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팬데믹이 선언된 전염병은 1968년 홍콩독감, 2009년 신종플루,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예요. 팬데믹을 선언하는 WHO가 1948년에 설립되었기 때문이에요. 당연히 그 전에도 팬데믹은 존재했어요. 오히려 의학과 기술이 변변찮은 시절이라 피해 규모와 유행 기간은 지금의 팬데믹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대단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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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상황에서 새로운 확진자가 발생하면, 한국 질병대책본부는 그 사람의 개인 정보 일부와 CCTV, 신용카드 사용 조회, 탐문 등을 통해 감염자가 이동한 동선, 접촉자 등을 공개해요. 이것을 ‘역학조사’라고 해요. 역학조사를 처음 도입한 사람은 19세기 영국의 존 스노우(1813~1858, 질병 역학조사의 선구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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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을 일으키는 원흉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에요. 다른 말로 병원체라고 하는데, 세균, 바이러스, 기생충이라 불리는 원생생물, 곰팡이 등이 있어요. 여기서 가장 위험한 녀석들은 세균과 바이러스예요. 사실상 세균과 바이러스가 전염병을 일으키는 주 요인이고, 바이러스의 점유율이 훨씬 높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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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는 오직 세포만 노려요. 왜 하필 세포냐고요? 그것은 바이러스의 구조와 관련 있어요. 바이러스는 구조가 매우 단순해요. 단백질 껍데기에 유전물질(DNA 또는 RNA)이 한 가닥 들어 있어요. 세포가 없으니 스스로 번식이 불가능하죠. 가질 수 없다면 뺏어라! 바이러스는 세포를 침공해 그곳을 식민지 겸 생산기지로 삼아요. 그리고 세포에게 명령을 내려 유전물질과 단백질을 만들게 해요. 하나의 세포에서 순식간에 수십, 수만 개의 바이러스들이 만들어져요. 목적을 달성한 바이러스 백만 대군은 세포를 뚫고 나와요. 에일리언이 인간의 몸을 찢고 나오듯 말이에요. 그리고 지체 없이 싱싱한 이웃 세포들을 차례차례 점령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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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원주민은 총과 금속 병기로 무장한 스페인 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어요. 게다가 스페인 군에는 더 치명적인 무기가 있었어요. 바로 병원균이었어요. 당시 스페인 군의 몸에는 결핵, 홍역, 천연두, 콜레라 등 다양한 세균과 바이러스가 득실대고 있었어요. 그들과 접촉한 원주민은 삽시간에 전염되어 픽픽 쓰러졌어요. 이렇게 신대륙 주민의 90퍼센트가 전염병으로 사망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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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면역만으로는 모든 병원체를 물리칠 수 없어요. 이럴 때는 백신(예방주사)을 이용해 강제로 면역력을 키워야 해요. 이를 ‘인공면역’이라고 해요. 백신으로 유명한 인물은 종두법을 개발해 천연두를 물리친 영국인 의사 에드워드 제너(1749~1823, 천연두 예방접종의 창시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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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이 예방약이라면 항생제는 치료제예요. 과학자들은 세균이 사람에게 질병을 감염시킨다는 사실을 알아냈지만, 그것을 억제하는 항생제를 만드는 일은 무척이나 어려웠어요. 몸속 세균을 죽이기 위해 독한 성분을 사용하면 자칫 사람 목숨까지 위험하니까요. ‘사람한테는 안전하면서 세균만 골라서 죽이는 물질은 없을까?’
--- pp.56~57
페니실린이 등장한 후 지금까지 1000개가 넘는 항생제가 개발되었어요. 반면 항바이러스제는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적어요. 현재까지 개발된 항바이러스제는 독감 치료제, 헤르페스 치료제, B형 간염치료제, C형 간염 치료제, 에이즈 치료제 정도예요. 오늘날 인류를 위협하는 신종 전염병은 대부분 바이러스성 전염병이에요. 팬데믹이 선언된 홍콩독감, 신종플루, 코로나19를 비롯해 사스, 메르스 모두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이에요. 심지어 1976년에 발견된 에볼라 바이러스는 아직도 치료제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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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의 공포가 절정에 달하던 2020년 2월부터 4월까지, 20개 병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실제로 설사, 호흡기 질환, 감염병 환자수가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었어요. 전문가들은 온 국민이 마스크를 쓰고, 손 씻기, 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개인위생을 잘 지켰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어요. 그만큼 위생이 중요하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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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마스크 착용률이 높은 중국, 대만, 한국, 일본은 감염자 추세가 확연히 수그러들었고, 유럽에서도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한 체코는 확진자 숫자가 인구수가 비슷한 벨기에의 1/3에 불과했어요. 그제서야 WHO를 비롯하여 서구 국가들은 ‘면 마스크라도’ 착용하라고 국민들에게 호소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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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체의 정체가 미생물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조선시대에는 전염병을 어떤 특별한 귀신이 퍼뜨린다고 생각했어요. 그 귀신을 역귀 혹은 여귀라 부르며 몹시 두려워했지요. 조선 정부 역시 전염병이 발생하면 마을마다 이 귀신을 달래는 제사를 지내게 했어요. 그러나 뜸과 침, 한약 몇 첩, 주술적 믿음만으로는 전염병을 억제할 수 없었어요. 그저 강도 높은 봉쇄와 격리를 통해 전염병이 자연 소멸되기를 기다리는 것, 그것이 조선 정부가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하면서도 최선의 방역 대책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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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근대 서양 의학에 눈을 뜬 것은 19세기, 지석영(1855~1935, 개화기에 종두법 등 서양 의술의 보급에 힘썼다)이 종두법*을 들여오면서부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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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농장, 댐이 건설되면서 수많은 밀림과 숲이 지도상에서 지워졌어요. 영역을 잃은 야생동물과 접촉한 인간은 신종 전염병에 감염되었어요. 에이즈는 아프리카 원숭이로부터, 에볼라와 코로나 바이러스는 박쥐로부터, 머리가 작은 아기가 태어나는 소두증은 이집트 숲모기로부터. 최근 40년간 발생한 신종 질병의 75퍼센트는 야생동물이 전해준 것이에요. 환경을 파괴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거죠.
--- p.93
병원체들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바이러스예요. 지금껏 밝혀진 바이러스 종류는 약 1400종이지만, 이것도 빙산의 일각일 뿐이에요. 게다가 바이러스는 세균보다 늦게 발견되어서 역사가 짧아요. 얼마나 더 많은 바이러스들이 모습을 숨기고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요. 확실한 것은 바이러스는 세포를 떠나서 살 수 없기 때문에 살아 있는 세포를 가진 모든 생명체에 기생한다는 사실이에요. 환경파괴, 야생동물 학대와 포획, 그리고 박쥐까지 먹어치우는 중국 우한의 시민들처럼 무분별한 야생동물의 식용화가 계속된다면 앞으로도 팬데믹은 언제든 일어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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