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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지프스 나라로 간다

우리는 시지프스 나라로 간다

민경륜 | 북랩 | 2021년 06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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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6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16쪽 | 308g | 148*210*14mm
ISBN13 9791165398057
ISBN10 1165398052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이미 경찰과 119 대원에 의해 방이 한번 개방되었던 방이지만 더운 공기와 섞인 구리고 썩은 악취가 뜨거운 물을 끼얹듯 얼굴로 확 달려든다. 그는 습관대로 고개를 돌려 뒤로 젖히고 잠시 심호흡을 한 후 진입했다. 단칸방이었다. 출입구 쪽에서 보자면 한 쌍의 창문이 정면에, 그 오른편으로 싱크대와 가스레인지 그리고 책상과 침대가 순서대로 있고, 왼편으로 수납장과 비키니 옷장과 소형 냉장고가 벽에 붙어 서 있으며, 그 뒤로 화장실 문이 보였다. 책상 위에 제법 두툼한 책들이 가지런히 놓였는데 실용서와 수험서가 대부분이었고, 철학서와 문학서도 몇 권 보였다. 자격증 시험을 준비했던 모양이다. 이런 현장은 어디나 난장판이다. 살림살이가 뒤죽박죽 헝클어져 제멋대로 나뒹군다. 물건들은 켜켜이 쌓이고 엉겨 붙어, 쉽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떡이 되어 있기도 하다. 시신 감식과 수습을 위해 들어온 경찰과 장의사의 발자국들이 흩어지고 뒤엉키고 널브러진 물건 위에 여기저기 찍혀서, 쓰레기 하치장이나 다름없다. 사람들이 명줄을 놓을 때쯤 되면, 되는 대로 사는 모양이다. 청소도 빨래도 설거지도 하지 않은 그대로 세상을 떠나, 옷이며 신발이며 생활 도구들이 제멋대로 놓여 있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이곳은 비교적 반듯하고 양호하다. 누군가 정리를 해 둔 것처럼 살림살이가 거의 다 제대로 놓여 있었다. 현장이 크게 난삽하지 않지만, 현장이 난삽하지 않다고 이들의 일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앞서 경찰이 무연고자라고 하는 걸 보니, 고인은 언제부턴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주변 정리를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연고가 될 만한 것들을 모조리 없애 버리는 거다.
--- p.40

나는 이 글을 쓰는 데 며칠을 고민하고 망설였다. 파업에 참여할 때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다. 이 글이 내 의도와 다르게 어떤 이에게는 아픈 생채기를 다시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에 양날의 칼과 같고, 그러므로 차마 입에 담아서는 안 될 치명적인 비밀을 말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용기를 냈다. 사람들의 아픔도 무시할 수 없지만, 진실 또한 어떠한 가치보다도 귀한 것이라고 여기며, 동지들과 그 가족들이 죽음으로 내몰린 이유와 진실에 대해서도 입을 닫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 사태를 몇 마디로 다 설명할 수 없기에 내가 겪었던 것과 당시 해 두었던 메모와 전해 들었던 이야기, 노조와 집행부가 발표했던 것들을 토대로 그 현장을 기록해 보기로 했다. 끝까지 제대로 기록하고 복원할지 모르겠지만 하는 데까지 해 보겠다. 감정 개입을 최소화하고 냉철하게 객관적으로 정리해 보고자 하지만, 잘 지켜질지 모르겠다. 지켜지지 않는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적을 수밖에 없으니까. 나는 노조 간부도 아니고 당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은 더더욱 아니며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사람도 아니니 필력이 좋을 리 없다. 맞춤법이 틀리고 문장이 거칠고 투박할지도 모른다. 나는 두 가지 죄목으로 구속되었다가 9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집행유예로 3개월 만에 나온 사람일 뿐이다. 집시법 위반, 공무집행 방해죄, 특수폭행죄로 기소되었으나 세 번째 것은 기각되었다. 현재는 다시 일을 찾고 있으나 쉽지 않아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서 불안하다. 대부분의 파업 참가자들은 나와 같이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파업 직후부터 아내가 동네 대형 마트에 오후 캐셔로 나가 마감까지 치고 와야 하기에 아무래도 오후 집안일은 내가 챙기게 된다. 자연히 오전을 이용해 틈틈이 기록하기로 했다.
--- p.56

