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언어들 사이의 다양성 연구
언어유형론은 언어의 다양성과 유사성을 비교 분석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언어의 다양성은 어순의 다양성, 소리의 다양성, 음운, 표기, 문법의 다양성 등 여러 가지를 포함할 수 있겠으나 이 책에서는 언어의 형태통사적 다양성을 연구하는 것으로 그 범위를 제한하고자 한다.
형태 통사적 다양성의 예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쉬운 예를 들자면 시제 표시의 다양성을 떠올릴 수 있겠다. 영어의 소위 12시제에서부터 뉴기니 서부 언어에는 시제를 나타내는 문법요소가 없고 문맥에 의존하여 시제를 추론하는 경우까지 다양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시제 체계를 가지고 있는 언어 중에도 과거와 비과거만을 구별하는 이분 체계로부터 시작해서 과거, 현재, 미래를 구별하는 삼분 체계, 먼과거, 가까운 과거, 현재, 미래를 구별하는 사분 체계, 과거를 삼분하고 현재와 미래가 추가로 구분되는 오분 체계 등 다양한 체계가 있다. 과거를 삼분하는 체계에서는 아주 먼 과거와 먼과거, 가까운 과거를 구별하는 언어도 있고, 어제 이전의 과거와 어제 과거, 오늘 과거를 구별하는 삼분 체계도 있을 수 있다. 시제 체계의 경향성을 보면 미래보다는 과거 시제를 세분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아마도 발생하지 않은 불확실한 사실보다는 이미 발생한 사실의 시간적 위치를 특정하여 말하기가 쉽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박진호 2011).
형태통사적 차이와 구별되는 것으로는 화용론적 차이나 다양성 또는 언어 사용상의 차이나 습관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밥 먹기 전에 하는 말이나 행위에도 차이가 난다. 밥 먹기 전에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이 예절인 언어 습관이 있는가 하면, 식욕을 권장하고 돋우는 ‘bon appetite/good appetite’ 등의 말을 하는 언어도 있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영어에서는 신문 사러 나가면서 ‘I’m going to buy a newspaper’라고 한다. 보통 간다고만 말하고 돌아온다는 말은 명시적으로 안 하지만 돌아올 것을 듣는이는 전제한다. 그에 비해 한국어나 일본어에서는 보통 ‘신문 사러 갔다 올게’라고 표현한다. 이런 것들은 문법적인 차이나 형태통사적인 차이가 아니라 언어 사용상의 차이나 문화 관습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 사용상의 차이나 언어 문화 관습의 차이도 흥미로운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이 책에서는 주로 형태통사적 차이에 주목하여 살펴보려고 한다.
2. 언어들 사이의 유사성 연구
언어유형론에서는 언어들 사이의 유사성도 물론 연구한다. 유형론 연구에서는 언어 구조의 유사성에 많은 부분 의존하고 있다. 이것을 ‘구조 의존성(structure-dependence)’이라고 부를 수 있을 텐데, 형태 통사적으로 상이한 수백 개의 언어 비교를 가능하게 하는 전제 조건은 언어들 사이에 구조적 유사성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럽어를 비롯한 많은 언어에서 의문문을 만들 때 첫 번째 요소와 두 번째 혹은 세번째 요소의 순서를 바꾸라 하지 않고, 주어와 동사의 순서를 바꾸라고 명시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언어들 사이에 주어와 동사를 특정해 낼 수 있는 구조적 유사성이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사구조/범주(syntactic structure/category)’를 먼저 확인하고 이 동일한 통사범주에 형태통사적 조작을 가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구조 의존성은 언어에서도 나타나지만 인간의 인지구조(human-cognition)의 일반적 특징이다. 예를 들어 전화번호를 기억할 때 문화에 따라 3-4자리, 혹은 3-2-2자리 등으로 나누어 구조적으로 기억하거나 숫자를 읽고 기억할 때 문화에 따라 세 자리나 네 자리로 나누어 구별하거나 구조적으로 기억하는 것이 그런 예에 속한다. 기억력은 임의적인 순서나 연쇄체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에 의존해서 기억할 때 훨씬 수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3. 어떤 종류의 보편성이 존재하는가?
인간 언어는 다양하지만 그 안에는 나름의 보편성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 현대 언어학의 가정이다. 그렇다면 인간 언어에는 어떤 종류의 보편성이 존재하는가? 촘스키류의 언어학에서는 인간 언어에는 내재적 보편성이 존재하고 인간은 이러한 보편적 언어기제를 타고난다고 가정한다. 그린버그(Greenberg)와 같은 학자는 언어 보편성에 대해 이와는 대조적인 연구 방법을 택한다. 그린버그(1966)는 다음과 같은 보편성을 설정한다.
(1) 함의적 보편소(implicational universals)와 비함의적 보편소(non-implicational)
절대적보편소(absolute universals)와 보편적 경향성(universal tendencies)
이것들을 결합해 보면 논리적으로 다음 네 가지 유형의 보편성을 상정할 수 있다.
(ㄱ) 비함의적 절대보편소(absolute non-implicational universals)
(ㄴ) 함의적 절대보편소(absolute implicational universals)
(ㄷ) 비함의적 경향성(non-implicational tendencies)
(ㄹ) 함의적 경향성(implicational tendencies)
--- 본문 중에서