 노래를 부르고 있던 저 어렸을 때, 밖에서 돌아온 내 어머니가 그랬었다. 그 어머니는 그래서는, 나를 품에 안기를 적이 겁내고 아파하는 얼굴로 외면하곤 했었다. 그 어머니를 내가 그렇게도 기다렸었는데, 그러나 갑자기 밉고 원망스러워 휙 돌아누워 버리면, 그 어머니는 소리 없이 우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면 내가 어느덧 어머니의 젖꼭지를 물고 있었고, 그것은 내 것이 아닌 독한 침 냄새에 덮어씌워져 있었다. 그러나 나는 휙 돌아눕지는 않았다.
--- p.1533, 『죽음의 한 연구』
오늘날 창궐 만연하는, 염세자살이며, 행복하지 못하기, 불만족, 불안, 초조 등은,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할 줄 모르는 데 근거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이되, 그것은 잘못된 진맥이며, 그런 병증은 사실은, 왜냐하면 자기를 사랑할 줄 모르기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否定할 줄을 모르는 데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새로 심심히 고려해보아야 할 것이다.
--- p.4387, 『칠조어론 2 - 「제9장 주석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