6월 4일. 사수대에게만 지급되었던 쇠파이프와 안전모를 나도 받았다. 오늘은 어제에 이어 도내道內에 있는 ‘K 자동차’, ‘H 자동차’, ‘H 중공업’, ‘B 기계’의 노조 방문, 투쟁 활동을 홍보하고 연대 투쟁 동참을 호소함. 공장을 나설 때 가족대책위원회에서 붙인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잘못은 회사가. 책임은 우리 아빠가?” 현 사태의 본질과 핵심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가족대책위의 대부분은 아내들. 아낙네들은 남편이 파업 중이니, 아이들 돌보랴 집안 살림 챙기랴 파업 현장을 오가며 시위하랴 1인 4역, 5역을 힘겹게 감당하는 고난의 행군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데도 남편들이 도움을 전혀 줄 수 없는 현실이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공장으로 복귀하니 사 측이 띄운 헬기에서 유인물이 뭉텅이로 떨어져 노조원들 청소 중. 유인물을 유심히 읽는 노조원들도 있음. 사 측은 내부 분열과 노노勞勞 갈등을 유발시키고 파업 대오 흔들기를 끝없이 시도하고 있음. 6월 5일. 이날은 ‘죽은 자’인 해고자와 ‘산 자’인 비해고자를 가르는 정리해고 통지서를 받은 날. 이미 마음의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노조원들이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이 통지서가 노동자를 두 편으로 갈라 쳐, 지역사회에 끔찍한 파장을 불러왔다. 이날 이후 함께 살던 아파트에서는 해고자와 비해고자가 끼리끼리 갈라져, 장도 따로 봤고 식당도 따로 갔고 술집도 따로 다녔다. 인간성을 파괴하는 자본의 만행을 여실히 보여 주는 것이다, D 시 청사 회의실에서 노사정 간담회가 있었는데 노조는 정리해고 2년 유예를 제안하고 6월 7일까지 사 측에 답을 요구함. 사 측과 경찰의 무력 침탈에 대비해 밀가루, 새총, 물풍선, 쇠파이프 등 무기 사용법을 익히기 위해 모의 비상 훈련 실시. 저녁에는 투쟁가 부르기 대항전 개최. 「단결투쟁가」, 「철의 노동자」, 「질긴 놈이 승리한다」, 「동지가」, 「금속노조가」, 「파업가」, 「흔들리지 않게」…. 노동가요가 공장의 밤하늘에 메아리쳤다.
--- p.78

그런데 기막힌 사건이 터졌다. 노조 간부의 아내가 자살했다는 비보悲報였다. 농성장은 일시에 슬픔에 휩싸였다. 시시각각 변하는 농성장의 상황과 사태를 정확히 모르는 가족들이 사 측의 농간에 굴복할 우려가 있었다. 파업 노동자 모두가 이 점을 걱정했는데 그게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고인의 가족에 따르면, 회사에서 간부의 아내를 찾아와 손해배상과 가압류, 고소, 고발을 들먹이며 “남편이 농성장에서 나오지 않으면 구속과 손배 청구, 해고될 터이니 얼른 나오게 해라.”라고 지속적으로 협박과 엄포와 회유를 했다고 한다. 압박에 못 이겨 심약한 아내가 결국 자살하고 말았다. 강자가 약자를 굴복시키는 방법은 약자의 약한 곳을 지속적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자빠질 때까지 약한 곳을 교묘하게 쑤시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강한 세력을 만나면 약해진다. 이것은 만고의 진리다. 이 사태로 인한 사망자가 벌써 5명. 눈물 한 방울 없을 것 같던 지부장도 한없이 울었다.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어찌 가족들까지 협박하고 손을 댈 수 있단 말인가? 저들은 인간의 도를 넘었다. 인간이 아니다. 모든 파업대는 지도부의 지시에 맞춰 묵념의 시간을 가졌고 사 측에게 하루 휴전을 제안했다. 고인을 기리고 명복을 빌며 옥상에 검은 조기를 걸었지만 사 측은 고인을 희롱하듯 「손에 손 잡고」를 틀며 관제데모를 멈추지 않았다. 이에 파업대 스피커에서는 “니들이 사람이냐?”, “도대체 니들이 사람이냐고?”
--- p.106

노조 지도부는 기자들 앞에서 입장문을 발표했다. “해고는 살인이다. 우리 파업 노동자들은 회사도 노동자도 함께 살고자 그 방안을 제시했지만 회사는 제안을 거부하고 일방적으로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사 측의 기준 없는 정리해고, 이 정권의 의도적인 방임과 고위 공무원들의 태만은 노동자와 그 가족의 목숨을 앗아 가고 있다. 지금이라도 회사의 채권자이자 주주인 국가는 경영진의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또 사 측은 파업의 파괴 공작과 노노 갈등 획책을 중단하라.” 고개를 떨구고 있던 종필이 “형님, 저들을 정말 죽여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드네요. 폭탄을 들고 저 새끼들 몇 명 죽여야 분이 풀릴 것 같네요.” 하며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덩치는 황소지만 순둥이다. 법 없이도 살 놈이 저런 말을 하다니! 옆에 있던 누군가가 “대통령은 지금 뭐 하노? 우릴 다 쥑일 작정인가?” 흥분하며 소리를 내질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들 곁을 떠나, 짱박아 두었던 담배 하나를 꺼내 불을 붙였다. 저들을 향한 불같은 적개심이 쉬 가시지 않는다. 분노를 참지 못해, 협박을 이기지 못해 노동자들과 가족들이 죽음을 택하고 있다. 여기저기 불타는 폐타이어에서 새카만 연기가 피어올라 공장을 휘감고 돈다. 오후 내내 머리가 지끈거렸고 늦은 밤까지 용역 깡패와 경찰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정말 대통령은 지금 뭐 하나? 이 정권, 이 나라는 민주주의를 가장한 독재, 폭력 공화국이다. 이 나라 민주주의는 포장만 민주주의다. 야만의 나라다.
--- p.107

“옥쇄파업 중에는 비가 오지 않아 미칠 지경이었어. 너도 알다시피 옥상의 동지들은 목이 타들어 가고 숨이 턱까지 막히는 폭염과 싸우면서 특공대의 공격을 막아야 했다. 그런데도 한 달이 넘도록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어. 오죽했으면 어떤 동지는 아침마다 물을(비록 공업용수였지만) 떠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고. 또 어떤 동지들은 경찰이 쏘아 대는 살수차 최루액 속으로 뛰어들어 샤워를 하겠다고 했을 정도니까. 하늘은 야속했다. 그런데 우리가 패배를 인정했을 때, 민주광장에서 지도부와 동지들이 마지막 끌어안고 헤어질 때 얄궂게 하늘에서 비가 내렸어. 그날, 세상에서 가장 슬픈 비가 내렸고 눈물인지 빗물인지 알 수 없는 액체가 두 뺨을 타고 흘렀어. 하늘은 또 한 번 야속했고 원망스러웠다.”라고. 그래. 그렇다. 옥쇄파업을 했던 모든 동지들은 시지프스다. 그들의 운명이 시지프스 못지않게 부조리 앞에 놓였기 때문이다. 까뮈는 이런 말을 던졌다. “일생 동안 매일매일 똑같은 노동을 하며 사는 오늘날의 노동자들, 그들의 운명 역시 부조리하다. …중략… 신神들의 프롤레타리아이며 무력無力하고 반항적인 시지프스는 그의 비참한 조건의 크기를 안다. 그가 (산에서) 내려오는 동안 생각하는 것은 이 조건이다. 그에게 고통을 안기는 이 명백함이 동시에 승리의 왕관을 씌워 줄 것이다. 멸시로 극복되지 않은 운명이란 없다.”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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